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년1(김요나단)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말씀 / 이사야 54:1-7

요절 / 이사야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새 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외쳐 부를 노래는 어떤 노래입니까? 우리에게 장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우리가 외쳐 부를 노래입니다. 다가오는 새 해는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큰 소리로 외쳐 노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외쳐 노래할지어다(1)

1절을 보십시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보통의 여인은 결혼하여 때가 되면 당연하게 아이를 잉태하고 낳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12월에만 네 분의 사모님들이 아들, 딸을 낳았습니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자녀를 낳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시편 127:3-5절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자녀의 축복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자녀를 낳아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주신 큰 축복입니다.

 

반면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 것이었고 그로인해 큰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여인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버림받은 아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남편에게 버림받아 홀로 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은 아들딸을 낳으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특별한 사람들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을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 성경선생이요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참 남편이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참 남편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음란의 죄를 범했습니다. 죄의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 자신들을 포로삼은 바벨론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남편 있는 여인처럼 자식을 쑥쑥 낳아서 크게 번성하는 것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슬픔과 절망으로 밤을 지새우며, 탄식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에게 명하십니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노래해야 합니다. 그것도 속으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쳐 노래해야 합니다. 그 노래는 아이고, 내 팔자야하고 신세한탄 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burst into song, shout for joy! Praise the LORD!” 터질듯한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은 노래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슬퍼하고 탄식할 이유만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 한나는 자식이 없는데 아들딸이 있는 브닌나가 또 임신하여 한나의 마음을 격분하게 했습니다. 한나는 먹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이처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에게 기쁨으로 노래하라는 요구는 잔인한 일입니다. 조용히 쪼그라져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다니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명하십니까? 1절 후반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하나님께서 홀로 된 여인같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강대국 바벨론의 자손보다 많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말씀을 믿고 큰 소리로 외쳐 노래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60:1,22)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겨우 살아남은 작은 자이지만 장차 천 명을 이루겠고, 망해버린 이스라엘이 장차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라는 비전을 노래했습니다. 66:7,8절에서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멸망한 나라가 다시 회복되어 나라와 민족을 이루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나라를 회복해도 강대국이 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을 이루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치 않으십니다. 단 하루 한 순간이면 민족과 나라를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크게 외쳐 노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았습니다. 어렵게 해방되었지만 6.25 동족상잔을 겪으면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강대국의 원조가 없으면 당장 나라를 유지하기도 힘든 나라였습니다. 그야말로 버림받아 홀로 된 여인처럼 불쌍하고 가련한 나라였습니다. 그때 부르던 노래는 깊은 슬픔과 가슴 절절한 한이 서린 노래였습니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 고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울밑에 선 봉선화) 당시 애국지사들과 억압받던 백성들이 말할 수 없는 고생과 한숨 속에 조국강산을 그리워하며 부르던 노래입니다.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황성옛터 같은 노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슬프고 한 맺힌 노래만 부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절망 중에도 잘 살아보세같은 노래를 부르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럴 때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이사야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이 나라, 이 민족을 세계에 우뚝 세워 주셨습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임에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영적으로도 세계에서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한 영적 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다 끝 작은 섬에서부터 도시 골목 골목마다 교회가 있고, 캠퍼스에는 우후죽순처럼 많은 선교단체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세계선교를 앞장서서 감당하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56년 전 광주에서 시작된 우리 UBF 모임도 지극히 작고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배들은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고 외쳐 노래를 불렀습니다. 목자님들은 모일 때마다 문둥이처럼 오그라진 손을 펴서 주는 자가 되자!’ ‘성서한국,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혀라!’ 외치며 기도와 전도에 전념했습니다. 어찌하든지 11 말씀공부 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저 북방 얼음산과 또 대양 산호섬 / 저 남방 모든 나라 수많은 백성들 / 큰 죄악 범한 민족 다 구원얻으려 / 참 빛을 받은 우리 곧 오라 부른다”(찬송가 507) 찬송을 부르며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그럴 때 전 세계 99개국에 20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모임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2041년까지 미개척 140개국을 포함해 전 세계 233개국에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섬기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품고 크게 외쳐 노래해야 합니다. 노래에는 힘이 있습니다. 혼자 부를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부를 때 더 큰 힘이 생깁니다. 슬픈 노래는 사람을 슬프게 합니다. 기쁘고 힘있는 노래는 기쁨과 힘을 줍니다. 특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더 큰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부정적이고 불신적인 생각, 어둡고 슬픈 마음이 물러갑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생기고 역경을 헤쳐 나갈 힘이 솟아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을 믿고 캠퍼스 복음화와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고 노래했습니다. 그럴 때 홀로 된 여인 같은 우리를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노래를 계속해서 이어 부르는 새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장막터를 넓히라(2-17)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노래할 뿐만 아니라 장막터를 넓히라고 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당시 여인은 가족용 장막을 세우고 유지하는 일을 책임졌습니다. 자식이 없는 여인은 1인용 장막만 치면 됩니다. 요즘은 많은 학생들이 1인용 원룸, 고시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온통 원룸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그런 좁은 공간에 살면 나도 모르게 몸도 마음도 좁아집니다. 믿음도 비전도 작아지게 됩니다.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그런 곳에서도 살만합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즐길 거리를 찾고 거기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1인용 텐트가 아니라 장막터를 넓히라고 명하십니다.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줄을 길게 하고 말뚝을 견고하게 박으라고 명하십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은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이스라엘 자손들은 장차 하늘의 별과 해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입니다. 그들이 좌우로 퍼져서 열방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황폐한 성읍이 사람 살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한 몸 겨우 누일 1인용 텐트나 아이들이 소음 때문에 숨죽이며 살아야하는 작은 아파트 정도가 아니라 넓은 정원과 호수, 축구장만한 놀이터를 갖춘 대저택을 지어야 합니다. 장차 이스라엘에게서 열방을 얻을 많은 자손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장막터를 넓히고 또 넓히되 땅 끝까지 넓혀야 합니다.

