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

                                                하나님의 큰 구원

말씀: 창세기 42-45

요절: 창세기 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오늘 말씀은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지 22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고, 형들은 기근 때문에 양식을 사러 애굽에 왔습니다. 서로의 위치가 완전 역전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복수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형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도와줍니다. 형들이 진실되게 회개하자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어줍니다. 요셉과 형들은 모든 미움의 장벽이 무너지고 서로 기뻐하며 행복한 새 출발을 합니다. 이 본문은 단지 한 가족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해피엔딩 드라마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큰 구원의 역사입니다. 죄인된 자아를 발견하고, 죄를 회개합니다.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어 놓습니다. 죄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영접합니다. 복음의 요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에 하나님은 요셉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구원역사의 손길을 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42:1-28)

 

42:5절에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갑니다. 그들은 양식을 사러 요셉 앞에 엎드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때 요셉은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이 생각났습니다(9). 형들의 곡식단이 절을 하고 자신의 단은 일어서는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맞았습니다. 요셉이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때 의기양양해서 지난 22년 동안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어. 어디 당신들도 한번 당해 봐하며 형들을 철저히 복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때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당테스라는 젊은 항해사가 승승장구해서 선장이 되고, 약혼녀와 결혼할려는 찰라였습니다. 그런데 음모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갇힙니다. 13년 동안 지하 감옥에서 처절한 고문을 당합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보물섬 지도를 입수하여 탈옥한 후에 그 섬에 가서 어마어마한 보물을 찾습니다. 일약 거부가 되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감옥에 집어넣은 원수들을 한 명 한 명 복수합니다. 영화에서 복수하는 장면은 통쾌하지만 마지막에 주인공은 허망함을 느낍니다. 정의라는 명분으로 복수를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여운을 남깁니다. 당한대로 복수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거나 복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받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형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자아를 발견하기까지 철저하게 자기의 정체를 숨깁니다. 형들을 정탐군이라고 몰아 붙입니다.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형들은 정탐군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요셉은 믿어 주지 않습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요셉은 형들의 진실함을 보기 원했습니다. 어떤 진실입니까? 형들이 정말 회개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22년 전에 그들은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죽이고자 했고,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였습니다. 이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이들이 장차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집요하게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았습니다. 베냐민을 데려오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그들은 22년 전에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로 판 죄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요셉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들이 당해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자기들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22절에 보면 르우벤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 값을 치르게 되었도다자기들이 지은 죄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막내를 데려오라고 하면서, 시므온을 가두고 나머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관에서 자루를 풀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곡식을 사기 위해 가지고 갔던 돈이 자루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꾸민 것이죠. 형들은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그들은 혼이 나서 벌벌 떨며 말했습니다. 이 일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더 두려운 것은 그들이 집에 돌아와 자루를 풀어 보니 모든 사람의 자루에 돈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스파이 정도가 아니라, 절도범으로 몰릴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계속되는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드러내시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죄 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숨겨둔 죄 문제가 너무 수치스러워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이 꼬이고 힘든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서서 , 하나님이 나의 죄 문제를 드러내시는구나하나님의 징계로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그 사람은 정말 소망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1:8,9절에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겨하고 회개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도 죄 때문에 두려워 떨며 괴로워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귀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했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근심하고 고통하는 것은 회개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목자가 양들을 도울 때도 죄문제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할 때 사죄의 은총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형제 학생회 리더들의 안일과 교만, 불순종의 죄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을 회개하고 매일 양식을 써서 보내고, 치열하게 영적인 투쟁을 하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이 회개하고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가 됩니다. 앞으로 이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큰 믿음의 거목들로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 형들의 회개와 결단(42:29-44:34)

 

요셉의 형들은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다 말했습니다. 자신들이 정탐꾼으로 몰렸고 막내를 데려가야 진실함을 증명하고 시므온도 풀려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심히 화를 냈습니다. “너희가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느냐?” 이때 르우벤이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내가 베냐민을 아버지에게 데려오지 아니하면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별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불미스런 사건 때문에 야곱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번에는 유다가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43: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유다는 자신이 베냐민을 데려오는데 담보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못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베냐민은 돌아오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영원히 죄를 짓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목숨 걸고 베냐민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속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로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루셨습니다. 유다도 베냐민을 위해 자기 목숨을 담보물로 잡히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빈말이 아닙니다. 나중에 요셉 앞에서 정말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유다는 본래 어떤 사람입니까? 요셉을 노예로 팔 때 앞장 선 자입니다. 20에 동생을 노예로 팔았던 피도 눈물도 없는 인신매매범입니다. 요셉이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건만 매몰차게 버렸던 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베냐민을 지키고자 합니다. 유다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화되었을까요? 38장에서 다말사건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도 사랑하는 두 아들을 잃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 야곱의 아픔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고, 옷을 찢으며 우시는 아버지의 아픔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시는 아버지 눈에서 피눈물이 나지 않게 하리라그는 결심했을 것입니다.

