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출애굽기 1 강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니

말씀: 출애굽기 1:1-22

요절: 출애굽기 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인침을 받는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출애굽기는 구원의 책이요, 언약의 책입니다. 평생 죄의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가르쳐 주는 소중한 책입니다. 오늘 출애굽기 1장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들어가서 번성케 되는 과정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요셉의 후광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단계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자손들이 처음 애굽 땅으로 들어갔을 때에 숫자가 몇 명이었습니까? 모두 7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야곱과 12아들 그리고 며느리, 손자 손녀들까지 포함해서 70명 정도 되었습니다. 한 가족으로는 70명도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표는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한 나라, 한 민족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원하셨습니다. 온 세상에 모범이 되는 백성, 모든 백성들이 우러러 보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택하셨고, 이삭과 야곱을 키우시고, 요셉을 미리 애굽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의 신임을 받게 하시고 고센 땅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형님들 가족들을 다 초청하게 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요셉의 은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전혀 거리낌없이 야곱의 족속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대 환영이었습니다.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특히 애굽은 당시 세계에서 최 강국이었기 때문에 70명 정도의 한 가족은 전혀 위협세력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의 후손들은 완벽하게 보호된 환경 속에서 400년 동안 심히 번성하고 그 숫자가 많아졌습니다. 한 가정이 얘들을 한 10명 20명씩 낳은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서 애굽이라는 환경은 마치 비닐하우스와 같았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마치 상추씨가 자라듯이 야곱의 후손들은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출애굽을 할 때에 숫자가 200만 정도가 된 것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번성하게 되었는가 짐작이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와 뜻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본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딸 자식 하나 없이 힘들게 믿음의 출발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에게 총 6번에 걸쳐서 자손 번성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현실은 자식이 하나도 없는데 하늘의 뭇별처럼,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이 언약의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창세기 32:10절에 보면 야곱이 요단강을 건너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갈 때에 지팡이만 가지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믿음의 조상들은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살았을 때에 400년이 지난 후에는 거대한 민족을 이룰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역사의 비밀을 배웁니다. 하나님 역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기 때문에 인간의 예상과 기대를 초월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들만큼 거목이 된다고 하셨습니다(막4:27, 눅13:18).

 

우리 UBF 역사도 50년 전에 이 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 두 분이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오대양 육대주에 얼마나 많은 UBF 선교사들과 목자들이 있습니까? 중남미 역사도 그렇습니다. 제가 UBF 처음 나오던 날 중남미에 첫 선교사를 파송하던 날이었습니다. 저희 광주센타 출신인 강노아 선교사님이 과테말라 지부장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중남미가 척박한 광야와 같았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선교역사가 너무 힘들어서 캠퍼스 미션을 떠나서 교회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한 명, 두 명 선교사가 파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인구 100만명 이상 되는 나라 중에, 중남미 33개국 중에 30개국이 개척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현지인들이 지부장이 되어서 한 나라를 개척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일예배가 100명이 넘는 센타들이 많습니다. 제가 멕시코 과달라하라, 멕시코시티, 베네주엘라 센타를 방문했는데 양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리가 부족했습니다. 그곳 센타들은 한 명이 센타를 나오면 부모, 친척, 사돈네 사촌까지 다 데리고 나옵니다. 나이 50, 60이 되신 분들도 캠퍼스에 나가서 전도를 해서 양들을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베네주엘라에 서요한 선교사님은 제가 안암센타에 있을 때에 제가 돕던 팀원이었습니다. 그때는 양이 한 명도 없던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센타에 양들이 100명이 넘습니다. 교수 목자가 4명이나 됩니다. 그래서 새롭게 한 센타를 개척했는데 그곳도 벌써 30명이 되어서 건축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여기 나오는 7절 말씀이 실감이 났습니다.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불과 20년 만에 그처럼 번성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50년, 100년이 되면 얼마나 더 많아지게 되겠습니까?

