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가 아직 공산국가로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다. 푸로레스코 목사가 공산당에게 잡혀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목사님은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끝까지 신앙의 절조를 굽히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공산당은 목사님을 기어이 굴복시키기 위해서 비인도적 방법을 사용했다.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11살짜리 아들의 옷을 다 벗기고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 끓는 물을 코에 부어넣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고문을 가했다.

  목사님은 그 자신이 고문당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아들이 고문을 당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 순간 고문을 당하고 있던 아들이 외쳤다. “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저는 배신자가 된 아버지를 제 아버지로 모시고 싶지 않아요.” 이 말에, 푸로레스코 목사님은 다시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힘을 내어 끝까지 공산당에게 저항할 수가 있었다. 푸로레스코 목사는 대견스런 아들 덕분에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을 배반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살기 위해서 이 세상을 포기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헤맬 때가 많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면서 이 세상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세상 좋은 것에 넘어지고 깨지고 욕심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육신의 소욕에 굴복할 때가 많다. 그만큼 우리 인간은 연약하고 어리석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바로 주님의 도우심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간절히 기도하며 나를 지켜야 한다.    

  누가복음 22장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쓴잔을 앞에 놓고 감람산으로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든다는 말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 없다. 기도는 능력을 받는 원동력이요 세상의 시험을 감당할 힘이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세상만사를 풀어나가는 통로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6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다. 바울 선생은 로마서 14장 8절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철저하게 주의 것이라는 믿음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순간순간 세상 것을 온전히 끊지 못하고 세상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 죄가운데서 허우적거릴 때가 많다.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세상 유혹을 이겨내고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의 길을 가야 한다. 주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하신다. 푸로레스코 목사가 인정에 얽매여 한 순간 예수를 부인하면 자기와 아들의 목숨은 구원하지만 영원한 구원을 잃는다. 그렇듯 십자가는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이를 이겨내야만 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 중심의 인생으로 바뀌고 변화되어야 한다.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가 살아야 한다. 예수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도 장차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를 부끄러워하신다. 주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한다고 했다. 푸로레스코 목사도 아들 덕분에 믿음의 지조를 잘 지켰다.

  베드로는 잠시 시험에 빠져서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였다가 얼마나 가슴치며 통곡하며 회개하였던가.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도 베드로처럼 여전히 주님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배반한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세상의 헛된 철학에 속아서 신앙의 기쁨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헛된 철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믿음의 길, 십자가의 길은 눈물의 길이요 고통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은 분명 고난과 희생의 길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기쁨과 영광이 뒤따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