2018년 가을수양회 주일메시지(김엘리사 목자님)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말씀 / 민수기 13,14

요절 / 민수기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수령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험난한 광야길을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 두령의 불신의 정탐보고로 인해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의 꿈은 40년이나 연기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20세 이상의 불신세대는 단 한 사람도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광야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똑같은 상황에서 믿음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갈렙과 여호수아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가나안 땅을 직접 밟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저희에게도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을 덧입혀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내면의 두려움과 불신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도전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13)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의 턱 밑인 바란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여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며 한껏 들떴습니다. 여름이면 요단강 강가에서 캠핑을 하며 낚시도 하고,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바비큐 파티를 하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또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헬몬산 정상에 올라서 드넓고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야호~’하고 마음껏 소리쳐보는 상상도 하였습니다.

 

이런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도 아셨는지, 바란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 작전을 지시하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지휘관된 자들을 한 사람씩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하였습니다. 요즘은 직접 가보지 않아도 다음이나 구글 지도만 검색하면 세계 구석구석을 자세히 정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도도 없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막 출애굽 해서 가나안 지리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푼 기대와 희망 가운데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습니다.

 

정탐꾼들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샅샅이 살피며 하나님께서 주기로 약속하신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였습니다(18~20). 그들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한 가지는 그 땅의 거주민에 대해 정탐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 땅의 지형과 토지, 수목, 과실 등 자연지리를 정탐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정탐꾼들이 40일간의 정탐 임무를 마치고 이스라엘 진영에 복귀하였습니다. 그들의 어깨에는 탐스러운 석류와 무화과와 포도송이가 메어 있었습니다. 특히 포도송이는 한 송이가 얼마나 크고 무거웠던지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서 메고 와야 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우와~ 엄청나다! 정말 가나안 땅은 살기 좋고 풍요로운 땅이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땅을 우리에게 주시다니...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감탄사와 감사가 흘러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자 모두 모였습니다. 드디어 정탐을 마치고 온 각 지파의 수령들이 정탐보고를 시작하였습니다. 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열 두 수령의 보고가 여기까지는 다 똑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보고부터 10:2로 나뉘게 됩니다.

먼저 열 수령이 보고를 합니다. 28, 29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그러나그들의 보고는 그러나라는 말과 함께 부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왕포도 열매를 보고 한껏 들뜬 백성들의 마음에 찬물이 확 끼얹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보고는 어느새 실망과 불평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땅만 비옥하고 좋으면 뭐합니까? 거기에는 이미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체격도 좋은 아낙 자손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무슨 수로 뺏어냅니까? 택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말렉은 남쪽에, 헷인, 여부스인, 아모리인은 산지에,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강가에 두루두루 거주하고 있어서, 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할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습니다. 다 틀려먹었습니다.’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평은 이내 불신으로 변했습니다. 31~33절을 보십시오. 열 두령들의 입에서는 불신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그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 “그들은 모두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은 자들이라그들은 할 수 없다. 이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며 가나안 땅 자체를 악평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나안 족속은 객관적인 사실보다도 훨씬 과대평가하고 자신들은 사실보다 훨씬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네피림 족속은 노아시대에 살았던 족속으로 노아의 홍수 때 다 죽었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작더라도 메뚜기같이 작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열 두령은 왜 이처럼 부정적인 보고, 불신의 보고를 한 것일까요? 첫째는 정탐했던 가나안 땅의 상황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과 달랐던 것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환경을 예비해 놓아서 가나안 땅에 무혈입성하게 될 줄로 기대한 것 같습니다. 가나안 거주민들이 전염병으로 시들시들 다 죽어가거나 깃발만 꽂으면 되는 황무지와 같은 상태이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들은 고생하기 싫고 피 흘리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낙 자손 같이 크고 강한 민족들이 가나안땅 곳곳에 큰 민족을 이루고 팔팔하게 살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외적인 모습만 보고 기가 죽어 버렸습니다. 