 

장막터를 넓히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 중흥동 센터를 지을 때 목자님들은 돈도 별로 없고 사람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1층 건물로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2부 오요한 목자님이 2층으로 짖자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목자님은 당시 가장 가난한 목자님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 하나만은 가장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2층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세워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지하 1, 지상 2층 중흥동 센터에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제자들을 세워주셨습니다. 제가 학생 때는 이 건물보다 한참 작은 그 중흥동 센터에서 주일이면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 층을 가득 채우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변 상가와 부동산이 목자님들 때문에 먹고 살 정도였습니다. 10년 전 이곳 용봉동에 새 성전을 건축할 때도 고사무엘 목자님은 어찌하든 건물을 넓고 크게 지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크고 좋은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지만 주일이 되면 아이들과 목자님들로 가득 차서 비좁을 지경입니다. 주차 공간도 다른 센터에 비하면 엄청나게 넓은데도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장막터를 넓히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마음의 스케일을 넓혀야 합니다. 아직은 빈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축복하실 것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만 보면 장막터를 넓히기 어렵습니다. 현실만 보고 안 된다. 안 된다. 그럼 안 되고 말고이런 생각을 하면서 1인용 텐트에 누워 있는 것이야 말로 스튜핏(stupid)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비전이 생깁니다. 그러면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장막터를 넓힐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이야말로 슈퍼 그뤠잇(super great)’입니다. 전베드로 선교사님은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개척하고 아름다운 체코를 장막터로 넓혔습니다. 조이삭 선교사님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루마니아로 장막터를 넓혀 개척하고 있습니다. 김요나, 박죠세핀 선교사님은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 장막터를 넓히고 있습니다. 리디아 리, 곽한나, 제인리 2세 선교사들이 장막터를 넓혀 캐나다 노스욕 역사의 주역이 되고 있습니다. 박폴린 목자님에게는 동신대를 장막터로 주셨습니다. 이렇게 장막터를 넓히는 분들이야말로 슈퍼 그뤠잇입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남요한, 남은혜, 조안나 목동들과 함께 유럽 2세 수양회를 참석하고 유럽 선교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유럽의 장막터는 참으로 아름답고 비옥했습니다. 매우 넓기까지 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곳을 개척하든지 아니면 함께 간 그들을 각 나라에 한 명씩 선교사로 두고 오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들이 장차 유럽과 전 세계로 장막터를 넓히는 스케일 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장막터를 넓히기 위해서는 휘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헌신을 아끼지 말라는 뜻입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마음이 좁아지고 자기중심적이 되면 오히려 더 힘들어 집니다. 줄을 길게 하라는 것은 기도의 줄을 길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면 5분을 넘기기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 요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센터의 6개 모든 파트의 동역자, 양들까지 기도의 줄을 넓히면 기도가 더욱 힘이 넘치고 은혜가 풍성하게 임합니다. 나아가 선교지까지 기도의 줄을 넓히면 앉아서 한국과 전 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창으로 찌르는 자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눈물의 간구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줄을 길게 할 때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의 역사를 풍성하게 이루어 주십니다. 말뚝을 견고하게 박는 것은 복음을 붙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헌신하고 기도해도 복음이 없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시련 앞에 금세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십자가 구원의 은혜와 부활의 복음이 분명하면 어떤 시련과 죄의 유혹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 신앙에 기초하여 헌신과 기도로 장막터를 넓히기 원하십니다. 실제로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여 많은 도전을 했습니다. ‘올 해는 어찌하든지 한 영혼과 말씀공부하며 제자로 세워야지!’ 기도제목을 잡고 캠퍼스에 나가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양들에게 자꾸 거절당했습니다. 진심을 다해 도왔던 양이 어느날 떠났습니다.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다보니 장막터를 넓히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해봤자 안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점점 헌신의 휘장이 줄어들고 기도의 줄이 짧아집니다. 더 이상 노래도 부르지 않습니다. 노래 부를 마음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그때가 좋았지하며 옛 추억이나 되새기며 현실에 안주합니다. ‘전도합시다’, ‘새벽기도 합시다하고 누가 나서서 노래부르면 괜히 부담스럽고 눈치만 봅니다. 어두운데 숨어서 죄를 짓습니다. 이런 나의 과거를 생각할 때 수치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새롭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부끄러움 보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다시 우리의 참 남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우리의 참 남편 하나님은 보통 남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시며 거룩하신 분입니다. 참 남편 하나님은 죄로 인해 버림받은 아내,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 주십니다. 7,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그들을 잠시 버리셨습니다. 잠시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하나님은 큰 긍휼로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영원한 자비로 그들을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긍휼히 여기사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 약속하시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보여 주셨습니다. 무지개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이사야는 53장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우리와 화평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습니다(고전13:8a). 