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 강

                                                영광의 주를 바라보라

말씀: 요한계시록 1:1-20

요절: 요한계시록 1:16 “그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 계시록은 AD 90-95년경 도미티안(Domitian)황제 때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묵시록입니다. 요한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90살이 넘는 나이에 붙잡혀서 밧모섬에 유배 되었습니다. 당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아주 심한 때였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박해한 왕으로 네로만 떠올리지만 도미티안도 이에 버금가는 자였습니다. 도미티안은 아버지 베스파시안(Vespasian)과 형 디도(Titus)장군의 그늘에 가려서 열등의식이 아주 많았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그 열등감의 반작용으로 자신을 신격화시키고 황제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버가모교회의 안디바는 황제숭배를 거부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감옥에 갇혔고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루종일 돌을 깨거나 무거운 돌을 나르는 노역을 강요당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90이 넘는 노인이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들텐데, 뙤약볕 밑에서 하루종일 돌을 깨고 나르는 강제노역을 할 때에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요한만 힘든 것이 아니라 이를 옆에서 바라보는 신자들도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왜 우리 신자들이 이처럼 힘든 박해를 당해야 하는가? 도대체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다시 오마 말씀하신 예수님은 왜 아직도 안 오시는가? 회의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가운데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요한에게 계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환상 가운데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어디에 계시는가?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생생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세상에서 많은 고난과 시련가운데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희망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한계시록을 예수님의 재림의 날짜를 가르쳐 주는 신비의 책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를 열심히 계산합니다. 마지막 날 도대체 몇 명이나 구원 받는가? 거기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주로 이단들이 재림의 날짜와 구원 받을 신자의 숫자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성도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우주와 세상 권세를 쥐고 계시는 분이 누구인가? 우리 주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공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늘성전에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가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직 악이 존재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승리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 공부를 통해서 영광 중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덧입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이미 이 지상교회에 이루어진 승리와 장차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영광을 소망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복음의 전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1장은 서론으로서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계시는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절을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것을 요한이 기록한 책입니다. 요한이 자기 임의대로 상상해서 창작한 글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알려 주시고 예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기원은 하나님과 예수님이십니다. 2절에 보면 요한은 단지 자기가 본 것을 증언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앞에 요한이라는 말이 붙어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보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책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어떠해야 합니까? 3절에 보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6개월 동안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게 될텐데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열심히 읽고 귀 기울려 듣고 지켜야 하겠습니다.

 

4절에 보면 요한은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하면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문안하고 있습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편지합니다. 또 그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즉 성령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당시에 가장 막강한 사람들은 땅의 임금들인 로마 황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온 세계를 손 안에 넣고 좌지우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권력과 권세들이 그들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면 없던 건물도 세워지고, 있던 건물도 하루 아침에 없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고 사는 문제가 황제 한 사람의 손가락에 의해서 좌우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실로 신으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5절 말씀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신 부활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막강한 권세를 가졌던 로마 황제도 죽음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저 유명한 시저도 자신의 양아들 부르투스에게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 부르투스, 너마저”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의 황제이지만 자신의 양아들 하나도 단속 하지 못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겉으로 볼 때는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큰 칼을 차고 다녔지만 죄의 소욕은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로마황제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동성연애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세상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은 땅의 모든 임금들의 머리가 되십니다. 만왕의 왕이시요, 주의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왕이 비천한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준 적이 있습니까? 생명은 둘째치고 자신이 먹던 떡 한 조각도 나눠주기를 싫어했던 임금들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들은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생명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이로서 우리를 하나님을 위한 나라와 제사장, 즉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형편없는 삶을 살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생각하면 즉시 심판을 받아 싹 쓸어 버려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이 시대에 목자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대속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 드립시다. 아멘

