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창세기 20(김요나단 목자님)

 

야곱을 연단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29,30

요절 / 창세기 30: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 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28장에서 야곱은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도망자인 현실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새로운 삶을 소망하며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야곱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라반이라는 강력한 적수를 만나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고생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했지만 뜻하지 않게 아내를 세 명이나 더 얻게 되었습니다. 네 명의 아내들 사이에서 눈치보며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열 한 아들과 딸 한 명을 얻는 자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름만 아버지일 뿐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많은 가축 떼를 얻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양 한 마리 없는 가난한 목자생활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와 함께 해주셔서 축복해 주셨지만 훈련도 겸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빚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고난과 훈련도 함께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하나님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야곱을 라반을 통해 훈련하셨습니다(29:1-30). 야곱은 한 우물 곁에서 만난 목자들에게 라반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목자들은 마침 우물을 향해 오고 있는 여인이 라반의 딸 라헬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라반의 딸 라헬이라는 말을 듣자 고향을 떠날 때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는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28:2) 야곱은 반가운 마음에 통성명도 하기 전에 라헬이 몰고 온 양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소리내어 엉엉 울며 말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나는 당신의 아버지의 조카이자 리브가의 아들입니다.” 라헬은 이 소식을 아버지 라반에게 알렸습니다. 라반은 조카 야곱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는 야곱을 끌어안고 입 맞추며 환영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된 일, 신붓감을 구하러 온 일, 자신을 사위로 받아달라는 요청 등 자기의 모든 일을 다 말해 주었습니다. 라반은 그런 야곱을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14)하며 환대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한 달 동안 야곱의 모습을 지켜본 라반은 야곱이 머리도 좋고 양도 잘 치고 성실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조카이지만 어찌 공으로 일할 수 있겠냐며 품삯을 정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돈이 아니라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청했습니다. 16,17절에 보면 라반에게 레아와 라헬 두 딸이 있었습니다. 레아는 시력이 약했습니다. 시력이 약했다는 것은 눈에 뭔가 힘이 없고 얼굴에도 생기가 없어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면 라헬은 곱고 아리따워서 그저 사랑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야곱은 이미 우물 곁에서 만난 라헬의 아름다운 모습에 첫눈에 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기회는 이때다 하고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또한 라헬을 위해 7년을 봉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야곱에게 라헬은 그만큼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라헬을 사랑한 까닭에 그 7년을 며칠 같이 여겼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 기어이 성취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도 형과 싸웠고, 태어날 때도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아내를 얻기 위해 7년이라는 긴 시간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벧엘에서 자신이 불안하고 아쉬울 때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지만, 외삼촌 라반의 집에 순적하게 도착하고, 신붓감도 찾게 되자 좋아하고 끝났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어떻게 훈련하셨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7년이 지나고 야곱과 라헬의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라반은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 성대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게 된 야곱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25a)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천하의 야곱이 결혼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야곱은 당장 라반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기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25b)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믿었던 외삼촌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라반은 우리 지방에서는 언니보다 아우가 먼저 결혼하는 법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한술 더 떠서 결혼잔치 7일을 채우면 라헬과 결혼시켜 줄 것이니 라헬을 위해서 다시 7년을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반응이 예상외였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대로 하여야곱은 반발하지 않고 라반의 말대로 행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반의 모습을 보면서 야곱은 자신의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형을 두 번이나 속여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당하고 배신당할 때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살기가 싫어질 정도입니다. 야곱은 형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형 에서는 분노하여 아버지 앞에서 대성통곡하며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지금 야곱은 라반에게 속고 나서 분노로 온 몸이 떨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자기를 죽이려 한 형 에서의 모습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는 형의 분노와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과거 자신이 행한대로 갚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반은 결혼식 날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라헬을 다른 데로 보내고, 레아를 라헬처럼 꾸며 야곱과 결혼하게 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정확하신 분입니다. 적당히 눈감고 넘어가는 분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6:7절은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야곱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훈련으로 영접했습니다.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을 계승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잔머리 굴리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빼앗는 죄악된 모습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라반을 통해 야곱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라반은 결혼식날 신부만 바꿔치기 한 것이 아니라 약속한 품삯도 수없이 속이고 착취할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라반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철저하게 도우셨습니다. 야곱은 라반이 너무나 밉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야곱이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는 최적의 훈련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사는 날 동안에 라반과 같은 훈련관들을 준비해 놓으시고 훈련하십니다. 그들을 통해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나의 죄 문제, 약점을 드러내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 대상이 군대나 직장 상사 혹은 믿음의 동역자들일 수도 있고 양들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야곱에게 라반이 피할 수 없는 훈련관이듯 우리도 이들을 결코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깨질 것은 깨지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제안을 두말없이 받아들이고 7년을 더 라헬을 위해 묵묵히 봉사한 것처럼, 우리를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영접하고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때, 하나님이 쓰실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야곱을 네 명의 아내들을 통해 훈련하셨습니다(29:31-30:24). 야곱은 레아와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야곱의 사랑은 항상 라헬에게로만 향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라헬에게만 들꽃 백송이를 꺾어다 주었습니다. 요즘 같은 삼복더위에 라헬에게만 삼계탕을 사주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항상 라헬과 함께 하고 카톡 프로필도 라헬과 찍은 사진만 올렸습니다. 