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학생시절로 기억된다. 산수동 철길을 따라 농장다리를 거쳐 남광주역사 근처까지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었던지 친구들과 큰 소리로 떠들며 걸어갔다. 몸의 균형을 잡으며 철길 레일 위를 걸으며 누가 더 오래 걷는가 시합도 했다. 그때만 해도 철길을 따라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녔기에 철길은 삶의 애환이 깃든 놀이공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철길로 나와 침목을 따라 걷기도 하고 오가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이웃집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적소리 울리며 지나가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따뜻한 우리네 이웃의 정을 전하기도 했다. 이따끔 철로에서 달리는 열차를 향해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려왔다.

  우리는 가끔 별 목적도 없이 남광주역까지 걸어갔다. 그리곤 역내를 둘러보곤 이내 남광주시장에 들러 하릴없이 이것 저것 구경했다. 열무김치나 나물 좌판을 놓고 지나가는 아줌마를 부르며 좋은 김치거리가 있다며 연신 소리를 질러대는 아낙에게서 삶의 고달픔을 느꼈다. 싱싱한 생선이 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목쉰 소리를 내뿜던 아저씨의 고함소리는 끈질긴 삶의 절규였다. 우리에게는 시장바닥을 훑으며 여기저기 구경하다 붕어빵을 사먹으며 남도극장에 들러 삼류영화에 푹 빠져들던 옛날의 정취가 남아있다. 이러한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한 편의 시가 생각난다. 서민들에 대한 삶의 서러움과 일상의 때묻은 흔적이 잘 녹아있다.

  "남광주의 아침은 아욱냄새가 난다. / 시장 바닥에 앉은 아이 업은 아낙의 풍경은 / 멀리서 바라보면 용서를 빌고 싶지만 / 가까이서 눈뜨고 보라 그것은 눈물이다 / 건널목에서 여자 몇이서 깔깔거리고 있다 / 간수는 쌍것들이라 욕해대고 / 공중 목욕탕에 가는 꼬마들도 헤헤거린다 / 중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 다리에 털 많은 쌀집 아저씨는 / 아들놈의 예비군복을 입고 있다 / 대가지가 꽂혀 있는 곳으로 / 다리지도 못한 옷을 입고 / 부인네 둘이서 쌀 몇 되와 몇 푼을 가져간다 / 어젯밤엔 밤하늘에 외상으로 악을 쓰고 / 바락바락 노래 부르기도 한 여자들과 / 오늘 아침 화순 방면에서 온 / 아낙들의 눈물이 아낙들의 설움이다.…이하생략"(박주관의 시 '남광주' 일부)

  이 시에는 남광주역사를 중심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의 삶이 배어 있다.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생활 모습이다. 이는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갖가지 군상이며 삶의 고달픈 모습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역동적 표현이다. 이렇듯 우리 서민들은 그렇게 큰 욕심부리지 않고 막걸리 한 사발을 쭈욱 들이키고 깍두기 한 개 집어먹고 한숨을 내뿜으며 마음을 달래면서 살아왔다.

  특별히 남광주역과 인접한 시장에는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와 배추 이파리가 굴러다니던 곳이었다. 귀여운 강아지나 촌닭을 안고 새 주인을 기다리던 아낙과 촌부가 서성거렸다. 그 곳에는 지금도 시골 할머니의 체취같은 들깻잎 냄새가 난다. 주름진 얼굴을 가진 아저씨에게서 생선 비린내가 나는 정겨운 곳이다. 이 시장통은 옛날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지 못하지만 아직도 그러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끈끈한 삶의 애착과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다.

  한 때는 새벽밥을 지어먹고 화순 능주역에서 남광주역까지 기차로 통학을 했다. 오늘날처럼 냉난방이 안된 객실은 후덥지건 하거나 추웠다.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영어 단어를 외우기도 했고 정확한 의미도 모르면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졸음에 겨운 적도 있었다. 더구나 기찻간에 오르내리며 통학하는 고역은 학생시절의 괴로움이었다. 새벽잠을 다시 안고 조는 듯 마는 듯 먼동이 트면 다시 눈을 비비며 힘들게 학교를 향했다. 선배들이 기차가 서서히 멈추기 위해 더디가면 한쪽 손에 난간을 잡고 달리다 내리는 것이 멋져보였다. 그래서 관성의 법칙을 모른 채 선배들처럼 무작정 따라서 뛰어내려보다 그냥 넘어져 손바닥에 상처를 입은 적도 있다. 지친 몸으로 하교길에 올라 순천행 완행 열차에 몸을 실으면 솜처럼 피곤이 몰려와 광주의 꿈을 꾼다. 이처럼 철길과 남광주역사에는 학생 시절의 아기자기한 추억이 남아있다.

  기적소리만 남기고 사라진 남광주역사와 일부 철로가 사라진 폐선에 현재는 잡초만 무성하다. 하지만 테마가 있는 거리로 새롭게 태어나면 광주의 역사는 새로운 각도에서 또다시 활기차게 살아 움직일 것이다. 광주는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도시다. 생산기반이 취약하여 소비도시요 유행도시로도 이름이 나있지만 세월이 가면 광산업과 함께 이름처럼 빛나는 고을로 거듭날 것이다. 광주는 겉으론 다른 도시처럼 그저 평범하게 보이지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예향의 도시요 백의민족의 혼과 얼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 곳은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주화운동의 민족정신이 흐르는 곳이다. 들판의 잡초처럼 끈질기고 들꽃처럼 풋풋한 냄새를 안고 무등산자락에서 꿈을 꾸며 미래를 키워 나가고 있다. 이 곳은 사라져도 광주천을 흘러 영산강에 이르는 강물처럼 도도히 광주의 이야기를 안고 역사는 흘러갈 것이다.

  이제 남광주역과 철길 폐선 부지는 광주 시민과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환을 다시 생산해 내는 푸른 녹지 공간이어야 한다. 추억을 만들어내는 휴식 공간이요 정다운 길로 거듭나야 한다. 사시사철 상록수가 우거지고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포근한 거리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끼리 자전거를 타고 마음껏 달리며 휘파람 불며 희망을 노래하는 곳이어야 한다. 광주 시민들의 슬픔과 한을 달래주고 기쁨과 낭만으로 승화시키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후세들이 마음껏 뛰놀고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멋진 곳으로 변모되어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단장되는 공간에 자연목이나 자연석으로 아름다운 시를 골라 시비나 좋은 조각품을 세우면 더욱 좋겠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이 곳은 광주의 빛나는 전통정신과 예술문화가 숨쉬는 장이 되어야 한다. 삶의 생동감이 넘쳐흘러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 '덕수궁 돌담길'이나 '몽마르뜨 언덕'같은 명소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철길의 흔적을 걸으며 미래를 그리다』, ‘박욱이’명으로 게재(광주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디자인다올/2008.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