아낙자손들의 큰 키에 주눅들고 가나안의 높고 견고한 성 앞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가나안 거민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거민들을 보고 눈이 홱 돌아가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출애굽 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고 두려움에 빠져 불신의 보고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30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고갈렙은 여러 말 하지 않았습니다. ‘얼른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 딱 두 마디 했습니다. 앞에 열 두령은 28절부터 33절까지, 열 마디, 스무 마디를 했습니다. 그러나 전부 부정적인 말들이었습니다. 대개 부정적인 사람들이 말이 많습니다. 핑계가 많습니다. 그리고 안 된다는 이유가 그렇게 많고 결론은 항상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희 회사에도 이런 비슷한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인상이 써집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첫째 믿음이 없고, 둘째는 안일과 이기심으로 고생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땀 흘리고 싶지 않고, 피 흘리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합니다. 잠언에 보면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하며 꼼짝도 안한다고 하였습니다(26:13).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다릅니다. 조그만 가능성만 보여도 그래? 한 번 해보자하고 벌떡 일어납니다. 땀 흘리고 고생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합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갈렙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렌즈를 끼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때, 가나안 거민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괜히 이렇게 쓰잘때기 없는 논쟁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올라가서 취하기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갈렙은 상대방은 어떻고 우리는 어떻고 그런 비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승리를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혀 메뚜기로 보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서 2장에 보면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 정탐꾼들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았느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홍해를 마르게 하신 일과 여러 나라를 전멸시킨 일을 듣고 우리가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2:9~11)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한 것은 가나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때문입니다. 애굽의 바로를 무너뜨리시고 홍해를 마르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 수많은 나라들을 전멸시키신 그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의 기생도 그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의 열 두령은 믿음이 없어서 자신들을 메뚜기처럼 여겼습니다. 정말 아이러니입니다. 저희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기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현실문제 앞에 두려워 떨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믿음이 없으면 상황과 현실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특히 경제문제는 우리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기 때문에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합니다. 언론은 경기침체, 일자리 감소 등 부정적인 기사만 쏟아내고 항상 경제가 악화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학사님들은 직장을 잘 다니면서도 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학생들은 나중에 졸업하고 취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런 경제문제를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지도 않은 현실을 미리 걱정하며 스스로 메뚜기 같이 살아갑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고 약속하셨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우리 안에 있는 염려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베드로 목자님 가정은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공안에 쫓겨 빈털터리로 귀국했습니다. 목자님은 허름한 주택 1층 상하방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리어카를 끌고 두부 장사를 하였습니다. 당시 저희 요회의 요회 목자이셨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막막한 현실 앞에서 하루하루 근심과 두려움 가운데 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자님 가정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항상 양들을 섬기며 캠퍼스 제자양성 역사에도 앞장을 섰습니다. 주일 예배 후에는 항상 요회 동역자들과 양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섬겨 주셨습니다. 아마 저 같았으면 자의식 때문에 초청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목자님 가정을 축복하시고 높이셨습니다. 남들은 한 번도 합격하기 힘든 임용고시를 두 번이나 단번에 합격하게 하시고 천재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물질도 축복하셔서 지금은 대궐같이 넓은 43평 아파트에서 살고 계십니다. 자녀들도 축복하셔서 큰 아들은 의대에 다니고 잘생긴 둘째는 간호학과 다니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만일 목자님이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여 살았다면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질의 주관자, 인생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셨기 때문에 약속의 말씀대로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진심을 드리며 헌신하고 계십니다. 사모님은 매일같이 주의 전에 나와서 새벽기도를 감당하고 10명이 넘는 주니어 사모님팀을 말씀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또 여전히 중국선교의 비전을 품으시고 야래향(夜來香)이라는 선교소모임을 만들어 중국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없으면 세상은 아낙 자손 같고 나는 메뚜기가 됩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견고한 가나안의 성처럼 버겁게 여겨집니다. 직장 상사가 아낙 자손 같고 나는 메뚜기 같습니다. 전공이나 시험이 아낙 자손처럼 강하고 두렵게 보입니다. 특히 목자들에게는 캠퍼스가 가나안의 견고한 성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불평과 불신의 말만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눈을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기고 내면의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현실문제에 매이지 않고 담대히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희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14)

 

