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마태복음 41 강
깨어 있으라
말씀: 마태복음 24:1-51
요절: 마태복음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오늘 말씀은 복음서의 계시록이라고 불려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성경에는 재림에 대해서 1518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말세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상태로 계속해서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별 탈 없이 계속해서 행복하게 영원토록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종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주적인 종말이요, 또 하나는 개인적인 내 인생의 종말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 이 세상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죽어서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말세의 때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랍니다.
Ⅰ. 말세의 징조
첫째로, 종말의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출현하게 됩니다. 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말세에는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해서 거짓그리스도들이 득세하게 됩니다. 통계에 의하면 자칭 구세주가 전 세계적으로 약 300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국에만 약 80명이 있습니다. 자칭 그리스도가 27명, 자칭 하나님이 39명 정도 됩니다. 대표적으로 통일교의 문선명, JMS의 정명석,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신천지의 이만희 등이 있습니다. 전도관의 박태선은 이미 수십년 전에 죽었지만 지금도 그를 하나님으로 믿고 신봉하는 천부교 신자들이 있습니다. 정명석도 그렇게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감옥에 들어가 있지만 지금도 대학생들 가운데 그들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 말세의 징조들입니다.
23, 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사람들은 누가 신기한 이적을 행했다 하면 무조건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미혹하는 영으로 그런 일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출애굽기에도 보면 애굽의 술사들도 이적을 행했잖습니까?
둘째로, 난리와 난리 소문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IBM사의 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인류역사상 약 14,500회의 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그 전쟁의 빈도수가 많아지고 죽는 사람도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20세기 들어서도 세계 제1차 대전으로 1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는 7,800만 명이 죽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얼마인줄 아십니까? 남한의 군인들 13만 5천명, 북한의 군인들이 38만 명이 죽었습니다. 남북한 군인들만 50만 명이 죽었습니다. 여기에 민간인들과 UN군, 소련, 중국군까지 합하면 실로 수백만명이 죽은 것입니다. 지금도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팔레스타인, 체첸, 티벳, 중국의 위그르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죽지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엊그제도 신문에 보니까 러시아에서 체첸의 지도자가 암살당한 뉴스가 실렸습니다. 로리 목자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거의 매일 북핵문제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고 합니다. 로리 부모님들도 전화해서 한국이 안전하냐고 물어보신다고 합니다. 우리만 안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치 않지만 언제 3차대전이 일어날지, 어디서 핵무기가 터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셋째로,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도 이 지구상에서는 5초에 한 명씩의 어린아이가 기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15초에 한 명 꼴로 식수관련 질병으로 죽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물 문제는 심각해질 것입니다. 석유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물 전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날이 갈수록 지진문제도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 닥친 쓰나미 지진때 사망자가 165,000명이었습니다. 실종자까지 합치면 30만 명입니다. 작년 5월 중국 쓰촨성 지진 때에 7만명이 죽었습니다. 지진도 무섭지만 지진후유증이 더 무섭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고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집중호우가 쏟아져서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기고 건물이 파손되고 사람이 죽었습니다. 어제는 또 강풍이 불어서 힘들게 했습니다.
넷째로, 신자들에 대한 핍박이 심해집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요즘도 선교지에서는 순교를 당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터어키에서 김주찬선교사님이 잠시 우리 센타에 오셨습니다. 제가 95년에 터어키에 갔을 때에 그분이 에베소지역을 가이드해 주셨습니다. 한국선교사님이 섬기시는 조그만 지하교회가 있다고 해서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하홀이 움푹 패여 있었습니다. 폭탄테러를 당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계신 선교사님은 그곳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슬람권에서 순교의 각오로 선교활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 보아서 알지만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기독교를 심하게 핍박하지는 모릅니다. 요즘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를 많이 하잖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댓글에 칼빈이 칼빈 소총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는 글을 올려 놓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기독교를 모독하고 신자들을 핍박합니다.
다섯째로 말세에는 죄의 정도가 심해집니다. 인류역사는 죄의 역사요, 항상 죄악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말세의 때에는 죄의 정도가 아주 심해집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람이 사람인 것은 그래도 인정이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세의 때에는 사람들이 정이 없습니다. 사랑이 식어집니다. 오직 물질이 최고입니다. 쾌락이 최고입니다. 돈과 쾌락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합니다.
