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5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말씀: 누가복음 16:1-31

요절: 누가복음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오늘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는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이고, 또 하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입니다. 두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는 아주 열심이지만,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물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

 

1절을 봅시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청지기의 사명은 주인의 소유를 충성스럽게 관리해서 유익을 남겨야 합니다. 그런데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니 주인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청지기에게 해고통지를 보냈습니다.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일자리를 잃게 된 청지기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앞으로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그는 이때 절망해서 술을 마시고 드러누울 수 있습니다. 또는 주인을 찾아가서 정년을 보장하라고 데모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그는 직장이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 사람들을 얻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다가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기름 100 말 빚진 자는 증서에다가 50이라고 쓰도록 했습니다. 50%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100 석 빚진 자는 증서에 80이라고 쓰도록 했습니다. 20%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 청지기의 행동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옳지 않습니다. 8절에서도 분명히 이 옳지 않는 청지기라고 했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자기 맘대로 탕감해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이 청지기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는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주인은 이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일을 지혜롭게 한 점을 칭찬했습니다. 무슨 일을 지혜롭게 했습니까? 첫째, 그는 미래를 대비했습니다. 실직한 후를 대비한 것입니다. 둘째, 그는 친구를 얻었습니다. 그의 방법은 분명히 옳지 않습니다. 그의 방법에서 은혜 받으면 곤란합니다. 단지 그가 실직 이후를 대비했다는 것과 사람을 얻은 마인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훈의 핵심은 9절입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예수님은 재물을 활용해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그 친구들이 영주할 처소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 자체에 목적을 두고 삽니다. 더 많은 재물을 벌고, 쌓아두고자 합니다. 사람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과 적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재물을 움켜쥐고자 합니다. 그런 자는 나중에 재물이 없어질 때에 기댈 언덕이 없습니다. 재물도 잃고, 사람도 잃고, 다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재물을 투자해서 적극적으로 사람을 얻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문 대통령의 슬로건이죠. 사람에게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물질의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을 얻고자 애를 씁니다.

비유에서 청지기가 직장을 잃을 때가 왔듯이, 우리도 재물이 없어질 때가 옵니다. 퇴직 때 뿐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이 반드시 옵니다. 은퇴하고 노후는 30, 40년 정도이지만, 죽은 후 사후는 영원합니다. 그때를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은퇴 후를 대비하는 사람은 지혜롭습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사후를 대비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후를 잘 대비합니까?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물질을 투자해서 사람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친구들이 우리를 영주할 처소,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것입니다.

 

다니엘12: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20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물질을 희생하여 양들을 도와줄 때 천국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양들이 우리를 주님께 추천할 것입니다. “주여, 이 분이 제 목자님이십니다. 수양회 때마다 끈질기게 심방오셔서 제가 마침내 회개하고 변화되었습니다. 우리 목자님에게 큰 상을 내려 주세요그러면 주님이 칭찬하실 것입니다. “잘 하였다. 충성된 종이여. 내가 네게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노라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쁘겠습니까?

 