저는 이번 유럽수양회에 참석해서 초창기 우리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1969년 우리 간호사 선교사들이 처음 독일 땅에 나아갈 때에 인간적으로 그들의 신분은 외국인 근로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땅에 돈 벌러 오는 외국인 근로자들 있잖습니까?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사람들 보면 어떻습니까? 왠지 우리가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 당시에 우리 선교사님들도 독일 땅에서 무시를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교사님들은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독일 땅에 선교사로 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과거에 자신들을 운명과 슬픔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때에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 분들이 핏싱하여 도운 목자들이 풀 타임 목자가 되고 성경선생이요, 빼어난 멧신저들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메신저들은 모두 다 현지인들이었습니다. 그 현지인 양들이 믿음으로 결혼을 하고 또 그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서 그 자녀들이 또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앞장서서 수양회 역사환경을 섬겼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선교사님들은 유럽대륙의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가난하고 슬픈 한국의 운명의 딸들을 구원하사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1세기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서 칙칙한 지하 동굴 카타콤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평생 바깥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어떤 사람은 그 지하 동굴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살다가 거기서 죽어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안쓰럽고 불쌍합니까? 그러나 사도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인간적으로 보면 로마황제들이 역사의 주역이요, 세상역사를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시각에서 보면 생명의 복음을 간직하고 믿음으로 산 성도들이 역사의 주체자들입니다.

 

7절을 봅시다. 7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볼찌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사람들은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여기서 구름은 큰 영광과 권세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오실 때는 아무도 모르게 오셨습니다. 그때는 섬기러 오셨기 때문에, 인류의 대속제물이 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참으로 미약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마굿간 말구유에 아무도 모르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오십니다. 하늘의 구름을 타시고 영광스럽고 찬란한 모습으로 오십니다. 각 사람이 눈으로 이 예수님을 볼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로마 군병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때리고 채찍을 내리치던 자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울부짖고 있는데 그 밑에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갖고자 제비뽑기를 하던 자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자들도 다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게 됩니다. 왜 애곡합니까? 자신들의 죄와 사악함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행하던 자들은 다 땅을 치며 통곡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무시한 자들, 목자님들이 그렇게 쫓아다니며 밥 사주고, 영화 보여 주면서 ‘수양회 가자, 1:1 하자’ 해도 말 안 듣고, 핸드폰 꺼놓고 도망 다니던 자들, 그런 자들이 다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8절에 보니까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한때는 천지를 호령하며 기세를 떨치지만 어느 순간에 갑자기 힘을 잃고 사라져 갑니다. 세상권력은 여름 한 철과도 같습니다. 한 여름에 뜨거운 퇴약볕을 보면 정말 그 위력이 대단합니다. 여름 날에 풀과 채소는 그 생명력이 왕성합니다. 그러나 찬바람이 나고 가을이 되어 보십시오. 그 뜨거운 햇살은 힘을 잃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겨울이 되면 햇빛은 힘을 잃고 앙상한 나뭇가지 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권력과 부의 허망함입니다. 금방 피었다 지고, 반짝했다 사라지는 것이 세상권력의 실상입니다. 나라도 그렇고, 황제들도 그렇습니다. 한때 애굽이 융성했고 앗수르가 그러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페르시아의 고레스, 헬라의 알렉산더가 한때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지금은 로마가 떵떵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로마제국도 망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유럽수양회 이후에 파리를 방문했습니다. 왕들이 살았던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 보았습니다. 정말 그 영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왕궁의 그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화려한 소파, 침대, 악세사리, 드넓은 정원, 귀족들이 사냥을 즐기던 숲, 정말 대단했습니다. 수많은 초상화들은 왕족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살았는가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해골이 되어서 누워 있습니다.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는 배고픈 시민들의 손에 목이 잘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상 나라의 영광과 인간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우리 주님은 그 영광과 존귀와 권세가 조금도 변치 않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마지막 이 세상 나라를 심판하실 때까지 그 능력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분이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이 주님이 언젠가는 다시 오십니다.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오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랑하고 교만을 떨던 자들은 다 그 머리털과 이빨을 뽑으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봉사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자들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그러면 이 주님께서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어느 주일날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주의 나팔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빠-앙 빠-앙, 빵, 요한아! 여기를 보아라” 그래서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 영광의 주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다같이 12-16절 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여기 일곱 금 촛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셨다는 것은 이 지상 교회에 임재하셔서 함께 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요한을 비롯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도대체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왜 우리를 이렇게 무력하게 내버려 두시는가? 무관심하시는가?”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 각 교회를 심방하시며 각 성도들을 어루만져 주고 계셨습니다.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당시에 왕들은 가슴에 금띠를 띠었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가슴에 금띠를 띠고 교회 사이를 거닐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감히 함부로 마귀 사단이 교회를 넘어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이 깨끗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스러움을 상징합니다. 성결하고 거룩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각 교회들을 성결한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각 나라와 각 사람의 속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연단된 빛난 주석과도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에 그 발은 너무나 후둘후둘 떨리고 힘없고 지치고 피곤한 안스러운 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의 발은 풀무불 속에서 연단되어 세상에 어떤 악한 자도 다 짓밟고 마귀 사단을 묵사발을 낼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진 발이었습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우리가 폭포수 밑에 가 보면 얼마나 소리가 큰지 무서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판소리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폭포수 밑에 가서 목소리가 물소리를 뚫고 나갈 때까지 훈련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가 대단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광한 칼, 날카로운 화살처럼 힘이 있어서 그 어떤 사람의 심령골수를 찔러 쪼갤만큼 파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었습니다. 일곱 별, 일곱 촛대는 다 일곱 교회를 상징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 크신 권능으로 천상교회와 지상교회를 굳게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로마의 황제라 할지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이는 영광의 모습이요, 승리자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영광스러운 모습, 권능의 모습,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이처럼 영광스러운 모습, 권능자의 손길을 가지고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 보호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세상 권력이 강해 보이고 무서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배후에 계시는 예수님이 훨씬 더 강하시고 힘 있고,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승리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영광의 형체를 띠고 세상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 다 예수님의 발아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본체를 보는 순간 요한은 너무나 놀랬습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그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그 영광스럽고 엄위하시고 권세가 많으신 예수님의 권위 앞에 완전히 압도 당하였습니다. 요한은 아마도 잠시 인간적인 생각, 주님께 대해서 불신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것이 들켜서 두려워 떨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요한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른손을 그에게 얹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영광스럽고 힘 있고 권세가 많으신 주님께서 어깨에 손을 얹고 “두려워 말라” 말씀해 주실 때에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가끔 힘들고 지칠 때에 부모님이나 교수님들이나 직장 동료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힘내” 이렇게 해도 큰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하물며 영광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손을 얹으시고 위로해 주실 때에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아마도 이때 요한은 내면에 큰 위로와 힘을 덧입고 유배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냈을 것입니다.