이 세상 모든 것이 흔들려도,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이 옮겨져도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결코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 만유를 회복하시기까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백성들을 괴롭히던 사탄을 멸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을 받고 큰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집니다. 분쟁도, 전쟁도 없어집니다. 이사야 2:2-3절에서 그날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그러므로 우리가 참 남편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들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믿고 외쳐 노래하며 장막터를 넓히기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볼 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캠퍼스에서 신천지가 득세하여 많은 영혼을 미혹하는데, 몇 년 동안 11 한번 못하고, 요회에 양도 없고, 양 한 명 없이 파트모임을 할 때 수치를 당하고 부끄러웠습니다. 200명 예배, 30011, 12형제 12자매 제자양성은 요원해 보입니다. 204110만 선교사 파송은 인기없는 노래 같습니다. 그저 나의 현실 문제 앞에 전전긍긍하느라 외쳐 노래하지 못하고 1인용 텐트에 드러누워 한숨만 내쉬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큰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말씀으로 경건의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연단해 주셨습니다. 조이삭, 박죠세핀 선교사를 파송하여 장막터를 넓혀 주셨습니다. 7명의 목동들을 세워 주셔서 영적 자녀를 낳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보건대에서는 양들이 스스로 양식모임을 이루며 제자로 한 걸음 성장했습니다. 성탄절 예배 때 40명이 넘는 BBF, CBF 2세들의 찬양이 하나님 역사의 미래를 밝혀 주는 희망의 노래로 울려 퍼지는 같아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다가오는 학생수양회와 미국 국제 수양회는 복음역사를 계승할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외쳐 노래할 역사적인 무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큰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장래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3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은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하나님께서 홀로 된 여인 같은 우리에게 하늘의 별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은 많은 믿음의 자녀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크게 외쳐 노래해야 합니다.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요나단 목자님이 앞장 서서 외쳐 노래하고 힘써서 장막터를 넓히겠지 하고 기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저 뿐만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이 외쳐 노래하는 자가 되라고 명하십니다. 장막터를 넓히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왠지 쑥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특히 수업 시간에 발표는 해도 노래 부르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음악시간은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합창은 해도 혼자서는 노래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지금도 회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습니다. UBF에 와서도 노래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군대에서도 병사들 군가 지도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올 해는 기타를 배우고 수요일 풀타임 모임 때마다 기타를 치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래 못한다는 운명주의와 부끄러움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노래 잘 하는 은사는 주시지는 않았지만 새벽마다 힘차게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며 은혜받게 해 주셨습니다. 기도실에서 목청껏 찬송할 때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주시고 목자로서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셨습니다. 파트모임이나 금요기도회, 주일 예배 때 목소리 높여 찬양할 때 마음에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어설프지만 저의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함으로 풀타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UBF 생활 20년 만에 파트모임 때도 기타치며 찬양인도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는 캠퍼스 영혼 뿐만 아니라 나의 영혼을 살리는 구원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새벽마다 드리는 기도는 낙심과 절망의 벼랑에서 나의 영혼을 독수리처럼 힘차게 날아오르게 하는 능력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말씀묵상과 일용할 양식, 11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아름다운 노랫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외쳐 부르는 노래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장막터를 넓히는데 주를향한 파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전베드로, 페트라 선교사를 체코 선교사로 파송하셨습니다. 유용사 목자를 성동센터로 파송하셨습니다. 결혼을 통해 동역자가 필요한 파트에 목자들을 보내어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과기원 개척 파트를 섬기시던 목자님들이 파트에 합류하게 되어 과기원으로까지 장막터를 넓혀 주셨습니다. 동신대 개척을 통해 교대 개척의 비전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자양성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도전할 때 전주센터에 소개받은 김이홍 형제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전대 노종욱 형제가 11과 예배에 나오게 하셨습니다. 케냐 에릭 형제가 꾸준히 예배드리며 성탄 단막극에서 동방박사 1로 출연하여 은혜를 끼치게 하셨습니다. 군대 간 형제들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하며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서게 될 소망을 보고 있습니다. 18학번 제자양성을 위해 말씀을 붙들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백성들 앞에 서서 말씀을 붙들고 찬양하며 나아갔듯이 제가 앞장 서서 크게 외쳐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씀을 전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영적인 자녀들이 사방으로 퍼지고 황폐한 성읍이 사람 살 곳이 되기까지 장막터를 넓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새 해가 됩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말씀대로 크게 외쳐 노래합시다! 힘든 현실을 바라보며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까,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 원하실까 생각하고, 서로 격려하며 한 마음으로 외쳐 노래합시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부르짖어 노래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심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장막터가 더욱 넓어지도록 복음을 붙들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