첫 아이도 사랑하는 라헬을 통해 낳아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야곱의 뜻과 달랐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하나님은 레아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래서 레아가 아들을 넷이나 낳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남편의 사랑을 받고 사는 라헬은 행복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30:1절을 보십시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라헬은 언니에 대한 시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을 볼 때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떼를 썼습니다. 야곱도 라헬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데 나더러 어쩌라구!” 날마다 부부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사랑은 사랑이고 현실은 현실이었습니다. 야곱은 내가 이런 여자 때문에 14년을 봉사했다니...제정신이 아니었어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라헬은 자기가 자녀를 낳지 못하자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결국 여종 빌하를 통해 단과 납달리,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레아는 이미 아들을 넷이나 두었지만 라헬이 여종 빌하를 통해 아들 둘을 낳는 것을 보고 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아는 자기의 출산이 멈춘 것을 보고 자신의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레아도 여종 실바를 통해 갓과 아셀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레아와 라헬의 자식 낳기 경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어느 날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를 구해왔습니다. 합환채는 임신촉진제로 쓰이는 약초였습니다. 레아나 라헬 모두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합환채가 필요했습니다. 15절을 보면 라헬이 언니에게 합환채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니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하며 하룻밤 남편을 언니에게 양보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레아는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자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야곱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 내가 팔렸구나.’ 야곱은 아내들 사이에서 사고 팔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사고 팔던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내들에게 사고 팔리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라헬은 합환채까지 먹었지만 여전히 아이가 없었습니다. 반면 레아는 잇사갈과 스불론 두 아들과 딸 디나까지 낳았습니다. 라헬의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여종을 남편에게 아내로 주고, 합환채도 빼앗다시피 해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도 자식 낳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언니가 아들을 쑥쑥 낳는 것을 보면서 욕심과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라헬은 언니와 경쟁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라헬을 생각하시고 아들 요셉을 낳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라헬은 요셉을 낳고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하며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야곱을 놓고 내 남편이라 주장하며 끝없이 경쟁하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은 그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참 남편이 되어 그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위로해주시고 참 만족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자녀도 그들의 능력으로 낳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낳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셔서 만족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라헬은 나중에 가나안으로 가족들이 돌아갈 때 벧엘을 지나며 막내 베냐민을 낳습니다. 라헬은 길가에서 출산 중에 죽어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슬픔의 아들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 오른 손의 아들,’ ‘행운을 가져오는 이란 뜻으로 이름 지으며 사랑하는 라헬을 위로했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 받는 여인이었고, 출애굽의 기초를 놓은 요셉의 어머니가 되는 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슬픔과 동생과의 비교의식, 시기심으로 고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찬송하는 성숙한 믿음의 여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레아의 넷째 아들 유다의 혈통 중에서 메시야가 탄생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를 잇는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야곱도 아내들을 통해 훈련을 받고 내면성있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보통 자녀들 이름은 아버지가 짓는데, 야곱 가정은 아내들이 지었습니다. 야곱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속이고 빼앗고,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을 봉사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야곱이 아내들 앞에서는 온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말없이 자식 낳게 하는 도구가 된 듯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통해 야곱에게 주신 땅과 자손에 대한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열두 아들과 딸 한 명을 낳게 하셨고, 이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부모님 집에서 늘 섬김을 받고 곱게 자랐는데, 처갓집에서 들사람이 되게 하여 죽도록 일하며 겸손과 섬김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여러 부인들과 자녀들과 함께 살며 열국의 아버지로 내면성을 넓히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로마서 8:28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의 3대 조상으로 부름받은 야곱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돌아보면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진행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한번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은 아무리 부족하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약속하신대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온갖 문제 가운데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물질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30:25-43). 25절을 보십시오.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에 야곱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는 몇 날 머무르다 돌아갈 줄 알았는데, 어느덧 14년이나 지나버렸습니다. 이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많이 낳았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어 믿음의 조상으로서 약속의 땅에 가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밧단아람에 온 것은 에서를 잠시 피하는 것과 믿음의 결혼을 위해서였기 때문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그러나 라반은 일 잘하고 자신을 큰 부자가 되게 해준 야곱을 놓아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라반은 그동안 야곱에게 제대로 품삯도 주지 않았습니다. 두 딸을 아내로 준 것을 빌미로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야곱은 이용만 당한 세월이 생각나 손해심정과 피해의식으로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반은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뜻이 확고한 것을 보고 야곱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자 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엉뚱한 요구를 했습니다. 앞으로 양떼들이 새끼를 낳을 때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나면 자기에게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아주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대부분이 흰색인 양들이 아롱지거나 점 있고 검은 새끼를 낳을 확률은 아주 낮았기 때문입니다. 확률로 볼 때 라반의 몫이 훨씬 더 많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라반은 자신이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흔쾌히 야곱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 또 술수를 썼습니다. 자신의 양들 중에 아롱지고 점 있고 검은 것을 야곱과 사흘 길을 떨어진 곳에 두게 했습니다. 야곱이 요구한 점박이 양들이 아예 태어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해 버린 것입니다. 라반은 정말 탐심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몫으로 조금이라도 주는 것을 아까워했습니다. 야곱을 평생 부려먹고 등골까지 빼먹으려는 잔인한 삼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와주셨습니다. 야곱은 튼튼한 양들이 새끼 밸 때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양들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면 양들은 튼튼한 아롱지고 점 있고 검은 양들을 낳았습니다. 반대로 비실비실한 양들이 다가오면 가만히 놔뒀습니다. 결과적으로 튼튼하고 실한 새끼양은 모두 점박이로서 야곱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비실비실하고 힘없는 새끼 양들은 모두 라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야곱은 거부가 되었습니다(43).

