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22:1-24

요절: 창세기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여러모로 아브라함을 연단하시고 또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22장은 아브라함의 신앙에 있어서 최고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주 높은 수준의 시험을 통과함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큰 축복을 베풀어 주기 원하십니다. 짠짠한 복이 아니라 차원 높은 복, 역사적인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믿음은 무엇인가 배우고, 높은 차원의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브라함(1-10)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려서, 100세에,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금쪽같은 아들 이삭을 내 놓으라, 그것도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건 한나가 사무엘을 주의 종으로 바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죽여서 각을 떠서 불에 태워서 드리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시험치고는 너무나 잔인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주실 때도 25년을 뜸들이시더니, 이제는 그런 아들도 못 봐 주고 번제로 드리라니 너무 변덕스럽고, 남의 행복을 눈 뜨고 못 보는 괴짜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하나님은 17:19절에서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이삭이 분명히 언약의 자녀라고 했는데 왜 이런 시험을 주시는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이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신앙의 순수성을 테스트하기 원하셨습니다. 이삭이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이삭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이삭이 분명히 축복이지만 그 축복에 매여 버릴 때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축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아들이 우상이 되고, 하나님은 부수적인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 첫 자리에 계셔야 하고, 내가 first로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 첫 자리는 사랑하는 자녀도, 배우자도, 타이틀이나 물질도, 나의 꿈과 이상도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42:8절에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이 내 마음을 점유할 때 순수성이 사라지고 마음이 혼탁해집니다. 영적인 질서가 무너지고 부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것들을 내려놓기 원하십니다. 주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000, 네가 가장 사랑하는 00, 00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라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주님, 안돼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안돼요. 차라리 내 생명을 앗아가세요그러나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그 사람이 정말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증명이 됩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4: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아무 것에도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사로잡힐 때 거기서 거룩이 나옵니다. 하나님 한분에게만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 불순물이 전혀 없는, 순도 100%의 정금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질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0:2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그는 오직 하나님께 최우선권을 두고, 사명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불사조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전에 사랑하던 것들은 모두 배설물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지식인 그리스도를 얻는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3:8,9).

 

짐 엘리어트와 네 명의 친구들은 에쿠아도르의 밀림 아우카 족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언론들은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What a waste?" 이 얼마나 무모한 낭비인가? 그러나 정작 짐 엘리어트 자신은 평소 일기장에 그렇게 써 두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휘튼대학을 수석으로 나온 수재가 젊은 나이에 아내와 아들을 두고 아마존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는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보화되신 예수님을 얻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존의 무지한 영혼들을 구원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짐 엘리엇과 친구들을 죽인 아우카 족들은 나중에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중에 목회자가 된 자도 있습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와 아들, 짐 엘리엇의 친구들의 아내들은 남편들이 순교한 땅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고 많은 영적인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정말 높은 수준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서 가장 차원 높고 가장 심오한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길 원하셨습니다. 100세에 믿음으로 얻은 아들 하나로 만족하고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아들까지도 주님께 드리는 순수한 믿음, 100% 순종하는 믿음을 원하셨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앞으로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내어 주시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 하나님의 마음, 독생자까지 내어주는 사랑을 알고 거기에 동참하기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아픔이지만, 거기에 진정한 사랑이 있음을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정말 숭고하고 값진 사랑은 가슴 아픈 사랑입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 life giving love,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기 원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테스트하기 원하셨습니다. 100세에 불가능한 가운데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죽은 아들도 다시 살리실 것까지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부활의 권능까지 가지신 분임을 믿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아브라함은 너무 힘들어서 혼자 어디로 도망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데모를 하지도 않았고, 아내 사라에 물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이를 뒤로 미루지도 않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향했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도 준비했고, 손에는 불과 칼을 들고 있었습니다. 모리아산으로 가는 길은 멀기도 했습니다. 사흘이나 걸렸습니다. 저도 어려서 아버지 손잡고 산소에 성묘갈 때 참 즐거웠습니다. 아버지 손잡고 가면서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고, 성묘 갔다 와서 제사음식 먹는 재미도 솔솔 했습니다. 이삭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아빠?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어?” 이때 저 같으면 목이 메어서 말이 안 나올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쁜 자식을 번제로 드려야 한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혜롭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리리라이 말을 볼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쩔 수 없어서 마지못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친히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아들의 생명도, 자신의 미래도 다 맡겼습니다.

