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7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말씀: 열왕기상 12:1-33

요절: 열왕기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지난 주 금요일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조사단이 북한으로 출발했습니다. 빨리 남북이 통일 되어서 통일 제사장 나라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열되는 것은 쉬어도 하나 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왕국도 솔로몬이후에 남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 뒤로 계속해서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에 있어서 일차적인 책임은 솔로몬에게 있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하고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책임도 큽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더 문제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리더쉽은 어떤 것인가? 배우길 기도합니다.

 

. 교만한 르호보암 왕 (1-24)

 

1절에 보면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을 때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아직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호보암에게 반감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느날 르호보암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4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르호보암의 아버지 솔로몬은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13년 동안 궁궐을 지었습니다. 20년 동안 공사를 했으니 백성들이 얼마나 지쳤겠습니까? 무거운 멍에를 좀 가볍게 해 달라는 그들은 요구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만 해 주면 그들은 왕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르호보암은 3일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섬겼던 노인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이때 노인들은 아주 지혜로운 조언을 했습니다. 7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노인들은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말을 적극 수용하고 그들을 섬겨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백성들도 왕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조언입니까? 레위기 19:32절에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흰머리 난 원로들을 존중하고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성숙한 분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르호보암이 이때 노인들의 조언대로 백성들의 손을 잡아 주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하며 따뜻한 말로 위로했다면 백성들이 감동을 받고 마음이 녹았을 것입니다. “지 아버지 솔로몬보다 낫네. 우리 다같이 르호보암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 봅시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자문을 버렸습니다. 대신에 자기와 함께 자란 어린 사람들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왕의 새끼손가락이 아버지 솔로몬의 허리보다 굵다 하소서” “솔로몬 왕은 채찍으로 징계했으나 왕은 전갈 채찍으로 징계하리라 하소서그들은 아부성 발언으로 르호보암의 교만과 허영심을 부추겼습니다. “르호보암의 새끼 손가락이 솔로몬의 허리보다 굵다” “솔로몬은 채찍으로 징계했으나 르보호암은 전갈 채찍으로 징계하리라이는 르호보암이 얼마나 강하고 독한 지도자인지 처음부터 본 떼를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무섭게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이 계속해서 무리한 요구를 해 올 것이다 이런 논리였습니다. 그들의 조언은 김정은식, 독재자의 통치술입니다.

 

르호보암은 두 가지 조언을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봐야 했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순간이기에 정말 신중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백성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나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편하게 통치하는 방법이 뭘까 잔머리를 굴리다가 친구들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르호보암은 머리도 매몰차게 밀고, 김정은식 헤어스타일로 하고, 일부러 인상을 쓰고, 포악한 말로 친구의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르호보암은 강압적인 세상 지도자들과 똑같았습니다. 왕으로서 내면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솔로몬은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듣는 마음을 주셔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게 하옵소서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어디에도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왕권을 지키는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성있는 멘토들을 멀리하고, 자기 비위에 맞는 아부꾼들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는 목자의 마인드가 전혀 없고 마치 조폭의 두목과 같았습니다.

 

그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인데 르호보암의 포악한 말을 듣고 백성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화가 난 백성들은 다윗의 집안과 단절을 선언했습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 두 지파의 왕으로 전락했습니다.

 

열 지파를 잃은 르호보암은 그들을 회유하고자 특사를 파견했습니다.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힘든 노역을 시켰던 아도람을 보자 백성들은 더 분노해서 그를 돌로 쳐 죽여 버렸습니다. 열 지파는 애굽에서 돌아온 해외 유학파 여로보암을 자기들의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열 지파에 대한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벌일 각오를 했습니다. 유다지파, 베나민 지파의 용사들을 소집해 보니, 18만명이었습니다. 남북간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찰라였습니다. 하나님은 스마야 선지자를 통해 전쟁을 말리셨습니다.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겨우 동족간의 전쟁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이 피땀 흘려 건설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삼 대를 넘기지 못하고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80년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이 3일만에 내린 어리석은 결정으로 무너졌습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이상에서 살펴 볼 때 르호보암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교만했습니다. 할아버지 다윗이나 아버지 솔로몬은 겸손하게 출발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대상17:16)” 이것이 다윗의 자세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도 물리치고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자기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이새의 막내아들로 양치기나 하다 죽을 자신을 왕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항상 감사했습니다. 자기를 높이기보다 하나님을 높이기에 힘을 썼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1,2)” 초기의 솔로몬도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왕상3:7)” 그렇게 겸손했습니다. 자신을 종이요, 작은 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오직 자기가 왕이라는 교만에 사로잡혀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고충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자기 왕권을 유지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백성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합니다. 잠언 27:23절에도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목자로서 좋은 본을 보였습니다. 어려서 목동생활할 때 맹수들이 양떼를 움켜 가면 쫓아가서 맨손으로 싸워서 맹수의 입에서 양들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런 자세로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다윗을 신뢰하고 따랐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도피생활할 때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등 400명이 스스로 다윗을 찾아왔습니다(삼상22:1,2). 다윗은 자기도 힘들지만 더 힘든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섬겨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고, 다윗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노년에 블레셋과의 전투에 참전하여 화를 당할 뻔 했습니다. 그때 신하들이 그를 보호해 주며 말했습니다.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삼하21:15-17)” 다윗과 백성들은 이처럼 생명같이 서로 아끼고 섬겨주는 사이였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백성들과 동고동락하며 눈문젖은 빵을 먹어 보았기 때문에 목자의 마인드로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금수저로 태어나 백성들의 아픔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지도자가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겸손히 낮아져서 그들의 아픔에 깊이 동참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군림하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낮추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세리, 죄인들의 친구가 되셔서 그들을 온 마음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상처 많은 사마리아 여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끝까지 섬겨 주셨습니다. 그때 그 여인의 마음을 얻게 되었고, 사마리아 지역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0: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요한복음 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시고 마지막 남은 피 한방울까지 다 흘려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지도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양들을 섬기는 목자의 마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번호 양식책 30페이지에 보면 볼리비아 신마가 선교사님의 소감이 실려 있습니다. 그는 22년 전, 볼리비아 땅을 밟으면서 그렇게 외쳤다고 했습니다. “볼리비아 양들아, 내가 여기 왔다. 내가 너희를 먹이러 왔노라그는 한국에 있을 때도 최고의 목자, 최고의 메신저로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선교지에서도 최고의 선교사로 인정받는 것에 목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15년 선교생활동안 빈그물로서 피라미 한 마리 건져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야심 때문에 항상 트러블 메이커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소망 가운데 키우던 한 양이 갑자기 소천했습니다. 그는 슬픔에 빠진 그 양의 부모들을 도우면서 부활신앙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소망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뭔가 되고자 했던 인간적인 야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깨닫고, 한 영혼을 순수하게 돕고 섬기는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함프레어 사모님은 이전에 자기의가 강하고 나름 프라이드가 강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보건대 양들을 섬기면서 마음이 겸손하고 포근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화가 나면 포악한 인상을 쓰던 자였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어미의 마음을 가진 목자로 성장했습니다. 남요한 목동과 전건화, 박미숙, 김준표, 김보민, 장지용 형제 자매등 여러 양들을 돕는 열국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도자는 말없이 낮아져서 양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섬기는 자입니다. 소자 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자입니다. 우리가 섬김의 종 예수님을 잘 배워서 이 시대 방황하는 양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선한 목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탐욕스런 여로보암 왕(25-33)

