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5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말씀: 마가복음 14:27-72

요절: 마가복음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시고(1:35),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6:46). 성만찬 때도 기도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셨습니다(14:23).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가장 힘든 기도였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엄청난 일을 앞두고 계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기도의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이는 거룩한 고뇌요, 영적인 몸부림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겟세마네로 올라가서 예수님의 몸부림치는 기도를 배울 수 있길 바랍니다.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시며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떡과 포도주로 생명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가랴13:7절 말씀,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이 말씀에 기초해서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하셔서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그러나 예수님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예수님은 닭이 우는 횟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횟수까지 정확히 예언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제자들도 덩달아서 외쳤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그렇게 서운한 말씀 마십시오꼭 무슨 조직원들처럼 큰소리를 쳤습니다.

 

32절을 봅시다.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이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습니까? 33,34절에 보면 예수님은 심히 놀라며 슬퍼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심히 놀라고, 슬퍼하고, 고민이 되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힘들어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답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인성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고뇌와 아픔을 겪으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처절한 십자가 형벌을 앞에 두고 계십니다. 모든 인류의 죄 짐을 다 짊어져야만 합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잔인한 사형법으로 죽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힘든 시험만 앞두고 있어도 얼마나 피가 마르고 힘이 듭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무서운 형벌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심히 눌리고 고민하고 슬퍼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신의 고민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힘든 내면을 그대로 표출하시고 기도부탁을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감당 못할 시련을 만나면 피하고 숨어 버립니다. 이불 뒤집어쓰고 잠을 잡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35,3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예수님은 뒤로 물러서거나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름을 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올리브 열매가 으깨져서 기름을 짜듯이 몸부림치며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4절에 보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이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다는 의미입니다. ‘땅에 엎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의 쓴 잔을 옮겨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깊이 신뢰하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빠를 신뢰하듯,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계속해서 자신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기에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러나이는 위대한 반전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역사적인 결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철저히 부인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온전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제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이 기도 속에 예수님의 진솔한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생각없이 숙명적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죽으라면 죽어야죠 뭐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5:7,8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거룩한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진솔한 아픔과 갈등이 있기에 예수님의 기도는 더 값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동일한 내용으로 기도하셨습니다(39). 처음에는 투정도 부리고 떼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기도하고, 두 번 기도하고, 세 번 기도하는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사야 55:9절에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크고 높은 뜻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처음에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영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저주의 십자가지만 그 십자가 너머에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그 비밀을 깨닫게 되셨습니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도 항상 내가 원하는 바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사이에서 갈등을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바가 베스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이 더 베스트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최고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위에 서리내가 주인삼은 것, 내가 사랑했던 것 다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어리석인 것이 아닙니다. 정말 현명한 선택이요, 차원 높은 결단입니다.

 