열 두령의 불신보고와 갈렙과 여호수아의 믿음의 보고를 각각 들은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만약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바란 광야 가데스는 당장에 축제의 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믿음의 축배를 들며 이런 건배사를 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올라가자~’, ‘땅을~ 취하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그러나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14: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그들은 밤새도록 부르짖으며 통곡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원망의 화살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렸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인생 다 끝난 것처럼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다 망한 것처럼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믿음의 보고를 하는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은 듣지 않고, 불신적인 보고를 하는 열 두령의 말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열 두령의 부정적인 말은 백성들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오그라들게 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의 세력이 되어 백성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졌고 그들은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천지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신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 울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은 사람을 웃게 합니다. 믿음의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게 합니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 벅찬 인생을 살게 합니다.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게 합니다. 반면에 불신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움과 절망에 빠집니다. 한계 앞에서 주저앉아 버립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포자기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하면 자살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부정적이고 불신적인 말 이면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은 할 수 있는 대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서 자포자기하도록 만듭니다. 패배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을 참으로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들을 때에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성령의 음성인가? 사단의 음성인가? 분별해야 합니다. 사단은 불신의 말로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 신앙생활이 밥 먹여 주냐? 너 그렇게 교회 모임에 열심히 나가다가 전공 망치고 나중에 취업도 못하면 어떻게 할래? 재테크도 하고 노후준비도 해야지 늙고 힘없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이것이 성령의 음성입니까? 사단의 음성입니까? 불신의 말은 사단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이 빠져 있는 말은 불신의 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말을 하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치려고 합니다. 정말 돌을 들어서 쳐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불신적인 소리를 하는 열 두령입니다. 그들은 불신적인 말을 하는 열 두령의 입을 막고 그들의 불신을 책망해야 했습니다. “그런 믿음 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거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의 음성을 외면하고 불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을 향해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7~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돌이키고자 옷을 찢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외쳤습니다. “가나안 땅은 거민을 삼키는 척박한 땅이 아니라 심히 아름다운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입니다.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먹이일 뿐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자요, 가나안 거민들은 그저 한 끼 식사, 한 입 먹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열 두령들의 눈에는 가나안 거민들이 장대하고 강한 아낙 자손으로 보였지만, 갈렙과 여호수아의 눈에는 그저 잘 차려진 산해진미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 보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갈렙의 마음속에는 조금의 불신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오직 약속의 땅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의욕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들을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갈렙은 자신의 힘이 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특별한 전략이 있으니 자기를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은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갈렙으로 하여금 긍정적인 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갈렙과 여호수아로 하여금 무서울 것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담대하게 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적인 조건이 결코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수영의 박태환 선수는 어려서 천식이라는 핸디캡이 있어서 수영을 시작했는데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박지성 선수는 평발이어서 이론적으로는 절대로 오래 뛸 수 없는 데, 죽어라고 노력해서 보통사람보다 훨씬 잘 뛰는 산소탱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타고난 조건이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인생을 살아도 열 두령처럼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자학하고 열등감에 찌들어서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인건축연소의 이효진 소장을 아십니까? ‘네 약함을 자랑하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생후 18개월 때 얼굴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친구들의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성형수술을 했지만 의사의 실수로 원래보다 더 악화되어버렸습니다. 