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31-33

요절: 창세기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오늘 말씀은 야곱이 20년 동안의 밧단아람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결혼하여 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많은 재물도 얻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야곱의 외적인 성공이 아닙니다. 그의 내면문제를 도와서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의 죄문제와 씨름해 주시고 그의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의 속사람을 변화시켜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차원 높은 사랑을 영접하길 기도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라반과 화평의 언약을 맺게 하셨습니다. 31:2절에 보면,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품삯을 정하는 과정에서 야곱이 큰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라반이 심사가 불편했습니다. 야곱은 직감적으로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3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야곱은 확신을 가지고 결심을 했습니다.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아내들도 적극적으로 야곱 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고, 이방인처럼 여겼잖아요” “지난 20년 동안 아버지가 해 준 게 뭐가 있어. 뼈 빠지게 고생만 시키고. 떠납시다. 우리 남편 파이팅평소에 사이가 안 좋던 레아와 라헬도 이때만큼은 동역이 잘 되었습니다. 특히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16).

 

아내들의 응원에 힘이 난 야곱은 가족들을 낙타에 태우고, 모든 가축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멀리 간 틈을 이용해서 도망갔습니다. 이때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까지 훔쳐서 달아났습니다. 삼 일 뒤 야곱이 도망간 것을 안 라반은 칠 일 길을 달려 야곱을 추격해 왔습니다. 이대로 라반이 야곱을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장인과 사위 사이에 칼부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24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하셨더라하나님의 급히 간섭하셔서 라반의 감정을 풀어 주셨습니다. 이에 라반은 갑자기 자세가 돌변하여 야곱에게 부드럽게 말합니다. “네가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축복해서 보낼려고 했는데. 손자들 용돈도 주고--” 전혀 라반답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라반같은 깍쟁이도 이렇게 변화됩니다. 라반은 단지 자기의 수호신 드라빔을 도둑질해 간 것만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라반이 각 사람의 장막에 들어가서 드라빔을 찾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헬이 낙타 안장 아래 넣고 깔고 앉았기 때문입니다. 라헬은 이렇게 하고는 생리중이라 일어날 수 없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 라헬도 아버지 라반만큼이나 머리가 좋았습니다.

 

이제 전세가 역전 되었습니다. 도망자 신세였던 야곱이 이제는 화를 내며 라반을 책망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고생하고 헌신했는가 눈물을 흘리며 간증 했습니다. 야곱은 한번도 외삼촌의 재물을 빼돌린 적이 없습니다. 도둑맞은 것은 자기 품삯에서 다 변상했습니다.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릎 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했습니다. 외삼촌은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며 야곱을 속였지만, 하나님께서 야곱편이 되셔서 외삼촌을 책망해 주셨습니다. 이제 헤어지는 마당에 야곱은 할 말을 다 했습니다. 지난날의 설움을 다 쏟아 놓았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야곱의 아내들은 속으로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우리 남편 잘 한다” “아버지가 너무 했어야곱은 그동안 라반에게 갑질을 당하며 서러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잘 참고 인내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42b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젯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하나님께서 지독한 라반의 손아귀에서 야곱을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라반 같은 자 밑에서 부당하게 착취당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라반같은 자가 못살게 굴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이 말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갈라디아서 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선악 간에 판단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묵묵히 믿음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할 말을 잃은 라반은 이제 야곱과 언약을 맺고자 합니다. 44,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야곱을 치고자 했던 라반이 오히려 화해의 언약을 제안합니다. 언약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자신의 딸들을 박대하지 말고 다른 아내를 얻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자신에게 넘어와서 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기탱천했던 라반이 오히려 낮아져서 아쉬운 부탁을 합니다. 이는 야곱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53a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를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라반과 야곱 사이를 부드럽게 하시고, 서로 언약을 맺게 하셨습니다. 이로서 야곱은 20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밧단아람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 섭리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야곱의 목자가 되셔서 그를 섬세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20년전 아버지 집을 떠나오면서 벧엘에서 단을 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28: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야곱은 잊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 약속을 기억하시고 신실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나의 허물과 실수로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복음성가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 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둘째로 하나님은 야곱의 내면문제와 씨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믿음의 3대 조상이라고 무조건 편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도와 주셨습니다. 32: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야곱은 고향땅이 가까울수록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형 에서 때문입니다. 20년전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에서는 화가 나서 야곱을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 에서가 무서워서 밧단아람으로 도망 왔습니다. 그뒤로도 문득문득 에서만 생각하면 두려웠습니다. 꿈에 에서가 칼을 들고 나타나서 추격하는 바람에 야곱은 비명을 지르며 깨곤 했습니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드디어 그 형 에서를 만나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하나님의 군대를 급파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그 곳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습니다. ‘마하나임two camps, ‘두 진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두 진영이나 되는 군대를 보내주셨지만 야곱은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가축을 뇌물로 주고자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32:7절에 보면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고 했습니다. “In the great fear and distress” 엄청난 두려움과 고뇌에 빠졌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밤낮없이 수고해서 얻은 모든 재물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 잃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특유의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뇌물으로 에서의 마음을 달래고자 합니다. 그것도 뇌물을 몇 떼로 나누어서 시간을 벌고자 했습니다. 뇌물공세에도 에서가 화를 풀지 않으면 도망갈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9-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이 기도는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절박한 기도입니다.

