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

                                                 영광스러운 축복의 계승자

말씀: 창세기 25:22-34, 27:1-45

요절: 창세기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오늘 말씀은 믿음의 2대 조상 이삭이 3대 조상 야곱에게 축복을 계승하는 내용입니다. 이삭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에서와 야곱 쌍둥이입니다. 쌍둥이라도 에서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에서에게 축복이 계승되어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둘째인 야곱에게 축복이 계승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영적인 축복을 계승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또 어떤 자가 이런 축복을 계승하는가? 배우길 기도합니다.

 

첫째로, 축복의 계승 역사는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요, 주권입니다. 25:23절에 보면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고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이삭이나 리브가가 두 아들들 중에서 누구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로마서 9: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에서나 야곱이 엄마 뱃속에서 무슨 선과 악을 행했겠습니까? 두 아이를 잉태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야곱을 선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축복의 계승자로 선택 받았다고 해서 결코 자신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택하심의 은혜에 감사해야만 합니다.

 

우리도 내가 구원 받고 목자로 선택받은 것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9:15,16절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했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요, 아무 자격 없는 나를 선택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항상 겸손할 수 있고, 무익한 종의 자세로 충성을 다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소중히 여겼지만, 에서는 이를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형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으로 들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신이 털옷 같아서 야성미가 넘치고 남자다웠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하고 주로 장막에서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요리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에서가 훨씬 더 리더감 같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영적인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25:29절에 보면, 에서가 들에서 돌아왔는데 심히 피곤하고 배가 고팠습니다. 때마침 야곱이 죽을 쑤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죽여주었습니다. 에서는 군침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야곱, 나 배고파 죽겠는데 팥죽 좀 먹자이때 야곱이 말했습니다. “, 내가 팥죽 줄테니 형의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파시오이때 에서가 영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내가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장자의 명분은 못 판다그렇게 말하고 집에 들어가서 라면 끓여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에서가 뭐라고 말합니까? 32절을 봅시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에서는 자신이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밥 한 끼 못 먹었다고 죽습니까? 에서가 얼마나 육신적이고 감정적인 자인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육신의 욕망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34절에 보면, 에서가 팥죽을 먹고 마시고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그는 정신없이 죽을 먹고, 국물하나 남기지 않고 다 마시고 일어나 갔습니다. 그는 오직 먹는 즐거움에 사로잡혀 다른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미련없이 팔았습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어? 엣다, 장자의 명분, 야곱 너나 가져라장자의 직분이 귀찮다는 듯이 야곱에게 넘겨 버렸습니다.

 