 

우리 조 에스라 목자님도 자신이 처음 예수님 믿을 때에 오직 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부모님과 동생들 가족까지 합해서 30명이 넘는 수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일가친척 중에 아무도 믿는 자가 없었는데 이제는 친척들 중에 교회 다니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장례예배, 추도예배 드려 달라고 저에게 부탁하는 친척들이 많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믿음 생활한다고 핍박했는데 요즘은 우리 집안에 목사님이 나왔다고 아주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을 가집시다. 지금 나 한 사람이 믿음 중심 지키고 사는 것 같지만 장차 나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과 같이 수 많은 믿음의 자손들이 번성케 될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올해 점점 생육하고 번성해서 많은 양들이 몰려와서 차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CBF, BBF도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자녀들도 많이 많이 낳으시기 바랍니다. 일본 나가사키에 전다윗 선교사님은 자녀들이 7명입니다. 시카고에 Ron Ward 목자도 6명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학대를 받는 단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숫자가 많아지자 이에 제동을 거는 세력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입니다. 8, 9절을 봅시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번성하고 강성해졌으면 대 애굽 제국의 바로가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창세기 12장에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서 아브람이 애굽으로 피신을 갔습니다. 그때에 아브람은 애굽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까 두려워서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결국 아내 사래를 바로에게 빼기고도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수습해 주시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사라와 생이별을 하고 홀애비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당시 아브람에게 있어서 애굽은 쳐다도 볼 수 없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4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가 오히려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대 애굽제국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존재를 두려워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와 일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65년 전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식민 통치를 받았습니다. 지난 주 신문에 보니까 태평양 전쟁때 우리나라 청년들이 5만명이나 미크로네시아라는 섬에 끌려가서 강제노역을 당하다가 80% 이상이 폭격으로 죽었습니다. 불과 2,30년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일본에게 뒤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전자산업이 얼마나 놀라웠습니까? 일제 카셋트, TV하면 꼬박 죽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삼성, LG 제품이 일본 제품을 앞서고 있습니다. 이번 동계올림픽도 한국은 금메달이 6개인데 일본은 노 골드입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대결에서도 월등한 차이로 김연아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일본은 우리를 결코 깔보지 못합니다. 이제는 우리를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개인이나 국가가 위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읍시다. 하나님을 의뢰합시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강성케 하실 것입니다.

 

11절을 봅시다. 바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억압정책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바로는 애굽에 대대적인 건축사업을 벌여서 그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제 동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두 나와서 흙을 이기고 벽돌을 굽고 벽돌을 나르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바로는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혹사를 당하면 힘들고 피곤해서 출산율이 떨어질 것이다” “건축하다가 사고로 죽는 사람도 많고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겠지. 체력이 약해져서 힘을 못 쓰겠지”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1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게 웬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더 번성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힘든 노역을 많이 시키니 히브리 남자들은 특별히 운동을 하거나 바디빌딩을 안 시켜도 몸이 람보처럼 강건해졌습니다. 여자들도 매일 산에 가서 나무 베고 장작 패고, 돌 나르고 공사판에서 일하다 보니 팔뚝이 역도선수 장미란 처럼, 스케이트 선수 이상화처럼 엄청 굵어졌습니다. 그래서 얘들을 쑥쑥 더 잘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 나가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짓밟고자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억압하고 무시하고 짓밟는 학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환경이 좋아야 잘 되고, 큰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편안한 환경 속에서 배불리 밥 잘 먹고 아무 고생없이 성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학대받고 고생하면서 인생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 강하고 번성하고 창성케 된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세상 권력자들이 신자들을 학대하고 짓밟고자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17세기 영국 국교회가 아무리 청교도들을 핍박하고 영국국왕에 굴복시키고자 학대를 했지만 안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바다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에 가서 더 큰 나라를 세워 버렸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아무리 교회를 핍박하고 기독교의 씨를 말려 버리고 했지만 안 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의 신자들이 1억이 훨씬 넘는다고 하잖습니까? 저는 이번에 중국에 조아브라함 선교사님으로부터 작년 역사에 대해서 보고를 받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작년 여름수양회에는 총 39명이 참석했다고 했습니다. 수양회 때에 은혜받은 양 10명이 세례를 받았답니다. 작년 한 해 총 15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센타보다 더 많은 양들이 세례를 받는 것이죠.

