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창세기 19강 (이다윗 목자님)

벧엘의 하나님

말씀 / 창세기 27:46-28:22

요절 / 28:18,19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27장에서 야곱은 영광스러운 축복의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이젠 늙은 아버지로부터 순조롭게 집과 재산을 승계 받고 축복도 계승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장자권을 빼앗긴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고자 이를 갈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버지 집에 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떠나 홀로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서 머나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막막하고 두려운 광야에서 야곱은 자신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뒤 야곱의 인생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희들도 예기치 못하게 외롭고 두려운 광야에 내 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들고 고달픈 인생의 광야가 바로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축복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오늘말씀을 통해서 야곱이 만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길 기도합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남으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2746절을 보십시오.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까”. 리브가는 며느리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사는 게 싫어졌습니다. 시어머니의 기쁨이 무엇일까요 부엌에서 며느리들과 같이 오손도손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며 손자들 이야기도 하고 시아버지 흉도 좀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며느리들은 도대체 부엌에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밤새 인터넷 쇼핑을 하고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잤습니다. 요기요에서 아점을 시켜 먹고는 진한 화장을 하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려 놀다가 들어왔습니다. 딸들이 이래도 속이 터지는데, 며느리가 이러니 사는 게 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까지 헷 사람들의 딸들과 결혼한다면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는 이 기회에 믿음의 결혼을 시키고자 이삭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이삭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281, 2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 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기력이 쇠하고 눈이 흐려 자식들도 분간하지 못하는 이삭이 야곱의 믿음의 결혼만큼은 너무나 분명하게 돕고 있습니다. 이삭도 우리 목자님들처럼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것은 하나님을 믿은 것과 믿음의 가정을 이룬 것에 120% 공감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할까요 3,4절을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한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믿음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야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8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처음으로 주신 축복의 말씀이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817절에서도 하나님은 홍수 심판 가운데 살아남은 노아 가족에게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삶이 하나님이 축복하신 삶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중국은 싸구려 국가, 거짓말 잘하는 국가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최 강대국인 미국이 긴장하며 견제하는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활동 인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모임에도 주목 받고 견제 받는 파트가 있습니다. 복의 근원 파트입니다. 이번 여름수양회 때 9명의 양들이 참석했습니다. 5개 파트 중에 가장 많은 양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대표소감 발표하는 대부분의 양들이 복의 근원 파트 양이었습니다. 양 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자녀도 가장 많습니다. 4가정 밖에 안 되는데 자녀는 12명이나 됩니다. 함 온유 목자님 가정을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된 가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 때 이 가정에서 섬기는 남요한목자, 김종주목동, 이상현목동, 박미숙, 최도운, 김경건, 김준표, 염윤주 자매와, 프레어 사모님의 언니와 조카까지 총 10명이 참석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한 가정입니다. 어떻게 이런 복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한 프레어 사모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함온유 목자님은 발음도 새고 말도 좀 어눌합니다. 가끔 센스도 좀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쾌활하고 말 잘하고 심정 있는 프레어 사모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룰 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의 근원파트의 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 학생회 목자들이 믿음의 가정을 사모하길 기도합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하는 방향 앞에 야곱은 어떠했습니까? 7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 아람으로 갔으며”. 부모님의 방향에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야곱은 주로 부엌에서 노는 숫기 없는 자입니다. 사기꾼 기질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비호감형입니다. 그런데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위대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방향에 순종하는 자세였습니다. 하나님은 만 가지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방향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사용하십니다. 이 순종을 통해서 장차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로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방향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10절에 보십시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야곱이 순종하여 브엘세바를 떠났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무려 1,000km나 됩니다. 광주에서 북한의 신의주까지의 거리입니다. 야곱은 형을 피해 급히 보따리를 싸서 길을 떠났습니다. 형이 쫓아 올까봐 쉬지 않고 정신없이 걸었습니다. 100km되는 3일 길을 단숨에 왔습니다. 그러자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습니다. 날은 저물어 갔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한 곳을 잡아 유숙하고자 했습니다. 반듯한 돌을 하나를 주어 벼개를 하고 하늘을 이불 삼아 누웠습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염소볶음탕 생각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기력이 쇠하여 누워 있을 아버지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형 에서 생각도 났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형 분장을 하고 아버지로부터 축복권을 쟁취하라 할 때 못한다고 할 것인데 괜히 한 것 아닌가 별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뒤척거리다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꿈속에 어떤 광경이 나타났습니까? 12, 13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늘 꼭대기까지 닿은 사닥다리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닥다리 꼭대기를 본즉 여호와 하나님이 서 계셨습니다. 바로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서서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를 찾아 헤매는 강도들과 들짐승들이 가득한 광야에 홀로 있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땅만 주시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14절도 한번 보십시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땅 뿐만아니라 자손도 땅의 티끌처럼 번성해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동서남북이 복을 받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엄청만 축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15절은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가는 곳마다 함께 가서 그를 지키고 이끌어 오겠다 말씀하십니다. 야곱에게 허락한 모든 영적인 축복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고 함께 이루시겠다 약속하십니다.

