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 창세기 34:1-35:15

요절: 창세기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은 20년 동안의 밧단아람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서와의 관계 때문에 심히 두려워했지만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주장해 주셔서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야곱의 환도뼈를 치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시는 존재의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환도뼈가 깨지고, 이름까지 바꿨지만 야곱의 내면은 아직도 잘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세겜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야곱과 그의 가정 전체를 새롭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내면을 정결케 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의 벧엘로 올라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 세겜에서 생긴 일(34)

 

1,2절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치욕을 당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이런 수치를 당했으니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상대는 세겜 땅의 추장이고, 자신은 이주민이니 함부로 대항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돌아와서 이 사실을 알고 심히 분노했습니다. “이 놈들이 우리를 뭘로 보고, 본때를 보여 줍시다당장에라도 싸울 태세였습니다. 이들이 더 화가 난 것은 이런 치욕을 당하고도 아버지가 가만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나는 레아가 낳은 딸인데 만약에 라헬의 딸이었으면 가만 계셨을까? 생각하니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에 치가 떨렸습니다.

 

한편 세겜은 디나를 사랑해서 아내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하몰도 디나만 며느리로 보내주면 어떤 혼수나 예물도 다 준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달콤한 제안이지만 그 속에는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세겜족속과 결혼하면 그들의 우상문화도 들어오고, 신앙의 순수성도 사라지고 혼합주의로 흐르기 쉽습니다. 야곱 가문이 세겜화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을 치기 위해서 속임수를 썼습니다. 디나를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으면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들이 할례받고 고통할 때 세겜사람들을 공격하고자하는 속셈이었습니다. 속내를 모르는 하몰과 세겜은 그 지역 모든 남자로 하여금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 사돈관계를 맺으면 야곱 가문이 자기들과 한 민족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야곱 집안의 모든 소유가 자기들에게 흡수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언약의 징표입니다. 그 신성한 할례를 가지고 서로 치열한 머리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큰 사고가 터지고 맙니다.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침입을 해서 성읍의 모든 남자를 죽입니다. 하몰과 추장인 세겜까지 죽였습니다. 성읍에 있는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왔습니다. 보복치고는 너무 과도한 처사였습니다. 문제가 커져 버렸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화가 나서 공격해 오면 엄청난 전쟁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당황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합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야곱은 시므온과 레위가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큰 화를 불러 올 것이라고 야단쳤습니다. 그러자 시므온과 레위가 화를 내며 아버지께 대들었습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우리가 만만한 봉입니까?” 그들의 말 속에는 세겜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도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아버지가 라헬과 라헬의 아들만 편애했기 때문에 불만이 표출된 것입니다. 이에 야곱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디나 사건은 야곱의 가정에 불어 닥친 큰 광풍이요, 가슴 아픈 치욕사건입니다. 힘없는 이주민이 당하는 설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건을 통해 야곱 가정에 내재된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야곱이 평소에 자녀들을 공평하게 사랑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돌보며, 가정 예배를 잘 드렸다면 이런 결과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 서원했던 대로 벧엘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겜에 머물러 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세겜은 팔레스틴 지역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땅이 넓고 비옥해 살기 가장 좋은 땅이었습니다. 열왕기상에 보면,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세겜으로 정합니다. 야곱은 벧엘을 향해 가다가 세겜땅이 좋아 보이니 슬그머니 거기 머물러 버린 것입니다. 33:19절에 보면 야곱이 세겜땅에서 백 크시타, 즉 은 100개를 주고 밭을 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장막생활을 했는데 야곱은 빨리 좋은 땅에서 정착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밧단아람에서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세겜에 자리를 잡고 노년을 편하게 지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에서 문제도 해결되었겠다, 재산도 꽤 모았겠다, 세겜에서 적당히 즐기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겜에서 예기치 않게 디나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야곱의 순수치 못한 내면을 드러내셨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더 이상 세겜에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머리가 아팠습니다. “이제 좀 편하게 살려고 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꼬이는가?” “왜 내 인생엔 바람 잘 날이 없는가?” 야곱이 이처럼 답답해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 오셨습니다.

