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5 강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

말씀: 요한계시록 4:1-11

요절: 요한계시록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가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우리는 그동안 요한계시록 2,3장을 통해서 소아시아 7대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펴 본 것 처럼 당시에 교회에는 훌륭한 점도 많았지만 문제점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천상 교회의 모습입니다. 2,3장에 나오는 지상교회와는 차원이 다른 천상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한 음성이 들려서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서 천상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아 이리로 올라오라’ 사도요한을 천상교회로 초청하셔서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지금 이 세상에 수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이 지상교회들만 가동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천상교회가 존재하며 천상교회가 힘있게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이 본점입니다. 이곳은 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의 눈을 떠서 천상교회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곳이 우리가 들어가게 될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교회요, 지상교회를 지탱해주고 있는 Power station, Headquarter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지만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말씀의 깊은 세계, 천국의 신령한 감격과 기쁨의 세계를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송명희 시인도 그렇게 찬양했습니다.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늘의 커텐을 잠깐 젖혀 주시면서 “이리로 올라오라” 그렇게 하셔서 우리가 그 천국예배에 참예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특권입니까? 이렇게 할려면 2절 말씀처럼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찬양을 부르는 동안에, 말씀을 듣는 동안에, 기도하는 동안에 성령의 감동하심이 임해야 합니다.

 

찬양을 부르면서 하늘문이 열리는 감격을 체험하고 싶지 않습니까?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충격이 있어야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연합하는 영적인 환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최소한 10분전에 예배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을 드려서 주님께 찬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들을 때에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주시기 원하시는가? 기대감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파숫군이 새벽을 기다림같이,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매주 예배 때 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체험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A W 토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의 실패는 예배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한데서 시작된다” 저는 요즘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잠기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예배를 통해서 하늘 문이 열리고 닫힌 귀가 뚫리고, 막힌 심령이 무너져 내리는 그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배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예배가 되겠습니까? 얼마나 사모하는 예배가 되겠습니까? 이를 위해서 우리 다함께 노력합시다.

 

저도 이 예배에 생명을 걸고자 합니다. 이 예배에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주님의 능력이 임하고, 주님의 축복의 단비가 쏟아지는 그런 놀라운 은총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2009년 표어 중에 첫 번째가 역동적인 예배잖습니까? 우리 가운데 이런 예배에 갱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당시에는 저희 집안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제사를 얼마나 정성껏 준비하는지 모릅니다. 음식도 정갈하게 풍성하게 준비하고 옷도 깨끗이 입고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한 밤중에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올려드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죽은 조상신을 섬기는 세상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사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들이 준비된 마음이 없이 예배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예배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천상교회의 예배모습을 살펴 봅시다.

 

다같이 2,3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같더라” 천상교회의 맨 중앙에는 하늘 보좌가 있는데 그 보좌 위에 하나님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곳에서 좌정하사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세상역사의 핸들을 잡고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지상에서는 로마의 황제가 보좌에 앉아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온 세계가 벌벌 떱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하고 또 두려워합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는 신으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천상에 올라가 보니 정말 높은 보좌에 앉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3절에 보면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무지개같고 녹보석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벽옥은 티없이 맑은 보석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징합니다. 홍보석은 붉은 빛 나는 보석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의미합니다. 녹보석은 푸른 빛으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를, 그리고 무지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상징합니다. 노아의 홍수사건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보여 주시며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자비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내려다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황제의 왕궁에 들어가 보면 온갖 아름답고 진기한 보석으로 장식해 두었습니다. 황제가 앉는 자리와 집무실, 바닥과 천장에 이르기까지 휘황찬란한 대리석과 보석으로 장식을 해 두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만큼 황제가 존귀한 자요, 영광스러운 자요, 그의 통치가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 보니까 정말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완전 휘황 찬란. 우리나라 경복궁은 거기다 대니까 어디 시골 면사무소 면장실 같았습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지만 왕들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로마황제나, 프랑스 왕들 다 그렇게 탐욕스럽고 부패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왕권은 오래가지 못 했습니다. 음란과 방탕과 부패로 말미암아 스스로 붕괴되든지 더 힘센 자들에 의해 정복당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당시에 세계는 바벨론제국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의 통치권은 바벨론 왕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한 큰 신상이 나타났는데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종아리는 쇠요, 발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신상이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신상은 각 시대마다 세계를 지배하게 될 강대국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신상이 한 뜨인 돌에 의해 박살이 났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세상의 강대국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세상의 강대국들이 좌지우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그렇지 않습니다. 저 하늘성전에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고 계십니다. 모든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0:2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산 자는 어떻게 됩니까? 느부갓네살왕이 교만하여졌다가 7년 동안 소처럼 풀을 먹으며 짐승같이 생활한 것 처럼 비참하게 됩니다. 그의 후계자 벨사살 왕은 귀족들 천명을 초청해다가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훔쳐온 여호와의 기명들에다가 술을 따라 먹으며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분노하사 그날 밤에 죽게 하시고 그의 나라는 메대에게 패망하게 하셨습니다.

