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

                                                                  질그릇에 담긴 보배

말씀: 고린도후서 4:7-5:10

요절: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았는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은 고난이 많습니다. 이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새 언약의 일꾼이 너무나 영광스럽고, 목자의 직분은 천사도 흠모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은가? 회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수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했고, 생명력이 충만했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왔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내적 힘이 어디서 오는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소망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고 은혜받길 기도합니다.

 

. 보배되신 예수님께 능력이 있습니다(4:7-15)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사도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배라고 말합니다. treasure. 예수님이 왜 보배입니까? 4:4b절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보통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형상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빛이 있습니다(1:4). 영생수가 있습니다(4:14).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6:48). 예수님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2:3).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배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이로서 주홍같이 붉은 우리 죄를 눈같이 희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사망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십니다(11:25). 우리 인생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 이 예수님은 빛난 보배, 정한 보배가 되십니다.

 

이처럼 귀한 보배 예수님을 어디에 간직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너무 귀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는 그릇도 값지고 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청자나 백자등 명품 도자기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임하셨습니까?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질그릇에 임하셨습니다. 질그릇은 유약을 바르지 않는 투박한 진흙그릇입니다. 질그릇은 볼품도 없고, 약해서 잘 깨집니다. 지난 주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갔는데 전시품 중에 네팔의 질그릇이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설명하기를 네팔 사람들은 이 질그릇을 몇 번 쓰다가 땅에 던져 부숴버린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일회용 컵처럼 싸고 흔 것이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의 일군을 선택하실 때 질그릇 같은 자를 들어 쓰십니다. 머리 좋고, 잘 생기고, 재주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부족한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도 허물 많고, 실수 투성이었습니다. 사도바울도 외모가 별 볼일 없었습니다. 키도 작고, 못 생기고, 허리도 꾸부정하고, 메부리코에, 말도 잘 못 했습니다. 당시 말 잘하는 소피스트들에 비해 볼품이 없었습니다. 몸에 가시인 질병이 있어서 자주 아팠습니다.

 

주님은 왜 이처럼 질그릇 같은 사람을 선택하실까요? 7b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새 번역에서는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생명 구원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큰 능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심히 큰 능력, 엄청난 능력이 과연 어디서 오는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질그릇 같은 자를 선택하십니다. 또 내가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자신이 마치 보석함처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또 일이 잘되면 자기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질그릇 같은 자를 선택하시고, 우리가 다 질그릇 같은 연약한 존재란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을 빨리 깨달은 사람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엄청 깨십니다. 산산조각이 난 후에야 깨닫습니다. 빨리 고백해야 합니다. “오 주님 저는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보배이십니다그때 비로서 주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지난주에 오신 애리조나에 David Kim 선교사님은 삼류대 출신에, 말기암환자로서 아무 것도 자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 깨지기 일보직전의 질그릇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살려주시고, 세계 선교 역사에 귀하게 써 주셨습니다.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1%도 자기를 의지하거나 자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남은 인생을 오직 보배되신 예수님만 자랑하며 살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은혜가 됩니다.

 

우리는 복음역사를 섬길 때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능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히 큰 능력은 오직 예수님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면 됩니다. 사도바울은 과거에 자신이 뭐나 된양 교만을 떨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깨졌습니다.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질그릇 같은 자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요,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오히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12:9,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 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내가 부족해도 낙심하지 말고 능력의 주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엄청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으로 잘 알려진 릭 웨런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간질을 앓고 있는 분입니다. 신경계에 문제가 있어 갑자기 쓰러져 발작을 합니다. 때문에 그는 메시지 전할 때 항상 대타를 준비시킨다고 합니다. 혹시 메시지 전하다가 자신이 간질로 쓰러지면 그 대타가 메시지를 전할 준비를 시킵니다. 그런데 그 질그릇같은 릭 웨런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가 시무하는 새들백 교회를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교회로 부흥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그 분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보배되신 예수님을 힘있게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능력타령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므로 주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8,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보통 사람들은 우겨쌈을 당하고, 박해 받고, 거꾸러 뜨림을 당하면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0a절에 보면,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공동번역에서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고난의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외쳤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0b,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짊어지고, 죽음을 무릎 쓰면 망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예수의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이 생명은 부활생명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 죽음에 뛰어드는데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능력있게 살아나는 것.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배인 것입니다. 바울도 이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복음 전하다가 우겨쌈을 당했습니다. 복음역사가 활발히 일어나자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팔던 상인들이 반발했습니다. 장사에 타격을 입자, 바울과 복음 전도자들을 우겨 싸고, 고소했습니다(19:29).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14:19). 빌립보에서는 복음 전하다가 붙잡혀 옷이 찢어지고, 매로 맞고, 발이 차꼬에 채워져서, 깊은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졌을 때 망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의 생명이 그 몸에 나타났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기절했지만, 다시 일어나서 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담대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14:22)” 빌립보에서도 감옥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감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벗어졌습니다(16:22-26). 간수가 회개하고 온 집안이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난을 피해 다녔다면, 예수의 생명이 잘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죽을 각오를 하고, 목을 내놓고,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캐나다 큰 빛 교회 임현수 목사님이 북한에서 종신형을 받고 26개월 강제노동을 하다가 풀려났습니다. 3주 전에 한국에 오셔서 간증을 하셨습니다. 이분은 북한 동포들을 위해 150번을 오가며 도와주었는데 결과는 사형선고인가 생각할 때 억울하고 분했다고 했습니다. 영하 25도의 추위에 양말을 4개를 포개신고, 신발 위에 비닐을 덧 씌우고 하루 8시간씩 언 땅을 파는 중노동을 했습니다. 몸무게가 20킬로나 빠져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 신기하게 평안해지면서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보여 주시는데 앞으로 북한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 100만명의 자비량 평신도 선교사를 파송할 비젼을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UBF10만 선교사 파송의 비젼을 보고 기도하는데 그 분은 10배 많은 100만 선교사파송의 비젼을 제시했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 것입니다. 북한에서 한번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체험하자 두려울 것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도 아무리 복음역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죽을 각오로 전도하고 일대일 하면 반드시 생명구원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14,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자신의 부활임을 믿었습니다. 15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말씀처럼 양들을 위해 헌신할 때 양들이 은혜 받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4:16-5:10)

