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8

                                                 바벨탑을 흩으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9:18-11:26

요절: 창세기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노아는 온 세상이 타락했을 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어 구원의 역사를 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세월이 흐르자 노아의 후손들은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참 슬픈 생각이 듭니다. 힘든 시대에 하나님께 순종해서 방주를 지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을까? 그러나 이처럼 간사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또 그 배후에는 간교한 사탄이 있습니다. 간사한 인간과 간교한 사탄 때문에 죄의 역사가 반복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조심해야 할 죄가 무엇인가 살펴보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를 구원의 역사에 쓰시는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 노아의 후손들(9:18-10)

 

9:20절에 보면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포도농사가 잘 된 것 같습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습니다. 안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잘 되어도 문제입니다. 풍요에 취해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본래 노아는 홍수 이전에 모든 사람들이 방탕함 가운데 있을 때 세상문화와 타협치 않고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던 당대에 완전한 자요, 의인이었습니다(6:9). 그런 노아가 술에 취해서 벌거벗은 채 허물을 보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아 아니라 노아 할아버지라도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죄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27절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에스겔14장에 보면 구약의 3대 의인으로 노아, , 다니엘을 뽑았습니다. 그런 노아도 죄에 넘어진 것을 생각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얼마나 깨어서 조심해야 하겠습니까?

 

힘들고 어렵고 핍박이 있을 때보다 안정되고 풍요의 때에 믿음의 중심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나 우리 모임이나 조상들은 힘든 가운데 기초를 놓기 위해 많은 헌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복을 누리게 된 우리 후손들이 깨어서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사탄의 시험에 들고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유언과 같은 디모데전후서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라말을 세 번이나 했습니다(딤전1:18, 딤전6:12, 딤후4:7). 신앙생활은 사탄과의 치열한 영적 싸움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과 영적인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에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2:12).

 

노아의 허물에 대해서 셈과 함과 야벳 세 아들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22절을 봅시다. 함은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즐겼습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밖에 나가서 폭로하고 비방했습니다. 이것은 아들로서 할 도리가 아닙니다. 잠언 30: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조롱해도 이를 방어해야 할 자가 자녀입니다. 사실 함은 아버지 노아 때문에 방주에 들어가 홍수심판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했다면 작은 허물을 그렇게 폭로하고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교만한 자인가 말해 줍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얼마나 허물과 실수가 많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진 자들인데 탕감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7:1절에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4:8절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노아의 다른 아들 셈과 야벳은 어떻게 했습니까?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적극적으로 덮어주고 감당했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후에 함을 저주했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반면에 셈과 야벳은 축복했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셈은 축복을 받아 그 후손 가운데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나오고, 메시야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야벳도 그의 후손이 축복을 받아 지중해 문명을 꽃피우고 초대교회가 그 곳에서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함의 후손인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적이 되어 항상 원수노릇을 했습니다. 우리가 남의 허물을 감당해주고 적극적으로 기도해 줄 때 하나님도 나의 허물을 감당해 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8:11)” 또 마가복음 2:17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그 자비와 은혜가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옵니다.

 

10장에는 노아의 세 아들 셈, , 야벳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벳에게서 14개 나라가 나왔습니다. 함에게서 30개 나라, 셈에게서 26개 나라가 나와서 총 70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아의 후손들은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아의 후손들을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문제가 있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10:8절에 나오는 함의 자손 니므롯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이름만 기록되었는데 니므롯은 네 절에 걸쳐서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0:8,9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니므롯이란 이름의 뜻은 우리가 반항하리라입니다. 이름부터 반발심으로 충만한 자입니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할아버지의 반항적인 DNA를 받아서 타고 난 자입니다. 그는 용사라고 했는데 이전 번역에서는 영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폭군이요, 압제자였습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독재자였습니다. 그는 힘있는 사냥군으로서 짐승만 사냥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짐승 다루듯 사냥하고 억압했습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이었는데, 이를 근거로 역사가들은 바벨탑을 건설한 주역이 니므롯이라고 봅니다. 바벨론 왕국의 뿌리가 여기입니다. 바벨론은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BC 586년에 남유다를 멸망시킵니다. 계시록 17:5절에 큰 성 음녀 바벨론을 언급하는데 이는 사탄적인 이미지입니다. 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이스라엘을 괴롭힌 블레셋이 다 함의 후손에게서 나왔습니다. 16,17절에 나오는 가나안 족속들이 다 함의 후손들입니다. 이를 볼 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 한 사람이 믿음의 중심을 굳게 지킬 때 믿음의 물줄기가 후손들에게 계승이 됩니다. 반면에 그 한 사람이 죄악된 삶을 살 때 후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날, 수요일은 어버이날입니다. 각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가문을 일으킬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성경에는 족보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무심코 읽지만 믿음의 계보를 잊는 믿음의 족보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유진 벨 선교사의 가문은 현재까지 124년 동안, 5대째 한국선교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유진 벨 선교사는 189549, 27살 때 전라도에 최초의 선교사로 왔습니다. 광주의 최초 교회인 양림교회를 세우고, 숭일학교, 수피아 여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광주로 차를 몰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내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의 둘째딸 샤롯 벨은 군산에서 선교하던 윌리엄 린튼과 결혼했는데 이 부부가 전주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서문교회를 세웠고, 대전에 한남대학등을 건립했습니다. 그 부부의 셋째 아들 휴 린튼은 6.25때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했습니다. 그는 목사로서 항상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며 경상도와 전라도에 여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의 별명은 순천의 검정 고무신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 로이스는 순천결핵재활원 책임자로 35년 동안 봉사했습니다. 그의 세 아들도 결핵으로 잃었지만 한국의 결핵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휴 린튼의 아들 스티브 린튼은 유진벨 재단 이사장으로 수시로 북한에 가서 결핵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스티브의 동생 존 린튼은 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방송에 많이 나오는 유명인사죠. 존 린튼(인요한)의 두 딸 한나와 에스더도 5대째 선교사로서 헌신하고자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문입니까? 우간다 베데스다 병원 소식지에 보니까 호주 시드니 웨스트에 강모세 선교사님의 두 딸 에스더와 레베카가 가서 봉사하는 사진과 글이 실렸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유산을 남겨서 우리 후손들을 통해 아름다운 믿음의 역사를 계승해야 하겠습니다.

