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회 메세지
2008년 여름수양회 첫날 저녁강의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
말씀 / 호세아 11장, 누가복음 15: 11-32
요절 / 호세아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흔한 말이면서도 듣고 싶은 말은 아마도 ‘사랑’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갓 태어난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첫마디가 ‘사랑해’였고, 임종을 앞둔 부모님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 또한 ‘사랑해요’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노래에도, 시와 소설에도 사랑의 내용이 가장 많으며 심지어 국번 없이 누른 114 전화기에서 들리는 첫 마디가 ‘사랑합니다 고객님’입니다. 사랑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알리 맥그로우’와 ‘라이언 오닐’ 주연의 영화 러브스토리는 그중 단연 사랑받는 영화입니다.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이 자신의 죽음을 보고 미안해하는 라이언에게 던질 그 말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게 아니에요.’ 이 말 한마디에 전 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눈물을 훔치며 연애감정으로 병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렇게 ‘사랑’이라는 말이 우리 주위에는 넘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아끼는 내면의 표현이 아니라 알맹이 없는 껍데기처럼, 일회용 컵처럼 무심코 내뱉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볼 호세아서 11장 말씀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러브스토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호세아 11장 1~4절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여 애굽에서 아들로 불러 내셨습니다. 애굽은 죄악의 땅이요, 우상의 땅이요, 이스라엘이 노예로 살던 땅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땅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먼저 다가오시는 일방적인 사랑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렸다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연약하고 경건치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아들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만큼 밀착된 관계가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있어 아들은 자신의 분신이며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든든한 백이요 안식처가 됩니다. 죄의 고통과 삶의 문제 앞에 고통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져야할 모든 죄짐을 대신 담당하시고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생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방향이 없으면 문제가 됩니다. 살만하게 되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게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고 고쳐주기 위함인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안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부를수록 더 멀리하고 바알에게 제사하며 우상 앞에 분향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거룩한 삶을 가르쳤는데 그들은 이를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를수록 바알을 섬기고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행위를 놓고 볼 때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어야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우상 앞에서 분향한 백성들을 어떻게 대하겠다고 하십니까? 8절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우리를 불붙듯이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은 미움과 심판이 아니요 안타까움과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관계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인간관계에서의 사랑은 자신의 욕구에 기초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만났다가 쉽게 헤어집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수님께서는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실험할 일도 가장 많이 주시고 실험실의 잡일도 가장 많이 시켰습니다. 공항에 가실때면 택시타고 가셔도 될텐데 항상 제 옵티마를 타셨고 피곤하셔서 운전대를 못잡을 때면 콜택시를 부르시면 되는데 제게 콜을 날렸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시킨 일을 끝내지 못할 때면 혼쭐이 났습니다. 그나마 우리 교수님은 이정도에서 끝나지만 환경과 윤인호 목자님의 지도교수님은 불호령이 떨어지고 아주 무섭게 야단을 친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제자를 근복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제자를 이용하고 목적대로 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자녀를 향한 마음은 어떻습니까? 부모를 속 썩이고 연약한 자녀 일수록 더 사랑하고 챙겨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2005년 TV 프로그램에 방영돼 세상에 잘 알려진 김진호군은 손이 귀한 집안의 2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적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폐증 환자였습니다. 신체적으로는 건강했지만 정신적인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로 뛰어들고 운전하는 어머니를 신발로 때릴 때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들 옆에서 24시간 함께 하며 자녀를 돌봤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할 수 있는 수영을 가르치기 위해 서울을 떠나 부산체육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습니다.