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부활절 특강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1:1-44

요절: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기독교를 지탱하고 있는 두 기둥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부활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깨끗이 씻어주신 십자가의 은혜도 고맙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부활은 또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합니까?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을 허락하신 부활의 예수님을 감사 찬송드립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의 주, 생명의 주 예수님을 만나고 그 능력을 덧입길 기도합니다.

 

.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1-15)

 

1절에 보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나사로의 병은 감기나 두통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나흘 뒤에 그가 죽은 것을 보면 병이 아주 심각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였는데 예수님께서 이 가정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이 세 남매가 부모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두 자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급히 소식을 알렸습니다.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두 자매는 이 소식만 듣고도 예수님이 즉시 달려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오셔서 병을 낫게 해 주실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이틀이나 더 지체하셨습니다. 15절에 보면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셨습니다. 좀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자매들이 오빠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데 기뻐한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자매에게 오빠가 병 낫는 것보다 더 귀한 축복을 베풀어주기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의 축복입니다. 이 부활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일부러 더 지체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고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왜 주님이 지체하시는가?” “왜 침묵하시는가?” 하지만 로마서 11:33,34절에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확신하고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7절을 봅시다. 얼마가 지난 후에 예수님은 드디어 나사로의 집이 있는 유대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핍박이 두려웠습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그들은 돌에 맞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9,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예수님은 세상의 빛이 되십니다. 빛되신 예수님은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십니다. 사망권세도 몰아내십니다. 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예수님은 죽음도 잠으로 보십니다. 세상에 누가 감히 죽음을 잠으로 보겠습니까?

 

죽음과 잠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죽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잠은 얼마 후에 깨어납니다. 피곤할 때 한숨 자고 나면 얼마나 개운합니까? 과기원의 우리 UBF 지도교수인 김태 교수는 정신과 의사인데 잠, 수면 전문가입니다. 네이버에 들어가 보면 깊은 잠을 자는 법에 대해서 이 분이 쓰신 기사가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잠을 잘 자고 사모하는지 예배 시간에도 자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을 잠으로 보십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흘 동안 주무시다가 다시 깨어나신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주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다시 깨어납니다. 신자들에게는 죽음이 잠자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고린도전서 15:51,52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예수님 안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일 뿐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훼퍼는 194548일 나치에 이해 순교당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다. 그러나 내게는 생명의 시작이다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외쳤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믿는 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 제자들처럼 죽음을 정말 두려워했습니다. 어려서 누가 죽어서 상여소리가 나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죽음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엄청난 낭떠러지요, 영원한 단절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부활신앙을 영접한 후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머님 소천 때도 인간적으로는 슬펐지만 영원한 천국으로 이사 가셨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었습니다. 더 건강하고 영광스런 모습으로 부활하실 것을 생각할 때 소망이 되었습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6-26)

 

16절을 봅시다. 다른 제자들이 돌이 무서워서 떨고 있을 때 도마가 팔을 걷어 부치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그는 투사의 스피릿으로 죽음도 불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와 다리는 심히 떨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의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마침내 예수님일행이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때는 이미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지난 후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르다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했습니다.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마르다는 이틀이나 더 지체하고 오신 예수님이 못내 원망스러웠습니다. 식사 초대할 때는 몇 시간이나 일찍와서 기다리시더니 오빠가 죽어 가는데 이틀이나 지체하신 것은 너무나 서운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텐데요많은 사람들이 마르다처럼 과거에 얽매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져 있습니다. “왜 주님이 그때 날 도와주시지 않았나요? 그때 조금만 날 밀어 주셨으면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을텐데요

 

마르다는 원망하다가 미안했든지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산다고 하십니다. 오빠가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말씀입니까? 그러나 마르다는 또 딴소리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 줄을 아나이다마르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적인 믿음이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믿음,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이런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25,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예수님은 현재 부활이요, 현재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미래에 막연히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I am. 현재, 지금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현재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지금 믿으면 지금 즉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지금 즉시 내게 전달됩니다.

 

누가 감히 나는 부활이다. 나는 생명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인류의 그 어떤 영웅도, 그 어떤 재벌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진시황도 불노초를 찾아오라고 호통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씨도 폐암진단을 받고 담당의사에게 날 살려주면 재산의 절반이라도 주겠소라고 사정해 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무서운 괴물이요 폭군입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죽음도 예수님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슬픔이 없습니다. 실패나 좌절이 없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삽니다. 오뚜기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78기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무릇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단지 천국으로 이동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덧입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5:36)”

 