 

열왕기서에 보면 아합과 이세벨이 왕위에 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릅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잡아 가두고,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고, 그를 돌로 쳐 죽입니다. 이웃나라의 영토를 빼앗고자 사돈인 남유다의 왕 여호사밧까지 교묘하게 전쟁에 끌어 들입니다. 자신은 평민 복장으로 변장을 하고 사돈은 왕의 옷을 입혀서 전쟁터의 맨 앞에 내 세웁니다. 얼마나 잔머리를 굴리며 사악한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사돈인 여호사밧은 살고 자신은 적군이 쏜 오발탄에 맞아 죽고 맙니다. 아합의 딸 아달랴도 아버지를 닮아 손자들을 다 죽이고 자신이 여왕이 됩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 사위인 제사장 여호야다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 참 신기합니다. 세상 왕들이 높은 보좌에 앉아 자신의 힘과 지혜를 자랑하며 세상 역사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왕권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전두환, 노태우씨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후에 그 비리가 다 드러나고 말년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 앉으사 역사의 키를 친히 운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총사령관이 되셔서 폐할 자를 폐하시고 세울 자를 세우십니다.

 

요한이 이처럼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에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 마음에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결코 미력한 존재가 아니로구나! 세상에 악한 지도자들이 아무리 불의한 일을 일삼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에는 전혀 손상됨이 없구나! 아무리 이 지상 교회가 핍박을 당하고 짓밟히는 것 같지만 천상교회는 여전히 영광 가운데 존재하고 있구나! 하늘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이 지상교회를 친히 보호하고 굳게 붙들고 계시는구나! 하는 확신을 갖지 않았겠습니까?

 

더구나 그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는 누가 앉아 있었습니까? 다같이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보좌에 둘러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여기에 나오는 이십 사 장로들은 구약과 신약교회의 성도들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이 땅에서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많은 시련과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에게 붙잡혀 사자밥이 되기도 하고 지하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네로나 도미티안 황제들은 성도들을 붙잡아서 그 몸에 아스팔트유인 코르다르 기름을 발라서 하루종일 불태워 죽였다고 합니다. 세상에 얼마나 불쌍하고 억울합니까? 사도 요한 자신도 90이 넘는 나이에 밤모섬에 붙잡혀 와서 돌을 깨고 나르는 중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주여! 이것이었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 약속하신 것의 결실이 이것이란 말입니까?” 이런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오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주님을 위해서 청춘을 바쳐 헌신했는데 현재 나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세상에서도 별 볼일 없고 그렇다고 영적으로 많은 열매를 맺은 것도 아니고. 이런 내 자신을 바라보면 손해의식이 들고, 반발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 지상 교회에서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했던 성도들이 지금 어디에 앉아 있다구요?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빛나는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는 지하교회에서 숨어 지내느라 누더기같은 옷을 입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거지같은 모자를 눌러 쓰고 다녔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창에 찔리고 채찍에 맞아 피범벅이 된 옷 그대로 땅에 묻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눈 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머리에 찬란한 금 면류관을 쓰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는 먼저 간 모세, 엘리야를 비롯해서 먼저 순교를 당한 예수님의 사도들,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도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 한나 사모님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많은 시련과 질병으로 고생을 참 많이 하셨는데 천국에서 해같이 빛난 얼굴을 하고 처녀 때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후배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자들의 진정한 소망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5절을 봅시다. 그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퍼져 나왔다고 했습니다. 우르릉 쾅쾅 번쩍!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보고 계시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심판의 칼을 드십니다. 하나님은 그 앞에 켜진 일곱 등불로서 온 세상을 샅샅이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밀실에서 어떤 악한 일을 도모하고 있는지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서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찍고 계십니다. 6절에 보면 보좌 앞에 수정같은 유리바다가 펼쳐져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서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나 보이죠. 마찬가지로 수정같이 맑은 유리바다 앞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밝혀지게 됩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는 네 생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생물은 사자와 같고, 송아지와 같고, 독수리와 같고, 사람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생물들은 천사들로서 하나님을 보좌하고 있었습니다. 사자와 같다는 것은 용맹함을 의미하고, 송아지와 같다는 것은 부지런함을 상징하고, 독수리와 같다는 것은 빠르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과 같다는 것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보좌하고 있는 천사들이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것들을 다 취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를 지녔습니다. 또 그 안팎에는 눈들이 가득했습니다. 날개가 여섯이나 되니 천사들이 못 가는 곳이 없습니다. 눈이 안팎에 달렸으니 못 보는 것이 없습니다. 요즘도 무슨 사건이 났다 하면 CNN 기자가 즉시 날라가서 카메라로 찍어서 전 세계에 전송을 하잖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천사들은 어떠하겠습니까? CNN이나 YTN 기자들이 가지 못하는 곳도 다 가서 취재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찍어서 즉각즉각 하나님께 보고를 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카메라망을 피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1:1 펑크 내고 원룸에서 문 잠가놓고 이상한 것 보고 있는 사람도 다 찍으십니다. 반면에 기도실에서 한 양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 모습도 다 취재하십니다. 저 아프리카 오지나, 추운 시베리아 땅에서 현지인 한 양을 돕기 위해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도 다 보고 하나님께 보고 합니다. 이처럼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 성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보호해 주고 계십니다. 성도들의 헌신과 희생의 기록파일을 일일이 작성하여 마지막 날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변호해 줄 것입니다. “성도 누구누구, 이 사람은 부모님의 핍박과 친구들의 냉대를 무릎쓰고 목자로서 충성하며 많은 열매를 맺고 여기에 왔습니다” 그리하면 우리 주님께서 아름다운 의의 옷을 입혀 주시고 영화로운 금관을 그 머리에 씌워 주실 것입니다.