그녀는 대학시절 한 번에 수면제 10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병원에서 깨어났습니다. ‘너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어머니의 말에 불쌍한 어머니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28살에 가까스로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그해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고 다시 자살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사모님이 심방와서 어머니의 마지막 기도제목이 딸이 예수 믿는 것이었다는 말을 듣고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계기가 있어서 40일 저녁 금식과 새벽기도를 하는 중에 효진아, 너를 사랑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담대하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에게 네 약함을 자랑하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나의 이 못생긴 얼굴이지만 하나님 마음대로 쓰십시오.’라고 고백하고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은 그녀의 인생을 더욱 높이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외모 때문에 결혼도 못할 줄 알았는데 잘생긴 6살 연하의 믿음 좋은 형제를 만나 결혼도 하고 자녀도 둘이나 낳았습니다. 또 외모를 핑계로 사회생활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예인건축연구소라는 회사도 창업해서 당당히 여성 CEO로 도전적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바로 믿음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하면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되리라(11:22,23)”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계산하고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하면 항상 결론은 No입니다. 그런 사람은 평생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항상 잔머리 굴리고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다 놓쳐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때에 지천에 가능성이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올라가서 그 땅을 쟁취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간절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참다 참다 분노하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적인 말을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큰 죄입니다. 28b절을 보십시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하나님은 그들이 말한 대로 보응하겠다고 하십니다. 불신의 말을 한 자는 그 불신의 말대로, 믿음의 말을 한 자는 그 믿음의 말대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밥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가서 밥을 잘 먹도록 해 주고, 자기를 메뚜기라고 말한 사람들은 그 말대로 메뚜기처럼 광야에서 뛰어다니다가 죽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불신하고 멸시했던 자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말을 한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인간적인 말, 불신의 말을 경계해야겠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평과 불신을 애통히 회개하고 긍정의 말을 하는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는 캠퍼스를 약속의 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를 방황하던 캠퍼스 시절 부르시고 구원하사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갈렙과 여호수아 같은 영적 장군으로 세우시고 캠퍼스 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저는 전남대 캠퍼스에 올라갈 때마다 90년대 학생회 시절 봉지 앞 찬양의 뜰에서 수십 명이 점심모임을 이루며 함께 소리 높여 찬양하고 둘 씩 잔디밭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UBF가 캠퍼스에서 제일 큰 동아리 중의 하나였고 영향력도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전대에서 UBF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또 캠퍼스 양들은 UBFUltra Bond Family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을 섬기되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목자의 심정과 사랑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UBF맨에게는 불가능이 없고 포기란 것이 없었으며 도전 spirit이 충만하였습니다. 이런 정신은 UBF맨의 자긍심이었고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포효하는 사자와 같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외치며 담대하게 캠퍼스와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이는 상황과 현실만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무서운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죽의 장막, 중국과 철의 장막, 소련으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당시 냉전 시대에 중국과 소련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오늘날 극단주의 이슬람 국가에 선교사로 나가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럴 때, 영적 불모지와 같은 공산권 국가가 복음으로 개척되고 캠퍼스 가운데 흥왕한 제자양성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선배들의 이런 훌륭한 믿음의 물줄기는 현재 우리 가운데도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캠퍼스 사역은 2000년대에 이미 끝났다고 말합니다. 김느헤미야 목자님이 교계의 목회자들과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아직도 캠퍼스 사역을 하고 있냐며 놀라면서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눈에는 캠퍼스가 거민을 삼키는 척박한 땅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젖과 꿀이 흐르는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포기치 않는 믿음이 있습니다. 도전하여 쟁취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가나안 성을 보고 잠깐 쫄릴 때도 있지만 우리는 금방 두려움을 박차고 일어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아낙자손 같은 양들에게 상처 받아 아플 때도 있지만 다시 올라가는 믿음이 있습니다. 기숙사에서 전도하다가 캠퍼스 폴리스에 쫓겨나더라도 다음 주가 되면 훌훌 털고 또 전도모임에 웃으며 나아갑니다.

