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6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말씀: 누가복음 17:1-19

요절: 누가복음 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성숙한 내면성을 갖는데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때로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나의 내면문제와 양들의 죄 문제를 볼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가? 깨닫고,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 믿음의 능력 (1-10)

 

1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여기 실족하게 한다는 원어로 스칸달론으로서 죄를 범하도록 원인을 제공하다그런 뜻입니다. 제자들은 영적 지도자들로서 양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죄로부터 구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양들이 죄에 빠지도록 원인을 제공한다면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 책임이 어느 정도로 무겁습니까?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습니다. 바다에 수장되는 것입니다. 무시무시합니다. 목자는 그 직분이 영광스러운 만큼, 책임도 무겁습니다. 주님의 핏값으로 사신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우리는 이처럼 귀한 양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스스로 조심하라” “Watch yourself” 우리 자신의 삶을 수시로 점검하고, 자기 관리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 보면, 고린도 성도들이 고기를 먹는 문제로 갈등했습니다. 당시 시장에 나온 고기들이 우상의 제물로 바쳐졌다가 나온 고기가 많았습니다. 사실 우상의 제단에 바쳐졌더라도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셨기 때문에. 하지만 어떤 성도들은 이를 꺼림칙하게 생각해서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이 깨끗케 하셨는데 뭘하면서 늠름하게 고기를 먹었습니다. 일부러 연약한 성도들 보는 앞에서 맛있게 삼겹살을 구워서 먹으며, 냄새를 풍겼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셨잖아그러나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고린도전서 8:12,13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바울도 고기를 좋아하고,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연약한 형제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목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양들에게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습니다. 냄새는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조심하고, 예수님을 본받고자 힘쓰므로 그리스도의 향기, 생명의 향기를 풍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고후2:15).

 

또 형제들이 죄를 지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우리가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너무 조심하다 보면 죄 문제가 있어도 눈감아 버리기 쉽습니다. 상처 받을까 봐서 그냥 대강대강 넘어갑니다. 이것도 목자의 자세는 아닙니다. 목자는 영혼의 청지기로서 형제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도록 경고해야 합니다. 잠언28:23절에 형제를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진정 사랑하셨기 때문에 죄문제는 따끔하게 책망하시고, 복음신앙을 심으셨습니다.

 

그러나 또 형제가 진실되게 회개하면, 용서하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서 회개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일흔번씩 일곱 번, 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18:22). 일곱은 완전수로서 온전한 용서, 끝없는 용서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허물과 죄를 범합니다. 내가 죄를 범할 때마다 주님이 심판하시고 잘라 버리신다면 우리 중에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로 말미암아 일만 달란트 빚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예수님께 쏟아 부으시고,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놀라운 용서의 사랑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형제를 용서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양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본을 보이고, 반복해서 죄를 짓는 사람을 끝없이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5절을 봅시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못하겠다는 말은 못하고 주여, 믿음을 더하소서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이 너무 높아서 아예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능히 뽕나무 뿌리도 뽑을 수 있느니라사람의 내면문제를 돕는 것은 마치 뽕나무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심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여러 종류의 나무뿌리가 있지만 뽕나무 뿌리처럼 깊고 끈질긴 뿌리도 없습니다. 뿌리 깊은 내면의 죄 문제들 - 미움, 절망, 상처, 열등감, 운명주의, 패배주의, 음란, 분노 등등. 내 마음에도 뿌리 깊은 죄문제들이 있고, 양들에게도 뿌리 깊은 죄성이 있습니다.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상담전문가 아닌데 어떻게 뿌리 깊은 죄문제를 해결한단 말인가?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사람의 내면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엄청나게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최소한 30년 이상 하고, 목자훈련 10년은 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연륜이 짧고, 경험이 부족해도, 한마디 말씀이라도 절대적으로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놀랍게 축사하십니다.

 

창세기 1:1절을 믿는 믿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마가복음 9:23절을 믿는 믿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민수기 14:9그들은 우리의 밥이라이처럼 한 말씀을 붙드는 믿음. 이것은 겨자씨 한 알처럼 작고 미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폭발적인 능력이 나타납니다.

 

한엘리야 목자님은 양 시절에 무릎에 물이 차서 잘 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수양회를 두 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마가복음 16:18절 말씀이 어렴풋이 생각나서 정말 무릎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저의 무릎을 낫게 해 주시면 평생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서원기도를 받으시고, 감쪽같이 낫게 해 주셨습니다. 양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 기도가 얼마나 세련되겠습니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죠. 작은 믿음이요, 서투른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을 때 정말 무릎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 아무리 작아도 그 안에 생명이 숨 쉬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자라서 바위도 뚫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납니다.

 