성경은 그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말합니다(34b).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영어성경에 ‘despise’로서 멸시했다” “비웃었다그런 뜻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당장 배고픈 현실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장자의 명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멸시했습니다. 히브리서 12:16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린 에서의 행동을 음행의 죄와 동급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망령된 자라는 것입니다. 망령된 자는 ‘godless’로서, 그는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없으니 육신의 욕망대로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에서와 같이 살아갑니다. “예수가 뭐 밥 먹여 주냐?” “취직 시켜 줘?” “너나 잘 믿어, 난 그딴 것 필요 없어세상 사람들에게는 지금 당장, 배부르고, 즐겁고, 재미있으면 다 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가치요, 진리요, 인생목적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밤, 광주 치평동 한 나이트클럽에서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술 마시고 춤추며 광란의 불금을 보내다가 구조물이 붕괴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두 명이 죽고 10여명이 다쳤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는 금요일 밤 많은 세상사람들은 밤을 새워 먹고 마시고 육신의 쾌락을 즐기고자 합니다. 이처럼 육신적인 자들을 하나님은 축복의 계승자로 삼지 않으십니다. 영적인 것의 가치를 모르고, 망령되게 살아가는 자는 결코 언약의 계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장자의 명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장차는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를 탄생시키는 가문으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특권이기도 하지만 그 그릇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책임도 따랐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함께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의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으로 부름 받고,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된 것,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게 된 것, 뭇별의 환상을 보여 주시고 열국의 아비로 세우신 언약, 부모님이 어떻게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고, 20년 동안 자식이 없었지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들 쌍둥이를 낳게 해 주신 것, 그리고 흉년의 때에 말씀에 순종해서 그랄에 거했을 때 100배의 수확을 얻게 된 것 등등. 믿음의 역사에 대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이런 가정에 태어난 것을 무한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찌하든지 이 귀한 역사를 계승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서가 주로 내일은 무슨 짐승을 사냥할까? 고민할 때, 야곱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형 에서가 말씀공부 시간에 주로 졸고, 스마트 폰만 만지고 있을 때 야곱은 큰 감동을 받고 밤을 새워 소감을 썼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믿음을 계승하여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리라하나님은 이처럼 영적인 가치관이 있는 야곱을 언약의 계승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외모가 얼마나 멋있는가? 사냥 실력이 얼마나 좋은가? 이런 것을 중요시 하지 않으십니다. 성격이 좀 소심하고 남자다운 매력이 부족해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사람, 믿음을 귀히 여기는 사람을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하십니다. 메시야의 족보를 기록한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이렇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맨 첫 페이지, 메시야의 족보에 야곱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기록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18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했습니다. 팥죽 한 그릇이 먹을 때는 맛있지만 먹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장자의 직분은 영원히 남습니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가 선배 선지자 엘리야를 열심히 따라 다니며 배우고자 애를 씁니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에 소원을 물어 보자 뭐라고 답합니까? “당신의 성령의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왕하2:9)” 갑절의 영감을 구합니다. 사실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해서 섬긴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달리 바알선지자들이 득세합니다. 엘리야를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쳤던 이세벨 여사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도 없이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엘리야가 살아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며 사명을 감당했지만 엘리야가 승천하고 나면 슬그머니 보따리 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북이스라엘의 영적 각성운동을 일으키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하는 열정이 넘치는 엘리사를 엘리야의 계승자로 세우시고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에게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12-14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과거 무지와 교만으로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신을 구원하신 것만도 감사한데 그를 충성되게 여겨, 사도의 직분을 주셨으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는 이 직분을 감당하느라 누구보다 많이 수고했지만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15:10).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도의 직분을 귀히 여긴 바울을 세계선교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곽아브라함 목자님은 힘든 의대공부를 하면서도 캠퍼스 목자라는 명분을 귀히 여기고 시험기간에도 매주 요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졸업후 결혼할 때도 건설회사 사장이 병원차려 준다며 사위 삼고자 했지만 한 눈 팔지 않고 믿음의 결혼을 했습니다. 강진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며 주말부부로 살면서도, 토요일이면 광주에 올라와 주니어 학사팀 말씀공부를 인도했습니다. 주일 새벽기도를 절대적으로 감당했습니다. 이로서 의대 가운데 좋은 믿음의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 영향력 때문에 손다니엘, 곽모세, 유다니엘 목자님도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사명중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뭇별파트로 장가간 박현민 목자님도 지난 여름 수양회때 맹장 수술한 다음날, 피주머니를 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지난 여름수양회때 다들 바쁜 스케줄이 있지만 메시지와 장기자랑, 드라마, 특송 등을 섬기고, 양들을 초청하느라 많은 시간과 물질을 희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진심을 받으시고 전무한 수양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다윗 목자님은 학교에서 유럽여행을 가도록 지원해 주지만, 여름수양회와 겹쳐서 이를 반납하고 양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때 최필훈 형제가 수양회에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고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시대에 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명분을 귀히 여기고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를 생명구원역사에 귀하게 들어 쓰실 것을 믿습니다.

 

셋째로, 에서와 야곱의 가치관은 결혼하는데서도 나타났습니다. 26:34,3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언약의 계승자로서 결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후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혼시킬 때도 가나안 여자가 아닌 믿음있는 사람과 결혼 하도록 하란으로 보냈습니다. 에서도 자라면서 분명히 부모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부모님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40세에 가나안 사람인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해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서 이삭과 리브가는 마음에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어떻게 결혼했습니까? 28:1-5절에 보면 이삭이 야곱이 불러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지 말고 밧단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말합니다. 이에 야곱은 순종해서 밧단아람으로 가서 믿음있는 라반의 딸들과 결혼을 합니다. 이로서 12명의 믿음의 아들들을 낳아서 이스라엘 민족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에 기초해서 결혼한 에서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결혼한 야곱은 전혀 다른 열매를 맺게 됩니다.