 

유다의 말은 야곱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도록 허락을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들들을 믿고 베냐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떠나보냅니다. 43: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야곱은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베냐민과 다른 아들들을 지켜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야곱의 눈에 이제는 다른 아들들도 들어왔습니다. 야곱은 이제 아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야곱도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뭔가를 쟁취하고자 몸부림쳤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얻고, 사랑을 얻고, 재물을 얻고, 자식들을 붙들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점점 이런 것들을 놓게 되었니다. 사랑하는 라헬도 잃었고, 제일 아끼던 요셉도 잃었습니다. 이제는 막둥이 베냐민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야곱은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자 결단했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모리아 제단에 바치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야곱은 모든 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기까지 130년이 걸렸습니다. 요셉의 형들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야곱도 회개했습니다. 욕심과 집착을 회개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기적인 욕심과 세상적인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애굽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보자마자 두려워 떨며 말했습니다. “내 주여 우리가 여관에서 자루를 풀어본즉 돈이 그대로 있기에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이때 요셉은 그들을 안심시키며 말했습니다.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23)” 요셉은 그들을 안심시키고 융숭하게 대접해 주었습니다. 특히 동생 베냐민을 보고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안방에 가서 울고 다시 나왔습니다. 베냐민의 얼굴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인상이 남아 있어 더 눈물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습니다. 형들의 진실함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코스가 남아있었습니다.

 

요셉은 모두를 돌려보내면서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청지기를 보내서 갑자기 호통을 쳤습니다. “너희들이 왜 우리 주인의 은잔을 훔쳤느냐?” 요셉의 형들은 극구 부인했습니다. “우리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우리 중에 누구든 은잔이 나오면 그 자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다 주인의 종이 되겠습니다그들은 자신있게 소지품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요셉에게 끌려갔고 요셉은 추상같이 야단을 쳤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왜 선을 악으로 갚느냐?” 요셉이 왜 이렇게까지 형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입니까?

 

요셉은 형들이 정말 회개했는가? 보기 원했습니다. 베냐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기 원했습니다. 정말 회개하지 않았다면 형들은 은잔 사건을 베냐민 탓으로 돌리고 자기들만 빠져 나갔을 것입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고 아버지께 거짓말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도 베냐민, 네가 은 잔 훔쳤지베냐민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아버지에게 가서 베냐민이 절도죄를 지었다고 보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다가 앞장서서 말했습니다. 44: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유다는 베냐민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악을 찾아내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시인하고 다 노예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만 종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형들이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막내를 데려가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는 죽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이 아이의 생명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특히 유다가 나서서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32,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유다는 자신이 아버지께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자신이 노예가 되어 죄값을 치를테니 베냐민과 다른 형제들은 돌려 보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유다는 지금 연극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내걸고 베냐민과 형제들을 풀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유다의 말은 마치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비슷합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23:34)”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다를 기뻐하시고 후에 메시야 혈통의 뿌리로 삼으셨습니다(49:8-10). 유다의 말을 통해 요셉은 비로소 형들이 진실로 회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테스트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의 섭리를 증거하는 요셉(45)

 

45:2절을 봅시다. 요셉은 그동안 억눌렀던 모든 감정을 폭발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지난 22년 동안 자기가 당했던 설움, 형들의 진심어린 회개로 인한 감격, 혈육을 만난 기쁨등이 뒤섞여서 눈물이 봇물처럼 터진 것입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소리가 바로의 궁궐까지 들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말합니다. “형님들, 제가 바로 요셉입니다. 아버지는 살아계십니까?” 형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자신들이 노예로 팔았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을 줄 꿈에나 생각했겠습니까? 어쩐지 그 집에서 식사할 때 자기들을 나이순으로 정확히 앉힐 때 좀 이상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쁘기도 하지만 요셉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뭐라고 말합니까? 5-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먼저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죄의식에 떨고 있는 그들을 온전히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진실되게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요셉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역사를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먼저 애굽에 보내셨습니다하나님께서 기근으로부터 온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애굽에 보내시고, 애굽의 총리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가 고생하고 노력해서 총리가 되었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고 자신은 오직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 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겸손합니까?

 

요셉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니 자신의 인생이 결코 운명적이지 않았습니다. 형들도 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형들의 시기심을 사용하셔서 자신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는 너무나 놀랍습니다. 다윗을 성군이 되게 해 준 사람은 자신을 시기해서 죽이고자 했던 사울왕입니다. 모르드개를 왕의 수레에 앉혀준 사람도 모르드개를 죽이고자 했던 하만입니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한 자들도 자신을 미워한 형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역사는 얼마나 놀랍고 기이합니까? God is wonderful. 하나님은 wonderfull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당하는 힘든 일들로 인해서 낙심하거나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의 역사를 위해 나를 훈련하고 계십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을 사용하시고, 여러 사건을 만나게 하십니다. 로마서 8:28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책을 쓴 찰스 쉘던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책은 21개 언어로 번역되어서 5천만부 이상 팔린 기독교 고전이 되었습니다. 영어 원제목은 <In his steps>입니다. 그는 젊어서 너무 가난하여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그 힘든 고통의 과정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이런 경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고뇌에 찬 질문을 던지고 깊이 있는 책을 쓰게 된 것입니다. 당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큰 구원 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선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큰 구원을 위해서 나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보내십니다. 그때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침내 요셉과 베냐민, 그리고 모든 형들이 서로 입 맞추고 목을 끌어안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모두를 용서하고 영접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 야곱의 기쁨은 또 어떠하겠습니까?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다는 것만도 감사한데,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나 요셉이 보낸 애굽제 세단 수레를 보고 믿게 되었고 기운이 소생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멋있고 wonderful한 분이십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계속해서 다 한곳에 모여 살았다면 얼마나 피차 싸우고 힘들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형들의 시기심을 사용하셔서 요셉을 미리 애굽에 보내시고 인생연단을 통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기근도 쓰셔서 형들이 요셉을 만나게 하시고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형들이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요셉은 그들을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 크신 구원의 역사에 요셉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크신 구원역사를 찬송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구원역사를 위해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용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좁은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넓은 시각으로 하나님의 큰 구원역사를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요셉처럼 모든 사람을 품고, 각 사람을 영적으로 돕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