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9

                                       지혜가 우리를 영화롭게 한다

말씀: 잠언 4:1-27

요절: 잠언 4:8,9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말씀은 지혜의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또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할 때 어떤 축복이 임하는가? 가르쳐 줍니다. 본문을 보면 말씀에 대해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아비의 훈계’ ‘명철’ ‘선한도리’ ‘내 말’ ‘내 명령’ ‘지혜’ ‘지혜로운 길’ ‘정직한 길등등. 말씀은 우리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전달됩니다.

 

먼저 말씀은 우리에게 바른 길을 가도록 훈계해 줍니다. 사람들은 훈계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인생 자기 맘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훈계를 잘 듣고 따라야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는 악한 길로 가도록 유혹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불의의 떡을 먹으면서도 얼마든지 부자 되는 길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조그만 편법을 쓰면 얼마든지 가만히 앉아서 부를 축적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길을 아는 것이 명철이고, 모르면 미련하다고 말합니다. 강포한 술을 마시며 혈기와 감정대로 행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멋있고 남자답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14절에 보면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길은 발도 들여 놓지 말고, 그 길은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악인의 가르침은 당장은 좋아 보여도 어두움과 같아서 반드시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잘 나가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자랑을 할지라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가르치신 정도를 가야만 합니다. 지혜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때에 생명을 얻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말씀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듣고,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4절에서는 마음에 두라” “지키라고 합니다. 6절에서는 사랑하라” 7절에서는 얻으라” 8절에서는 높이라” “품으라” 10절에서는 들으라” “받으라” 20절에서는 주의하라”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지혜의 말씀을 듣고, 받고, 지키고, 마음에 두고, 주의하고,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특히 8절에 보면 지혜를 높이라” “지혜를 품으라고 했습니다. 지혜를 높인다는 것은 지혜의 말씀에 최고 가치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품는다는 것은 말씀을 너무 사랑해서 품에 안고 간직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이나 장난감은 품에 안고 잡니다. 어른들은 소중한 서류를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숨겨둡니다. 지혜의 말씀을 그 정도로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말씀의 가치를 최고로 높은 곳에 두고, 항상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다보면 말씀의 가치를 놓아버리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 공부한 피스를 그냥 끄적거리다가 책상에 놓고 갑니다. 양식 책도 사놓고는 몇 주째 가져가지 않아서 식당에서 굴러다닙니다. 이전에 이런 공익광고가 있었습니다. “돈이라면 버리시겠습니까?” 그릇 안에 돈을 넣어둔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음식을 남기거나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광고였습니다. 만약에 말씀공부 피스나 양식책이 5만원, 10만원권 지폐라면 그렇게 쉽게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말씀은 5만원, 10만원 정도가 아니라 수백만원, 수천만원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가치를 높이고, 말씀을 더욱더 사랑하고 말씀을 마음에 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 폰을 가슴에 품고 삽니다. 틈만 나면 스마트 폰으로 재미있는 볼거리를 써핑합니다. 게임이나 가쉽거리에 빠져 있습니다. 이처럼 짠짠한 것을 높이고 마음에 품고 살면 그 인생도 짠짠하고 저급할 수 밖에 없습니다.

 

7절에 보면 지혜가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이 최고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에 성경은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누가 가르쳐 줍니까? 하나님의 말씀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고린도전서 2: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말씀은 순결하여 썩어질 세상 것을 피하게 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도와 줍니다(벧후1:4).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했습니다(벧후3:18). 우리가 지혜의 말씀에 최고 가치를 두고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23절을 봅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얼굴이나 외모는 신경을 많이 쓰고 열심히 가꿉니다. 그러나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방치합니다. 마음에 온갖 지저분한 것들을 쌓아 놓고도 치우지 않습니다. 그 더러운 것들이 결국은 밖으로 표출이 됩니다. 예례미야 17: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합니다. 이처럼 소중한 마음에 아무 것이나 쌓아두고 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악한 것, 음란한 것, 어두운 것, 거짓된 것, 사악한 것, 부정적인 것, 비판적인 것. 이런 것들을 수시로 비우고 마음을 정결케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 말씀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5:8).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더럽고 악한 것들을 제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이 성령이 임하는 거룩한 성전이 되리라 믿습니다(고전6:19).

 

8b절에 보면, 우리가 지혜를 높일 때 지혜가 또 우리를 높인다고 했습니다. 지혜를 마음에 품으면 지혜가 우리를 영화롭게 합니다. 지혜가 아름다운 관을 우리의 머리에 두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우리에게 씌워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2:3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엘리 제사장 가문 사람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말씀을 존중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멸시하고 망하게 하셨습니다. 반면에 사무엘은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10)” 하며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하나님을 존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고 다윗시대를 여는 존귀한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말씀을 높이고 존중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존귀히 여기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창세기 18장에서 롯의 사위들도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고 천사들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기 때문에 유황 심판 때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경외했습니다. 심지어는 독자 이삭까지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시고, 그의 씨가 대적의 성문을 정복하는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하셨습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시편 8:4,5절에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했습니다. 인간은 신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로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함으로서 추하고 더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노아시대때 육체가 되어 버렸고, 소돔 고모라 사람들은 음란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했으면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심판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죄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져 갑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여름수양회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름수양회를 통해서 말씀의 가치를 높이고, 말씀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품을수 있길 기도합니다. 특히 우리 학생회들이 뮤지컬을 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연기하며 노래하게 되어 너무나 감사가 됩니다. 날마다 모여서 뮤지컬 연습하는 것만 봐도 은혜가 됩니다. 또 우리가 매일 모여서 기도하고 양들을 심방해서 초청할 때 한 사람 한 사람 양들이 마음을 오픈하고 등록하고 있어서 감사가 됩니다.

 

김준경 목자님의 양 이주형 형제는 이번 주에 첫 일대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이교회에 나가게 되어서 매우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방학이 되어서 맨날 늦잠자고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는데 교회 나가서 성경공부하게 되니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의 가치를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확신있게 양들을 수양회에 초청해야 하겠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통해 그 인생이 존귀하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 귀한 잔치에 적극적으로 양들을 초청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생명이요, 축복인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