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3

                                       생명을 사냥하는 음녀를 피하라

말씀: 잠언 6:20-35

요절: 잠언 6:26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잠언에는 음란의 죄를 경계하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저자 솔로몬은 자신이 아내를 많이 두고 쾌락을 즐겼지만 그것이 얼마나 해로운가?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떻게 음란의 죄에 빠지게 되는가? 죄의 함정이 무엇인가? 또 죄의 대가는 얼마나 무서운가? 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내 아들아이렇게 시작합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간곡하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이 음란의 죄에 빠질까요? 24절에 보면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25절에 보면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안목의 정욕을 통해서 죄에 빠지도록 유혹 합니다. 사탄은 육신의 쾌락을 즐기면 환상적인 재미를 맛볼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이런 사탄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육신의 쾌락을 탐하지 말고, 곁눈질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 전에 살펴본 창세기에 보디발 여사도 호리는 말로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계속 눈짓 하며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마음에 음욕을 탐하지 않았고 눈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음란의 유혹을 이겨냈기 때문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음녀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집요하게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때문에 치열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넘어가기 쉽습니다.

 

죄는 잠시의 쾌락을 주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26절을 봅시다.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음란의 죄에 빠지게 되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됩니다. 학점도 가난하고, 인생자체가 빈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란의 죄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고 비참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베드로전서 5:8절에 보면 사탄은 굶주린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차라리 굶주린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우리가 바짝 경계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매혹적인 음녀의 모습으로 유혹하기 때문에 싸우기 쉽지 않습니다. 사탄은 음녀를 이용해서 수많은 사람의 귀한 생명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녀는 잠깐의 쾌락을 줄지언정 결코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귀한 생명을 사냥해서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들릴라가 삼손의 생명을 사냥했습니다. 그 귀골이 장대한 용사가 두 눈을 뽑히고 맷돌이나 돌리는 놀이개감으로 전락했습니다. 나중에 죽음으로 짧은 인생을 마감합니다. 우리가 이런 음녀 사탄 마귀의 사냥감이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음녀의 유혹 배후에 무서운 사탄 마귀의 불화살이 우리 심장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

 

27,28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죄의 소욕은 불과 같습니다. 죄의 욕망은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점점 불타올라서 그 사람을 통째로 불살라 버립니다. 사람들은 그 위험성을 어느 정도 압니다. 그러나 잔재미 때문에 끊지 못하고 몰래 마음에 품습니다. 빨간 숯불을 밟으면 타서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설마 나는 괜찮겠지, 잠깐 즐기다 나오면 발이 데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결국은 불에 타고, 발이 데어서 비참하게 됩니다.

 

우리는 죄의 불길을 마음에 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어야 하겠습니다. 스마트폰을 품을 것이 아니라 성경책을 품어야겠습니다. 예례미야 20:9절에 보면 예례미야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했습니다. 예례미야는 시드기야 왕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협박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말씀을 전하지 말까 생각했습니다. 괜히 말씀 전하다가가 나만 고생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입을 다물고 말씀을 전하지 않고자 결심했더니 속에서 막 불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룩한 불길 타올라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불길은 골수에 사무쳤습니다.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를 하고 입을 열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불덩어리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그 불붙는 메시지로 말미암아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예례미야서를 읽고 마음에 불이 붙어서 주님께로 돌이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15여년 전에 안베드로 목자님은 주일을 잘 안 지키고 헤매다가 풀룸에서 예례미야 말씀을 읽고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어서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가 성전을 들르셨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짐승팔고 돈 바꾸는 소리로 시장바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짐승들을 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서 레이져가 나왔습니다. 거룩한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성경말씀 시편69:9절을 기억했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2:17)”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그 열정이 예수님을 집어 삼켰습니다. 그래서 대대적인 영적 개혁을 단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음란과 쾌락의 불길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에 사로잡혀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열정,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거룩한 열정으로 불타올라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영적인 열정, 거룩한 열정에 불타오르게 되면 감히 음녀의 유혹이 다가올 수 없습니다.

 

요즘 재벌 2,3세들, 유명 국회의원 자녀들이 외국에서 몰래 마약을 숨겨 들어오다가 들켜서 부모들까지 큰 수치를 안기고 있습니다. 그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그러나 사람이 거룩한 열정과 사명감이 없으면 결국 육신의 쾌락에 몸을 맡기게 됩니다.

 

29절을 봅시다.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간음의 죄는 반드시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의 아내는 가까이 하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요셉이 좋은 본이 되었습니다. 보디발 여사가 아무리 집요하게 유혹해도 반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까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괜히 썸 타며 즐기고자 하다가 코 꿰게 되면 나중에 비참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안 들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은밀하게 죄를 즐기고 빨리 빠져 나오면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반드시 잡히게 됩니다.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지라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32,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남편이 가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분노로 원수를 갚을 것이고 어떤 보상으로도 댓가를 지불할 수 없어 결국 망하게 됩니다. 쾌락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영혼을 헐값에 팔아 버리는 자는 정말 무지한 자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갑니다. 그 훌륭한 다윗도 잠깐 영적인 긴장을 풀었다가 죄에 넘어졌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음란의 유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20,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네 아비의 명령과 어미의 법은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소극적으로 죄의 유혹을 피한다고만 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목에 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 공부한 것을 머리로 대강 듣는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글씨를 돌에 석수들을 보면 한 자 한 자 새기느라 고생을 많이 합니다.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그렇게 새겨진 글씨는 나중 지워지지 않습니다. 수 십년, 수 백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공부할 때 마음 판에 새기는 심정으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암송해야 합니다. 또 목에 걸라고 했습니다. 이는 말씀에 목숨을 걸라는 것입니다.

 

교회사에 보면 신앙의 위인들은 말씀을 수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목에 걸게 되면 말씀과 내가 하나가 됩니다. 그때 말씀이 나의 방패가 되고 검이 됩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세력을 얻어서 능히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해 줍니다. 22-24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말씀은 힘이 있어서 우리를 능히 죄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줍니다.

사도행전 18:5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씀에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들을 세우고 제자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지난여름에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지인 그리스를 다녀 보니까 아주 타락하고 죄악된 도시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고린도는 산 위에 신전이 있는데 거기에 1000명의 여사제들이 있는데 다 창녀들이었습니다. 신전에서 온갖 음란 행위들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런 곳에 무슨 말씀역사가 있을까 싶지만 바울 한 사람이 말씀에 사로잡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요즘 형제 학생회들이 매일 양식을 써서 제게 보내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생활에 많은 규모가 생기고 영성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한마가 목자가 매일 일찍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나요셉 목동은 스마트 폰 보는 시간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가을 수양회가 한 달 남았습니다. 이 귀한 수양회에 12명의 천로역정 강사들이 세워져서 감사합니다. 심포지움을 감당하면서 많은 유혹들을 물리치고 다들 영광스런 승리를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또 새로운 양들도 초청해서 어찌하든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생명의 잔치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사냥감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말씀의 화살을 날려서 사탄의 염통을 꿰뚫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평소에 날카로운 칼, 마광한 살로 연단을 받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