미국의 문화 비평가 닐 포스트만(Neil Postman)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문화를 “죽도록 즐기기”문화라고 했습니다. amusing themselves to death. 즐기고 즐기다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 청소년들 중에는 며칠동안 게임만 하다가 그대로 게임방에서 죽는 것이 소원인 학생도 있다고 합니다. 손봉호 교수는 오늘날 젊은 세대를 가리켜서 ‘배고픈 세대(hungry generation)’가 아니라 ‘화가 난 세대(angry generation)’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내면에 향락욕구가 있어도 그것을 절제하고 참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배고픈 문제가 해결되고 나자 인간의 향락욕구를 절제하고 억누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조그만 책망을 하고 욕구를 억누르면 화를 내면서 달려듭니다. 요즘은 눈만 돌리면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들이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전 세계를 드나들며 죄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TV, 영상문화를 가리켜서 ‘눈으로 씹는 껌’이라고 했습니다. 껌은 어떻습니까? 처음에 씹을 때는 단물이 나오죠. 조금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여지없이 버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껌을 찾습니다. 요즘 아무리 인기있는 드라마도 몇 달을 넘기지 못합니다. 극적인 재미가 없으면 시청자들이 지루해서 견디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계속해서 기발한 스토리들을 만들어냅니다. 시청자들에게 계속해서 흥미와 자극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나갑니다. 불륜, 폭력, 향락, 방탕. 이제는 동성애 코드로 간다고 합니다. 갈 때까지 가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 범죄가 얼마나 흉악합니까? 기독교가 싫다고 괜히 교회 갔다 나오는 사람을 칼로 찔러서 죽입니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이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 패스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말세입니다.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이 세상을 보고 말세라고 말들 합니다.
디모데 후서 3장에 보면 바울이 말세를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38절을 보십시오. “홍수 전까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종말이 오는 그 순간까지 먹고 마시고 죄를 지으며 방탕함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런 말세의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Ⅱ. 말세를 대비하는 삶
첫째로, 인내해야 합니다. 13절을 같이 읽어 봅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시대가 불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불안하기 때문에 빨리 안전한 곳으로 이민을 가야하지 않는가? 생수와 라면을 사재기 해 두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경쟁적이고 불안한 시대에 성경만 붙들고 있으면 되겠는가? 세상 물정 모르고 1:1하고 양들만 쫓아 다녀서야 되겠는가? 나도 정신차리고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세의 때에 우리는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중심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별일이 있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복음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사상도 변하고 철학도 변하고 이데올로기도 변했습니다. 유행도 변하고 문화도 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은 우리의 확실한 소망이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세의 때일수록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복음신앙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15:58절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 앎이라”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중심을 굳게 지키고 있으면 반드시 주님의 영광을 볼 날이 올 것입니다.
둘째로, 만국 복음전파에 힘을 써야 합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하나님의 관심은 만국복음전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잃어지지 않고 다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세의 때일수록 세계선교 사명에 더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무엇을 했습니까?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산에 올라가서 흰 옷 입고 노래 부르고 자기들끼리만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 후서 4: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우리도 이 말세의 때에 한 사람, 한 민족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온 힘을 다하여 세계선교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태어나서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민족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중앙 아시아 모슬렘권등을 비롯해서 앞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나가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4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35절에 보면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11절에 보면 천사들이 말하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30절을 봅시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십니다.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군천사들을 대동하시고 오실 것입니다. 그때에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실 때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오셨습니다. 갓난아이로, 마굿간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때는 구원자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조용히 오셨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오실 때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그 예수님의 엄위하신 심판을 피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도 무슨 사건이 터졌다 하면 CCTV에 다 찍힙니다. 자기는 감추기 위해서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를 쓰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찍히고 차 넘버가 찍히고 핸드폰 조회내역이 다 찍히고 지문이 찍혀서 결국은 붙잡힙니다. 그래도 세상에서는 CCTV가 다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안 찍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CCTV에는 안 찍히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CCTV는 눈에 보이는 것만 찍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CCTV는 우리의 속 마음까지 다 찍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 마음의 의도까지 다 아십니다. 그래서 마지막날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다 평가하실 것입니다.