우리가 힘든 양 한 사람 친구삼고 영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씁니까? 20, 30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같이 영화보고, 놀아주고, 밥 먹고, 이야기 들어줍니다. 때로는 형님 누나 노릇, 엄마 아빠 역할까지 해 줍니다. 사도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고전9:22). 주님은 이런 우리의 헌신을 받으시고 천국에서는 해같이 빛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어떤 부자가 금궤를 잔뜩 짊어지고 천국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문에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뭐 할려고 가져 오셨나? 천국에서는 보도블럭이 다 금인데--” 했답니다. 장차 우리가 들어가게 될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에서는 물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린 진심만이 남습니다. 우리가 시간과 물질을 바쳐 도운 제자들이 면류관으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귀어야 할 궁극적인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5:1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 잘 못 사귀면 정말 강남 유흥업소, 죄짓는 곳으로 가다가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친구 삼고, 예수님을 따를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평생의 친구로 삼고 예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찬송가 92장에 보면, 1절에 위에 계신 나의 친구 그의 사랑 지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 나의 친구이렇게 시작해서 4절은 그날이와 황금 길에 그의 영광 바라보며 그의 팔로 날 안을 때 만나보리 나의 친구이렇게 노래합니다. 위에 계신 나의 친구 예수님을 따를 때 그날이 오면, 천국의 황금 길에서 그의 영광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탈랜트 이광기 집사는 8년 전 신종 플루로 6살 난 아들을 잃었습니다. 너무 슬퍼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음해에 대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아이티에 봉사활동을 자청해서 갔습니다. 거기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돌보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광기야, 이 아이들이 다 네 자식들이다. 내겐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단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돌보고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꿈에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체온을 느낄 만큼 생생했습니다. 그 후로 제 3 세계 아동들을 돕기 위한 후원회 아이드림을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거기 기부한 금액이 42600만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불의의 재물로 제 3 세계 아이들을 친구로 사귄 것입니다. 우리 목자님들도 지금까지 양들과 선교지에 드린 헌금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양들이 변화되고 선교지가 개척되었습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크게 칭찬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소중한 물질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립시다.

 

10절을 읽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앞에 불의한 청지기는 지혜는 있었지만, 충성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혜로우면서도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청지기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극히 작은 일에도 충성된 자입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 한 사람을 포기치 않고 끝까지 감당합니다. 지극히 작은 모임을 귀하게 여기고 충성스럽게 참석하여 동역합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나중에 큰 것도 맡기십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원리는 동일합니다.

 

창세기에 요셉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도시락 심부름을 할 때도 책임성있게 감당했습니다. 보디발 집에 노예로 끌려갔을 때도, 도망갈 생각하지 않고 충성스럽게 일하여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도 충성스럽게 일하자, 간수가 감옥의 제반 사무를 요셉에게 다 맡겼습니다. 이런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잠언20:6절에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2절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충성을 다하다 보면 충성의 대상이 분명치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충성스럽게 물질을 관리하는데 물질 욕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일에 너무 충성하다 보면 일중독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13b절을 봅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하나님만이 우리의 경배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물질도 필요하고, 재능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고 있는지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

 

19절을 봅시다. 예수님의 두 번째 비유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입니다. 19,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여기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왕들이 입는 호화로운 옷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산해진미의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는 물질을 오직 자신을 즐겁게 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내 돈으로 내가 즐기는데 뭐가 잘못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집 대문 앞에는 상처투성이의 거지 나사로가 버려진 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했습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긍휼의 마음이 있었으면 나사로를 치료해 주었을 텐데. 그는 못 본체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나중 모습이 어떠합니까? 한번 부자는 영원히 부자고, 한번 거지는 영원히 거지입니까? 아닙니다.

 

22절을 봅시다.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죽어서 장사된 뒤에 음부에서 고통했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부자는 지옥의 고통이 너무 심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발 나사로를 보내주셔서 물 한 방울이라도 혀에 떨어뜨려 달라고 하소연 했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물 한 방울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변에 널려있는 것이 물이었습니다. “여봐라, 물 가져와라말 한마디면 종들이 즉시 시원한 냉수를 대령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시원한 냉수 아니라 물 한 방울도 얻어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뭐라고 말합니까? 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애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부자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마음껏 누렸지만 다른 사람을 돕지 않았기에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천국에서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단지 거지였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해 사느라 많은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하면 고난을 많이 받습니다. 디모데후서 3:12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했습니다. 신자들은 불신자들에게 냉대를 받습니다. 양들에게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이 사람에게 상처 받고, 저 사람에게 상처 받고, 헌데 투성이가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받은 고난들을 주님은 천국에서 갚아주십니다. 반면에 이기적인 부자는 지옥의 고통가운데서 울부짖게 됩니다. 그가 대문 앞에 버려진 나사로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었더라면 죽은 후에 나사로가 부자를 천국으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길 기회가 천국 문으로 들어가는 기회인데, 그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라. Remember this. 섬김의 기회가 축복의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인생이 역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제가 어려서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6.25 전쟁 때 인민군들이 쳐들어 와서 공산당 천지가 되었습니다. 머슴이었던 자들이 빨간 완장차고 왕노릇 했습니다. 죽창으로 무자비하게 자기 주인을 죽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지주들 중에서도 평소에 가난한 자를 선대한 사람들은 살아남았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은덕을 입은 머슴들이 몰래 주인을 감옥에서 탈출시켜 준 것입니다. 가난한 머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주가 영원히 지주가 아니고, 머슴이 영원한 머슴이 아닙니다. 전쟁이 나고, 인생의 환란이 닥치면, 많은 물질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평소에 어떤 덕을 베풀었는가? 그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부모님이 항상 그러셨습니다. “사람이 항시 덕을 베풀어야 하느니라” “이것을 기억하라세상사에서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떠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보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소를 친히 결정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품이냐 음부의 고통이냐?, 천국의 영광이냐 지옥의 심판이냐? 판단하십니다.

