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

                                                    요셉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37,38

요절: 창세기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동안 야곱을 이스라엘로 키워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부터는 야곱의 아들들 이야기입니다. 야곱에게는 열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문제가 많았습니다. 첫째아들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동침하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35:22).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세겜 사람들을 속이고 살인과 약탈을 자행한 사고뭉치들이었습니다(34). 넷째 유다는 가나안의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또 아내가 죽자 창녀촌을 찾아 가는 죄를 짓습니다. 다섯째부터 아홉째인 단, 납달리, , 아셀은 못된 짓을 해서 요셉이 아버지에게 일러바칩니다. 요셉도 철없이 말을 함부로 해서 형들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다 한심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자들도 변화시키셔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이 되게 하십니다. 어떤 분은 야곱의 아들들을 보며 우리 자녀들도 소망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도 소망 두고 키우셔서 큰 믿음의 거목이 되게 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셔서 그 꿈을 통해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 꿈꾸는 요셉(37:1-11)

 

2절에 보면 당시 요셉의 나이 17세였습니다. 그는 형들과 함께 양을 치며 보냅니다. 주로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같이 몰려 다녔습니다. 레아의 아들들 6명은 요셉을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야곱의 12 아들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을 것입니다. 레아의 아들 6, 그리고 나머지 6. 나이도 레아의 아들들이 많고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여섯명은 밀렸습니다. 게임할 때도 먼저 레아의 아들들이 하고 나면, 조심스럽게 다른 6명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은 조금씩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요셉은 형들이 잘못한 것을 아버지에게 보고했습니다. “아버지, 납달리 형이 학원 안가고 땡땡이 쳤데요그러니 형들이 요셉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 야곱은 요셉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라 더 사랑했습니다. 라헬의 아들이라 더 정을 주었습니다. 그것도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혀서 키웠습니다. 채색 옷은 당시 귀족들이 입는 브랜드 옷입니다. 다른 자식들은 할인점 옷을 입히고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히니 형들이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요셉만 보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더 미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꿈의 내용은 요셉이 일어서고 형들은 요셉에게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왕이 되고 자신들은 신하가 된다니 심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또 한번 꿈을 꾸고 말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갈수록 태산이었습니다. , , 별들이 다 절을 하면 요셉은 도대체 얼마나 높은 지위에 앉는다는 것입니까? 형들은 심히 배가 아팠습니다. 아버지 야곱도 요셉을 꾸짖었지만 그래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뭔가 하실려나 보다생각했습니다. 자신도 벧엘에서 사닥다리 환상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그 환상을 성취해 가시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른 들으면 요셉의 꿈은 형들 위에 군림하는 기분 나쁜 내용 같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훗날 형들을 위해 큰 선행을 베풀어서 형들이 고마워서 요셉에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의 덕을 보고 살아납니다. 온 가족이 기근으로 굶어죽을 위기에 있을 때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가족들을 구원해 줍니다. 그러니 사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잘 키워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형들은 아직 그 뜻을 모르기에 무조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이 꿈이 요셉 자신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꿈은 단지 요셉이 출세해서 잘 먹고 잘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절망하게 될 때 희망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잘 견디라는 뜻입니다. 나중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바로가 요셉에게 그런 이름을 줍니다. “사브낫바네아(41:45)” 이는 세계의 구주라는 뜻입니다. “너는 온 세상을 구원하는 자로다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은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꿈은 자칫 히틀러처럼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도취에 빠져 위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장차 온 세계가 기근을 만나게 될 텐데 그때 만민을 구원하는 목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는 장차 예수님께서 이루실 구원역사의 그림자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죄와 죽음문제로 고통할 때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십자가로 죄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로서 죽음의 권세를 파하십니다. 이로서 온 인류의 구주요, 메시야가 되십니다. 이때 모든 자들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빌립보서 2:9-11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했습니다. 모든 죄인들이 구원받고 감사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 권세에 복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되시기까지 어떤 일을 겪습니까? 빌립보서 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예수님은 온전히 자기를 비우시고 대속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이 고난의 과정을 거쳐 부활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십니다.

 

요셉도 그렇습니다. 그가 앞으로 구원자적인 삶을 살게 될텐데,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아픔과 고난을 겪게 됩니다. 아버지와 형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이를 통해서 어려움에 처한 가족들과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됩니다. 요셉은 이처럼 목자가 되는 꿈,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꿈이 있기에 힘든 시련들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기초로 요셉의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UBF 믿음의 선배들에게도 꿈을 주셨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와 같이 운명적이던 이 백성들이 전 세계 대학생들을 말씀으로 구원하는 거룩한 꿈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우리는 부족하지만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오대양 육대주에 나아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가슴 벅찬 꿈을 주셨습니다. 이 꿈을 근거로 1969년 이화자, 설동란, 서인경 세 명의 간호사 선교사들을 서독에 파송했습니다. 이분들은 독일어는 거의 못하고, 영어도 서툴렀습니다. 그러나 장차 독일 대학생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예수님의 제자들로 키울 비젼 가운데 기도했습니다. 그 꿈은 하루아침에 열매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세월동안 시련과 아픔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20198, 그 꿈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을 우리는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 Welligen에서 있었던 유럽 국제수양회에 1070명이 참석했습니다. 수양회 강사들은 대부분 유럽 현지 목자들이었습니다. 독일의 Eberhard Gross, 영국의 James Wood, 포르투칼의 Nuno Silva 등등, 각 나라의 최고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아주 확신있고 감동적으로 생명이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지난 50년 동안의 우리 선교사님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열매들이었습니다.