 

요즘 주니어 사모님들을 보면 이런 믿음의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사모님들은 신입생 면접 때부터 시작해서 토요 전도모임, 동아리 알림아리, 캠퍼스 점심모임 등 각종 모임을 섬기며 믿음으로 줄기차게 캠퍼스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주 시온성 밴드에 올라온 캠퍼스 점심모임 사진을 보면 환하게 웃고 있는 주니어 사모님들과 양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사모님들의 이런 믿음을 귀히 여기시고 축복해주고 계십니다. 푸른초장 파트 김준경 사모님은 미국국제수양회 참석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큰 기대않고 믿음으로 캐나다 출신 대런 형제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형제의 목적지가 광주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신실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시니어 남연하 사모님은 가끔은 무모해 보일 정도로 꾸준한 전도의 스피릿이 있습니다. 양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도지를 받든지 안 받든지, 계산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우직하게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사모님이 건넨 전도지를 받았던 한 학생이 그 전도지를 보고 스스로 교회로 연락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꾸준히 일대일하고 예배도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이한 일들입니까? 우리의 포기치 않는 믿음과 도전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학생회 역사 가운데 새로운 희망의 싸인들을 많이 보여주고 계십니다. 가을학기부터 새롭게 학생회 파트모임을 이루었는데, 학생회들이 자립적으로 말씀과 소감을 감당하며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이번 가을수양회도 학생회들이 자발적으로 금요일부터 하루 일찍 수양회를 열고 친구들을 초청하여 말씀과 찬양, 기도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심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아직 시작은 미약하지만 장차 학생회 역사를 창대하게 하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캠퍼스 복음역사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갈렙과 여호수아 장군처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저희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약속의 땅 캠퍼스에 담대히 올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에 파트 방향으로 제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제 안에 캠퍼스 개척의 비전을 주시고 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파트 이름도 뉴비전 파트에서 지금의 개척비전 파트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제비를 뽑아 가나안땅 분깃을 정하듯, 전대캠퍼스 그림지도를 3층 파트모임 룸에 붙여 놓고, 모든 동역자가 제비뽑기를 해서 개척할 각 단대를 정하고 믿음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그리고 각 단대별로 한 명의 제자를 세워주시도록 기도하고 도전하였습니다. 파트 동역자님들도 기쁨으로 역사에 동참하고 토요전도 모임에 열심히 나와서 우리 모임에 좋은 본이 되었습니다. 남연하 사모님은 퇴근 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캠퍼스에 올라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양들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주제별 말씀 전도지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도 하였습니다. 또 양들이 관심을 갖도록 말씀 뽑기 방식으로 전도를 했는데 양들에게 반응이 좋았습니다. 저는 고무되어 퇴근 후 일주일 내내 전도를 나갔고 한 주에 70팀이 넘는 전도 일대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파트 자체적으로 봄학기 전도축제, 가을학기 전도축제를 열어 전대와 과기원 캠퍼스를 믿음으로 올라갔습니다. 요회별로 전도 현황판을 만들고 매주 일대일 스티커를 붙여가며 열심히 전도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파트 가운데 매년 7명의 제자를 세워주시도록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면 금방 양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올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대하는 것처럼 얼른 역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매년 1~2명의 제자를 세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도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파트 가운데 연약한 리더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섰습니다. 오랫동안 아웃사이더처럼 지내던 임연재 목자가 파트 동역자로 굳게 섰고 지난 여름수양회에서는 너무나 은혜롭고 감동적인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들고 나는 중에 어느새 파트 가운데 많은 학생 양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전대 학생 양 한 사람 얻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작년에 다은이 피아노학원 선생님을 통해서 이진 형제를 보내주셔서 사도바울처럼 신실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 멀리 인도에서 알피타 자매도 보내주시고 파트의 분위기 메이커요 수양회 인생소감강사로 귀하게 쓰임받게 하셨습니다. 