우리는 에베소서 2:1절 말씀처럼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던 자들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 실과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생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요한복음 10:10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생명나무가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 나무되신 예수님께 접붙인바 되어 풍성한 생명을 공급받게 됩니다. 죽었던 자가 살아납니다. 메마른 가지에 새순이 돋듯이 새 생명이 솟구치게 됩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생겨나서 개척하고 도전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마른 뼈와 같이 나뒹글던 자가 큰 군대로 일어서게 됩니다. 부활은 이론이 아닙니다. 딱딱한 교리가 아닙니다. 실제 삶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생생한 진리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때 신장병으로 1년 동안 휴학하고 시골에서 요양하며 어영부영 보내고 있을 때 죽은 자와 방불했습니다. 1이면 장차 대학에 가서 청춘의 꿈을 펼칠 대망을 품고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고 이 약 저 약을 먹으며 수시로 소변검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열 일곱 살 새파란 소년이 애늙은이처럼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이은상의 <무상> 이런 책이나 읽으며 절에 들어가 중이 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딸을 연달아 넷을 낳으시고 마침내 아들을 낳아서 온 집안의 희망이었던 제가 그렇게 되자 부모님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힌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깊은 허무와 절망 가운데 있던 저를 하나님께서 19804UBF 성경공부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을 공부했는데, 요한복음 1: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이 한 마디 말씀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그 생명이라는 말씀 한마디가 제게 한줄기 빛이 되었습니다. 말씀공부를 하고 나면 왠지 마음이 기쁘고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밝고 환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의 에너지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나의 인생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끝난 줄 알았습니다. 나의 미래가 온통 잿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제가 살아났습니다. 부활했습니다. 꿈이 살아났고, 열정이 살아났습니다. 내 인생을 쏟아 부어야 할 거룩한 사명을 찾았습니다. 고등학생이지만 매주 3페이지 이상 소감을 쓰며 UBF 소회 일지를 읽으면서 이 귀한 역사에 청춘을 불사르라 결심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친구들 4-5명을 데리고 일용할 양식 모임을 가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때 그 친구 중에 한 명이 손다니엘 목자님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기숙사 각 방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새벽마다 기숙사 후배들을 깨워서 센타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는데 당시 인턴목자님들이 저를 제일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장막에서 자고 있는 인턴목자님들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 저의 별명은 김길동이었습니다. 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20194, 어느새 예수님을 만난지 39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부활이요 생명되신 예수님은 제게 꿈과 비젼을 심어 주십니다. 지금도 신입생들을 만나면 가슴이 뛰고, 누구든 복음을 전해서 내가 체험한 그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저를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해 주시고 예수님의 부활의 영, 생명의 영으로 충만케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드립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마르다처럼 슬픈 생각에 빠져 원망만 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이 그때 조금만 밀어 주셨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텐데요” “이제는 너무 늦었어요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예수님은 우리의 불신을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기 원하십니다. “나는 지금 부활이요 생명이다. 지금 나를 믿는 자는 지금 부활한다.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고 개척하고 새 역사를 능히 창조할 수 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가 불신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읍시다. 그리하면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살아나게 합니다. 부활의 영이 내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능력있게 합니다. 로마서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을 살린 부활의 영, 생명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해서 우리도 살아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불확실한 장래문제로 인해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도전해 보지도 않고 무덤 같은 원룸에 틀어박혀 무기력한 삶을 삽니다. 게임과 음란물에 빠져 죽은 자와 방불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살아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5:2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나게 됩니다. 부활의 계절 봄학기에 말씀을 열심히 듣고 살아나는 역사, 부활의 역사가 충만히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 나사로야 나오라 (33-44)

 

33절을 봅시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예수님은 여전히 사망권세에 매어 울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들, 그리고 동네사람들을 보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슬프게 만든 사망권세에 대해서는 비통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앞에 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불신의 돌, 패배의식의 돌, 원망불평의 돌, 절망의 돌, 두려움의 돌을 옮겨 놓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예수님께서 아무리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선포하셔도 마르다는 이를 믿지 못했습니다. 책망을 듣고 엉겹결에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고백했지만 막상 무덤 앞에 와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시자 또 불신의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책망조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한다면 믿어야 합니다. 복잡하게 이런 저런 핑계대지 말고 단순하게 믿기만 하면 됩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41절을 봅시다. “돌을 옮겨 놓으니마르다가 예수님의 책망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했습니다. 이 말씀은 나사로 죽게 한 사망권세에 대해서 호통치는 말씀입니다. “사망아, 나사로를 내어 놓아라” “나사로야 나오라이 말씀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서 새 삶을 시작하도록 선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체로 걸어 나왔습니다. 나사로가 부활한 것입니다. 이로서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인류역사 속에서 누구도 죽은 자를 살린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려 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 내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려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나의 부활에 대한 약속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시간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나명준아 나오라” “나요셉아 나오라이 시간 자기이름을 넣어서 해 보겠습니다. “OOO야 나오라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무덤에서 일어나 나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김형우 목자님은 4년전 과기원에서 죄와 방탕, 무기력과 우울증에 빠져 죽은자와 방불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 달에 소주 120병을 마시고 기숙사 방에 누워 썩은내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마가 목자님과의 로마서 말씀공부를 통해 은혜를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났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과기원 양들과 양식모임을 갖고 아침 식사도 사주며 역동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호선목자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이쁜 딸 다솔이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의 은혜를 까먹고 안일해지고 교만해졌을 때 그는 다시 시체가 되어 갔습니다. 동역자와 다투고 혈기와 미움의 영에 사로잡혀 패인처럼 되었습니다. 이제는 박사학위도 받지 못하고 과기원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전까지 논문이 저널에 실리지 않으면 휴학을 해야 하고 빈털터리가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는 너무나 두려워서 30분 간격으로 메일을 확인하며 금요일 새벽에도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제발 살려 달라고. 기적이 아니고서는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 드디어 논문이 accept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형우 목자를 기적적으로 살려 주신 것입니다. “김형우야 나오라그러나 이제 논문이 통과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자족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안일과 무기력의 무덤에서 나와 적극적으로 캠퍼스 목자의 인생을 살라고 하십니다. 8월 졸업하기까지 매주 캠퍼스에 올라가서 전도하기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로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젊은이들을 살려 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믿느냐하는 것과 돌을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살리는 역사는 예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불신의 돌을 옮겨놓기만 하면 됩니다. 사탄은 수시로 우리 마음에 불신을 심고 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덤속에 스스로를 가두도록 합니다. 안일과 음란, 잔재미에 빠져 무덤에 드러눕도록 합니다. 이때마다 우리가 외쳐야 하겠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우리가 적극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매일 양식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예수님처럼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힘써 생명의 복음을 전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이 시대를 살리는 비결입니다.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장애물에 도전해서 생명의 역사를 창조하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