 

. 다시 벧엘에서 만나주신 하나님(35)

 

35: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하나님은 야곱에게 세겜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세겜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안락할지 모르지만 영적으로 죄악된 문화가 넘쳐나는 세겜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벧엘은 세겜보다 훨씬 시골스런 곳입니다. 그러나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벧엘은 야곱이 순수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벧엘은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다 돌베개를 배고 잘 때 하나님이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 주신 곳입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에 계시는구나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했습니다. 그곳은 허허벌판이고, 야곱은 홀몸이었습니다. 그는 빈손이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언제 형이 뒤쫓아 올지, 언제 산적떼를 만나 변을 당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에 든든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에 그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닥다리가 하늘과 땅을 닿았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환상을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장차 나도 저 사닥다리 같은 인생을 살리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제사장 같은 삶을 살리라. 험한 세상에 다리라 되리라순수하고 가슴 벅찬 영적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이 벧엘의 체험이 하나님과의 첫사랑의 감격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첫 만남은 그에게 너무나 감사했고 은혜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야곱은 어떻습니까? 3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인간적으로는 많이 부유해졌습니다. 아내도 4, 자식도 12, 가축들도 엄청 많았습니다. 짐승 키우는 법, 사람 다루는 법, 세상사는 처세술은 많이 배웠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나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야곱의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말씀이 없었습니다. 영적인 소원이나 비젼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얍복강에서 다급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와 씨름해 주시고 이스라엘의 비젼을 주셨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에서 문제가 해결되자 다 잊어 버렸습니다. 믿음의 3대 조상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세속문화에 동화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탄식하며 뒷짐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을 세겜 사건을 통해서 경종을 울리셨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게 하셨습니다.

 

야곱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지금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세겜 사람들 만나서 협상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전한 도피처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묵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신앙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이 시간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현재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떻습니까? 우리는 현재 상태에서 별 탈 없이 모든 일이 다 잘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는 일들이 자꾸 일어납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직장생활도 어렵고, 아이들도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켜서 속상하게 만듭니다. 가뜩이나 복음역사도 어려운데 동역자들 간에 이런저런 갈등도 일어납니다. 뭐가 문제인가?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 탓, 모임 탓, 대통령 탓을 하며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우리가 사람들과 갈등하며 싸우지 말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나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잘 압니다. 과거 죄 가운데서 방황할 때 나를 만나 주시고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치료해주신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가 너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죄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목자요, 선교사의 소망을 심어주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장막에서 7,8명이 칼잠을 자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부르짖어 기도하고, 밤새워 소감을 쓰고 말씀 투쟁했던 그 자리가 있습니다. 신발이 다 닳도록 양들을 쫓아다니며 섬기고, 없는 물질을 쪼개어 헌금을 드리던 그 목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세계선교의 주역이 되리라 외치며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외우며 말씀을 암송하던 그 자리가 있습니다. 광활한 중국대륙, 시베리아,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며 십자가 복음을 전할 생각에 가슴 부풀어 했던 청년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분명히 옛날보다 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서 삽니다. 좋은 차를 몰고 다니고 가끔씩 문화생활도 즐깁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팍팍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점점 지쳐 갑니다. 치열한 직장의 분위기, 자녀 양육의 어려움, 여기 저기 아파오는 신체들. 이로 인해 점점 영적인 소원은 사라지고 생활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별 감격이 없고, 쉬어도 또 쉬고 싶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벧엘로 올라가서 네가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 “새벽기도의 제단, 일용할 양식의 제단, 일대일 성경공부의 제단, 십일조 생활의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벧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영성을 회복시켜 주기 원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야곱은 어떤 반응합니까?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야곱은 하나님의 방향을 깊이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온 집안에 대대적인 신앙갱신운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첫째로,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말합니다. 라헬이 아버지 집에서 나올 때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나왔습니다. 드라빔은 당시 가족의 수호신으로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삶이 형통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을 믿고 섬겨야 했건만 물질과 쾌락을 위해서 은밀하게 이방 신상을 섬겼습니다. 이를 통해 물질주의, 쾌락주의 누룩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녹이 슬고 부패했습니다. 이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정결케 되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물질적인 세상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물질주의 우상이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새 아파트들을 보면서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좋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넘쳐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이것저것 서핑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고 머리가 텅비게 됩니다. 우리의 영성을 갉아 먹는 쓰레기 미디어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나의 물질주의, 육신주의, 쾌락주의 죄의 요소들을 회개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심령이 정결케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함온유, 최정한 주니어 평신도 목자님들이 로마서 6장을 완벽하게 암송해서 은혜가 되었습니다. 학생때도 투쟁해야 하지만 학사가 되고 중년이 될수록 더 힘써 영적인 투쟁을 감당해야 영이 녹슬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께 대한 절대성과 거룩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파워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말합니다. 옷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세겜에서 10년동안 살면서 세겜패션에 익숙해졌습니다. 밧단아람의 촌스런 패션을 벗어 버리고 세련된 세겜패션으로 갈아입으니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적인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3대 조상으로서 크나큰 영적 위기였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합니다. 로마서 13:12-14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만 영적인 신분만은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죄의 유혹이 쓰나미와 같이 몰려오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이런 죄악된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까? 과감하게 어둠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술 취함과 방탕, 음란, 호색, 다툼, 시기, 정욕, 육신의 일들을 과감하게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옷,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날카로운 칼, 마광한 화살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어두운 죄의 문화를 이길 뿐 아니라 빛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큰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19778월에 제1회 미국 연합 여름수양회가 피츠버그에서 있었습니다. 그때 시카고, 뉴욕, 워싱턴 등 미국 6개 지부에서 선교사님 189, 현지인 양 24명이 참석했습니다. 다들 평신도 선교사님들이기 때문에 영어도 부족하고 양들도 일대일의 기초가 약했습니다. 그러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말씀을 섬겨서 은혜가 충만한 수양회였습니다. 수양회가 끝나고 선교사님들27개의 자가용에 나눠타고 수양회를 나오는 모습을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 얼굴들이 모두 천사와 같이 밝았습니다. Campus 동산을 굽이쳐 나오는 27대의 차량은 공격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탱크 부대와 같이 웅장하게 보였습니다당시 우리 선교사님들은 모두 초년병 선교사들이었지만 영적인 전사와 같이 스피릿이 충만했습니다. 40년 전의 일입니다. 이분들이 용광로와 같은 미국문화와 싸우며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량이 거의 50대에 육박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말씀에 은혜 받고 영적으로 무장하고 한 주간을 출발해서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치루고 죄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승리하는 가을학기를 되기를 기도합니다.

