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22.() 부르짖는 기도회(김요나단)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말씀 / 사도행전 4:1-31

요절 / 사도행전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일어나 걷게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삼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목자님들이 열심히 전도할 때 캠퍼스마다 양들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오늘 동신대 점시모임에도 19학번 양들이 세 명 참석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양들이 주께로 나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통해 캠퍼스 영혼들이 주께 나와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여 제자로 서는 역사가 힘있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반드시 이를 시기하는 사탄의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말씀을 전하던 사도들이 핍박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종교계의 실세로서 오직 자신들만이 성경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것은 그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자신들은 예수님을 죽인 죄인이라고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더구나 사두개인들은 부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이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다음날까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4절에 보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게 된 남자의 수가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복음 전도자들의 잡아 가두고 핍박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않고 구원의 능력으로 역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9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가둘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가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장애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탄이 복음역사를 방해하고 핍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 같이 성령의 역사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습니다.

 

이튿날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심문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7) 대제사장들을 비롯해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둘러싸고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이전의 사도들이었다면 팍 쫄아서 말도 못하고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더 이상 과거의 나약한 겁쟁이들이 아니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베드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이 충만하여 종교지도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10)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죄를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편이 되셔서 예수님을 살리셨다고 증거했습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11,12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서 환영받지 못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처럼 영문 밖에 버렸습니다. 버린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율법과 전통을 내세우는 성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을 새 성전의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4,5절은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예수님이 산 돌 living stone 이십니다. 산 돌이신 예순님을 믿고 인생의 기초로 삼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12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유일한 이름으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일어나 걷게 했습니다. 겁쟁이 제자들을 성령충만한 사도들로 변화시켜 살기를 품고 심문하는 종교 지도자들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복음의 증거자들이 되게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무식한 어부들로만 보았는데 구약과 신약을 줄줄 꿰고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그들로 인해 병 나은 사람이 곁에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꼬투리를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도들을 위협하여 더 이상 복음을 전하게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9,20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그들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위축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리를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분명한 Fact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1절에서 말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사도들은 자신들이 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온 몸으로 체험한 예수님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너무나 값지고 귀한 복음, 좋은 복음을 사람들에게 나누자 3천 명, 5천 명이 예수님을 믿고 초대 교회를 이루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기 체험한 것은 말하고 싶어 합니다. 영화도 입소문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흥행여부가 갈립니다. 그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다 좋다고 하니 덩달아 보고 싶어집니다. 맛집, 여행지 등 관심도 없었는데 맛보고 가본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 나도 가서 먹어보고 싶고, 찾아가서 보고 싶어 집니다. 복음 역사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대한 감격이 있으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어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이 은혜와 축복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라도 온 힘을 다해 전한 것입니다.

 

내가 체험한 구원의 복음, 세상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가장 귀하고 복된 복음을 기쁨으로 전하고 자꾸 전하다 보면 먼저는 내가 은혜를 받습니다. 내가 은혜받고 전하는 복음을 듣는 사람도 들어보고 싶고 체험해 보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함온유 목자님은 매일 양식을 써먹고 한 사람, 두 사람에게 전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은 한국과 전 세계 120여명에게 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양들도 좋은 양, 힘든 양 가리지 않고 돕고 있습니다. 곽리브가, 남연하 사모님들도 우리 중에 특히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면서 힘을 덧입는 것을 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전하지 않을 수 없는 복음에 대한 감격,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외적으로 보이는 캠퍼스의 상황이 어렵다보니 많은 분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탄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현실의 어려운 면만 보게 합니다. 사도들도 그들을 위협하는 종교지도자들만 보았다면 그들은 결코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도, 교회도 없고, 우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을 위협하는 자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예수님만 믿고 의지했습니다. 23절에서 31절을 보면 사도들은 풀려나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29,30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사도들이 기도를 마치자 모인 곳이 진동하고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자 또 나가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이 이처럼 성령충만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믿고 한 마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사도들처럼 한 마음으로 소리 높여 기도해야겠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곳을 진동시키시고 우리 모두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열정적이고 기쁨이 충만하고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힘든 현실만을 바라보며 복음 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부끄러워하게 사탄의 궤계를 파하여 주시고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