 

. 바벨탑을 흩으신 하나님(11)

 

11장을 봅시다. 대홍수 이후에 인류는 급속하게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동방으로 옮겨 시날 평지에 거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서로 제안을 했습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사람들이 많아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벽돌 만드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벽돌을 구워서 만들어 보니 건축재료로 아주 좋았습니다. 그 벽돌 사이에 역청을 발라보니 아주 견고한 벽을 쌓을 수가 있었습니다. 1, 2, 3, 5, -- 10층을 쌓아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올라가면 100, 200층 탑도 세우겠네. 우리가 탑을 쌓아서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 그래서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이래서 건설 된 것이 바벨탑입니다.

 

얼른 보면 얼마나 멋있고 웅장해 보입니까? 구운 벽돌의 발명!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신개발품이었습니다. 당시 신문이 있었다면 이런 기사가 실렸을 것입니다. “꿈의 신소재 구운 벽돌 개발. 건축술의 신기원을 이루다그러나 문제는 이 바벨탑을 통해서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땅에 흩어져 생육하고 번성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흩어짐 대신에 세력을 규합해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높아지고자 한 제2의 선악과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 사건이나 바벨탑 사건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사람들은 술취함과 방탕, 음행의 죄를 크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심각한 죄가 교만입니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질적인 악, 최고의 악은 교만이다. 천사가 사탄이 된 것이 바로 교만 때문이다. 교만은 다른 모든 악의 기본이 된다. 당신이 교만할 때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교만한 자는 항상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고 멸시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내려다보는 한 당신 보다 위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없다교만은 결국 눈에 뵈는 것이 없게 만들고 스스로를 하나님 같은 위치에 놓게 만듭니다. 그래서 잠언 16:18절에서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5절에서도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해 눈부신 문명을 발달시켰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신뢰합니다. 생명과학과 의학을 발달시키면 평균 수명 200세 시대도 곧 온다고 주장합니다. 로켓트를 타고 달과 화성에도 여행을 하게 될 것이고, 날라 다니는 자동차 시대가 온다고 말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은 피조물일 뿐이고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7,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서 도시를 건설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바벨탑을 쌓으면서 위에서 벽돌 달라고 하는데, 밑에서 계속 역청만 올립니다. 결국 위에서 화가 나서 벽돌을 던지며 서로 싸웁니다. 결국 인간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도시 건설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과 탐욕을 반드시 치십니다. 다니엘4:30절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심히 교만해졌습니다. 두라 평지에 자신의 금신상을 세우고 신으로 추앙받고자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얼마나 오만방자합니까? 그런데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 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4:31,32)”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을 치셨습니다. 결국 느부갓네살 왕은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게 되었습니다. 머리털은 독수리털 같이 자라고 손톱은 새 발톱같이 되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황제라고 자처하던 자가 짐승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히틀러가 독일 총통이 되어 2차 대전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고자 했습니다. 독일 교회 목사들이 경고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이나 잘 다스리라고 하시오. 이 땅은 나 히틀러가 책임지겠소얼마나 교만한 말입니까? 처음에 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계기로 하나님이 치시자 급속히 약화되었고, 결국 자살로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져 교만을 떨 때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이 흩으시고 망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0:5절에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역사를 이루셨습니까? 그 많은 능력을 이용해서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이름을 높였습니까? 아닙니다. 빌립보서 2:6-8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예수님은 바벨탑보다 훨씬 더 높은 탑도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탄도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 마가복음 10:45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14:36)” 예수님은 한 없이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로서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셨습니다. 이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바벨탑과 십자가는 완전히 대조가 됩니다. 오늘날에도 바벨탑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십자가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이름을 내고자 열을 내는 사람은 잘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결국 바벨탑처럼 허망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의 뜻을 앞세우며 사는 사람은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생명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십니다.

 

11:10절부터 보면 셈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리고 26절에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나옵니다. 아브람은 별다른 특징이 없습니다. 30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사래와 결혼하였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10,11장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다 자식이 있어서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 기록되었는데 아브람은 자식이 없으니 족보에 올릴 후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 바로 그 아브람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다음 강의에서 배우겠지만 아브람은 보잘 것 없는 자였습니다. 니므롯처럼 용사도 아니고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처럼 기술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단순하게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한 바벨탑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겸손한 아브람을 75세에 부르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영광을 구하는 교만한 죄의 역사의 반복입니다. 선악과 사건이 그러했고, 바벨탑 사건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인류구원역사를 포기치 않고 이루어가십니다. 누구를 통해서 입니까? 아브람처럼 겸손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우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는 자들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바벨탑을 추구하며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이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한 팀의 일대일을 감당하며 한 양을 예수님의 제자로 키워가는 십자가를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 살 때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