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3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말씀: 누가복음 2:1-20

요절: 누가복음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메리 크리스마스!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10절 말씀에서 천사는 말합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천사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민족,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쪽이 기뻐하면 한 쪽은 슬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남아 축구대회에서 베트남이 우승하여 베트남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패배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죽을 맛입니다. 기대연 목자님과 김권능 목자님이 차장 승진을 해서 기뻐하지만 승진에서 떨어진 직원들은 울상일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기쁨은 상대적입니다. 일시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묵상하며 우리 모두가 크게 기뻐하고 주님을 찬양하길 기도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구유에 탄생하시기 때문입니다. 12절에서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구유에 뉘어있는 아기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의 황제는 높은 왕의 자리에 앉아 호령했습니다. “천하로 다 호적하라그의 말 한 마디에 온 천하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습니다. 1절에 나오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당시 황제였습니다. 그의 본명은 옥타비누스이고, 줄리어스 시이저의 양아들입니다. 그는 경쟁자 안토니우스보다 본래 세력이 약했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있는 사이에 힘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악티움해전에서 승리함으로 로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정권을 잡은 후 로마는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의 시대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 존엄자’ ‘구원자’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그의 탄생일은 전 세계를 위한 기쁜 소식복음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황제숭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화려한 로마의 영광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해서 심히 피폐했습니다. 네 번이나 로마에게 침략을 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특히 갈릴리 지역은 대학살의 현장이었고, 요단강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명령을 내린 것은 이는 많은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로마의 많은 군인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많이 걷어야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요셉도 다윗 가문출신이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고향 베들레헴까지 호적 하러 가야 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140킬로나 됩니다. 약혼한 마리아가 이미 잉태 되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먼 길을 여행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가 무거운 몸으로 여행해야 했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리아! 미안해요, 이 나이 되도록 자가용 마차 하나 구입하지 못해서” “마차를 랜트할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서그러자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요셉. 그래도 당신과 함께 여행하니 신혼 여행가는 것처럼 기뻐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베들레헴에 가까이 왔을 때 마리아가 진통을 시작했습니다. 6,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요셉은 마리아를 거둘 처소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여관에도 빈방이 없었습니다. 연극 <빈방 있습니까?>의 주인공 덕구처럼 착한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가 루마니아로 이민가고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요셉과 마리아는 짐승들이 거하는 마굿간으로 가야했습니다. 거기서 마리아는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를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건만 예수님이 계실 곳은 짐승들이 밥을 먹는 여물통, 구유 뿐이었습니다. 신생아는 감염되기 쉬어서 위생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구유에 뉘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처럼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찬송가 96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 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우는 자, 없는 자, 천한 자, 잡힌 자, 약한 자, 눈먼 자, 병든 자, 추한 자, 죽은 자는 모두 그 내면이 구유처럼 낮은 자들입니다. 버려진 자들이요, 소외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 구유에 뉘이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구유처럼 냄새나고 더러운 자를 씻어 주시기 위해서 구유에 오셨습니다. 구유처럼 그 마음이 패이고 상처 받은 자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구유에 오셨습니다. 높은 보좌에 앉아 말로만 호령하는 황제는 절대로 낮은 자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낮고 천한 구유에 오신 예수님만이 이들을 이해하고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죄를 씻어 주실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20세기 일본의 성자라 불리우는 가가와 도요히코(1888-1960)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1888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유명 관리였지만 어머니는 기생이었습니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본 부인의 자녀들에게 많은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4살 때 생모가 돌아가시고, 5살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습니다. 4, 5살이면 가장 사랑받을 나이입니다. 그런데 고아요, 기생의 아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며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12살 때 구세군들이 노방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가가와가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기생의 아들도 사랑하십니까?” 그러자 전도자가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기생의 아들뿐 아니라, 십자가의 강도도 사랑하십니다그는 너무나 감격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 뒤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기를 피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2학년때 결핵에 걸려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습니다. 아무도 그를 거두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가오라는 목사님이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헌신적으로 섬겨 주었습니다. 가가와가 피를 토하면 걸레로 닦아주고, 같이 밥도 먹고, 친 아들처럼 돌봐주었습니다. 나가오 목사님은 5년 동안 한 사람도 회심자를 얻지 못하고 자기 가족만 데리고 예배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가와를 헌신적인 사랑으로 섬겨서 결핵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가가와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평생 빈민촌, 결핵환자, 소외된 자들의 목자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기생의 아들로서 무시 받고, 결핵으로 죽어가던 그가 낮아져 오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육간에 치유가 되었습니다. 자기보다 더 비참한 인생들을 돌아보고 구원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2주전 금요기도회때 와서 소감발표를 한 3부 송영숙 사모님도 아버지가 본 부인이 있는데 자기 어머니에게서 두 딸을 낳고 본 부인에게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슬픈 가족사 때문에 너무나 아픔과 상처가 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희생적인 십자가 사랑에 감동을 받고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후에 목자가 되었고 이제는 남편과 네 자녀와 함께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사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탄생하심으로 가장 밑바닥 인생이 되셨기 때문에 어떤 운명적인 사람도 위로를 받습니다. 어떤 슬픔의 사람도 힘을 덧입습니다. 이 예수님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십니다. 올해도 우리 가운데 이런 저런 힘든 일로 인해 그 마음이 구유처럼 심란하고 괴로운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건강문제, 물질문제, 자녀들 문제, 양들 문제로 마음이 편치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구유에 낮아져 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서 사역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시 일어나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구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봅시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큰 슬픔의 소식이 무엇입니까? 인류의 조상 아담이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또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가장 슬퍼하고 괴로워할 때는 사울에 쫓겨 다니며 육신이 힘들 때가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어 평안하게 사는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정욕의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그 죄에서 끝나지 않고, 거짓말의 죄, 살인죄까지 범했습니다. 그때 그의 영혼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32:3,4)” 죄의식 때문에 뼈가 쇠하는 고통, 숨 막히는 고통, 온 몸에 수분이 다 빠져 나가는 사망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죄로 인한 고통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한탄했습니다(7:24)

