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회 메세지
2008년 여름수양회 주제 1 강 (한충신)
회복시켜주신 예수님
말씀 / 마가복음 5:1-20
요절 / 마가복음 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요즘 정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민심을 회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이 다시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신용 불량자들은 빨리 자신들의 신용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몸이 아픈 사람들은 다시 건강이 회복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좋았던 모습으로 회복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의 해결이 없이는 회복이 될 수 없습니다. 컴퓨터가 고장이 났는데 외부 덮개만 교체하면 컴퓨터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습니다. 내부에 침투한 악한 바이러스를 잡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주신 생령으로 인해 깨끗하고 거룩한 영이 지배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더럽고 악한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더러운 영이 인간을 컨트롤하게 될 때 인간은 비참하게 살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당시 깨끗하고 거룩한 영이 가득했던 그 마음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수천가지의 악한 영에 시달려 비참하게 살던 한 청년이 나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이 청년의 내면을 청소해 주시고 깨끗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를 온전하게 하시고 그의 꿈과 희망과 미래까지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회복의 역사가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오늘 말씀을 통해 악한 영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우리 모두에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Ⅰ. 악령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다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배가 닿은 곳이 공동묘지였습니다. 시간은 가장 음산한 이른 새벽이었고, 멀리서는 늑대 울음소리도 들렸습니다.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온 몸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런 제자들과 달리 터프한 베드로는 떨고 있는 제자들을 놀리면서 자기는 귀신 잡는 해병대에서 잡은 귀신만 15마리라고 큰소리 떵떵 쳤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정적을 깨뜨리는 큰 웃음소리와 함께 한 물체가 무덤사이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우하하하! welcome to Jesus, I waiting for you!” 순간 제자들은 귀신이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귀신이 나타나면 자기가 다 잡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는 가장 먼저 예수님 옷자락을 붙잡고 죽어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는 귀신이 아니라 귀신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겉모양만 보면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동안 씻지 않았는지 장막 형제 목자님들의 발 냄새보다도 더 심한 악취가 진동하였습니다. 시커먼 얼굴에는 긴 머리카락과 수염이 엉망으로 얼굴을 덥고 있었습니다. 옷도 입지 않은 그의 몸에는 여기 저기 상처가 나 있었으며 피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어서나 가야할 무덤에서 살고 있었으며, 틈만 나면 마을로 내려와 괴성을 지르며 돌아다녔습니다. 옷도 입지 않은 채 피를 뚝뚝 흘리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그 사람만 나타나면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이미 거라사 광인의 존재는 사회에서 이슈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00분토론’에서는 ‘괴물 같은 사람,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란 주제로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원인을 진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성장기의 상처로 인한 심리적 압박의 표출’이라고 주장하였고, 사회학자들은 ‘가정 파탄 현상으로 인한 반사회적 행동’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의학계에서는 ‘정신병의 일종인 다중 인격 장애의 특이한 현상’이라 하였고, 광우병대책위원회에서는 ‘드디어, 미국산 소로 인한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경찰청은 비상 대책반을 운영하여 하루 빨리 잡겠다고 발표를 하였고, 곧 이어 경찰 특공대가 거라사 광인을 검거하는데 성공하였다는 뉴스 속보가 나왔습니다. TV화면 속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굵은 쇠사슬과 고랑에 묶여 있는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라사 광인은 이런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괴성과 함께 쇠사슬과 고랑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오기 꺼려하는 무덤으로 향하였습니다. 그 어떤 방법도,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떠한 사회적 규범도, 경찰의 공권력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심리학적 치료나, 의학적인 수술로도 그를 도울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미쳐 날뛰는가 하는 그의 내면 문제에 관심을 갖기보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못하도록 외적 행동만 규제했습니다. 사람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그를 더욱더 반항적이고 파괴적이 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배에서 나오시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이 사람이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 이유는 그 속에 더러운 귀신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귀신, 악한 영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농담처럼 웃고 넘기거나, 공포영화의 소재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귀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는 자들을 ‘악한 영’이라고 말하고 있고, 유다서 1장 6절에는 귀신을 ‘악한 영, 타락한 천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악하고 더러운 영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거라사 광인과 같이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격리시키고 파멸시켜 버립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제가 군 생활을 할 때 하나밖에 없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근육질 몸매에 힘도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 눈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새 부대 내의 사고뭉치가 되었습니다. 고참들은 매일 같이 그의 인격을 모독하고 폭력까지 사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점점 그의 모습은 변해 갔습니다. 