40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을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는데 한 사람을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택시운전자가 올라갑니다. 그러면 못 올라가는 승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봇대에 부딪혀서 죽습니다. 평생을 같이 살아온 부부도 아내는 올라가는데 남편은 못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날에는 남편이 아무리 아내를 구박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나 잡아 봐라” 할 것입니다. 그날에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남몰래 눈물 흘리며 한 양을 위해서 충성했던 사람들은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님 눈을 피해서 몰래 도망 다니고 수양회 가는 날 핸드폰 꺼놓고 어디로 잠적하는 양들은 다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날을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정말 제자를 사랑한다면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겠습니까?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어 버리면 힘써서 공부 안하기 때문에 정말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이라면 시험문제 안 가르쳐 줍니다.
우리주님도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기 때문에 재림의 날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재림의 날짜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괜히 머리 굴려서 그 날을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 오시더라도 떳떳히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4, 4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충성된 사람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입니다. 잔머리 굴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했으면 우직하게, 절대적으로 그것을 믿고 항상 깨어서 준비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때를 따라 양떼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 누가 보든 안 보든, 누가 인정해 주든 인정해 주지 않든, 열심히 1:1 하며 양들을 섬기고, 수양회 때마다 말씀이든, 특송이든, 연극이든, 실무일이든 맡기면 맡기는대로 불평하지 않고 감당하는 사람. 그 사람이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천국 면류관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이여” 그러나 무슨 일을 맡기면 항상 못 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 없다. 바쁘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자고 해도 아마 바빠서 나중에 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48절을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고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주님이 오실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많은 남자들이 돈 벌러 사우디에 갔습니다. 이때 두 주부가 있었는데 다 남편이 돈 벌러 사우디에 갔습니다. 아내들은 매달 남편이 사우디에서 보내주는 돈을 저축하며 장차 집을 사고, 아이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킬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뜨거운 열사의 나라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지” 하면서 두 주부는 다 꼬박꼬박 저축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도 없이 심심할텐데 춤추러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한 주부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남편이 땀 흘려서 보내주는 피 같은 돈인데 그 돈으로 헛짓하면 안 되지” 하면서 딱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주부는 호기심이 생각했습니다. “딱 한번 만 가보지 뭐” 그러나 한 번이 두 번 되고 마침내 제비족에게 걸려 들어서 통장의 돈을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5년의 세월이 지나서 남편이 돌아오는 때가 되었습니다. 남편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여보, 그동안 수고했지. 나도 없이 살림하고 자식들 키우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소. 드디어 다음 달이면 내가 고국으로 돌아가오. 이제 내가 돌아가서 당신 더 이상 고생 안 시킬게. 우리 자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삽시다” 이때에 한 아내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남편이 다시 올 것을 기다리면서 깨어서 충성스럽게 가족을 돌본 아내는 너무너무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달력에 남편이 돌아오는 날을 빨간 볼펜으로 칠해 놓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드디어 남편이 오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 아내는 미장원에 가서 파마도 하고 오랜 만에 예쁘게 화장도 하고 그동안 못 사 입었던 원피스도 사 입고 김포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항 출입구에서 남편 나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은 너무나 기뻐서 얼싸안고 즐거워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 엄마를 얼싸안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아내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나서 괴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가 무슨 낯으로 남편을 맞이한단 말인가? 내가 왜 그때 친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까? 내가 미친년이지,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 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고민고민하다가 남편이 돌아오는 날 한강다리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짜 있었던 실화입니다. 두 아내 다 힘들었겠죠. 남편없이 자식들 키우며 가족들 돌보며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힘들어도 유혹을 이기고 깨어서 남편 올 날을 기다리며 준비한 아내는 마침내 기쁘고 행복한 날이 왔습니다. 남편이 왔을 때에 떳떳이 맞이할 수가 있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깨어있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간 아내는 남편 볼 낯이 없어서 비참한 죽음으로서 인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평소에 깨어서 영적인 투쟁을 잘 하고 때를 따라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목자생활을 잘 한 사람은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더디 오시리라 생각하고 주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고 은밀하게 죄를 즐기며 산 사람들은 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맨 마지막이 재림 신앙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절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지금 주님께서 오시더라도 주저함이 없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외칠 수 있는 충성스러운 주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