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창세기 6(이다윗 목자님)

 

홍수 심판과 구원의 방주

 

말씀 / 창세기 6:1-22

요절 / 창세기 6:13,14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 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창조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십니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과일처럼 부패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세상을 거슬려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 한 사람을 주목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고자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이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도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새로운 창조역사의 주역으로 삼으십니다. 저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을 깊이 묵상하길 기도합니다.

 

.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1-12)

 

3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이는 노아 시대를 한마디로 대변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 넣은 생령의 존재입니다. 이것이 육신만 있는 동물과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영성을 잃었습니다. 육신만 있는 동물적 존재로 전락하였습니다. 왜 이처럼 타락해 버린 것입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여호와를 찾아 예배드렸던 셋의 후손들입니다.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으로서 타락한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결혼관이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 중심을 지키며 믿음의 여인들과 사명 중심의 house church, 가정교회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여인들의 외모만 보고 결혼했습니다. 여인들은 이런 형제들에게 주목을 받기 위해서 온통 외모 꾸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굶어도 화장은 빼놓지 않았습니다.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당시에는 남자들도 네피림 족속들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네피림은 원어로 넘어뜨리다뜻입니다. 타이슨처럼 한방으로 KO시키는 강한남자, 돈 많이 버는 남자들이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들 옆에는 항상 미녀들이 가득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의 꿈은 대부분 격투기 선수였습니다.

 

5절에 보면 당시에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였고, 그들의 마음에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디 가서 즐길까? 누구를 때리고 갈취할까? 어디 가면 더 자극적이며 더 폭력적인 영상을 얻을 수 있을까? 마치 발정 난 동물과 같이 되었습니다.

 

11절에 보면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했다고 했습니다. 11,12절에 부패라는 단어가 3번이나 나옵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다 썩고 부패해서 악취가 났습니다. 완전히 썩어 곰팡이로 가득한 과일처럼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6,7절을 같이 읽어 봅시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한탄하셨습니다. “His heart was filled with pain” 하나님의 마음이 pain(아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창세기 1:31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심혈을 기울어 만든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큰 기대를 했겠습니까? 저도 우리 다윗이가 어려서 키도 크고, 머리도 크고, 눈도 큰 것을 보고, 도대체 이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꼬 큰 기대를 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기대와 달리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악취가 나서 당장 버려야할 쓰레기처럼 된 것입니다. 이를 본 하나님은 한탄 하신 것입니다. 마음이 고통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부패한 인간을 어떻게 하십니까? 7절을 보십시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 지었음을 한탄함이라 하시니라하나님은 이제 온 세상을 싹 쓸어버리고자 하십니다. 쓰레기가 돼버린 인간을 더 이상 나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싹 쓸어버리고자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창조주임과 동시에 심판주가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을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고린도후서 5: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모든 인간은 죽게 됩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심판 주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노아시대와 같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에만 쏠려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아이스크림 먹방, 달갈빵 먹빵, 새우초밥 먹방, 라면 먹방, 도다리 먹방 등이 유행입니다. 배가 터지도록 먹는 유튜버가 청소년들이 되고 싶은 1순위 직업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뉴스에는 연예인 음란물 유포사건, 정치인의 성 접대 사건, 재벌 2세들의 정신성 약물 및 마약 투여 사건, 친딸 성폭행 사건 등과 같이 도저히 민망하고 끔찍해서 쳐다 볼 수 도 없는 사건들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썩고 부패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쓸어버릴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소망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소망을 두고 주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8절을 같이 다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나 노아는’ ‘But Noah’ 이는 대 반전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온 세상이 다 썩어서 냄새가 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육신이 되어서 싹 쓸어버릴 수밖에 없는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소망이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노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을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그 시대에 노아가 어떤 삶을 살았으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을 수 있었을까요?

