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4

                                               약속대로 이삭을 주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20:1-21:34

요절: 창세기 2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기다림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을 출발한지 25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약속을 많이 하지만 잘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능력을 증명해 보이십니다. 오늘 말씀 20장은 실수하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그러나 21장은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보여 줍니다. 저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언약을 굳게 붙들 수 있길 기도합니다.

 

.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세우신 하나님(20)

 

20장에서 아브라함이 또다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사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에 살고 있었는데 그랄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랄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나 죽이고 여자들을 빼앗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랄 사람들이 자신도 죽이고 아내를 빼앗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12장에서 애굽에 내려갈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 했습니다. 그랄왕 아비멜렉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인줄 알고 사라를 왕궁으로 데려갔습니다. 이때 만약에 사라가 아비멜렉의 아내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언약이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급히 밤에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셨습니다.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그 여자 함부로 건드리면 죽어하나님이 무섭게 경고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은 깜짝 놀라서 자신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변명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막으셔서 범죄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을 보면 전혀 선지자답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아비멜렉앞에서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고 선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아비멜렉의 눈앞에 아브라함은 늙고 초라한 촌부로 보였습니다. 자기 마누라조차 지키지 못하는 졸장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너무나 귀한 선지자였습니다. 때문에 철저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사라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반드시 죽으리라아비멜렉이 아무리 왕이지만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 살고, 아브라함이 저주하면 죽게 됩니다. 아비멜렉왕 위에 아브라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부터 약속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12:3)”

 

실제로 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습니다. 사라의 일로 하나님이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여자의 태를 닫으셨다가 아브라함이 기도하자 태를 열어 주신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태를 닫아 버리는 것이 가장 무서운 저주였습니다. 후손이 없으면 대가 끊어져 망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태를 닫고 여는 일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맡기셨습니다. 선지자의 특권과 사명은 참으로 큽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에서는 별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에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예례미야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오늘날 이 시대는 아브라함의 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남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는 무서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이 시대에 선지자로 삼으시고 이 시대를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이 시대 캠퍼스의 젊은이들이 살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1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우리의 중보기도에 따라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있고,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한 영혼에 대해서 천국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특권이자, 거룩한 사명입니다. 우리가 여름수양회를 앞두고도 아무런 관심도 없이 기도하지 않으면 양들은 사탄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소돔고모라를 위해 생명을 걸고 기도하듯이 중보기도를 감당하면 천국 문이 열려서 양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 양들과 민족의 장래가 나의 무릎에 달려 있습니다. 사무엘상 12:23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사무엘이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온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선지자들로서 힘써 기도의 십자가를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요즘 몇몇 사모님들이 낮 시간에 모여서 여름수양회와 리더들을 위해서 간절히 합심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여름수양회 실무자들이 더위를 무릅쓰고 나와서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양들 심방가고, 양들과 강사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받으시고 양들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의 권세를 파하시고 큰 승리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 이삭을 주신 하나님(21:1-8)

 

21: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마침내 사라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이런저런 공약을 남발하며 지지를 호소합니다. 그러나 막상 당선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딱 씻고 모른 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십니다. 민수기 23: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했습니다.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에 약속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웃음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크게 웃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일찍 자녀를 낳고 인생이 잘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롯의 열매는 부끄러운 열매였습니다.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리고 딸과의 관계를 통해 모압과 암몬을 낳았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그 아들은 믿음의 열매요, 언약의 열매였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묵묵히 인내하면 반드시 기쁨의 열매를 맺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도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과정은 너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리라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했습니다.

 