저와 둘이만 있을 때면 온갖 욕설로 고참들 욕을 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학을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더니 몇 달 뒤에 정신 이상자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건강했던 친구가 7살의 정신연령을 가진 정신이상자로 돌아온 모습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동기라는 이유로 그와 24시간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같이 병원에 입원도 하고 화장실도 같이 다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틈만 나면 자신을 자학하고 자살을 시도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더러운 영은 분명히 존재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사람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이러한 악한 영들은 어떻게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까? 더럽고 악한 영들은 끊임없이 인간 마음의 문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인간이 죄의 소욕을 품고 죄를 지을 때 악한 영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죄와 함께 마음속으로 들어옵니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악성코드는 언제 침투하는지 아십니까? 야한 동영상을 다운 받거나, 온라인 게임을 할 때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더러운 것을 할 때 더러운 것이 따라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더럽고 악한 영들은 인간이 하는 더러운 생각과 더러운 행동을 타고 마음속으로 침투 합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 인간을 조종하여 그 인생을 파멸시키고자 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너무나도 쉽게 죄를 범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는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제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봅니다. 날로 극악무도한 살인마들이 등장하여 여러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조차 들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경쟁 사회 속에서 지치고 힘들다며 쉽게 포기하고, 마음을 위로한답시고 세상 쾌락을 즐기고자 합니다. 생각 없이 야한 동영상이나, 케이블 TV의 야한 장면들을 보면서 정욕을 즐깁니다. 게임에 빠집니다. 쉽게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을 미워합니다. 혈기를 부리고, 비판합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죄를 짓는 사이 악한 영들은 우리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파괴시켜 나갑니다. 처음엔 가볍게 여기던 것들이 점점 마음속에서 세력이 강해져 사람을 수렁에 빠뜨립니다. 마약에 중독 된 것처럼 점점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비참하게 만들어 갑니다. 나중에 후회하고 이러한 악한 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지만 이 조차도 영혼은 깨끗케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이러한 악한 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차피 질 것이 뻔하니깐 악한 영에게 백기 들고 항복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 대신 싸워줄 최강의 파이터,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Ⅱ. 깨끗하게 회복시켜주신 예수님
거라사 광인은 무덤 사이에서 항상 소리만 지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방법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조차도 이미 자신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생명의 빛, 희망의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라사 광인을 보시고는 단번에 그의 내면가운데 악한 영의 세력들이 그를 지배하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행동만을 보며 그 사람 자체가 원래 못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사람 자체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해결방법이 없다고 포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속의 악한 영의 문제임을 아셨습니다. 악하고 더러운 영들이 이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에 비참하고 더러운 인생을 사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러운 악한 영의 정체를 폭로하고 이 귀신만 쫓아내면 이 사람은 참된 자아로 회복될 수 있다고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사로잡고 있는 더러운 귀신에게 명령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Come Out!"
강력한 예수님의 명령의 말씀으로 인해 악한 영들은 요동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악한 영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드디어 결정타를 날리셨습니다. 다함께 9a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말씀은 거라사 광인의 내면에 있는 악한 영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즉 “네 정체가 뭐냐? 니들이 뭔데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느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귀신은 지금까지 그 사람의 문제를 그 사람 자체의 문제로 보이도록 위장 하였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이 사람을 파멸시키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 앞에서 더러운 세력들은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 앞에서는 어떤 사악한 마귀의 세력일지라도, 그 어떤 어두움의 세력일지라도 그 정체가 온 천하에 다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1서 1장 5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조금도 어두움이 없으시니라”
이로 인해 어둡고 칠흑 같던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강하게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으로 인해 내면의 악한 영들은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집에 있는 바퀴벌레들을 보십시오. 어둠속에서는 자신들의 세상인 양 자기 마음대로 여유 있게 생활합니다. 그러다 불이 켜지면 어떠합니까? 우왕좌왕 어찌 할 바를 몰라 방황합니다. 왜 그렀습니까? 이제 죽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충제를 쏘든, 불로 태우든, 어떻게 해서든 자기들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도망가기 바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라사 광인 속의 악한 세력들도 예수님께서 쏘신 빛으로 인해 우왕좌왕 요동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밝고 환한 빛으로 인해 이제 자신을 숨길 곳도 없었습니다. 이젠 예수님께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드러난 귀신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9b절을 보십시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여기서 군대는 6000명으로 구성된 부대를 말합니다. 즉 이 사람 안에는 6000마리의 떼 귀신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6000마리의 떼 귀신들이 이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들고 죽어가게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악한 영들도 이제 더 이상 그 사람 안에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체가 드러났기에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도망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 속에 있던 떼 귀신들이 어디로 도망을 갔습니까? 옆에 있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돼지들이 광돈병에 걸려 미쳐 날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바다 속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들이 모두 몰사하였습니다.
