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

                                                    노아와 맺은 무지개 언약

말씀: 창세기 7:1-9:17

요절: 창세기 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경고하셨던 홍수심판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십니까?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창조가 있으면 반드시 종말도 있습니다. 종말과 심판을 생각할 때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제 친척이 암이 발견되어 다음 주에 수술을 받게 되는데 암보험을 들어 두어서 천만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암보험 보다 중요한 것이 구원보험입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홍수심판에서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길 기도합니다.

 

. 홍수로 심판하신 하나님(7)

 

7:1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하나님은 홍수심판으로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고자 하십니다. 40일 동안 주야로 비를 내리셔서 철저히 심판하고자 하십니다. 홍수심판 때에 세상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홍수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방주뿐입니다. 노아와 그 자녀들이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은 조롱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홍수심판 때에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로 하여금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입니까? 모두가 홍수심판으로 물에 빠져 죽어 가는데 노아와 가족은 구원의 방주에 당당하게 입성합니다. 우리도 마지막 날에 영광스러운 천국에 입성하는 순간이 옵니다. “노아와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OO와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평소에 같이 놀러 다니지 않고 맨날 말씀공부하고 양치고 기도모임 이룬다고 조롱하던 자들이 우리를 다 부러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하나님은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 짓는 모습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의 의로움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안 알아주고 주목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게 살고자 애쓰는 것을 다 보시고 결정적인 순간에 구원의 세계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헌신하는 것을 주님이 다 보시고, 마지막 날에 만 배로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로 하여금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 방주로 들여서 그 씨를 유전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홍수 후에 있을 새로운 역사를 구체적으로 준비시키셨습니다. 노아는 이번에도 그대로 준행했습니다. 마침내 홍수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17일이었습니다(11).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습니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2,3일만 집중호우가 쏟아져도 산사태가 나고, 둑이 터지고, 온 땅에 물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주야로 비가 쏟아졌으니 얼마나 무시무시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비가 이제나 그칠까 저제나 그칠까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비가 왔습니다. 저지대부터 점점 물에 잠겼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또 피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방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 노아가 그래서 방주를 지었구나. 노아가 정말 지혜로왔네사람들은 노아를 부러워하고 노아가 타고 있는 방주에 들어가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6b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아 버리셨습니다. 구원의 방주가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주가 열려 있을 때, 주님이 초청하실 때 빨리 들어와야지, 평소에 자기 맘대로 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방주에 들어갈려고 하면 이미 문은 닫히고 맙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등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처녀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문이 닫힌 후에 주여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소서하며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25:12). 계시록 3:7절에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했습니다. 구원의 문을 닫고 여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는 것을 뒤로 미루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들어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2:12절 말씀처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홍수심판의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7-19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40 주야 동안 비가 쏟아지자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물에 잠겼습니다. 무등산, 한라산, 백두산, 후지산, 알프스산, 에베레스트산 등등 그 높이를 자랑하던 산들이 다 물에 잠겼습니다. 홍수 전에는 산들이 서로서로 높이를 자랑하며 경쟁했습니다. 요즘도 그 높이를 자랑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고층빌딩들이 서로서로 그 높이를 자랑합니다. 대기업들이 자본금을 자랑합니다. 스포츠, 대중음악, 정당지지도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서로 그 높음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심판의 때가 되면 그것들이 다 무의미합니다. 물이 땅에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물이 넘칠수록 점점 높아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방주입니다. 평소에는 방주가 낮은 곳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때에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방주였습니다.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암초를 만나서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몇 등 석 손님인가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타이타닉호에서 빠져 나와 구명정에 타느냐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도 구원의 방주되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21절에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하는 말씀과 23b절에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말씀이 대조가 됩니다. 사도행전 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했습니다. 마가복음 16:16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했습니다. 요즘 취업의 문, 각종 시험의 문에 들어가고자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24절 말씀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양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세계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 새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8:1-20)

 

8: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하나님은 죄악된 세상을 홍수로 쓸어 버리는데만 관심이 있지 않으셨습니다. 심판 후에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 역사의 주역이 바로 방주안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기억하셨습니다. 바람을 땅위에 불게 하셔서 물이 줄어들게 하셨습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1:2,9). 하나님께서 홍수심판 후에 새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은 1년 하고 10일 동안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17일에 홍수가 시작되었는데 노아가 601세 되던 해 227일에 땅이 다 말랐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8:15-1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심판의 때에 방주 안에 들어가 구원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심판 후에 방주에서 나와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정으로 하여금 방주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주셨던 사명을 새롭게 주셨습니다.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이제 노아는 제 2의 아담이 되어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노아가 새로운 창조의 역사에 주역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거룩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19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사도행전 1:8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우리가 생명의 복음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사명이야말로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한 사람의 신실한 양을 얻고 일대일을 하고 죄문제와 씨름해서 제자로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요즘 우리 목자님들이 한 양을 얻기 위해서 줄기차게 캠퍼스에 올라가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 양들을 섬기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감사가 됩니다. 이것이 어렵지만 또 큰 축복입니다.