 

지금 야곱은 하룻밤만 들짐승들로부터 보호해 주어도 감지덕지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룻밤 정도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지켜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계승한 영적인 축복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까? 13b을 다시 보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야곱에게 나타나 약속하신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함께 하사 이들에게 주신 축복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할 때 갈대아 우르에서 자식 하나 없이 우상숭배하며 비참한 인생을 살던 그를 복의 근원이요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셨습니다. 100세가 되어 자신의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은 때에도 이삭을 잉태게 하였습니다. 흰머리를 휘날리며 380명의 민병대로 당시 최강대국 그돌라오멜 군을 물리치고 조카 롯을 구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이삭과 함께 하자 기근의 때에 척박한 약속에 땅에 거류한 이삭 곡식을 100배나 축복하여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당대 최고의 미인이요 내면성 있는 믿음의 여인 리브가가 1,000km떨어진 먼 이방에서 이삭의 얼굴도 보지 않고 달려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광야에 홀로 있는 야곱에게 나타나 조부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한 것처럼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이루기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도 마태복음 28: 20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비천 죄인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가끔 스포츠스타들이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운동장 한 가운데서 프로포즈 하는 이벤트를 하는 것을 봅니다. 서치라이트를 받으며 예비 배우자에게 다가가 내가 당신을 평생 책임질 반려자가 되겠소 하며 꽃다발을 바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캄캄한 밤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광야에서 야곱에게 내가 영원히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며 광야 이벤트를 하십니다. 왜 하필이면 이런 광야하시는 것일까요?

 

예배 전에 불렀던 광야를 지나며라는 복음성가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주님만 내 도움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광야는 어둡고 고독합니다. 기댈 곳도 없습니다. 이런 곳으로 내몰리면 낮아집니다. 겸손해집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은 나의 진정한 도움이 되시고 빛으로 만나 주십니다. 경기장처럼 밝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빛이 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분주하고 산만해서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광야에 홀로 있을 때, 고독하고 낮아 질 때 나의 진정한 도움이요 빛이 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광야로 내 모시고 그곳에 찾아가 인격적으로 만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광야 이벤트를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도 어둡고 누구도 기댈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여름수양회 소감을 들으면서 어떤 목자님은 어린 시절 갑작스런 부모님의 사고와 가정 파탄의 광야에 내 던져진 분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든 광야였겠습니까? 그런데 그 광야에서 빛이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힘든 광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광야 이벤트를 준비하십니다. 모세처럼 궁중교육 받은 사람에게는 광야교육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도 40세 때 광야로 이끌어 내시고 그 곳에서 인격적으로 다시 만나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41절에 보면 예수님도 광야로 나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 모신 것입니다. 우리도 힘든 취업과 전공의 광야로 내 몰리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 자녀문제의 광야에 내 몰릴 때가 있습니다. 캠퍼스 전도와 제자양성 역사도 힘든 광야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힘들고 외로운 광야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시기 위해서 가끔 광야 이벤트를 준비하십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어떻게 고백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전설 같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이 광야에서 만난 것입니다. 광야는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된 장소입니다

 

17절에 보십시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라 하고”. 19절에 보면 야곱은 이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말합니다. 거룩한 성소를 합니다. 아무리 황량한 광야일지라도 하나님을 만난 곳은 거룩하고 존귀한 벧엘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입니다. 영적인 고향입니다. 18절에서 보면 야곱은 일찍 일어나 베개 삼았던 돌을 가져다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형을 피해서 도망 나온 야곱, 외로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절망과 두려움에 떨던 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변화됩니다.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희망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금요 기도모임 때 황조이마리아 목동님이 코이카에서 선발하는 해외봉사단에 지원하고자 준비하고 있다고 소감 발표했습니다. 놀랍습니다. broken family인한 상처로 아파하던 그가 벧엘의 하나님을 만날 때 이처럼 섬기는 인생, 도전하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 인생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 주신 벧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같이 20-22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서 서원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가장 눈앞에 다급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또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도록 기도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기겠다는 서원합니다. 구체적으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임을 고백하는 결단입니다. 그돌라오엘 군으로부터 조카 롯을 구출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도 그를 축복하러 나온 멜기세덱 왕에게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야곱이 이처럼 주님만을 섬기며 십일조생활을 하고자 서원하며 결단했을 때 20년 후에 하나님의 그를 아버지 집으로 거부가 되어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주님께 헌신하는 자의 삶을 절대로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 하나님께 헌신하며 십일조를 드리는 삶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광야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야곱을 만나주신 벧엘의 하나님은 1991년에 만성 간염으로 교직 발령도 나가지 못하고 사망권세에 두려워 떨며 폐인처럼 살던 저를 찾아 오사 만나주셨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날 때 병들어 죽어가던 제가 영적으로 죽어가는 캠퍼스 양들을 살리는 영적의사요, 목자로 살고자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제게도 하나님이 주신 영적 비전을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십니다.