미국의 Life Church를 시무하는 크레이그 그로셀(Craig groeschel)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적없이 살기보다 목적으로 인해 아파하겠습니다. 거룩한 사명없이 살기보다 사명으로 인해 아파하겠습니다. 만약에 기독교 신앙이 안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미신이요, 우상숭배입니다. 짐없이 사는 것이 결코 복이 아닙니다. 짐을 지는 것이 복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려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가장 위대한 복중에 하나를 놓치는 것입니다우리가 예수님처럼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크신 뜻에 순종하고자 몸부림치는 기도의 투쟁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마음 아파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차원 높은 복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22).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따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까? 이럴려고 100세에 아들을 주셨나요? 차라리 날 죽이세요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은 말없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들 이삭이 아빠,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어요?” 물어 볼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아픔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제단을 쌓고 아들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놓고 칼로 내리치고자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소중한 아들까지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크게 감동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기뻐하시고 이삭을 도로 주셨습니다. 대신 번제에 쓸 숫양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어 그 자손이 번성하게 하시고 그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22:17). 아브라함은 순종을 통해서 부활의 비밀을 체험했습니다. 더 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차원 높은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내적인 힘을 덧입고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41절에 보면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왔도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패배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로서 내적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할 때 처음에는 죽을 것 같이 두렵고 마음이 힘듭니다. 그러나 내 생각을 내려놓고 기도로서 순종할 때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부활 영광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기풍 목사는 예수 믿기 전에 유명한 평양깡패였습니다. 전도하는 사무엘 모펫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서 턱이 깨지게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후에 스왈론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7명의 목사 중에 한 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복음의 불모지인 제주도에 목회자를 파송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당시 평양신학교 교장이던 사무엘 모펫 선교사는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로 가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정치적인 유배지요, 미신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위험한 섬이었습니다. 이때 이기풍 목사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배 타고 제주도로 가다가 풍랑에 배가 파선하여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의 마음은 돌처럼 완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치 않고 제주 복음화를 위해 한라산 기슭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병 고치는 은사를 주셔서 11살 먹은 절름발이 소년을 일으키는 기적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큰 홍수에 한 여인이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는 대동강을 건너던 수영실력을 발휘해서 그 여인을 건져 살려 주었습니다. 이때 제주도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고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뱀을 뒷집 하라방이라고 부르며 뱀을 위해서 밥도 준비하고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기풍 목사는 몽둥이를 들고 뱀을 때려 잡았습니다. 이처럼 죽을 각오로 제주 선교에 힘을 썼을 때 5년 만에 3개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세례교인이 58, 성도수가 41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는 그 후에 광주, 순천, 벌교, 여수 등에서도 사역하며 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투옥되어 석방된 뒤 77세에 소천했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교회 수가 360, 성도수가 45000, 제주도민 7%가 기독교 신자입니다. 이기풍 목사가 복음의 불모지 제주도로 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 같은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했을 때 제주도를 비롯해서 전라도 지방에 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큰 믿음의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제주도와 전라도 지방만이 아니라 전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는 한국교회사에 살아있는 순교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캠퍼스에 전도하러 가고자 할 때 마음에 부담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조롱을 받고, 배척을 당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여, 전도의 쓴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좀 더 고상하게 신앙생활하게 해 주세요그러나 이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난의 쓴잔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생명의 열매를 맺고 부활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4:5-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바울은 죽음을 무릎 쓰고 복음을 전하다가 주의 제단에 자신의 인생을 온통 부어드릴 각오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슬퍼하거나 손해의식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의 지켰기 때문에 장차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의 인생은 고난의 쓴 잔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난 속에 뛰어 들어 자발적으로 고난을 감당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를 얻고 부활의 권능을 체험했습니다(3:8-10).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불사조와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가을 양들을 얻기 위해서 3일 동안 동아리 알림아리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안락하게 눌러 있으려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캠퍼스로 나가서 양들을 초청하는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보강 수양회에 20명의 양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저도 수고하는 목자님들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언어교육원에서 같이 영어공부하는 학생들을 초청했습니다. 첫날은 화공과 학생이 동신고를 나왔다고 해서, 내가 동신고 대선배라고 데려왔습니다. 둘째날은 산업공학과 학생이 이준웅 교수님 제자라고 해서 내가 그 교수님과 성경공부한 적이 있다고 말하며 데려왔습니다. 2주 전에 치전원에서 개강예배 말씀을 전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미국 수양회 갔다 온 직후라 피곤했지만 어찌든 한 양을 얻고자 메시지를 준비하여 전했습니다. 그때 같이 간 준경목자님, 조이목자님을 통해서 한지호 형제가 보강수양회에 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뜻은 할 수 있는대로 고난받지 않고 안락하게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고난의 쓴잔을 통해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편안한 축복보다는 거룩한 몸부림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들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장담했습니다(31). 그러나 그들은 인간적인 의리만 믿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번 기도하도록 권면하셨습니다.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32)”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34)”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38)” 오늘 아침 양식에 보면 다윗이 깨어있지 않았을 때 간음의 죄에 빠지고 결국은 거짓, 살인등 많은 죄를 범하고 엄청난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우리는 말만하지 말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막연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47절에 보면 예수님이 잡히시자 한 제자가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겁이 나서 다 도망갔습니다. 한 제자는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맨 마지막에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때 닭이 두 번 울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기도로 준비하신 예수님은 당당히 잡히셔서 대제사장 앞에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냐?” 묻자 내가 그니라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담대하게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기도로 무장하신 예수님과 말로만 장담한 제자들의 결과가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특히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몸부림치신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얼마나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고자 얼마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까? 요즘 기도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이번 주는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있습니다. 통일 제사장 나라를 이루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할 때입니다. 내일까지 있는 일본전국 수양회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9:29)”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기도를 쉬고 있었다면 다시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하겠습니다. 새벽기도의 불길이 타올라야 하겠습니다. 다들 금요기도회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세계 캠퍼스는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추수할 일군들을 세워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죄에 매어 있는 영혼들을 어찌든지 구원해 주시도록 부르짖는 기도의 십자가를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기도의 영적 전투를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돌이키는 역사를 힘써 이룰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