구속역사 속에서 가장 놀라운 언약의 성취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갈라디아서 4: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하나님은 창세기 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을 통해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실 구원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때가 차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마침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도 예언의 성취입니다. 고린도전서15:3,4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 때가 차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회심을 위해서 30년을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아들은 마니교 이단에 빠져 있고, 사생아까지 낳으며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모니카의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방탕한 내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산통을 느끼듯 괴로워 하셨습니다그런데 이런 모니카를 암브로시우스 감독이 위로해 주었습니다. “눈물로 기도한 자녀는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이 말에 힘을 덧입어 모니카가 30년을 인내하며 기도했을 때 마침내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어거스틴은 후에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모니카는 또 남편 파트리치오를 위해서도 일생동안 기도했는데, 남편이 죽기 1년 전에 회심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또 모니카의 기도 때문에 어거스틴의 동생 나비지오는 신실한 교회 감독이 되었고, 여동생 페르페투아는 신실한 수도원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모니카 한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했을 때 온 가족이 주님께 헌신하는 위대한 믿음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양들이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기를 잘합니까? 아브라함이 25년 만에 이삭을 얻고, 모니카가 30년 만에 어거스틴의 회심을 체험했다면 우리도 20, 30년을 내다보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4절을 봅시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아브라함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을 자기 나름대로 키우지 않았습니다. 17:9,10절에서 하나님이 주신 방향에 따라 할례를 행했습니다. “아이고, 어떻게 얻은 자식인데 금쪽같은 내 자식 몸에 칼을 대?” 하면서 할례언약을 잊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난 지 팔일 만에 정확히 할례를 행함으로서 그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삭의 탄생은 사라에게도 크나 큰 기쁨이었습니다. 사라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사라는 9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품에 안고 젖먹이며 너무나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젖 떼는 날,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찰떡 쑥떡 무지개 떡에, 방울 토마토도 내고, 이삭이에게 채색옷도 입혀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 이스마엘을 내 보내게 하신 하나님(21:9-21)

 

그런데 예기치 않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놀리는 것은 힌번 장난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의를 가지고 계속해서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때 이스마엘의 나이가 17살 정도 되었습니다. 이삭은 3살 정도 되었습니다. 14살 차이나 나니 이삭이 이스마엘의 등살에 도무지 크지를 못했습니다. 이스마엘 입장에서도 이해는 갑니다. 왕자가 하루 아침에 왕따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이때 사라가 이 문제를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이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심히 근심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어떤 방향을 주셨습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하나님은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보내라고 하십니다.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통해 유업을 잇게 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통정리를 해 주시고 믿음의 아들 이삭을 키우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살다 보면 이런 갈등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결단했는데 BC시절에 함께 놀던 친구들, 과거에 즐기던 습관들이 나의 발목을 잡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이 아프더라도 과감하게 이스마엘을 내 보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4:28-3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우리 안에 신본주의와 인본주의가 공존할 수는 없습니다. 인본주의를 내 보내야 신본주의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어거스틴도 회심을 했지만 그 즉시 다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그의 <고백록>에 보면 이렇게 토로 했습니다. “주님! 언제까지 내일 내일 할 것입니까? 왜 지금은 안 됩니까?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깨끗이 끝내지 못합니까?” 어거스틴은 너무나 괴로워서 소나기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어거스틴은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고 집으로 달려가서 성경책을 펴들고 읽었습니다. 그때 로마서 13:13,14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이 말씀에 기초해서 그는 죄의 유혹을 과감하게 내쫓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때 마음에 참 평강이 임했습니다. 하루아침에 탕자 어거스틴이 성자 어거스틴으로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회개한 후에도 자신과의 치열한 전투를 거쳐 말씀 붙들고 육신주의, 인본주의를 내 몰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런 갈등을 거쳤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분명히 붙들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그때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수 있었습니다(5:22,23).

 

14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내보내라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내어 보냈습니다. 17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아들을 내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또 하갈은 무슨 죄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불쌍히 여기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17,18)” 우리가 분명한 믿음의 결단을 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수습해 주십니다.

 

.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21:22-34)

 

22절부터는 그랄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합니까?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23,24)” 20장에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우습게 생각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하든지 이상하게 잘 되었습니다. 아내를 빼앗길 뻔 했다가 되찾게 된 것도 그렇고, 100세에 아들을 얻게 된 것도 그렇고, 아브라함의 양떼가 늘어나는 것도 그렇고.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아비멜렉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혹시라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명하여 아비멜렉을 공격하라 하시면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화친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이에 아브라함도 호의적으로 응답하였습니다. “내가 맹세하리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해서는 분명히 항의하며 아비멜렉을 책망했습니다. “빼앗은 우물을 내 놓으시오이전에 아비멜렉이 두려워서 아내를 누이라 속였던 아브라함이 이제는 아주 당당해졌습니다. 대등한 관계에서 언약을 맺을 뿐 아니라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책망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지위를 얼마나 높이셨는가 알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시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제 누구도 감히 아브라함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15:1절에서 아브라함아,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하셨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언약을 맺은 후에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원히 살아계신 여호와가 되심을 깊이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자신은 연약하여 허물과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개입하시고 모든 문제를 선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건들을 거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에셀나무처럼 점점 견고해지고 무르익어 갔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인간은 신실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신실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면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붙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의 중심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