 

9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가 당대 완전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그가 아무 허물도 없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10절에 보면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 세 아들을 낳고 살았습니다. 세 아들과 살다보면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화도 내고 매도 때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9b에 보면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말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의인이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동행합니까? 친한 사람과 동행합니다. 코드가 맞는 사람과 동행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친했습니다. 코드가 맞았습니다. 처음부터 친하고, 코드가 맞는 것은 없습니다. 자주 만나야 친해집니다. 카톡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올라오면 참 반갑습니다. 학창시절 날마다 같이 만나서 당구치고, 술 먹고 놀러 다녔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뜩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 가까이하며 자주 교제하지 않기 때문에 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자주 만나다 보면 코드가 안 맞는 것 같은 사람도 친해집니다. 코드가 맞아집니다. 노아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했습니다. 야고보서 4:8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말씀하십니다. 아침마다 일용할 양식 먹고 하루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공부하기 전에 기도하고 쉬는 시간이면 고린도전서 15장을 암송하였을 것입니다. 퇴근하면 말씀을 다독하고,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5절에 보면 노아는 의를 전파하며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을 가까이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노아와 가까이하여 그와 함께 동행 하였습니다. 어디 갈 때 동행하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 늦은 밤에 갑자기 집에 전기 누전되었습니다. 전파사도 닫혔습니다. 조에스라 목자님 동생이 전기기술자라 도움을 받고자 목자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동생을 보내주시겠다고 해서 기다렸습니다. 10시가 넘어 초인종 소리가 났습니다. 나가 보니 조에스라 목자님이 직접 오셨습니다. 그런데 뒤에 어떤 분이 동행해서 동생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조엔젤라 사모님이 동행했습니다. 이 늦은 밤 백화점 쇼핑하러 가자면 몰라도 전기 누전 사고 현장에 동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스라 목자님이 메시지 전할 때 보면, 나의 사랑하는 천사 엔젤라 사모님하며 챙기고 가까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럴 때 어디든지, 언제든지 동행한 것입니다. 노아도 이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는 어떤 은혜를 받았을까요? 17,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하나님은 홍수로 죄악 된 세상을 다 쓸어버리시겠다는 심판의 계획을 알려주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은 방주로 인도하여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제가 군 병장 시절 유격 훈련을 며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유격 훈련 때 가스실에 들어가서 화생방 교육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대장이 곧 열리는 연대 체육대회를 대비하여 대대 축구 선수로 선발되면 유격훈련이 열외 될 수 있는데, 제가 축구 선수로 뽑혔다고 귀뜸 해주었습니다. 유격훈련은 열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축구선수를 열외한다고 상부에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은밀히 말해주었습니다. 혹시 알려져 계획이 변경되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 하였습니다. 다행히 잔류하여 축구 연습을 했습니다. 너무 신이 나서 다리에 쥐가 나도록 연습해서 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하였습니다. 포상 휴가를 받았습니다. 유격 훈련 열외 받음 기쁨과, 3개월 뒷면 전역도 하기 때문에 휴가증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습니다. 군대 유격훈련 하나 열외 받는 것도 이렇게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홍수심판에 떠내려가 죽을 때 구원을 받는다는 언약을 받는 것은 얼마 큰 은혜입니까? 그것도 나 혼자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언약을 받았으니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지난 금요일 저녁에 김느헤미야 목자님의 어머님 장례식에 목자님들과 같이 참석했습니다. 보통 장례식에 가면, 상주들이 일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가셨다고 고인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런데 김느헤미야 목자님은 84세 때 어머니가 쓰신 성경 전권 필사 노트를 보여주며, 지난 40년 동안 새벽 2시에 일어나 찬송과 기도하며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한 어머니를 수양회 광고 하듯 하였습니다. 국화꽃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후손들에게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응원하시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일평생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한 어머니를 통해서 가족들이 구원의 언약을 받게 된 것입니다. 훌륭한 주의 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구원의 방주에 오르는 축복을 주십니다.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 방주 짓는 노아(13-22)

 