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사랑하는 아들이었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을 때 작년에는 세계정신지체 수영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금메달의 영광을 누리고 세상의 이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는 바로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볼 때 여러모로 징계하고 채찍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매번 음란과 정욕적인 모습에 넘어지고 이기적이고 교만한 모습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기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불붙듯이 사랑하신다 하십니다. 성경에는 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에덴동산에 거하였습니다. 에덴동산은 지상 낙원이었습니다. 사방은 강으로 둘렸고 비손, 베델리엄, 호마노등의 각종 금으로 데코레이션 된 땅이었습니다. 동산에는 각종 나무가 맛있는 열매를 맺혔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 앞에 하나님같이 되고자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으므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담을 당장 심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아~어디 있느냐!’ 부르심으로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무엘하에는 다윗과 그의 아들 압살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통일 이스라엘로서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졌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고 자신이 왕이 되고자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의 가슴에 비수를 꼽았습니다. 압살롬이 이끄는 반란군이 정권을 쥐려고 했을 때 요압의 군대와 에브라임 숲속에서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요압은 반란의 주역이었던 압살롬의 심장을 잔인하게 찔렀습니다. 다윗은 승리하고 돌아온 용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을 잊고 먼저 아들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다윗은 통곡하였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아들아 내아들아”(삼하 18:33).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미움을 품고 반역까지 일으켰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32 절에는 배은망덕한 둘째 아들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나와 있습니다. 한 농촌에 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농장 수 만평이 그의 농장이었습니다. 농사일이 잘되고 수입도 많았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영육 간에 부족함이 없도록 항상 사랑으로 챙겨 주었습니다. 감기에 걸릴 때면 물수건을 이마에 얹혀 주고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매스컴에 들리는 청소년들의 탈선 뉴스를 접할 때면 혹여나 잘못된 길로 빠질까봐 영적인 교육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매주 2회 ‘영적 승리하는 법의 저자’ 김승리 목자님을 초청하여 일대일 말씀 공부를 하였고 주말이면 세계적인 김전도 목자님의 ‘전도, 제겐 생활이에요’라는 주제로 전도하는 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정말로 아버지는 두 아들을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에 몰인정하고 무관심 했습니다. 감사할 것은 다 도외시하고 언제나 모자란 것, 부족한 것, 불편한 것만 들어서 원망, 불평, 탄식을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품에 거하는 것이 너무 불만이었습니다. “말씀공부만 하면 되지 왜 아버지 마음대로 명령을 내려서 순종해라, 주일예배 드려라, 매주 전도해라”하시는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서 ‘왜 이런 고생을 하며 살아야하는가’ 회의심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둘째는 집을 떠나고자 결심하고 아버지께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요구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간청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재산을 나누어서 둘째에게 줬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의 그림자가 비취지 않는 먼 나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돈이 있겠다,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돈을 쓰는 동안에 많은 친구들도 생기고 자매들이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왕자처럼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 쓰듯이 돈을 쓰니 계속 있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농토는 피폐화되고 먹고 살기가 힘들게 되자 둘째 아들도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친구들도 떠나고 좋다고 쫓아다니던 자매들도 떠났습니다. 그가 있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먹고 살길이 없습니다. 호구지책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겨우 얻는 직장이 돼지를 치는 일이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 가장 천한 직업은 돼지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살자니까 별도리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해도 그것도 부족했습니다. 그는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그제서야 아버지가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품이 그리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그 하나만 다시 얻는다면 아들이 아닌 품꾼으로 살아도 기쁠 것 같았습니다. 이에 둘째는 일어나 아버지께로 향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단 번에 둘째아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지치고 상한 모습, 초췌한 모습,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아들을 저 멀리서부터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은 사랑과 연민으로 메어졌습니다.