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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1991년12월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생소한 나라 중 하나다.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로 폴란드와 러시아를 사이에 두고 흑해에 인접해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점에 자리잡고 있다. 1992년 우리나라와 수교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다는 점에서 선교 전략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 선교사들이 파송을 꺼리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문이 열리자마자 복음의 씨앗을 뿌리려고 발걸음을 내디딘 사람이 있었다.
김베드로(44) 선교사는 91년 8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 조짐을 보이자마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들어갔다. 한국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 소속으로 이미 1990년 혈혈단신으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와 러시아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사역을 준비하던 터였다. 14년의 자비량 선교 여정은 험난했다. 그러나 눈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키예프를 비롯,오데사 하리코프 드네프르페트로프스크 등지에서 꽃을 피웠다. 언제라도 파송할 수 있는 헌신된 제자 30명을 열매로 맺었다. 현재 매주 130팀이 1대1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 70명이 주일예배에 참석한다.
“인간적으로는 정말 힘들었죠.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타율적으로 움직이고 배급에 익숙해져 있어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전도하고 함께 성경공부를 하도록 이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재정 자립도 쉽지 않았고요. 우크라이나어를 몰라 처음에는 속는 일도 많았죠.”
키예프는 1000년의 유서 깊은 도시다. 300만명의 사람들이 강과 호수로 둘러싸여 있고 숲으로 우거진 아름다운 전원도시 키예프에서 살고 있다. 고대 러시아의 수도로 988년 키예프루스대공국의 블라디미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전 러시아를 기독교화한 역사적인 고장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체코 프라하와 함께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린다.
김 선교사는 키예프국제관계대학에 입학했다. 국제법을 전공하면서 언어를 배우고 매일 전도에 나섰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4년 대우 현지 지사에 직원으로 입사해 재정 자립을 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려는 대우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방침 때문에 제자 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그는 1995년 삼성으로 이직했다가 1997년 독립했다. 현재 페트 원료를 한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우크라이나의 철강을 인도네시아 등지로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키예프대학은 모스크바대학교,레닌그라드대학교와 더불어 구 소련의 3대 대학에 속합니다. 기초학문 분야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줘도 뒤지지 않죠. 우크라이나 최고 수재들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공부합니다.”
김 선교사는 제자 양성의 일념으로 밤낮으로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며 지냈다. 2∼3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제자양성의 기초가 놓였다고 여겼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동안 모였던 20명의 학생들이 모두 떠나버렸다. 한 친구는 모임을 갖고 있는 시간에 선교사 집 물건을 가지고 도망쳤다. 기초가 놓였다고 자만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삶을 살도록 지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 부인도 현지 사정에 따른 스트레스로 세 차례나 유산을 하고 신장염으로 여러 차례 입원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김 선교사는 매일 아침 새벽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는 “사역을 하면서 고통과 고난을 통해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며 “현지인들이 구 소련 지역과 터키 쿠바 등에 선교사로 파송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재우 기자 jwjeon@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