 

5절에서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온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마음에 부활신앙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9절에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말했습니다. 로마서 4:17절에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다시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100세에 불가능한 가운데서 아들을 주신 분이라면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9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이 마침내 모리아산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아들을 향해 내리칠려고 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하나님(11-24)

 

이때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1,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하나님은 깜짝 놀라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시며,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아브라함을 두 번이나 말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다급하셨으면 이렇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순종을 요구하셨지만 아브라함이 이렇게 까지 120% 순종할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순종에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자기 독자까지도 아낌없이 드리고자 하는 것에 너무 놀라셨습니다. 사람은 다 자기 것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자기 자식, 자기 몸, 자기 재산, 자기 시간, 자기 꿈, 자기 강아지. 자기 스마트 폰.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식을 가장 아끼는데, 더구나 하나밖에 없는 독자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더 이상 테스트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 하산 하거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에 깊이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순종은 경외심에서 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왜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했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창세기 2:16,17절 말씀을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었기 때문에 계명의 말씀을 어기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사탄의 유혹이 달콤해도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는 사람은 함부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범죄 사건들, 선악과 사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 노아시대에 사람들이 육체가 되어 버린 것, 바벨탑 사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어서 불순종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독자 이삭까지 번제로 드리고자 한 아브라함의 순종은 모든 불순종을 만회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과의 깨어진 사랑의 관계성이 회복되고, 창조질서가 회복되었습니다. “이제야 -- 알았도다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아브라함이 순종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셨습니다. 이로서 모든 검증이 끝났습니다.

 

이후로 하나님은 안심하고 아낌없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번제에 쓸 어린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 대신에 그 숫양을 가져다가 번제로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신붓감으로 리브가를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도 구원자 메시야를 허락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16-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준다고 하십니다. 그 큰 복은 이삭 외에 아들 몇 명을 더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씨 가운데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가 탄생해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장차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서 대적 마귀의 성문을 깨부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함으로 사람들이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마귀의 성에 갇혀 죄와 죽음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가장 큰 비극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적 마귀의 성문을 정복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당당히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마귀를 정복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We are more than conquerors. 아브라함의 순종이 이처럼 엄청난 축복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18b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이를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순종을 기뻐하시는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복을 부어주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큰 복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메시야를 잉태하여 낳은 마리아는 요셉과 결혼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여자가 결혼의 단꿈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며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1:38). 그때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축복하시는데 만세에 그녀가 복이 있다 일컬음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1:48). 시골처녀 마리아가 성모 마리아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오신 안요셉 선교사님은 대학시절 고시 공부할 때 매일 있는 기도모임에 참석할 것인가? 아니면 도서관에서 공부만할 것인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기도모임에 갔다 오면 다른 친구들은 이미 몇 십 페이지 진도가 더 나가고, 그것을 몇 달 동안 합하면 도저히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6:33절 말씀을 붙들고 순종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매일 기도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지혜와 영력을 주셔서 외무고시에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50대에 외교부로부터 영사발령을 받았는데, 고 이 사무엘 선교사님께서 사표내고 시카고 선교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후면 영사를 거쳐 대사가 되는데 그 자리를 내려놓고 순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안요셉 선교사님은 이번에도 고위직 외교관 자리를 내려놓고 시카고 선교사로 가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선교역사에 헌신하셨습니다. 30대에는 9년동안 부부가 떨어져 살면서 선교역사에 헌신하셨습니다. 이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려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 분을 통해 많은 목자들과 선교사들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또 천하만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님들을 돕는 천국의 대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난번에 광주 오신 후에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카폴을 거쳐, 지금은 캐나다에 가셔서 수양회를 섬기시고 한 달 뒤에는 유럽수양회를 섬기러 가실 것입니다. 이 분을 통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많은 주님의 양들을 낳고 키우는 복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 버리면 내 꿈이 깨지고 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금요기도회 사도행전 8,9장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빌립집사에게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광야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순종하여 내려갔습니다. 그때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수레에서 이사야서 53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다가가 전도하자 그 내시가 복음을 영접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로서 후에 에디오피아 나라 전체가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또 사울이라는 자가 살기등등하여 신자들을 잡아가두고 있는데 성령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9:11)”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렇게 혈기 많은 사람 잘 못 건드렸다가 붙들려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가 순종해서 사울에게 갔습니다. 가서 기도해주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어져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영적인 눈을 떠서 믿음의 세계를 보고 열정적인 복음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빌립이나 아니나아가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순종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히브리서 5:8,9절에 보면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이로서 온전케 되어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를 통해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75세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의 근원의 소망 가운데 키우셨습니다.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즉각 순종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고,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자 했던 모리아산은 후에 다윗의 성전이 세워지는 장소가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장소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내 마음의 첫 자리를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 놀라운 축복의 세계, 신령한 세계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