고 이사무엘선교사님은 가난한 후진국 청년이었습니다. 키도 아주 작습니다. 그는 난지 8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계모 밑에서 슬픈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인쇄소에서 일하며, 고학으로 학업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그는 1960년대 우리나라가 너무나 힘없고 가난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단순히 믿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후진국 청년들이 독일과 미국 등 선진국 대학생들을 능히 복음으로 변화시킬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믿음을 비웃었지만, 그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때 마침내 미국과 독일, 러시아 등은 물론이요, 오대양 육대주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쓰셔서 슬픈 운명과 한의 뽕나무 뿌리를 뽑아 태평양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그 나무들이 태평양에도, 대서양에도, 인도양에도, 오대양 육대주에 심겨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며칠 전에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첫째 딸 Grace Koh 선교사님이 광주센타와 UBF 역사관을 방문하러 오셨습니다.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평소에 일용할 양식 말씀을 꼭 써서 드셨는데, 1994년에는 1년 동안 마가복음 11:22,23절 말씀만 수없이 반복해서 쓰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Have faith in God” 그해 Paul Koh, Grace Koh 선교사님의 둘째 딸이 태어났는데, 이름을 faith로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해에 엄청난 핍박과 시련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의 자존심과 교만이 뽕나무 뿌리처럼 깊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1:22절 말씀 한마디를 굳게 붙들고 줄기차게 도전하셨습니다. 그때 마침내 시련을 극복하고 큰 승리를 체험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가을학기 개학을 해서 새롭게 양들을 돕고자 할 때 양들의 문제가 뽕나무 뿌리처럼 깊고 끈질기게 여겨집니다. 이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고,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집니다. 목자님이 무슨 기도제목을 제시하면 믿음을 더하소서” “날 잡아 잡수셔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7-10절은 무익한 종의 자세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종이 열심히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집에서 또 주인을 섬깁니다. 이때 주인이 종에게 아이구 수고했네. 오늘은 쉬고 다음에 하지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이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종은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이렇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좀 반발심이 듭니다. 주인이 너무 갑질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가지고 큰 능력을 체험하고 나면 마음이 자고해 지기 쉽습니다. “그래도 내가 믿음이 있어서 저 사람을 제자로 키웠지이처럼 마음이 높아질 때 하나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순수하게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심령이 막히지 않고 줄기차게 헌신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13,1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우리에게도 무익한 종의 자세를 허락하사 줄기차게 충성하여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 감사의 위력 (11-19)

 

1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당시 나병은 불치병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한번 나병에 걸리면 사람들이 자포자기 했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그들은 사회에서 격려되어 동굴에 살면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눈, , 입이 문들어지고, 살이 썩어서 냄새가 나지만 믿음으로 나아가면 예수님께서 능히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나병을 고쳐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 주셨습니까?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예수님은 그들이 나병환자라고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귀히 여기시고, 영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나병을 고쳐 주시지 않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나병환자들이 제사장들에게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신 후에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믿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주실 것을 믿고 갔을 때 도중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고 순종하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믿고 순종하여 갔을 때 나병의 뿌리가 뽑혔습니다. 나병이 나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무좀만 나아도 너무 기쁩니다. 여드름만 없어져도 외모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물며 추하고 냄새나는 나병에서 나음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죽은 자와 같은 데서 살아났으니 당연히 예수님께 나아가 감사를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15,16절을 봅시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열 명 중에 단지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감사 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요, 나병환자로서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17,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큰 은혜를 받고도 감사가 없는 아홉 사람으로 인해 심히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릅니다. 돈 빌릴 때 마음 다르고, 돈 갚을 때 마음 다릅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그렇게 절박했던 심령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배가 부르고 부요해집니다. “그래도 내가 소리 높여 외쳤기 때문에 나음 받은 것 아닌가?” “그래도 내가 택함 받은 유대인이지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자기 의와 교만이 있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더 이상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러 나아온 이 사람에게는 무슨 축복을 더하여 주셨습니까? 19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에게 구원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앞에 아홉 사람은 육체의 질병에서 나음 받은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전인적인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졌습니다.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지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챨스 스펄전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등불을 주시고, 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계단이 됩니다. 반면에 원망은 또 다른 원망을 낳습니다. 원망은 스스로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계단이 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원망거리를 찾지 말고 감사할 제목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숨 쉬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서늘한 날씨를 주셔서 감사하고, 예배할 처소를 주셔서 감사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고, 동역자들이 있어서 감사 합니다감사는 우리 마음을 풍성하고 넉넉하게 합니다. 감사는 어떤 역경도 뚫고 나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공급해 줍니다.

 

지난 813, 캐나다 큰빛 교회 임현수 목사님이 북한에서 석방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2015년 북한의 취약계층을 도우러 평양에 갔다가 국가전복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죄목은 김일성, 김정일 시신을 모신 금수산을 함부로 이야기한 신성모독죄였습니다. 나중에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바뀌었지만, 하루 24시간 비디오 카메라로 감시하고, 총을 맨 병사들이 앞에서 지켰습니다. 26개월 동안 독방에서 혼자 지내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언 땅을 곡갱이로 파야했고, 동상으로 발가락 10개가 까맣게 변하고, 몸무게가 20킬로나 빠졌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까? “가난한 북한 동포 도우러 갔는데 이 고생을 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을 원망하며 분노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그는 순간순간 원망과 불평이 싹틀려고 했지만, 그때 마다 성경 700구절을 외우고, 찬송가를 다 외웠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감사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감사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도우셔서 석방이 되었습니다. 석방된 후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감금상태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한 것입니다. 그분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지만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깊은 믿음의 세계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비참한 죄인들이었습니까? 미움, 시기, 질투, 음란, 안일, 혈기 등으로 나병환자처럼, 추하고 냄새나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보혈을 흘려주시고 추한 죄를 다 씻어 주셨습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 2세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정말 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다음세대들이 이렇게 소망가운데 성장하고 있구나? 생각할 때 큰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장차 전 세계로 나가서 한 나라, 한 캠퍼스들을 개척하며 오대양 육대주에 복음을 전할 것을 생각할 때 정말 감사가 되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우리교회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감사가 있으면 얼마든지 기뻐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믿음, 지극히 작은 감사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작은 믿음과 작은 감사를 축사하셔서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