 

니에티엔제 형제는 경찰 간부였는데 리수 자매와 이혼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할지역에서 한 사건이 터져서 방송에 나오는 바람에 그는 일반 경찰로 강등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니에티엔제 형제가 마음이 겸손해져서 두 부부가 다시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혼상태였던 이 부부가 다시 재결합하는 결혼식을 치루었습니다. 이때 하객이 200명 참석하였는데 조아브라함 선교사님이 주례를 하면서 간증집회처럼, 부흥회식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신랑신부뿐만 아니라 참석한 대부분의 하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감동의 역사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참석한 하객 중 50명이 경찰이었답니다. 저는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경찰에게 잘못 보이면 큰일 나잖아요. 그런데 조아브라함 선교사님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결혼식 겸, 부흥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때에 공안에 잡혀간 것이 아니라 그곳에 참석한 경찰들이 은혜 받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쿰밍 UBF는 리샹롱 목자 가정을 캠퍼스 선교에 집중하도록 파송하였습니다. CBF 주일학교도 시작하였는데 10명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그 곳 여름수양회를 힘써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이처럼 중국이나 중남미, 아프리카등 힘들고 어려운 지역에서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 곳에 가보면 결코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아직도 선교의 자유가 없고 여러 가지 위험한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중남미 지부장 중에서도 에쿠아도르에 김안드레 선교사는 은행에 갔다 오다가 강도들에게 둔기로 얻어 맞았습니다. 그래서 돈과 여권을 빼앗기고 잠시 기절한 상태에서 납치될 뻔 하였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서 도망 나와서 큰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다음날 대사관에 가서 여권을 재발급 받아서 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순교신앙과 선교 열정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활발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안정된 본국보다 핍박과 시련이 있는 힘든 선교지에서 더 부흥하고 번성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선교사님들이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고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환경을 탓하지 말고 힘써 기도하므로 더욱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시다.

 

사단이 하나님역사를 시기하여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학대하고 핍박하고 못살게 굴지만 결코 그들이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핍박을 선으로 바꾸사 더 번성하게 하시고 더 믿음이 견고하게 하시고 믿는 자들의 수를 다하십니다. 사도행전 역사도 보십시오. 순 핍박의 역사입니다. 베드로나 사도바울이 가는 곳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순한 양들이 아니고 핍박의 세력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UBF 역사도 끝없는 핍박과 비방과 시련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임이 망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난 50년 역사를 살펴보면 가장 핍박이 심하고 위태위태할 때에 기도가 뜨겁게 살아 있었고 선교사도 많이 파송했고 리더들도 정병들이 되었고 크게 성장했습니다. 사실 요즘 우리는 너무나 환경이 좋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학대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핍박이나 힘든 현실을 무서워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외적인 환경이 힘들어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도전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번성하고 강성해질 것입니다.

 

개구리 세 마리가 우유 통에 빠졌습니다. 첫 번째 개구리는 이것이 운명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죽어갔습니다. 두 번째 개구리는 몇 번 허우적 거리다가 안되니까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개구리는 우유통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여 헤엄을 쳤습니다. 한참을 이렇게 하다 보니 뒷다리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닿았습니다. 개구리가 계속 헤엄치는 동안 우유가 굳어져서 버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개구리는 버터를 딛고 나와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구리도 시련의 때에 절망하지 않고 우유를 버터로 만들어서 위기를 극복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절망하면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8,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나니” 그가 왜 그처럼 당당할 수 있었습니까?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인간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보배되신 하나님은 강하고 위대하시기 때문에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 역경을 딛고 일어나 번성케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산파들을 시켜서 남자아이들을 살해하려는 음모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바로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시켜서 히브리 여인들이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얼마나 사악하고 무서운 명령입니까?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17절에 보면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렸습니다. 산파들은 바로에게 말했습니다.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애굽 여자들은 다이어트 한다고 잘 먹지도 않고, 맨날 집에 앉아서 카드놀이나 하고 있으니 체력이 약해져서 애들을 잘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여인들은 몸매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먹고, 열심히 일하니 얘들을 잘 낳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건강한지 산파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얘들을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산파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셔서 어린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21).

 

가만히 보십시오. 바로가 두려워서 아무리 꾀를 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고 잡아 죽이고자까지 하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당신의 백성들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은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가 나름대로 힘과 지혜를 발휘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자 하였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고전 1:25절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 어떤 세상의 권력자 보다 더 크고 강하십니다. 더 지혜롭고 위대하십니다. 20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경외하는 자들을 결코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22절에 보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히 두려워한 나머지 아들이 태어나면 누구든지 스스로 나일강에 갖다 버리라는 극약처방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바로의 궁여지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주 2장에서 살펴 보겠지만 이 처방도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보다 훨씬 지혜롭고 강하십니다. 아무리 불의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반드시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시련은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하고 능력있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