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사순절 특강

                                          그가 찔림은

말씀: 이사야 53:1-7

요절: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장은 여호와의 종인 메시야가 당할 고난에 대해서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대로 피하고 싶어 합니다. 고난을 저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님이 당한 고난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고난입니다. 부활 영광으로 인도하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다음 주는 부활절이고 오늘은 고난 주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에 대해 깊이 묵상하며 은혜받길 소원합니다.

 

. 우리의 질고를 지신 주(1-4)

 

1절을 봅시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1절의 의미는 하나님이 전해 주신 구원의 메시지를 누가 믿기나 하겠는가? 하나님의 구원의 팔이 과연 누구를 통해 나타났는가? 그런 뜻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그, 곧 구원자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 매력적인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굿간 말구유에서 천하디 천하게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나사렛 마을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요한복음 1:46절에 보면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하며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흙수저였습니다. 인류의 구원자가 왜 이런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고린도후서 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이 만약에 아이돌 스타처럼 멋있고 화려하고 너무 매력적이면 가난하고 내 세울 것 없고 안 생긴 사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아니 평범 이하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2:6-8).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고 우리를 부유케 하시기 위해 낮아지시고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드립니다.

 

3절을 봅시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만해도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호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21:9)” 그들은 예수님이 큰 능력을 발휘해서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길 기대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시길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나 무력하게 로마 군병들에게 체포되셨습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실망한 백성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런 메시야는 우리에게 필요 없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세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예수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할 때도 사람들은 전혀 동정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27:40-42)”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느냐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비난의 표적이 되셨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무서운 채찍에 맞으시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극한 고통을 맛보시고 물과 피를 다 쏟고 돌아가셨습니다. 옷이 다 벗겨진 채로 십자가에 높이 달려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8).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할 뿐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로 부터도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도 다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외면당하시고 매도 당하시고 만물의 찌끼 같이 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수모를 당해야만 했습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4b,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필시 무슨 큰 죄를 지었음이 분명해. 그렇지 않으면 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겠어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죄 때문에 징벌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4a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그 몸으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질고pain, 아픔입니다. 육체적인 아픔, 정신적인 아픔, 영적인 아픔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픈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병원에 가면 아파서 치료 받으러 온 사람들로 항상 붐빕니다. 요즘은 마음이 아파서 고통 받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강박증, 공황장애로 고통합니다. 또 슬픔이 많습니다. 시험에 떨어져서 슬프고, 이성친구에서 채여서 슬프고, 왕따 당해서 슬프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슬프고, 양이 힘들어져서 슬프고, 아이가 아파서 슬프고. 세상살이가 아프고 슬픈 것 투성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짊어지기 위해서 내 대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당한 처지가 가장 아프고 가장 슬프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나보다 더 억울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문제가 가장 커 보이고 가장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아픈들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보다 더 아프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슬픈들 예수님이 당한 침뱉음과 조롱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시고, 가장 깊은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질고를 아시기 위해서입니다(3).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시기 위해서입니다(4:15).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나를 위해 슬픔을 겪으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지난 1월에 문준경 전도사가 사역하셨던 신안 증도에 갔었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은 17세에 결혼했으나 남편이 집을 나가 다른 섬에서 소실을 얻고 딴 살림을 차렸습니다. 남편은 소실을 통해 34녀를 낳았습니다. 문전도사님은 시부모를 섬기며 삯바느질을 해서 사는 데 돈을 조금 벌어 놓으면 남편이 와서 가져다가 소실과 사는데 다 써버립니다. 그 아픔과 슬픔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얼마나 한이 맺혔겠습니까? 시부모님이 불쌍히 여겨 주셨는데 그 시부모님 마저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혈혈단신 혼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당하고 시댁과 친정으로부터도 잊혀진 여인. 그 설움과 슬픔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목포교회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한과 슬픔을 담당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너무나 감격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았는데 참 남편되신 예수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너무 기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안에 11개 섬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문전도사님의 집에는 항상 질고와 슬픔을 당한 자들로 붐볐습니다. 귀신들려 고통하는 자, 반신불수로 오갈데 없는 자, 버려진 여인들, 대소변을 받아내는 환자들이 기거했습니다. 1950105일 공산주의자들에게 죽창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 분의 순교는 헛되지 않아서 수많은 주의 종들이 신안군에서 나왔습니다. 신안군은 지금도 복음화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순교 1주기 때 추모인파가 얼마나 많았던지 어떤 분은 말하기를 김구 선생 장례식보다 추모인파가 더 많았다고 했습니다. 문 전도사님은 누구보다 질고와 슬픔이 많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 마음에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았을 때 수많은 슬픈 인생들의 목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우리가 나의 질고와 슬픔을 안고 괴로워 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모든 질고와 슬픔의 짐을 내려놓아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영혼의 참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슬픔 많은 사람들, 질고로 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주(5-7)

 