또 올해는 나요셉 형제 친구 박민우 형제가 여름수양회를 전후해서 혜성처럼 나타나 꾸준하게 일대일하며 제자후보로 신실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또한 군 제대 후에 짱짱해진 나명준 형제를 비롯해 나요셉, 김예담, 박민우, 이상범, 이우림, 김건우 형제들이 신실하게 모임에 나오고 학생모임의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김휘승, 전온유, 홍민우, 유진희, 임택훈, 박정환, 정순원, 전성호 형제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또한 파트 목자님들의 섬김과 헌신을 통해 매주 은혜롭고 즐거운 파트 모임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또 올해는 무단으로 파트모임 불참 시 5천원의 벌금을 내겠다며 리더들이 어찌하든지 파트모임에 참석하고자 투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모든 은혜가 캠퍼스 개척의 비전을 가지고 믿음으로 올라갔던 작은 믿음과 진심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맨 땅에 헤딩하는 것 같고 열매가 안보여서 낙심이 될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치 않고 캠퍼스에 도전할 때 하나님은 기적 같은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포기치 않는 믿음, 도전하는 믿음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에 이렇게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은 알지 못하고 힘든 생각, 무력한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제 눈에는 캠퍼스가 견고한 가나안성 같고 강퍅한 캠퍼스 양들이 아낙 자손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구름떼처럼 몰려다니는 신천지 사람들과 크고 견고해 보이는 신천지 건물을 보면 우리 모임이 초라하게 보이고 주눅이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맘 놓고 캠퍼스에서 전도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신천지 때문에 전도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었다며 신천지 탓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천지가 무너져야 캠퍼스 역사가 다시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오늘내일 한다는 이만희는 도대체 언제 죽는다냐하며 마음속으로 카운트나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오그라지고 캠퍼스에 올라가는 것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전도하러 나가도 사자와 같이 캠퍼스를 호령해야 하는데 쥐새끼처럼 이리저리 숨어 다닐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파트장의 직분도 버겁게 느껴지고 영적으로도 지치고 믿음도 나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비밀리에 파트장 교체를 추진했습니다.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전순기 목자가 차장 승진시험에 합격하면 기꺼이 파트장 직분을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런데 차장 승진 후 발령받은 부서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느라 계획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강퍅한 한국 대학생들 같지 않게 순수할 것 같은 동남아 영혼들을 섬기는 선교사로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어 책을 사서 어학공부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저의 믿음 없는 모습을 깊이 발견하였습니다. 개척 스피릿과 도전정신이 사라지고 캠퍼스 역사에 대한 불신이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불신 가운데 있는 제게 말씀으로 책망하셨습니다. ‘너 포기했어? 전대 포기했어?’ 저는 파트장으로서 동역자들 앞에서 믿음이 있는 척 말하였지만, 실상은 캠퍼스 역사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선교사로 살고자 하는 마음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나안의 견고한 성 같은 전대캠퍼스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이런 믿음 없는 모습, 마음의 불신을 꿰뚫어보시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저의 믿음 없음과 불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내 힘으로 인간적인 능력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교만한 생각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장애물에 부딪히자 자포자기하려 했던 마음을 애통히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캠퍼스 제자양성 역사가 캠퍼스의 현실과 양들의 상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상황과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불신을 회개하고 두려움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캠퍼스의 현실만을 바라보지 않고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담대히 캠퍼스에 올라가고 양들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복잡하게 따지고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믿음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제게 갈렙과 여호수아 장군 같은 믿음의 눈과 열정을 덧입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게 포기치 않는 믿음, 도전하는 믿음, 도전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영광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나 불신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간 광야에서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광야에서 유리하다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거기서 죽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보고를 한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시대탓, 나이탓, 환경탓만 하는 쪼다같은 자가 되지 말고 믿음으로 불가능과 한계에 담대히 도전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곧 올라가 땅을 취하자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담대히 외치며 캠퍼스에 올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저희에게 승리를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