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순간 아버지는 벗은 발로 아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따뜻한 아버지의 이 음성에 둘째의 가슴도 미어졌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15:23,24) 아버지 집은 금세 잔치 집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패인 상처의 깊이는 둘째 아들을 향한 사랑의 깊이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고 품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은 제게도 임하였습니다. 저는 1979년 전남 나주에서 2남 4녀중 막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는 술과 노름으로 전답을 많이 잃으시고 이후 화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려워진 집안에 빚을 갚기 위해 아버지는 광산에서, 어머니는 품팔이로 일을 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출근하시면 저는 초등학생이 아니었지만 막내누나를 따라 학교로 갔습니다. 수업시간에 자주 울고 보채던 저로 인해 누나는 교실 밖으로 나와 저를 달래곤 했습니다. 그러다 옆 동네 교회 사모님의 도움으로 목사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운동회 때, 아버지께서 복부를 크게 다치시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저는 어렸지만 철이 들었습니다. 방과 후면 농사일을 해야 했고, 부모님을 힘들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효자 났다고들 했지만 제 내면은 정욕과 음란함으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보게 된 음란비디오를 통해 저는 정욕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게 생각하고 정욕행위로 몸을 더럽히는 제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고자 소망했지만 제 실력은 전남대 응용화학공학부 보결 18번이 전부였습니다. 160이 조금 넘은 조그만 키에 성적은 보결이요, 얼굴은 30대처럼 늙어버린 제 모습을 볼 때 저도 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저를 먼저 사랑하시고 말씀으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먼저 찾아오시고 ‘물좀 달라’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은 죄와 실패로 어두워진 제 마음을 녹였습니다. 파트 모임과 주일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면 제 내면은 밝아졌고 말씀을 깨닫는 기쁨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0년 전인 98년 이곳 논산 삼천리 여름수양회를 통해 내 죄를 위해 버림받으신 십자가 예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후 영적인 자녀가 되고자 장막생활을 결단하고 새벽기도 훈련과 말씀묵상, 소감 훈련을 통해 육신적인 자아를 깨뜨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바알을 섬기고 애굽을 의지한 것처럼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장막생활과 소감 쓰는 것, 기도생활 등 하나님 안에서의 모든 삶이 저를 얽어매는 올무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 없이 나의 삶을 살 때 육신은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주말이면 학과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자매 뒤꽁무니를 쫓아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상적인 저를 사랑하시어 자전거 사고로 얼굴이 깎이게 하시고 예수님 재림의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잠시 회개하는 듯 했으나 연애감정과 자매사랑의 죄는 단단히 굳은 흙더미처럼 되어 깨지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좌르르 다 흘러버렸습니다. 학과 이 자매 저 자매에게 연애감정을 느꼈고 심지어 센터 후배 목자에게 자매사랑을 구했습니다. 이로 인해 센터에 누룩을 끼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윤여호수아, 한경태 목자님의 책망과 김전도, 조여호수아 목자님의 심방, 이다윗 목자님의 칼바람 났던 세번의 책망과 김바나바 목자님의 부드러움 속에 강했던 책망, 박드보라 사모님의 눈물의 기도는 오만하고 죄악으로 냄새나는 저를 완전히 깨뜨렸습니다. 내면의 온갖 교만과 죄로 돌처럼 굳어져버린 제 자신이 깨졌습니다. 7년동안 신앙생활 잘못 했다는 생각과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 같은 심한 두려움으로 이제 나는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나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17장 15,16절 주일예배 말씀으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고백이 제 고백이 되게 하셨습니다. 과거 자매와 세상 잔재미를 그리스도로 섬겼던 지난날의 과오를 회개할 때 나의 참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제 안에 말할 수 없는 평안함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염치없지만 새롭게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방향을 잡을 때 깨진 흙더미 속으로 물이 빨려 들어가듯 제 내면에 말씀이 빨려 들어왔습니다. 말씀은 죽었던 제 영혼을 살렸고 영혼이 살자 목자로 부르심이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이후 천대현 형제를 비롯한 양들을 일대일 말씀으로 섬기게 하셨고 복음 증거에 쓰임 받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김선 목자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는 다윗팀 12명의 목자 중 넘버 쓰리요, 은혜위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선 목자님과의 믿음의 가정을 통해 이시대 캠퍼스 양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 낚는 어부의 인생을 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처남의 관계인 김준 형제님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게 하시고 양가 가정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저처럼 자기 교만과 정욕으로 병든 이방영혼들을 먹이는 미국 선교사로서의 비전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불붙는 듯한 사랑을 캠퍼스 양들과 이방에 전하는 목자요 선교사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꺼지지 않는 불붙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먼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아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사랑을 줄 것 같지만 생명을 빼앗아가는 세상 문화를 이젠 과감히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