 

벧엘의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께 조금씩 멀어지려고 하면 또 광야 이벤트를 준비하셨습니다. 2011년 갑상선 암과 강직성 척추염으로 저를 광야로 내 모셨습니다. 그 곳에서 1991년에 만났던 벧엘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올 여름에도 광야 이벤트를 하나 준비해주셨습니다. 3에 올라와 10시까지 자율학습을 마치고, 교회에 와서 저와 히브리서 11장을 암송하고 합심 기도한 후 열심히 공부했던 아들 다윗이 갑자기 기말고사 후 방황을 하며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하였습니다. 기말고사 후 다음날 모의고사가 있는데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늦게 들어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탁 앞에 앉은 그에게 무슨 영화 보았느냐로 말을 꺼낸 뒤, 로마서 8장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으리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말씀으로 훈계했습니다. 그런데 9시쯤에 담임선생으로부터 다윗이가 시험 시작 전인데도 등교하지 않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날 새벽에 목자님들과 함께 용봉동 모든 PC방을 다 뒤졌습니다. 오후에는 경찰과 함께 북구 PC방을 뒤졌습니다. 찾을 수 없었습니다. 누나들과 페이스 북으로 연락되어 저녁때 만난다고 하자, 저녁 같이 먹고 들어오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부모를 피하였습니다. 간신히 누나들을 통해서 그의 고민을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만 통보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단절된 광야에 내몰린 기분이었습니다. 여름수양회 둘째 날 네 이름이 무엇이냐 팀 드라마를 보면서, 부모의 높은 기대 앞에 미쳐가는 광인의 모습이 내 아들의 모습 같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매주 소감을 쓰도록 하고, 3 올라갈 때는 히브리서 11장을 암송시키고, 날마다 합심기도 한 것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었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답하고 절망감이 몰려왔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자책감이 몰려 왔습니다. 제 심령은 여름 수양회 기간 내내 비처럼 눈물로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가정을 광야로 내 모시고 간절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벧엘의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예슬이가 캐나다 생활이 너무 외로워 형제에게도 마음을 빼앗기는 것 같아 한국으로 들어오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를 캐나다로 보내심으로 예슬이의 양이요, 영적 동역자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대학에서 7.9~18에 유럽 벤치마킹 갈 기회를 제게 주었습니다. 수양회를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는데 심히 부담이 되어 포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기간에 다윗을 훈계하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어려운 사태로 몰고 간 것 같은 생각이 들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을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이가 집을 나간 시간에 저는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미국 개척할 때, 막내 딸 사라가 고 3때 한 달간 집을 나간 것이 생각났습니다. 사무엘 선교사님은 딸만 돌아오면 미국 십대 대학생을 위해서 헌신(devote)하겠다 서원했습니다. 2년 전부터 하나님은 제게 전남대 모교 학생들에 대한 상한 심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전남대 학생들에 대한 심정을 갖도록 하심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이 힘든 시기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최필훈, 김휘 형제를 여름수양회에 참석케 하셨습니다. 최필훈 형제는 수양회 이후 꾸준히 일대일, 예배, 로마서 특공대까지 참석하며 은혜 받고 있습니다. 이 아들이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길 기도합니다. 야곱을 찾아가신 하나님께서 캐나다 광야로 떠나는 Jr 다윗에게 친히 찾아가서 만나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의 벧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저와 함께 하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이 아들의 하나님이 되사, 이 아들에게 두신 영적 축복을 다 이루기까지 함께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형을 피해 광야로 내몰린 야곱을 광야에서 인격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야곱에게 허락한 모든 축복을 다 이루기까지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외롭고 힘든 광야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축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벧엘이 되었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야곱의 인생은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신하게 됩니다. 두렵고 절망가운데 있던 그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게 됩니다. 광야서 야곱이 만난 벧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의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도 순간순간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광야에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야겠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뒤 하나님께 예배하는 야곱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생, 하나님께 서원하며 이루어 드리는 인생을 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