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신년 3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

말씀: 시편 1:1-6

요절: 시편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2018년 새해를 맞아 모든 분들이 복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복 있는 사람은이렇게 시작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복 받을 사람은그래야 맞습니다. 영어성경에서도 “Blessed is the one” 이렇게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부패해서 복이 나올 것이 없습니다.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까?

 

. 복 있는 사람이 피해야 할 것들(1)

 

1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이 피해야 할 세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첫째로,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자가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악인은 ‘the wicked’로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그 생각이 사악한 자를 말합니다. 시편10:4절에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릅니다. 욕심을 챙기기 위해 온갖 부정한 편법과 잔꾀를 부립니다. 그렇게 하면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5절에 보면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당장은 악인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나오는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은 대표적인 악인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탐나서 꾀를 부렸습니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말을 뒤집어 씌워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 내가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다 멸할 것이요(왕상21:20,21)” 이세벨과 아합에게 속한 자는 개들이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아합과 이세벨은 나중에 비참하게 죽어서 개들이 시체를 핥아 먹습니다. 왕이 되고, 좋은 포도원을 쟁취했지만 그 행사가 악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 망했습니다. 잠언 24:1절에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눈앞에 이익이 있을지라도 과감하게 뿌리칩니다.

 

둘째로,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죄인의 길은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난 길을 가리킵니다. 죄인의 길은 쾌락이 있고, 잔재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의 유혹에 솔깃하지 않습니다. 죄를 미워하고 적극적으로 피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목자들의 분쟁으로 땅을 선택할 때 소돔을 보니 물이 넉넉하고, 애굽처럼 풍요로와 보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13:13절에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했습니다. 그는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에 이끌려, 그 길로 갔다가 유황 심판을 받았습니다. 전 재산을 잃고, 아내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딸들과의 관계에서 부끄러운 열매를 맺었습니다(19:36-38). 그러나 아브라함은 손해를 보면서도 약속의 땅에 거했습니다. 그때 믿음의 조상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셋째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오만한 자는 교만하여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을 무시하고 말을 함부로 합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이 그 교만을 꺾으십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은 오만방자하여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자는 다 목매달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자신이 나무에 달리고, 영광의 자리에는 모르드개가 앉았습니다. 이사야 36장에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쳐들어와서 온갖 오만한 말로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37:29)”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영을 보내셔서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죽게 하시고, 산헤립 왕은 고국에 돌아가서 자기 아들들에게 살해됩니다(37:38).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벧전5:5).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죄인들의 길은 넘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2,3)

 

반면에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자입니까?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오직영어성경에서는 ‘But’ 그랬습니다. 악과 죄, 오만을 싫어하는 대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까? 시편 19:7-10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합니다(perfect). 확실합니다(trustworthy). 정직합니다(right). 순결합니다(radiant). 정결합니다(pure). 의롭습니다(righteous).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면 영혼이 소성케 됩니다(reviving the soul). 마음이 기쁩니다(joy to the heart). 눈이 밝아 총명해집니다(light to the eyes). 정직한 자, 순결한 자, 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상이, 이론과 철학이 사람의 영혼을 소성시키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총명하고, 정직하고, 정결하고, 의롭게 해 줍니까?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완전하고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자가 거룩하고 의롭고 정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1:14).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6:35). 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는 영혼이 소성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그 영혼이 정결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서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습니다.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빛이 되어서 죄인의 길로 가지 않게 됩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우기 때문에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골수를 윤택하게 합니다(3:8).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합니까? 금보다 소중합니다(more precious than gold). 꿀보다 더 답니다(sweeter than honey).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즐거워해야 할 최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맛을 아는 사람은 입을 열고 헐떡입니다(119:131).

 