 

그는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준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도 감당할 자격이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빈손으로 지팡이만 가지고 집을 나왔는데 하나님이 두 떼를 이루신 은혜에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지금 형 에서가 자신과 가족을 치지 않을까 심히 두렵다고 기도했습니다. 제발 형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기도하고 나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 염소, , 낙타를 총 550마리나 준비합니다. 짐승들 뒤에 가족들을 배치했습니다. 혹시라도 에서가 귀여운 조카들을 보면 화를 풀지 않을까 기대한 것입니다. 가족들을 배치할 때도 맨 앞에 여종 아내들, 그리고 그 아들들, 그 다음 라인에는 레아와 그 아들들, 맨 나중에 사랑하는 라헬과 아들 요셉을 배치했습니다. 맨앞에 서게 된 여종 아내들과 자녀들은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아버지가 우리를 인간방패로 이용하는구나말은 하지 않지만 너무 서운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자신은 맨 뒤에 남았습니다. 야곱은 정말 야곱입니다. 째째하고 야비한 인간입니다.

 

이렇게 많은 예물과 가족들을 다 보내고 야곱은 얍복강 이쪽에 홀로 남았습니다. 이런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을 것입니다. “내가 그때 왜 형을 속였던고, 형과 사이좋게 지낼 걸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번에는 정말 정직하게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씨름을 걸었습니다. 야곱은 그가 에서가 보낸 자객이 아닌가 싶어 필사적으로 저항 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여호와의 사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막다른 골목에 넣어놓고 그를 압박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안다리 걸기, 배지기, 뒤집기, 잡치기 등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며 야곱을 이기고자 했지만, 야곱은 결코 지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씨름은 계속되었습니다. 얼마나 야곱의 자아가 강한가 모릅니다. 하다하다 안 되자 여호와의 사자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 버렸습니다. 그제야 야곱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허벅지 관절이 깨졌으니 야곱은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여차하면 도망가고자 했던 계획이 완전 무산되었습니다. 야곱은 절대절망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 많은 재산도, 잘 돌아가는 잔머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야곱은 두 손 두 발 들고 하나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26b,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기사 살려 주세요야곱은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좀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도해라고 말해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최후수단으로 그 사람의 환도뼈를 치십니다. 그가 의지하고 있는 마지막 수단, 최후의 보루. 그것을 무너뜨리십니다. 그것이 재물일수도 있고, 사회적인 지위일수도 있고, 많은 지식, 자녀, 건강일 수도 있습니다.

 

이어령씨가 한때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임을 자랑했습니다. 너무나 교만하여 눈에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딸의 건강문제로 그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그때 그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또 지금은 자신이 암에 걸려서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릅니다. 자기가 피할 길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걸 믿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을 하고 잔꾀를 부립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41: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하셨습니다. 구번역에서는 지렁이같은 너 야곱아했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거짓되고 사악한,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버리지요, 지렁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야곱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나아오니 하나님께서 4000명의 군대를 파견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야곱은 더 교만해질 것입니다. 자기가 잘나서 에서에게 승리했다고 착각하고 기고만장할 것입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 자신입니다. 인간적인 욕심과 거짓과 자기 의로 똘똘 뭉친 욕심쟁이 야곱,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이기적인 야곱. 지렁이같고 버러지같은 야곱, 그의 추악한 내면이 변화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가나안에 들어가서 12아들을, 이스라엘 12지파의 영적인 조상들로 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싸우신 것이 아니라 야곱와 싸워 주셨습니다. 야곱의 내면에 죄문제, 고래심줄보다 강한 인간적인 자아와 씨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환도뼈를 치심으로 자아가 완전히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이때에야 비로소 야곱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자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두 손 들고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 것입니다. “저는 진토에 불과합니다. 나는 버러지요, 지렁이같은 자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정확하십니까? 우리의 문제를 너무나 잘 아시고 정확하게 훈련하십니다. 그러므로 더 무서운 훈련 받지 않으려면 빨리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합니다.