하나님은 심판 때를 대비하여 노아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도록 말씀하십니까? 13,14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함으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방주의 크기를 말씀해주십니다. 길이는 138m(삼백규빗), 너비는 14m(오십규빗), 높이는 23m(삼십규빗), 3층으로 된 축구장 1.5배되는 규모입니다. 왜 이렇게 크게 만들도록 하십니까? 19절을 보십시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의 암수 한 쌍씩 보존토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에서 노아 가족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혈육 있는 생물의 암수 한 쌍씩을 보존하도록 큰 방주를 짓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노아처럼 새로운 창조역사의 주역으로 삼고자 구원하신 것입니다. 노예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세계에 대해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처럼 우리를 이 시대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아프리카 난민들이 바다에 표류하다 빠져죽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난민들처럼 표류하다 빠져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를 구원해주시고 새 창조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으시고자 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축구장 1.5배 크기의 방주를 짓도록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노아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22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사다리차와 포크레인 장비와 전문가를 동원하고도 40평 규모의 교회 리모델링하는데도 거의 두 달이나 소요되었습니다. 우리는 두 달 기다리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계장비도 없고, 전문가 없이 오직 8명의 가족이 축구장 1.5배 크기의 방주를 120년 동안 짓는다고 생각할 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감정적인 사람 같으면 차라리 홍수 심판에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설계해주신 그대로 준행을 했습니다. 피곤하다고, 자녀들이 힘들어 한다고 우리 가족만 들어갈 수 있는 보트 정도로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하찮게 보이는 생물들까지 꼭 데리고 가야 하는가 하며 1/2로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일러 주신 그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히브리서 11:7에 보면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으니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였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이 일러 주신대로 순종하여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100세에 낳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할 때 순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할 때 번제로 바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22: 12b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을 경외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향도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노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처럼 우리를 심판에서 구원하시고 방주를 짓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사 새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되길 원하십니다. 홍수 심판에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방주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방주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죄악 된 홍수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노아처럼 우리도 방주를 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닮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양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배우도록 돕는 제자양성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일 노아가 자신의 가족만 타는 보트만 만들고자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정도는 젊어서 놀다가 나중에 지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먹고 마시는 세상 친구들과 함께 잠시 즐기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방주 짓는 사명이 없으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부활이 없으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죄악된 문화는 요즘 재벌 자녀들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마약과 대마초처럼 중독성이 있습니다. 재미로 발을 딛었다가 스스로 빠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노아는 힘들고 부담스러웠지만 하나님이 설계해준 대로 방주를 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가족과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14너를 위하여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라말씀을 보면 방주를 짓는 삶이 단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짓는 것입니다. 바쁘게 방주 짓는 삶을 살아야 죄악 된 삶을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나와 가족을 홍수 심판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 필리핀의 누가선교병원 원장인 박누가 선교사님이 검색어 1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30년에 필리핀 의료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가족과 25년을 떨어져 생활하며 선교역사를 섬기다 작년에 60대 초반의 나이로 소천 했습니다. 20여 년 전에 위암이 발견되어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2번의 수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6개월 인생이 20년을 더 살았습니다. 제 작년에 건강검진 때 간에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14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저곳까지 전이되어 10군데 합병증이 생겼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항암주사를 맞을 때도 누워 있는 시간에 복음을 전하면 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항암 주사 맞자마자 퇴원하여 필리핀으로 떠났습니다. 말기 암환자가 고혈압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버스와 트럭과 도보로 왕복 8시간을 걸쳐서 심방을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산 중턱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했습니다. 박누가 선교사님은 병원에 누워 있으면 죽 한 숟가락 넘기기도 어려운데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 덜 익은 컵라면도 소화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암 치료 중에도 환자를 찾아 치료하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6개월짜리 시한부 인생을 20년이나 생명을 연장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환자를 심방하고 돌아오는 들판에선 어린 아이처럼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너를 위하여 방주를 예비하라. 방주를 짓는 삶은 남을 위한 사람이기 보다는 나를 위한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복음을 전하며 방주를 짓는 삶을 살 때 건강도 회복되고, 꼬인 인생이 쫙 풀리게 되었습니다. 27세였던 1991년 센터에 올 때 사람들은 저를 40대로 보았습니다. 양 심방가면 아버님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심방가면 아버님 오셨다고 말합니다. 28년 동안 하나도 늙지 않은 것입니다. 올해 창세기 말씀을 들으면서 조용필의 노래 제목처럼 제 마음이 바운스, 바운스 하였습니다. 1991년 봄 캠퍼스 잔디밭에서 목자님을 만나 창세기 공부를 했습니다. 창세기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질병으로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짐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소들이 먹는 들풀만도 못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1절 말씀을 통해서, 들의 풀 한 포기도 다 하나님이 뜻과 계획을 두고 만드셨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득연 형제님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었겠습니까? 하는 목자님의 말씀이 칠 흙 같은 어두운 저의 내면에 한줄기 빛으로 들어왔습니다. 죽어가던 저의 영혼이 꿈틀거리며 살아났습니다. 저를 살아나게 한 창세기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쿵쿵쿵 하며 뛰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생명의 말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창세기 말씀을 양들과 사무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나누고 싶어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메시지를 들고 가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인문학은 없다며 소개하고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카톡을 받고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의 안색이 좇지 않아 보였습니다. 성경말씀 보내는 것을 자제해주라는 카톡이 날라 왔습니다. 직장 신우회 모임 때 기숙사에 들어간 딸이 신천지에 빠져 생업을 포기하고 신천지 반대 집회를 하는 학부형이 찾아왔습니다. 기숙사는 신천지 밥이라며, 기숙사 학생들이 더 신천지에 학생들이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라고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심령와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하며 토요일이면 전남대 기숙사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복음에 관심이 없고 강퍅한 양들을 볼 때면 마음이 지쳐갔습니다. 전남대 캠퍼스 제자를 세우고자 방향을 잡고 올해는 매주 1번씩 학생 양과 목자들과 식사교제 하고자 방향을 잡고 4년 전에 도왔던 양을 찾아 식사를 했습니다. 장애인 캠프 때 만났던 양에게 전화를 하여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카톡 보내는 것을 자제해주라는 답변을 받자 맥이 빠졌습니다. 직장인의 유일한 힐링 시간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점심 식사하며 교제하는 것인데, 이 귀한 시간까지 할애해야 하는가 피곤한 생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7년 전 수술한 후 힘들 때 밤 12시 넘게 양과 일대일하며, 주일 메시지를 섬겼습니다. 이럴 때 제가 살아나고 덤으로 임요셉, 김욱동 목동도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몸도 회복되고 건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양들과 씨름하고 메시지 투쟁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지난 전주에 두통으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느헤미야 목자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 학사 수양회 말씀강사를 하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7년 전에 대표 소감도 발표했으니 다른 분이 했으면 좋겠다며 사양했습니다. 몸부림치며 메시지 감당하는 십자가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개학과 함께 바빠진 직장과 아들 픽업하는 십자가를 피해 좀 쉬고 싶어,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4.17~19일 제주도 취업담당자 워크숍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일 또 느헤미야 목자님은 421일 부활절 때 부활절 말씀을 한 파트 감당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저는 제주도 워크숍 핑계를 대고 또 피했습니다. 그러자 그럼 봄 주말수양회 주제 강의하시면 되겠네요.’ 하였습니다. 작년 봄 수양회 때 꼬박 밤을 세며 너무 힘들게 메시지를 감당한 기억이 있어 피하고 싶었지만 중간에 또 바뀔 수도 있으니 일단 알았다고 대답은 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새벽 기도 때 요나단 목자님이 새벽에 느헤미야 목자님 어머님이 소천 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딸들이 오면 눈을 감고 있다가도 느헤미야 목자님이 오면 눈을 뜬다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한 쪽 마음에선 그럼 주일 메시지는 어떻게 하실까, 요나단 목자에게 주일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 하자 요나단 목자는 목자님이 평소에 준비하시기 때문에 하실 수 도 있지 않을까요.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점심 때 목자님으로부터 이번 주 주일말씀 좀 전해 주시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슬픔 가운데 있는 목자님께 직장 생활하는 평신도 목자에게 이틀 전에 주일 메시지를 하라고 하면 아니 되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어 알겠습니다대답하였습니다.