김보현 사모님의 언니 유진희 학사님은 말씀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영암, 저 산골 과수원에서 사시는데 주일이면 차를 몇 번 갈아타고 예배에 오십니다. 집에서 830분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집중해서 메시지를 듣는지 모릅니다. 인제센타 김요한 목자님은 인제대 교수님인데 월요일은 절대적으로 수업을 빼고, 본부 스텝미팅에 와서 말씀을 공부하십니다. , , 수요일 스텝수양회를 하면, 월요일 참석하고 화요일 김해까지 가서 수업하고 밤에 또 올라오셔서 화요일 밤, 수요일 아침 모임에 참석합니다. 그렇게 하니까 평신도 스텝으로서 바쁜 가운데도 인제센타에 많은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한 달 전에 워싱턴에 박엘리야 선교사님이 조카 결혼식 때문에 광주 오셨는데, 어떻게 알고 꼭 오셔서 인생소감을 발표해 달라고 하셔서 박엘리야 선교사님께서 인제센타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니까 할 수만 있으면 은혜로운 말씀과 소감을 양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말씀을 즐거워하는 자는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합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원어로 하가로서, ‘중얼거리다’ ‘읊조리다그런 뜻입니다. 틈만 나면 중얼중얼 말씀을 읊조립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고, 암송하고, 생각합니다. 글로 쓰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나누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말씀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때 말씀의 사람이 됩니다. 말씀의 향기가 묻어나는 사람, 말씀의 영이 느끼지는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저의 어머님은 얼마나 말씀을 즐거워하시는지 성경 66권을 다 필사하셨습니다. 80대 초반에 다 쓰셨습니다. 제가 가보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올해 87세 이신데 지금도 성경을 붙들고 사십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 고린도후서 6,7장을 암송하신 한엘리야 목자님은 매일 일용할 양식 본문을 필사하고, 신약 전체를 암송해가고 있습니다. 이분이 낮에는 공사판에서 타일과 방수 일 하기 때문에 밤에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같이 일하는 동료는 방에 드러누워서 계속해서 TV채널을 돌린다고 합니다. 더 재밌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서핑을 합니다. 그런데 엘리야 목자님은 혼자 거실로 나가서 성경을 필사합니다. 또 새벽 일찍 일어나서 말씀 암송을 합니다. 그 맛이 꿀맛이라고 합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무슨 복이 없어서 아내에게 아침밥도 못 얻어먹고 타향에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묵상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반면에 김형우 목자는 딸 다솔이 우유 타 주는 것도 잊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 장기게임에 빠져 있다가 동역자에게 엄청 야단맞았습니다. 야단맞아도 쌉니다.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허탄한 잔재미에 빠져 영혼을 탕진하고 있습니다. 큰 일 납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지 않는가? 영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보석처럼 귀히 여기고 어찌하든지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진액을 공급받고자 몸부림치며 투쟁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떤 복이 임합니까?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비가 잘 오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땅이 메마릅니다. 그런데 요단강 주변 시냇가는 땅이 비옥합니다. 그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수분과 영양분을 풍성히 공급받아서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싱싱합니다. 잎사귀가 무성합니다. 철을 따라 맛있는 과일을 주렁주렁 맺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뭐가 즐거운지 항상 웃습니다. 항상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에너지가 넘칩니다. 열정이 있고, 비젼으로 가득합니다.

 

지난 신년수양회에 특강강사로 오셨던 이모세 목자님은 처음에 UBF와서 말씀을 공부하고 너무 좋아서 말씀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항상 웃고 다니니까 별명이 히죽이었다고 했습니다. 인턴목자시절에는 말씀에 흠뻑 젖어서 일주일에 20, 30팀 일대일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7팀 연달아 일대일을 해도 힘이 펄펄 넘쳤다고 했습니다. 이모세 목자님을 보면 인도의 간디가 생각납니다. 너무 말라서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찬송 부르고, 말씀을 전하실 때 보면 어디서 힘이 나는지 파워가 넘치십니다. 이는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기 때문에 그 내면에 항상 은혜의 강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들었지만 그 인생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닿아 있기에 말씀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 나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둥 같은 목자들을 많이 세우고,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셨습니다. 미국, 캐나다, 일본, 중동, 러시아 등. 여러 곳에서 성동센타 출신의 훌륭한 선교사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습니까? 수많은 원수들이 다윗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심지어는 아들 압살롬까지 쿠테타를 일으켜서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동굴에 숨어 다니고, 이방 땅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하나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때 그는 항상 긍정적이고, 희망차고, 새 힘이 넘쳤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미움과 복수심, 원망과 쓴 뿌리를 품고, 가시돋힌 말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시드을 보면 얼마나 은혜가 있습니까? 이는 그가 주야로 말씀을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에 대한 미움, 복수할 생각, 이런 것을 묵상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이때 그는 하늘의 신령한 영을 공급받았습니다. 사무엘하 23:4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얼마나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싱그럽고, 신선하고, 영롱합니까? 그 영혼이 하나님의 영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시편 18편에서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18:1,2,29)” 불굴의 투지가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사니 하늘의 놀라운 힘과 지혜를 덧입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의 인생이 형통케 되었습니다. 과정에는 수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형통케 되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때 한국에 와서 신앙간증을 한 필리핀의 복싱선수 파퀴아오가 있습니다. 그는 무려 8체급을 넘나들며 10번이나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 쥐었습니다. TV와 영화에도 많이 출연하여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박과 술, 여자등 쾌락에 빠져 죄인의 길로 갔습니다. 아내와 매일 싸우고, 이혼직전까지 갔습니다. 온갖 향락을 누려도 행복하지 않았고, 공허함으로 고통했습니다. 자살하고자 했는데 옆에 총이 없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7년전 성경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눈물로 죄를 회개했고, 지금은 매일 아침 가족과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합니다. 지난 월요일 국민일보에 실린 그의 간증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물질로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당신의 심장과 영혼이 채워질 때 그때 비로소 주님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주님의 말씀만이 생명이다. 말씀을 외우는 신앙인이 되길 바란다말씀묵상을 통해서 위기로부터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간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탕주의로 거부가 되면 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파퀴아오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게 아닙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그 사람이 정말 복 있는 사람입니다.