 

첫날 인생소감을 발표한 Volker Keller 목자는 45년 전 우리 선교사님들에 의해 핏싱된 첫 양이었습니다. 그는 중학교만 나와서 한국 간호사들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 생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제1회 스위스 여름 수양회에 초청했지만 수양회비가 없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대신 내 줘서 참석했습니다. 그 수양회에서 선교사님들이 한글이지만 눈물로 소감발표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꾸준한 성경공부를 해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말없이 독일역사를 섬겼습니다. 한국인 선교사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4명의 자녀들을 훌륭한 선교 동역자들로 키웠습니다. 그 분의 인생소감 제목은 <병든 가지를 건강한 가지로>였습니다. 요한복음 15장 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는 만성호흡기 질환자로 몸과 마음이 병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고 이제는 든든한 주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분을 비롯해서 지금은 독일등 유럽 24개국에 수많은 선교사들과 2세들, 현지인 목자들이 세워졌습니다. 셋째날 저녁 100명 이상의 CBF들이 단상에 올라와서 율동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유럽의 복음역사가 기대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17절에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했습니다. Sainbayar Erdenebulgan 형제는 몽골 형제인데 부모님을 따라 5살 때 영국에 이민을 왔습니다. 그는 사춘기 시절 영화배우 성룡과 k-pop 음악에 빠져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UBF에서 꾸준히 말씀공부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적인 꿈을 주셨습니다. 영국 대학생들의 목자가 되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극적으로 옥스퍼드 대학에 합격케 하셨습니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 미대 교수로 있는 Ian Kaier 목자와 성경공부하며 옥스퍼드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자 45년 전에는 겨우 중학교 졸업한 학생으로 시작했던 선교역사가 이제 옥스퍼드 대학생을 돕는 역사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더 크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생각할 때 큰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꿈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잠언 29:18절에 묵시(vision)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비젼이 없으면 목표가 없으니 인생을 함부로 살고 탕진합니다. 최필훈 형제는 이전에 학점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왜 그랬냐고 물어 보니 인생의 목표가 없어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수양회때 큰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때 인생의 목표가 생기고 꿈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도 스스로 암송하고, 새벽 430분에 택시타고 새벽기도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부터는 장막에 들어와서 훈련받고자 해서 송무디 목자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꿈이 있으면 인생을 사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젼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꿈때로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실 것을 믿습니다.

 

. 꿈 때문에 시련을 당하는 요셉(37:12-36)

 

12절을 봅시다. 요셉의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야곱이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70km를 걸어서 세겜에 갔지만 형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형들은 30km 더 떨어진 도단으로 간 것입니다. 요셉은 어찌든 형들을 만나고자 30km를 더 걸어서 도단까지 갔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100km나 걸어서 왔기 때문에 형들이 자신을 반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8,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형들은 요셉이 오기 전부터 요셉에 대해서 흉을 보고 있었습니다. “요셉 이 놈, 하는 짓마다 꼴보기 싫어. 아버지 안 계실 때 혼쭐은 내야 되겠어그런데 마침 요셉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도 안 계시지, 집에서 100km나 떨어져 있지. 이번 기회에 아예 요셉을 죽여 버리기로 모의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하면서 말했습니다.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라그들은 요셉도 미웠지만 요셉이 꾼 꿈이 더 미웠습니다. 얄미운 요셉과 함께 그의 꿈도 묻어 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악한 일을 꾸며도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굴속에 넣고 큰 바위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을 굴려내고 부활하셨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28:6)” 생명의 주 예수님도 부활하셨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이 아무리 요셉을 미워해서 죽이고자 했지만 결국 요셉은 살아나고,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의 꿈도 부활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잠언 16: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인간의 악한 계교가 결코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연단과정을 거칠지언정 없어지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면 악한 자들의 음모가 오히려 꿈을 실현시켜주고 맙니다.