 

야곱이 많은 가축들을 소유하게 된 것은 그의 재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31:11,12절에 보면 야곱이 라반과 계약을 맺기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미리 정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손을 들어주시고 그에게 풍성한 물질과 재산을 주신 것입니다. 라반이 아무리 야곱을 이용해 먹으려고 끝까지 머리를 써도 하나님께서 야곱 편이었기 때문에 안 되었습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훨씬 불리한 계약조건을 내세웠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 때에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야곱은 물질의 주관자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어리숙하게 보고 자기들 마음대로 이용해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 뜻대로 되도록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사람들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8,9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우리의 생사화복의 주관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물질의 축복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처럼 저도 훈련하셔서 하나님이 쓰실 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고 계십니다. 저는 3남매 중의 장남으로서 부모님의 섬김과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 한 번도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들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말없이 자기 할 일 잘하는 저를 사람들은 성실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라반같은 중대장 밑에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매일 욕을 먹었습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낮아졌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올 때 가끔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잘 대접받고 좋은 말만 들으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던 저를, 군대 훈련을 통해 내면이 강하고, 섬기는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풀타임 목자 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훈련을 통해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특히 정욕의 죄가 드러났을 때,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끝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십자가 복음을 영접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의 사랑으로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제 안에 부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붙들 때, 라헬 같은 사람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레아 같은 사람도 영접하고 사랑하며 동역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양성 문제를 생각하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라헬처럼 슬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매년 양들을 섬기지만 연말이 되면 남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목자생활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캠퍼스에 나가면 또 다시 양들을 만나 섬기게 하셨습니다. 올 해도 여러 양들을 보내 주시고, 지난 여름수양회에도 네 명의 양들이 참석하게 해 주셨습니다. 수양회를 통해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실제적인 기도제목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들을 보내 주신 것에 감사하여 수양회 후에도 파트 목자님들과 새벽 합심기도를 계속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40대가 되어서도 2-30대 시절과 비교해서 발전이 없는 것 같고 동년배 목자님들에 비해 뒤쳐지는 것 같은 제 모습에 위기의식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안일과 무절제함으로 성장과 성숙을 위한 투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하고 짜증이 나고 무기력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성장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기도에 힘써야겠습니다. 새벽에만 잠깐 기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틈날 때마나 기도실에 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겠습니다. 말씀도 읽고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여 인격적으로 말씀을 받고 11하고, CBF, 금요기도회, 새벽메시지를 감당함으로 말씀의 종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야곱이 자기 것만 추구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 때 다른 사람을 속여 빼앗고 상처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삼촌 라반과 아내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의 문제를 정확히 드러내시고 훈련하셨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 항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심 같이 우리를 축복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죄의 종 되었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복의 근원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고난과 훈련을 묵묵히 감당함으로 복의 근원이요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