 

. 의인과 악인의 결말(4-6)

 

4절을 봅시다. 같이 읽겠습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악인은 뿌리가 없습니다. 이러저리 바람따라 물결따라 날라다닙니다. 그게 매이지 않고 부담도 없고 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은 너무 가볍습니다. 무게가 없고, 열매가 없습니다. 후에 인생결산을 해 보면 쭉정이만 남습니다. 시련의 바람에 날라가 버립니다. 결국 5절에 보면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6절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3:12절에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9:27). 세상에서 적당히 죄와 타협하며 사는 것이 편하고 재미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런 열매가 없는 쭉정이는 마지막 날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5,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지금은 의인과 악인이 같이 섞여서 살아갑니다. 누가 더 지혜로운지, 누가 복 있는 자인지 잘 구분이 안갑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구분하십니다. 마지막 순간에 심판하십니다. 그때 알갱이가 충실한 의인은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칭찬하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십니다. 그러나 악인은 망합니다.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25:30).

 

예수님을 따르던 12명의 제자들이 3년 동안 함께 섞여 지냈습니다. 11명의 제자들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말씀 안에 거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후에 사도행전 역사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들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4:4절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24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로 갔습니다. 결국 스스로 목을 매었습니다(27:5).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습니다(1:18).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다윗을 죽이고자 했던 악인 사울도 최후가 너무 비참했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사랑하고 여호와를 찬양하기에 힘쓴 다윗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메시야의 그림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라 행한 아합과 이세벨도 망했습니다. 그러나 목숨 걸고 믿음의 길을 간 엘리야는 죽음도 보지 않고 불수레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처음부터 많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종이 한 장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차이가 많이 납니다. 나중에는 알곡이냐, 죽쩡이냐? 생명의 면류관이냐, 지옥의 불쏘시개냐? 그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이를 생각할 때 함부로 하루하루를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즐거워하고 있는지,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무엇을 묵상하는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정기적으로 죄를 즐기고 있다면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파멸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좀 부족해도 한 말씀이라도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치고 있다면 그는 의인의 모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2018년 출발하면서 다들 요절을 붙들고 새롭게 기도제목을 잡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 성경다독, 암송, 성경필사 등의 기도제목을 잡습니다. 작년에 우리 센타에서 365일 양식을 먹은 분이 19명이었는데 올해도 이를 결단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 결단이 희미해지기 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 즐길만한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우리가 오직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기로 결단 합시다. 즐길만한 것을 다 즐기고자 하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에너지가 분산되어서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허탄한 것들을 과감하게 절제합시다. ‘오직말씀에 집중하고, 말씀만 즐거워하고자 결단해 봅시다. 그때 조금씩 조금씩 말씀에 젖어들게 됩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세력을 얻게 됩니다. “말씀의 맛이 이렇게 좋은가? 역시 말씀이 최고야. 그래서 꿀보다 더 달다고 했구나하며 말씀의 맛을 알게 됩니다. 거룩을 사모하게 됩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그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힘든 양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이로서 올해 연말에 요절 심포지움을 발표할 때는 다들 승리의 소감을 발표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형통케 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