 

23절을 보면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무섭고 슬펐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형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잘못하면 거기서 굶어죽게 됩니다. 형들은 그렇게 해놓고 앉아서 자기들끼리 음식을 먹습니다. 아마도 그 음식은 요셉이 싸온 도시락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이들은 얼마 전 가족 모두가 벧엘로 올라가서 회개했습니다. 우상을 제하고, 마음을 정결케 하고, 옷을 바꾸어 입었습니다. 벧엘 산상 수양회를 통해 소감발표도 했습니다. 이제 아버지 말을 잘 듣고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겠다고 결단도 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이렇게 돌변한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릅니다.

 

다른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고자 했지만 장남 르우벤은 좀 달랐습니다. 요셉을 죽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자신이 빌하와 동침해서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았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때마침 이스마엘의 무역상들이 애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유다가 요셉을 이들에게 팔자고 합니다. 죽여 봐야 남는 것도 없으니 돈벌이라도 하자는 것입니다. 유다는 친동생을 대상으로 인신매매를 했습니다. 결국 다른 형제들과 협의해서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야곱은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맛봅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을 때보다 더 슬퍼합니다. , 여기까지만 보면 요셉의 인생이 너무나 슬프고 운명적입니다. 채색옷 입고 아버지 사랑받던 그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희망찬 꿈을 주셨는데 그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만 것 같습니다. 우리도 나의 현실을 바라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꿈을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꿈과 반대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 내 인생은 이렇게 꼬이는가?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40:8절에 보면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인생에 대한 해석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인생은 어려운 수학문제보다 더 난해합니다. 누구도 그 답을 말하고,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해석의 키를 쥐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석할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빨리 해답을 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화의 결말을 너무 빨리 볼려고 하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인생의 감독자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면 됩니다. 나중에 모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에베소서 2: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이것이 이루질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임이삭 선교사님은 30년 동안 교직생활하시면서 주로 먼 시골학교를 돌아 다니셨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고생시키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k국에 가셔서 시골스러운 양들을 섬기면서 그 뜻을 이제야 알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젊어서 자취하며 힘든 학생들을 도우셨기 때문에 지금 그 나라에서 한글, 음악, 체육 등을 가르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체력을 닦아 두셨기 때문에 70살이 넘어서도 청년처럼 일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8:28). 우리도 해석을 하나님께 맡기고 묵묵히 믿음의 길을 가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마음에 간직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될 것을 믿습니다(고전13:12).

 

. 회개하는 유다(38)

 

38장에 보면 또 해석이 잘 안 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 이야기입니다. 유다는 요셉을 은 이십에 팔자고 제안한 자입니다. 동생을 인신매매한 피도 눈물도 없는 자입니다. 1절을 보면 그는 자기 형제들을 떠나 이방인들이 사는 아둘람에 가서 살다가 가나안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 오난, 셀라. 그런데 첫째 아들 엘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죽습니다. 당시 계대결혼 풍습에 따라 둘째 오난이 형수 다말과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자기 아들이 형의 아들이 되는 것이 싫어서 땅에 설정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난도 죽게 하십니다.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어야 했지만 혹시 그도 죽을까 두려워서 주지 않고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얼마 후 유다의 아내가 죽자, 유다는 창녀촌을 찾아 갑니다. 이때 다말이 창녀로 변장해서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습니다. 이는 다말이 유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말은 담보물로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요구합니다. 나중에 다말이 임신했다는 말이 유다에게 들려옵니다. 유다는 며느리가 불륜을 행했다며 불태워 죽이고자 합니다. 그때 다말은 자신이 유다에게서 받은 담보물을 제시하며 자신의 아이가 유다의 아이임을 증명합니다. 이때 유다가 고백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유다가 비로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를 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이때 유다가 회개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은 막내아들을 잃지 않고자 며느리도 친정으로 보낼만큼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들 요셉을 아끼는 아버지 야곱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 때문에 통곡하는 것을 보면서도 별 죄책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말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자인가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유다가 비로소 회개를 합니다. 후에 유다는 애굽에서 동생 베냐민이 인질로 잡힐뻔 했을 때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신 인질이 되겠다고 자처합니다(44). 유다가 점점 변화가 되어갑니다. 한편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쌍둥이를 낳습니다. 세라와 베레스. 그리고 베레스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야 예수님이 탄생하게 됩니다(1:3).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유다 같이 형편없는 자도 도우셔서 회개시키시고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선한 사람, 천사같은 자만 들어서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유다를 비롯해서 문제 많은 자들도 소망 가운데 키우고 도우십니다. 복잡한 가정사 속에서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성취해 가십니다. 창세기 15:13,14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하나님은 이미 출애굽까지 바라보시며 요셉을 그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처럼 오묘한 하나님의 역사를 어찌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그러니 우리는 인생을 함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인생도 다른 사람의 인생도 함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기에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다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같은 자도 쓰시고, 유다 같은 자도 쓰십니다. 모두가 허물투성이요, 죄인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과 긍휼로 친히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믿고 현재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과 비젼을 붙들고 묵묵히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귀하게 들어 쓰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