 

우리도 초대교회성도들 만큼은 아니지만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걱정근심이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졸업 후에 어떤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가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직장에 들어가도 쌍용차나 금호타이어처럼 대량 해고를 시키는 것을 보면 장래가 보장되는 직장이 없습니다. 학사님들은 물질문제, 치솟는 사교육비, 자녀교육, 노후보장, 건강 문제등이 두려움이 됩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염려와 걱정과 근심되는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세상은 갈수록 거대한 공룡처럼 두렵게 다가오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나 힘없고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생존할 뿐 아니라 헌신적으로 복음역사를 섬기고자 할 때에 마음이 위축이 되고 염려거리들이 몰려 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아도 어떻게 어떻게 장래문제를 잘만 풀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되는 것이 없고, 인생이 꼬이고 힘들기만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탄식하게 됩니다.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주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의 손길을 얹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김믿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내가 너의 장래를 책임져 주겠노라” “최순종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전에 죽었으나 지금 살아 있는 자라. 너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생사화복의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붙들고 있으면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하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서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승리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가 망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넉넉히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의 오른손이 우리각자를 굳게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968년 1월 23일 미국의 정보선 푸에불로호가 북한에 납치되어 36명의 미국 선원들이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10개월 동안 그 선원들은 심히 두려운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언제 목숨이 달아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선원 중에 한 사람이 성경 말씀을 많이 암송하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선원이 조용히 성경을 암송하면 나머지 군인들이 그 성경을 들으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날마다 예배를 통해서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므로 지옥 같은 10개월을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요한도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꿋꿋하게 버텼을때에 그 잔혹한 도미티안 황제는 AD 96년 살해되고 밧모섬에서 풀려나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런 저런 문제로 힘들어 하고 두려워하고 계시는 분 계십니까?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알파요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 빛난 주석같은 발로 온 세계를 지배하고 계시는 예수님,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이 해처럼 빚난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오른손을 뻗치사 “두려워 말라” 위로하고 계십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인생을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영광스럽게 하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 다같이 이 영광의 주님을 소망하며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