 

이번 유럽수양회에서는 지난 40년 동안 독일역사에 헌신하신 선교사님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초창기 개척역사에 기초를 놓고자 했을 때에 많은 수고와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과 같은 유럽 역사의 결실이 있기까지는 그분들의 헌신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땅에서도 이처럼 수고하고 헌신하는 분들에게는 상이 클진대 하물며 천국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영광의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사도요한도 이 소망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18절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나라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이 땅에서 헌신봉사하며 충성하는 것들이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8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시라” 천사들은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10절에 보면 24장로들도 세세토록 살아계실 하나님께 면류관을 벗어 드리며 경배를 하였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24장로들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온 우주와 세상역사를 친히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을 돌려 드렸습니다. 천사들과 장로들의 찬송소리는 너무나 웅장하고 영화롭고 장엄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상교회의 예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요한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그 영이 들려져서 이 천상교회의 예배하는 실황에 참여했을 때에 얼마나 감격이 되었겠습니까? 요한은 이 감격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아픔과 서러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불신과 회의와 인간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넉넉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 소망가운데 믿음의 길을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석 때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만나는 것도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고 그 분을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가 어떤 예배를 드리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생활의 내용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가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는 무슨 공연이나 콘서트가 아닙니다. 예배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오는 것이지 무슨 공연 관람하듯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관중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왕 천국에 갈 바에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24장로들과 같은 영광스러움에 참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배에 손님이 되지 말고 예배의 영광에 참여하는 주인공이 됩시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신앙생활에 승리한 분들은 하나같이 예배에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크게 칭찬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누리는 복의 근원으로 인을 치셨습니다. 모세는 항상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던 자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회막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에 그 밖에서 충성스럽게 그 예배에 동참하던 자였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기쁨으로 예배하며 최상의 찬양을 올려드렸던 자였습니다. 그는 온 몸으로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였습니다. 그는 어찌하든지 여호와의 성전을 지어서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자 모든 환경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지 않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땅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면 당장에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이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문을 열어놓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비밀 커텐을 열어 주셔서 왕이 꾼 꿈도 알아맞히고 그 뜻을 해석하는 놀라운 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성이 얼마나 빛나고 탁월하던지 굶주린 사자들도 감히 그를 향해서 입을 벌릴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과 함께 예배에 동참했던 세 친구들도 풀무 불 가운데서도 머리카락하나 타지 않을만큼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쓰임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한 사람들은 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예배가 살아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마음으로 감사드리는 예배, 나의 모든 영광을 벗어 드리며 경배하는 예배가 되게 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만나는 감격이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 영혼이 하늘에 끌어 올려져서 주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영의 눈을 떠서 천상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랍니다. 이로서 비록 우리의 예배가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지만 천상의 예배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감격은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이 천상교회의 모습을 닮아가는 그런 교회가 되어질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