 

18절을 봅시다. 노아가 모든 가족과 방주 안에 짐승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20,21a절에 보면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에 가장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께 헌신을 다하고자 하는 결단의 표시였습니다. 무시무시한 홍수 심판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고맙습니까? 노아는 그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 역사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요즘 새롭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목자님들이 정성껏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서 감사가 됩니다. 박루디아 주니어, 천열정, 천도전, 송무디 목자들이 첫 월급을 하나님께 바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 받으실 줄을 믿습니다. 또 우리 목자님들이 매달 드리는 십일조 헌금과 선교헌금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이 시대에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솔로몬도 처음 시작을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솔로몬 왕국이 견고하고 솔로몬이 지혜가 출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항상 하나님 영광을 앞세우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무지개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8:21-9:17)

 

그런데 홍수 심판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8: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홍수심판을 통해서 악한 세상을 싹 쓸어 버리셨는데 그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악한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어려서 그 마음의 계획이 악했기 때문입니다. 6:5절에 보면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마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철저한 부패 상태라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하셨고 대 청소를 하셨습니다. 홍수 후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 악한 생각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고민이요 딜레마였습니다. 사람들이 악한 생각을 하고 범죄할 때마다 홍수심판으로 또 쓸어버리실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십니까?

 

9:11-13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무슨 약속입니까? 다시는 홍수로 그들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허물과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이 홍수심판을 내리셔서 쓸어버리신다면 얼마나 두렵습니까? 우리는 너무 부족하고 죄에 넘어질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을 내리신다면 너무 두려워서 기를 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 먹구름만 끼어도 또 홍수심판이 오지 않나 무서워서 간이 콩당콩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습니다. 구름이 온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시고 홍수를 내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무지개가 언약의 증거가 됩니다.

 

무지개는 영어로 rainbow입니다. rain() + bow(). 무지개는 활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무지개라는 말의 원어가 케쉐트로서 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전쟁무기인 활이 아래를 향하고 있지 않고 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심판의 도구인 활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상 죄를 보면 진노를 쏟아 부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화가 났다가도 무지개를 보면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화를 참으시게 됩니다. 무지개처럼 미소를 짓게 됩니다. “아이구 내가 참아야지” “얘들이 부족하잖아” 9장에 언약이라는 단어가 7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이 참고 또 참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무지개를 언약의 표징으로 삼으시고 스스로 그 언약에 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무지개 언약은 은혜 언약이요, 사랑의 언약, 화평의 언약입니다. 이 무지개 언약은 후에 예수님을 통해 이루실 십자가 언약의 예표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해서 그 진노를 우리에게 쏟아 붓지 않으십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진노를 쏟아 부으십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심판을 거두십니다. 로마서 3:23-25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하나님은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시고 그 피를 믿는 자의 죄를 간과해 주십니다. ‘간과한다는 것은 눈감아 주는 것입니다. 내 죄로 봐서는 당장 심판하셔야 마땅한데 예수님의 대속의 피 때문에 진노를 참으시는 것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도 구름사이에 무지개가 뜨면 비가 그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올라갔다가도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어 밀면 주님의 심판의 손이 내려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언약입니다. 십자가 언약은 은혜 언약입니다.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십자가가 그렇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산 길(a new and living way)이 열리게 되었습니다(10:20). 그래서 십자가 언약은 화평의 언약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 화평의 언약 때문에 우리가 지금도 심판받지 않고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시로 허물과 실수와 죄에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서 새롭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이 십자가 언약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 언약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 찬송드립니다.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가 있습니다. “저 하늘의 무지개를 보노라면 내 가슴은 뛰노라.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그러하리.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으리!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하루하루가 자연의 숭고함 속에 있기를우리는 하늘의 찬란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왠지 가슴이 뛰고 설레입니다. 자연의 숭고함 앞에 숙연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감동이 되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첫 수양회에 참석해서 십자가 메시지를 들을 때도 그러했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러합니다. 앞으로도 항상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양들은 목자들의 아버지. 나의 하루하루가 주님의 거룩한 사랑 속에 있기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2천년 전에 있었지만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솔제니친(Solzhenitsyn, 1918-2008)은 구 소련의 유명한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독재자 스탈린을 비난한 이유 때문에 강제 수용소에 유배되어 하루 12시간이상 중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중병에 걸려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다 흩어졌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먹구름 자체였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어느날 휴식시간에 삽을 팽개치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감시원에게 죽도록 맞게 되는데 차라리 맞아 죽고 싶었습니다. 완전포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서는 막대기로 땅바닥에 십자가를 그어주고 갔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솔제니친이 십자가를 바라본 순간 그의 마음에 평화가 임했습니다. 신기하게 희망의 빛이 임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이렇게 회상합니다. “소련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인류의 소망이 그 작은 십자가 형상으로 상징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솔제니친은 팽개쳤던 삽을 들고 다시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되찾았습니다.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는 1년 뒤 소련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가서 많은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물질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나중에 러시아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기독교적 가치를 원천으로 하는 사랑의 국가 건설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을 주제로한 작품을 많이 써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감동시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한 고뇌하는 지성인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죄로 병든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순종한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벽을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심령이 부패함을 아시고 이제는 은혜의 역사를 이루기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높은 하늘에 무지개를 걸어 놓으셨습니다. 사랑의 징표를 걸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가기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가슴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미 죽었을 나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 나의 죄를 길이 참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 은혜를 묵상하며 우리도 화가 나지만 참고, 내가 받은 자비와 사랑을 다른 사람에 실천하고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십자가,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