 

여로보암은 어떠합니까? 여로보암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북이스라엘 열 지파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잘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의 죄와 르호보암의 교만의 죄 때문에 축복이 자기에게 넘어왔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겸손하게 은혜를 잘 감당해야 했습니다. 11:38절에 보면 아히야 선지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그가 만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다윗을 세운 것처럼 그의 왕권을 견고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힘써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르호보암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27,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그는 스스로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북쪽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남쪽 예루살렘 성전을 드나들면 마음이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죽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니 별 희한한 상상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앞에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면이 불안한 것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두 개 만들어서 하나는 벧엘에, 하나는 단에 두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명하였습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괜히 예루살렘까지 멀리 갈 필요없고, 가까운데서 편하게 예배드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언약궤나 금송아지나 별 차이 없다” “오히려 금송아지 섬기면 부자도 되고 더 좋아그렇게 선전했습니다. 백성들 마음속에 있는 물질욕심과 편의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십계명의 첫째, 둘째, 셋째 계명을 어긴 큰 죄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이 계명들을 다 어겼습니다.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1:23). 금송아지 우상은 애굽의 신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애를 쓰셔서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주셨습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그 구속역사를 다 무시하고 출애굽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31절에 보면 그는 레위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절기의 날짜도 자기 맘대로 바꾸었습니다. 본래 초막절이 715일인데 815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제사장만 분향할 수 있는데 여로보암 자신이 맘대로 분향하고자 했습니다. 13:4절에 보면 이를 말리는 하나님의 사자를 체포하려다가 손이 말라 버렸습니다. 14:17절에 보면 그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의 죄를 무섭게 심판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의 죄의 뿌리는 탐심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을 자기 왕국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가치관을 다 무너뜨리고 백성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속여서 유사종교를 만들고, 자신이 교주가 되었습니다. 그의 죄는 솔로몬이나 르호보암의 죄보다 훨씬 더 악합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악한 본을 보였기 때문에 뒤에 오는 20명의 왕들이 하나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열왕기서에 여로보암의 죄”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더라라는 말씀이 20번 정도 나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1:28절에 보면 여로보암은 큰 용사요, 솔로몬이 그의 부지런함을 보고 요셉 족속의 일을 맡겼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충성된 자가 어떻게 악의 대명사가 되었습니까? 탐욕 때문입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탐욕이 강한 자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괴물로 변하게 됩니다. 별 희한한 종교, 별 희한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백성들을 현혹시킵니다. 요즘 이단교주들이 나 독재자들이 하는 방법과 똑같습니다. 그 배후에는 사탄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탐심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골로새서 3:6절에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했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 세상 물질과 쾌락, 명예를 탐하는 마음을 제거해야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9:2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이야말로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입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 때 그 인기가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면서 그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가 마음에 탐심이 있었다면 그리스도 행세를 하며 세상영광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고,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니라(1:21-23)”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그는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고 높이는데만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예수님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11:11). 우리가 마음의 탐심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높이며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심령이 녹슨 가마처럼 부패하지 않고 깨끗한 그릇으로 계속해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원인은 솔로몬의 우상숭배, 르호보암의 교만, 여로보암의 탐심의 죄였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비난하지만 우리 안에도 이런 죄의 요소들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느새 분별력을 상실하고 교만과 탐심의 죄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정결케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겸손케 해 주시도록,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으로 불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이 시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도록, 또 영적인 지도자들을 키우도록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선한 목자들을 많이 세워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