 

저는 별로 자랑할 것이 없지만 그래도 지난 30년동안 목자생활하면서 차근차근 모아온 말씀공부와 메시지 자료들이 그래도 내가 애지중지 아끼는 나의 보물이었습니다. 이 자료들을 노우트북에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검색하고 더 좋은 자료들을 업그레이드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럽 수양회 후 그리스 투어를 마치는 날 노우트 북을 도난당했습니다. 호텔직원이 짐을 자기들에게 맡기면 가장 안전하다고 해서 그 방에 두었는데 돌아와 보니 가방이 열려있고 제 노우트북과 몇 목자님들의 tablet pc등이 도난당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자료들을 데스크탑 컴퓨터에 저장해 두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큰 일 날뻔 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서 내가 평생에 쌓은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날라 갈 수 있겠구나.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는데 경찰이 독수리 타법으로 기록하는 바람에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먼저 공항에 도착한 분들은 다 포기하고 빨리 오라고 계속 재촉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항을 향해서 가는데 선교사님은 시속 160킬로에서 170킬로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차를 처음 타 봤습니다. 카 레이스하는 것 같았습니다. 손잡이를 꽉 잡고 제발 사고 안 나게 해 주세요, 안전하게 집에만 가게 해 주세요기도했습니다. 노우트북도, 비행기 일정도, 내 생명까지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을 구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시간 안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야곱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27,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물어 보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는 야곱의 실존을 물으시는 질문입니다. “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냐?” “너의 죄 문제가 무엇이냐?” 야곱은 대답했습니다.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이는 저는 속이는 자입니다. 저는 사깃꾼입니다이런 뜻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거짓되고 이기적인자인가 자기 발견을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의 이름을 새롭게 바꾸어 주셨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고자 씨름하는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본질적인 죄문제, 내면문제를 도와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바꿔 주심으로서 그의 존재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인간적인 욕심이 강한 자에서 영적인 소원이 충만한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자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자로 거듭나게 해 주셨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야곱하면 세상적인 사람, 욕심장이. 이런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하면 영적인 사람, 마음이 넓고 내면성 있는 목자. 이런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내면의 변화, 본질적인 거듭남. 이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죄문제와 씨름해 주시고 이런 영적인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29절에서 야곱은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소서이는 야곱이 비로소 하나님 자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자기 일, 자기 성공에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자체를 구하는 순수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30절에 보면,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지었습니다.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자가 되었습니다. He saw God face to face.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그는 환도뼈가 부서져서 다리는 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밝은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망했지만 영적으로는 거듭났기 때문에 마음에 참 기쁨이 임한 것입니다. 아직 에서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에서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야곱의 마음에는 모든 근심 걱정 염려가 사라졌습니다.

 

33:3절에 보면 야곱이 맨앞으로 나와 에서에게 몸을 일곱 번 굽히며 절을 합니다. 이전에 맨 뒤에 숨었던 야곱이 이제 맨앞에 나와 적극적으로 에서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에서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에서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웠던 에서가 친근한 형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마치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것처럼 에서와 야곱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포옹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때 지난 20년 동안 응어리진 미움의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10절에서 야곱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자, 모든 사람이 다 사랑스러웠습니다. 내가 변하면 다른 사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야곱의 극복대상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 주십니다. 나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나의 존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달라집니다. 신기하게 관계성이 회복되고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상처와 아픔은 물질이나 말로 치유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때 모든 응어리진 것이 풀리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화해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을 여러모로 도와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얍복강 씨름을 통해 야곱의 내면문제를 발견하게 하시고, 그의 존재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이로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여러 사건을 통해 나의 내면문제를 발견하게 하시고 나의 존재가 변화되도록 씨름해 주십니다. 인간적인 요소를 벗고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이 주님의 차원 높은 사랑을 감사 찬송드립니다. 우리가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인간적인 것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단독자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고, 주님과 교제함으로 우리 내면이 변화되고 성숙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영적인 자들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