 

양들을 씨름하며 돕고, 몸부림치며 말씀을 준비하는 삶이 저를 살리는 삶인 줄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안일을 좋아하는 죄악 된 마음 때문에 막상 십자가가 주어지만 피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윗 목자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 가끔 토요일에 긴장이 풀려 안일하게 있다가 마지못해 캠퍼스 피싱을 나갔다가 너무나 시달리고 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이면 센터에 나와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2층 방에 혼자 앉아 커피 한잔하며 말씀 묵상하는 그 시간이 최고로 행복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피로가 풀리고 힐링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주일예배가 기다려집니다. 하나님이 확성기를 귀에다 대고 말씀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캠퍼스 피싱과 팀원들 말씀 섬기는 십자가가 없다면, 맛 집을 좋아하는 저는 세상 사람처럼 맛 집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캠퍼스 피싱하며 양들을 섬기는 삶이, 메시지를 감당하는 것이 축구장 1.5배 크기의 방주를 짓는 것처럼 크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주를 짓는 이 삶이 저를 세상 죄악의 홍수에서 저를 지키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날마다 적당하게, 안일하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양들을 돕고 말씀을 전하는 방주 짓는 삶을 살 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 한 사람을 주목하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새로운 창조역사를 시작하시고자 하십니다. 저희 이 시대 작은 노아가 되어 새로운 창조역사의 주역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