 

가끔 고위직 간부들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 하는 뉴스를 봅니다. 죄로 인한 수치심과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현장에서 잡혀와 수치를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에 누군가 우리의 삶을 24시간 감찰하다가 죄짓는 순간을 포착해서 만천하에 공개한다면 얼마나 수치스럽고 괴롭겠습니까? 당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을 것입니다. 누가 이런 죄의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가이사 아구스도가 구원자, 그리스도라고 불렸으니 죄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 무수한 사람을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많은 로마 황제들이 온갖 쾌락을 즐기다가 성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죄문제는 그 어떤 황제, 영웅호걸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0: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제물로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루어 주셨습니다. 철저한 자기희생을 통해서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루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일 아침 회장단이나 주일 점심 섬김 한번 대신 해 주는 것도 얼마나 어렵습니까?

 

요즘 베트남 사람들이 박항서 감독에게 열광하고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선수들을 친 자식처럼 돌봐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특히 비행기로 이동할 때 한 선수가 부상으로 힘들어 하자 기꺼이 자신의 일등석을 그 선수에게 양보 했습니다. 이는 너무나 파격적인 일입니다. 베트남 축구를 우승으로까지 이끌어서 주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 박 감독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베트남 관광객들이 버스까지 대절해서 박감독의 생가가 있는 경남 산청까지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잠깐 자리를 양보해 준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 나라의 황태자 황공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사탄마귀의 권세를 박살내셨습니다. 요한일서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의 공공의 적은 사탄입니다. 사탄이 정욕으로 유혹해서 추한 인생을 살게 합니다. 비교의식, 열등감을 심어서 비참하게 만듭니다. 두려움과 허무의 세력으로 무기력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서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3:15절 말씀에서 약속하신 것처럼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이로서 우리를 승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말구유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무시했지만 예수님은 보통 아기가 아닙니다. 이사야 9: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24:16). 그래서 천군과 천사들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3)”

 

알피타 자매님은 의붓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에게 많은 학대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의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힘들어서 화학약품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사탄은 알피타 자매로 하여금 괴로운 인생 자살로서 끝내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성경공부를 하며 그 내면이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으로 그녀의 마음에 모든 외로움, 슬픔, 절망, 자살충동을 몰아내시고 빛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22살 때까지 한번도 생일 파티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파트에서 파티를 해주며 공주와 같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희경 사모님이 친 딸처럼 사랑해 주니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보다 밝고 열정적인 예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난타만큼이나 신나고 감격이 넘칩니다. 매주 학생회 파트모임 뿐 아니라 비젼파트 모임도 자발적으로 참석합니다. 한때는 아르바이트를 6개나 하면서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성탄 예배 때도 난타공연과 연극 주인공 헬렌켈러역까지 감당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구주가 되셔서 그녀를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일용할 양식을 보면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얻게 될 승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7:14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예수님께서 장차 재림하셔서 만왕의 왕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자들도 승리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19:9). 장차 승리의 금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잘 하였다 착한 종아,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하시며 축복하실 것입니다(19:17). 음녀 바벨론, 로마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떨어지게 됩니다.

 

요즘 전국에 수많은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업자는 아파트를 500채나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주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죽을 때 한 채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식들 사이에 장례식장에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유다니엘 목자님은 핵의학과 과장님 장인상에 갔는데 화환이 수십개가 넘어 장례식장 밖에도 줄지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대학 총장, 도지사도 조문을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면 다 치워지고 그 인생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킨 자들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21:1,2). 이를 생각할 때 우리는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귀한 복을 받았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말구유에 낮아져 오신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충분히 가졌는데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보좌에 앉아 호령하는 가이사를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희생, 사랑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말구유 정신을 가지고 한 영혼을 돌아보고 끝까지 섬겨야 하겠습니다. 3, 5, 10년을 인내하며 섬길 때 구유처럼 패인 심령들이 위로를 받고 복음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구유처럼 냄새나고 지저분한 이 세상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향기 나는 세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문제 많은 죄인들이 변화되어 천국복음을 전하는 성경선생이요, 목자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워서 힘써 천국의 일군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늘 영광 버리시고 구유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