이 시대는 영적 전쟁의 시대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인간을 공격하여 악한 영들을 마음속에 넣고자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간들을 유혹하여 죄의 수렁에 빠뜨리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파괴시키고 인간을 사단의 노예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러한 악한 영의 세력은 너무 강하여서 우리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의 의지로 수십 번 결단해도 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악한 세력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더 강한 세력의 힘을 덧입어야 합니다. 이렇게 강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강한 귀신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고 인간들을 마귀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히2:14)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6000마리나 되는 악한 영들도 찍소리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말씀 앞에서는 세상 그 어떤 악한 마귀도, 더러운 귀신도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새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힘을 덧입었을 때 악한 영들은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마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효동조기축구회의 축구 시합처럼 백전백승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악한 영들이 떠나게 되자 귀신 들렸던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다함께 15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드디어 이 사람이 온전하게 회복 되었습니다! 내면이 청소되고 그 속에 하나님의 새로운 영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온전해 지고, 단정히 옷을 입었습니다. 머리를 빗고 웃는 얼굴로 예수님 발아래 앉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만 온전케 된 것이 아니라 이제 다른 사람들도 온전케 하는 목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회복의 역사가 다른 사람까지 온전케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어떤 영이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혔을 때에는 자녀들은 정욕에 빠지고, 젊은이들은 타락하고, 아비들은 절망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영에 사로잡혔을 때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아비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은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속은 어떠한 영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 속에 어떠한 영이 존재하고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거라사 광인과 같이 무덤에서 살지 않는다고,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씻어서 깨끗하다며 안도하고 있진 않습니까? 나는 목자라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더러운 영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훌륭하게 보이는 전도 목자님도 사소한 것에 혈기를 먼저 내는 더러운 영이 있습니다. 요셉처럼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현민 목자님도 아직까지 게임을 사랑하는 더러운 영이 존재합니다. 어떤 분은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걱정, 근심의 더러운 영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연애 감정의 더러운 영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간 우리 내면에 어떤 영이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떤 바이러스 침투하여 있는지 진실 된 바이러스 검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더러운 내면을 감추고자 겉모습을 치장하기에 바쁩니다. 보이는 겉모습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가꾸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다 소용없습니다. 컴퓨터 외장이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어도 내부의 CPU가 386이라면 누가 사용하겠습니까? 386은 인터넷도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겉모양이 아닙니다. 내부 사양이 무엇인지 또 무엇이 저장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겉이 아니라 속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고 예수님 앞에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추하고 더럽다며 정죄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회복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회복을 위해서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시는 분이십니다. 13절에 보면 거라사광인의 회복을 위해 희생된 돼지가 2000마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아까워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회복을 위해서는 더 비싼 한우 2000마리도 희생시킬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너무 사랑하사 우리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까지 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더러움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온전히 드러낼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의 레이저를 쏘시고 악한 영들이 떠나가도록 해 주십니다. 본래의 우리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참으로 의미 있고 목적 있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저희들이 이번 수양회를 통해 내면의 어둠의 영이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하므로 건강한 자아로 회복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더러운 인간들을 사랑과 능력으로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을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거라사 광인에게 임하신 예수님의 회복의 사랑은 저에게도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였고 어머니는 이런 가정을 견디시지 못한 채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엄마 없는 가정이 싫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품에서, 좋은 가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위축되게 하였습니다. 소심한 성격에 저는 몸도 약해서 아이들에게 맞고 다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저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이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열심히 공부를 하여 선생님들로부터 인정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능 실패는 저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소망까지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아무런 소망도 기대도 없었습니다. 제 인생은 아무 것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저의 마음속에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혈기만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더러운 세력들로 인해 저는 제 자신도 컨트롤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죄에 넘어지고 매일 같이 정욕을 즐기며 세상의 쾌락을 맛보고자 하는 자로 변해 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회복의 사랑은 이런 저에게도 역사하였습니다. 99년 처음으로 센타에 오게 된 저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환경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웃고 있었고, 무심코 던진 저의 썰렁한 개그에도 박장대소하며 웃어주었습니다. 혈기와 분노만 가득 찼던 저의 얼굴에도 점점 웃음이 찾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의 마음을 청소해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99년 처음으로 참석한 MT수양회에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을 통해 저를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온갖 죄악들로 인해 더럽고 추한 것들뿐인데, 세상도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런 나를 지으시고 기뻐하셨다니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 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되는 말씀 공부로 인해 저의 마음속은 점점 새하얀 도화지처럼 변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인생을 이끌던 정욕, 시기심, 분노, 혈기 등의 세력들이 떠나가고 예수님의 깨끗한 새로운 영이 저의 인생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그럴 때 저의 모습은 밝고 환한 존재로 변해 갔습니다. 어디서든지 밝고 웃음이 넘치도록 분위기를 인도할 수 있는 피스 메이커요, 여러 은사들로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내면의 악령의 찌꺼기가 남아 있을 때 저는 또 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원 없는 전공을 버리고 세상 쾌락을 좇아 살고자 하였습니다. 사단은 이 틈을 노리지 않고 저를 공격해 왔고 저의 마음속은 다시 더러운 영의 힘이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수업을 포기한 채 답답한 마음을 달랜다면서 상대 뒤 PC방, 비디오방을 전전하면서 정욕과 세상 잔재미를 즐겼습니다. 사단은 막막한 현실에 눈을 감게 하고 대책 없이 살도록 마음속에서 교묘하게 노래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