 

3절을 봅시다. 야곱은 가족들 모두를 벧엘로 인도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야곱이 가장으로서 분명한 방향을 잡고 영적개혁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가족들도 모두 순종했습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가족들은 모두 야곱의 방향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숨기고 있던 이방 신상들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라헬이 친정에서 훔쳐 왔던 드라빔도, 그리고 귀고리들도 다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요소들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들고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야곱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숨은 죄를 회개한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이것들을 취하여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말로만 회개하는 척 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이를 행동에 옮겼습니다.

 

34장의 야곱의 가정과 35장의 야곱의 가정은 완전히 딴판입니다. 34장의 야곱의 가정은 콩가루 집안을 연상케 합니다. 자녀들끼리 갈등하고 아버지는 아들들을 야단치고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대들고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35장의 야곱이 가정은 너무나 영적이고 순종적입니다. 이는 가장인 야곱이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방향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가장과 지도자가 먼저 회개하고 방향 잡으면 자녀들과 양들도 이를 영접하고 따라옵니다.

 

야곱의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세겜 사람들이 보복을 할려고 했다가 하나님이 그들을 두렵게 하시자 감히 아무도 추격해 올 수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는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나의 문제를 영적으로 바라보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마침내 야곱의 가족들은 모두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30년만에 다시 벧엘에 올라와서 처음 가졌던 그 벧엘의 신앙을 회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다시 한번 이스라엘로 불러 주셨습니다.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서지며 훈련을 받을 때 내면이 좀 달라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 다시 한번 디나 사건을 통해서 그의 강한 자아를 깨시고 그의 내면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구체적인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1,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지금 야곱은 가족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면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앞으로 큰 나라를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을 야곱과 그 자손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열 두 아들을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로 세우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이 약속은 출애굽때에, 다윗왕국때에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14절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과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30년 만에 불러보는 이름이었습니다. 비로소 야곱이 신앙의 제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생각과 욕심이 강한 야곱을 디나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치시고 기필코 벧엘로 올라가도록 하셨습니다. 이로서 야곱과 그의 가족전체가 하나님앞에 바로 서도록 도와주시고 훈련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언약의 말씀을 주시고 그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어찌하든지 이 시대에 이스라엘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키우시기 위해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훈련하십니다. 그리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문제가 생길 때 자꾸 다른 곳으로 가서 사람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할려고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벧엘로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모든 우상적인 요소를 제하고 내면을 정결케 하고 그리스도로 옷 입고 영적인 투쟁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체험하고 주님의 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