5,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그가 찔림은. 예수님은 옆구리가 창에 찔리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이 대못에 찔리셨습니다. 그가 상함은. 상했다는 것은 crushed, 짓밟히고, 뭉개진 것을 말합니다. 여기 찌르고 상하게 하는 것은 본래 사람에게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구약에서 짐승을 속죄 제물로 잡아 죽일 때 쓰는 단어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죄가 있을 때 성전에 속죄양을 끌고 왔습니다. 죄 범한 사람은 제사장이 보는 앞에서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죄가 그 짐승에게 전가됩니다. 그때부터 그 양은 모든 죄를 뒤집어 쓴 속죄양이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속죄양이 그 사람을 대신해서 죽습니다. 사람들이 칼로 찔러서 목을 땁니다. 시뻘건 피를 번제단에 뿌립니다.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뜹니다. 그 살을 번제단에 올려놓고 불로 태웁니다. 이로서 지독한 죄를 씻고 태워 없앴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속죄제사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짐승을 많이 잡아 죽이고 많이 태워도 인간의 죄를 없이 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너무나도 지독하고 끈질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속죄양으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 제단에 바치셔서 그가 찔리고 상하고 채찍에 맞고, 대못에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이로서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이로서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깨끗함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9:13,14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짐승의 피는 한계가 있지만 예수님의 피는 능히 우리의 모든 죄를 씻고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가끔 정치인들이 나는 희생양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희생양이 될려면 점도 없고 흠도 없어야 하는데 캐면 캘수록 허물 투성이입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는 분인데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온전한 속죄제물, 희생양이 되십니다.

 

5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예수님의 찔리신 이유는 바로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예수님이 상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4-6절에 우리라는 단어가 9번이나 나옵니다.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 우리의 교만, 우리의 혈기, 우리의 음란, 우리의 시기심, 우리의 위선,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아니 나의 교만, 나의 혈기, 나의 음란, 나의 시기심, 나의 위선, 나의 이기심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내가 내 죄와 허물 때문에 찔리고 상하고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내 대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았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죄의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이것이 바로 십자가 대속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을 어떻게 베푸셨습니까?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실 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도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 물었습니다.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27:13)”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3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고사랑에는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고 뒤집어 쓰고자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극한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19:30). ‘다 이루셨다는 것은 죄 값을 다 치루셨다는 뜻입니다.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함으로 죄에 대한 형벌을 다 치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랑을 완성하셨고,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로마서 5:7,8절은 말합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앞에 나아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숨지마, 내 인생이잖아>라는 간증집이 있습니다. 134센티의 척추 장애를 가진 김해영 선교사의 신앙간증집입니다. 이 분은 생후 3일이 되던 날 술 취한 아버지가 계집애가 태어나서 재수 없다며 집어던졌습니다. 그 후 척추장애인이 되었고, 키가 134cm에서 멈추었습니다. 어머니도 재수없는 가시나라고 멸시했습니다. 아버지는 생활고로 자살했습니다. 초등학교만 나왔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월급 3만원 받고 가정부로 일했습니다. 가정부로 일하면서도 도둑으로 몰려 온갖 멸시를 받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저주스럽고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한 직업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교회에 나가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장애를 극복하고 도전하는 삶을 삽니다. 편물을 배워 세계장애인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땁니다. 자기보다 더 상처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납니다. 케냐와 보츠와나 등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20년 넘게 보듬고 섬겨 주었습니다. 그 얼굴에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천사, 작은 거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분이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 앞에 적극적으로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십자가 사랑을 덧입고 내면이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간증집의 제목이 <숨지마, 네 인생이잖아>입니다. 어둠속에, 운명 속에 숨지 말고 적극적으로 예수님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척주장애, 지독한 가난, 어머니의 정신병, 아버지의 자살, 초등학교 졸업 학력등은 세찬 바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셨다. 예수님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큰 바람막이가 되어 주셨다. 거칠고 치열한 바람이 부드러운 바람으로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세상 바람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바람은 성령의 바람으로 바뀌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게 펄럭이고 있다. 가장 나답게 펄럭이고 있다얼마나 멋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아올 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올 때 모든 죄문제, 응어리가 풀립니다. 인생이 펴지게 됩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됩니다. 상처가 변하여 찬송이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흉기를 향기로 바꾸어 준다많은 사람들이 미움과 상처, 슬픔과 절망, 한으로 말미암아 가슴에 흉기를 품고 삽니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은데 누가 상처를 건드리면 흉기를 빼들고 사람들을 찔러 댑니다. 남도 찌르고 자기 자신을 찌릅니다. 예수님도 그 흉기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미움을 사랑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십자가로 사랑의 향기를 풍기셨습니다. 사람들 가슴에 시퍼런 흉기를 아름다운 향기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숨어 있을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십자가 밑에 나아와야 합니다. 이사야 1:18절은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요한일서 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와 나의 질고와 슬픔, 죄와 수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때 내면에 죄의식과 상처가 치유되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상처 많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품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8:34)” 십자가가 구원의 길이요, 부활에 이르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덧입은 저희들이 힘써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상처 많은 자들, 죄의식으로 고통하는 자들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사랑의 향기를 풍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는 주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