 

27장을 보면 이삭이 야곱을 계승자로 세우고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7:1절에 보면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서 영적인 분별력이 희미해졌습니다. 이삭은 사냥한 별미를 좋아했기에 에서가 짐승을 잡아 오면 그것을 먹고 에서를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리브가가 야곱을 에서로 변장시켜 이삭에게 보냅니다. 어찌하든지 야곱이 축복을 계승하도록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마음이 약한 야곱은 주저했습니다. 그렇게 했다가 들키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13)” 이렇게 해서 결국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합니다. 리브가의 행동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또 에서인체 하고 이삭에게 가서 축복을 받은 야곱도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짓 때문에 후에 댓가를 치룹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 밑에서 사기를 당하며 20년 동안 죽도록 고생합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도 쓰셔서 축복이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계승되게 하셨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어떻게 축복합니까? 28,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이삭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풍성한 곡식의 축복을 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중동지방은 비가 잘 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슬을 많이 내려 주셔서 곡식이 잘 자라도록 축복해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이삭은 야곱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만민이 그를 섬기고 열국이 그에게 굴복하도록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는 장차 야곱의 후손이 모든 민족위에 뛰어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19:5,6). 또 그 후손 가운데서 인류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 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서 죄와 죽음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모든 만민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2:10). 이 예수님을 탄생하는 메시야의 혈통으로 택함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의 복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어, 이삭을 거쳐, 야곱을 지나 그 후손들에게 흘러 갑니다. 야곱은 그 축복의 main stream에 서게 됩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살면서 인류 구속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는 것,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허물진 저희를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하시고 이 시대에 복의 근원이요, history maker로 불러 주셨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맡겨 주시고 죄로 병든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영적인 역사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기를 쓰고 이 역사에 계승자가 되고자 합니다. 좀 고생을 하고 시련이 있을지라도 기꺼이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김요나단 목자님은 군대를 장교로 갔다 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만 바라보고 계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 하루 빨리 시험에 패스해서 안정된 자리를 잡는 것이 능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센타 사정을 보니 건축역사는 시작되었고 풀타임으로 복음역사 섬길 일군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계획을 내려놓고 풀타임 목자로 자원했습니다. 장교생활하며 번 물질도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김승리 목자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가난한 인턴목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양들이 감동을 받고 바로 열매가 맺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 년 동안 양들이 밥만 얻어먹고 떠나갔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때의 선택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충성을 받으시고 시온성 중건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참고 인내했을 때 올해 많은 소망스런 양들을 파트가운데 보내 주고 계십니다. 장차 수많은 목자들을 세계 각국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열방의 선지자로 귀하게 쓰시리라 믿습니다.

 

30절을 봅시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후에 에서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께 드리고 축복 받기를 원했습니다.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그러나 이삭은 이미 야곱에게 축복을 해 버렸기 때문에 에서에게 줄 복이 없었습니다. “아니, 내가 축복한 아들이 에서가 아니고 야곱이었단 말이냐. 그러나 이미 그를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33)” 이때 에서는 슬피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34)”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36)”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그리하소서(38)” 에서는 소리 높여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영적인 축복은 아버지인 이삭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복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야곱이 자신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다고 분통해 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자신이 이미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삭은 에서의 미래에 대해 말씀해 주었습니다. 39,40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 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에서는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 자가 되고 맙니다. 사막의 도적떼가 되어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먹고 사는 신세가 됩니다.

 

우리는 축복을 빼앗기고 소리 높여 우는 에서의 모습에서 마지막 날 구원을 받지 못해 애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13장 좁은 문 비유 에서 구원의 문이 닫힌 후에 어떤 사람들이 울부짖습니다. “주여 열어주소서.”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자들아 떠나가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13:27,28)” 신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산 자들은 마지막 날 밖에 던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복을 사모하며 영적인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깨닫게 됩니다. 요즘 세상은 갈수록 물질적이고, 감각적이고, 찰라적인 것에 최고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에서와 같이 당장 맛있고 재밌고 풍요로운 것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립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2:17절에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했습니다. 육신적인 삶을 살다가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사정해도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지금 빨리 회개하고, 지금 영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야합니다. 방학동안에 말씀 특공대를 하고, 로마서를 암송하고, 양들을 섬기고, 하나님 역사에 헌신하는 것이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장차 영광스러운 축복의 계승자로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18절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했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하늘 영광을 소망 하며 기쁨으로 제자의 길, 사명인의 길을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