 

26절에 보면,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서로 건너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날에 가서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아 있을 때 잘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아직 얼마든지 기회가 있습니다. 이기심을 회개하고 마음의 대문을 열면 도움이 필요한 나사로들이 많이 있습니다. 캠퍼스에 널부러진 불쌍한 양들이 많습니다. 장래문제, 가정문제, 이성문제 때문에 헌데 투성이인 양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사랑을 베풀면 그들이 살아납니다. 38병자와 같은 자들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힘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들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 살아납니다. 양과 목자가 같이 사는 것입니다.

 

27절을 봅시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사정했습니다.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그는 사랑하는 형제들이 지옥의 고통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사로를 파송해서 천국과 지옥 소식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어다그들에게 구약성경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말씀 듣고 회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였던 자는 사정했습니다 아니요. 죽은 자 중에서 그들에게 가면 생생하게 듣고 회개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환상 중에 천국에 갔다 오신 분 간증을 들으면 다 회개할 것 같습니다. 여름수양회에 그런 분 초청하면 다 뒤집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31절을 봅시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은 자를 많이 살리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래도 안 믿을 사람은 안 믿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한마디 말씀만 듣고도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재물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겠습니까? 9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나의 영원한 친구되신 예수님을 섬기는데 물질을 투자해야 하겠습니다. 나사로와 같이 고통가운데 있는 자들을 돌아보고 이들을 힘써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재물이 없어지고, 건강이 바닥나고, 세상을 떠날 날이 반드시 올 텐데, 그때 우리의 섬긴 친구들이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인도할 것을 믿습니다.

 

지난 2004년에 캐나다 방송협회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을 뽑는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2위에 뽑힌 사람은 테리 폭스(Terry Fox,1958-1981)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18살 때 뼈암 진단을 받고 한쪽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소아암으로 고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도 암환자이지만 그들을 돕기 위해 캐나다 횡단 마라톤을 시작합니다. 한쪽에 의족을 끼우고 143일 동안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144일째 암세포가 폐로 전이되어 마라톤을 중단하고 2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과 헌신에 감동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내서, 지금 소아암 치료 기금이 65000만 달러(78백억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1981년 그가 죽었을 때 캐나다 정부는 조기를 달았고, 국민들도 여기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그는 23세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수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수많은 소아암 환자들이 살아났습니다. 그 어린 생명들이 그를 영주할 처소로 인도할 것입니다. 저는 의족을 달고 마라톤하는 테리 폭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목자님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양들이 있건 없건 캠퍼스에 올라갑니다. 줄기차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무모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축복하사 양들을 섬기게 하시고 제자로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들이 우리를 영주할 처소, 천국으로 인도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이번 주부터 개강을 하고, 학생들이 캠퍼스에 들어옵니다. 방학 동안에 여기저기 많이 다녔겠지만 그들의 영혼은 분명 곤고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다가가 사랑으로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줘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많은 영적인 친구들을 사귀고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청지기들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