 

이제 바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활소망을 덧입었는가? 말해줍니다. 16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세상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겉 사람이 낡아지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낙엽이 지고, 한 해가 저물어가자 허무에 시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 한 해가 또 저물어가는구나. 죽을 날이 다가오는구나. 주름살이 늘어만 가네늘어가는 흰머리를 볼 때 인생이 서글퍼집니다. 물론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체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주니어들과 족구 한 게임하고 나면 후유증이 며칠을 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 영성이 날이 갈수록 더 빛이 나고, 소망과 비젼이 넘쳐납니다.

 

이번호 일용할 양식 속표지에 르완다 UBF가 소개 되었습니다. 르완다 UBF 역사는 미국 시카고에 양다니엘, 데보라 선교사님이 섬기고 계십니다. 이 분들은 올해 봄에 있었던 동아프리카 수양회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르완다에서 양들 7명이 24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와서 참석하여 은혜 받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르완다에 선교사님 계셨는데 사정으로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남은 양들이 스스로 성경공부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수양회 때도 이틀을 꼬박 버스 타고 참석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양 다니엘 선교사님은 수양회가 끝나고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르완다에 가서 일주일 동안 그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양들이 너무나 갈급하게 말씀을 받고 주일예배 때는 10명이나 왔습니다. 양 다니엘, 데보라 선교사님 가정은 이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 때문에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짐을 싸서 르완다에 실버 선교사로 나아가셨습니다. 다니엘 선교사님은 미국에서 은행장으로 일하다 은퇴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여유 있게 노년을 즐기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의 스피릿으로 제2의 선교사역을 섬기고 계십니다. 본인들보다 50살이 어린 양들을 친구삼고 제자로 키우고 계십니다. 누가 이분들을 70대로 보겠습니까? 믿음 안에 있으면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어디서 이런 새 힘이 나올까요?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천국소망입니다. 17,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할 때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환난은 잠시입니다. 경한 것, 가벼운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 영광은 지극히 크고 영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고 그것이 전부인양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요즘 일용할 양식 이사야서에 나오는 강대국들을 보십시오. 애굽, 바벨론, 앗수르 등등. 당시에는 세계 최강이었지만 지금은 그 영광이 온데 간 데 없습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눈에 보이는 영광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영광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합니다.

 

5:1,2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장막, 즉 텐트와 같습니다. 텐트가 아무리 멋있어도, 몇 년 지나면 빛이 바래고 찢어집니다. 한때 그렇게 고급 아파트라고 자랑했던 집들도 3,40년 지나면 낡아져서 재건축을 해야만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남 미녀 배우들도 세월이 지나면 빛바랜 천막처럼 볼품이 없습니다. 한때 한국의 알랑드롱이라 불리던 배우 신성일씨가 이제 81세가 되어, 폐암 3기 투병중이라고 합니다. 여느 동네 할아버지와 똑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집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벧전1:4). 요한계시록 21:1,2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그 곳은 신부가 신랑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항상 가슴이 설레고, 희락과 기쁨이 넘칩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탄식하며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육신의 장막을 하루속히 벗어 버리고 신령한 부활체를 빨리 덧입고 싶었습니다.

 

4b절에 보면,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된다고 했습니다. 사망이 생명에게 먹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생명이 사망에게 삼킨바 되었는데 대 역전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우리가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사망을 정복합니다. 우리 육체가 질그릇과 같이 현재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신령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고전15:42-44)” 누가 이것을 보증합니까? 5절을 봅시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성령께서 보증하십니다. 이 성령님을 보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직접 부활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보증해 주십니다. 때문에 바울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바울은 차라리 빨리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주님과 함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 좋자고 빨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9절을 봅시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지금 육신의 몸을 덧입고 있든지, 몸을 떠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든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주님께서 더 사명 감당하고 오라고 하시면 이 땅에 남아서 최선을 다하고, 지금 천국으로 오라고 하시면, 즉시 생을 마감하고 하나님 나라에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삶과 죽음을 초월했습니다.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빌립보서 1:20b,21절에서도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했습니다. 고린도전서10: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상황에 매이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요즘 국정감사기간인데 장관들도 흠 잡힐까 봐서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 받을 때 얼마나 떨리겠습니까? 주님 앞에 서서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것이 좋습니다. 어디서 시험문제가 나올지 몰라야 모든 부분을 꼼꼼히 공부하듯, 우리도 언제 주님 앞에 설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해 깨어 있게 됩니다. 어떤 분은 유서를 써서 가슴에 넣고 다니며 오늘이 인생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산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은 질그릇과 같습니다. 그런데 보배되신 예수님을 허물진 우리에게 허락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모든 능력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낙심하지 말고 보배 되신 예수님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예비되어 있는 영원한 천국을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므로 예수의 생명을 덧입는 부활의 증인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