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F 역사자료
글수 15
좀 옛날 자료입니다.
광주에서 모스코바까지
말씀 /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UBF 30년사를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 저희를 택하사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나라로 쓰심을 확실 히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으로서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세계 187개국에 선 교사를 파송하여 제자양성하여서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역사의 흐름 을 바꾸어야겠습니다. 지난 30년전 광주에서 일어난 말구유 역사가 오늘날 80여개국을 개척과 천이백여명의 선교사파송역사를 이루시고 공산국의 종주국의 수도인 모스코바까지 개척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Ⅰ. 광주와 전국 개척역사 (1961-1966)
1. 이사무엘, 배사라 선교사님
UBF는 1961년 9월 1일 광주시 대인동 176-1번지에서 이사무엘, 배사라 선교사님 두 분의 합심기도를 통하여 전남대,조선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로써 광주는 1929년 광주학생의 기로, 이 나라 독립을 위해서,30년후인 1961년 세계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서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4.19혁명으로 대학생들은 민주복지 국가의 큰 희망을 갖고 있었으나 5.16 쿠테타로 인하여 심한 좌절과 절망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이들을 복음으 로 섬기고자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께서 "한국대학생성경연구회(UBF)"란 이름으로 학생 복음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라는 분명한 기도제목을 주시고 구체적으로 캠퍼스에서 Group Bible Study 와 1:1 역사를 통해서 이 역사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2. UBF의 특징과 성격
UBF의 선서를 살펴보면 이 모임의 특징과 성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군이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기독교 인생관을 확립한다. 2)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군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
이중 "하나님의 영광과 조국을 위해"는 나중에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위해"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처음부터 이 운동의 성격과 철학의 골격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한 사람의 주인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한 사람의 주인을 허락해 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전남 의대에서 전창선 형제와 조선대에서 김관옥 형 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당시 배사라 선교사님은 새벽 4시 30분에 Group English Bible Study 를 가르치고 5시 30분부터 7시까지 한국말 Group Bible Study를 가르쳤습니다. 전창선 형제는 이 모임 에 6년동안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공부한지 1년 후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 양들을 깨워서 5 명씩 참석을 시키어 양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서 리더의 핵심멤버가 성장해 갔습 니다.
4. Campus Group Bible Study
그당시에는 성경공부로써 1:1 보다는 Group Bible Study 를 하였습니다. 그때는 Campus Group Study가 100팀이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광주만 해도 캠퍼스 그룹공부가 100팀에 육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제자양성 역사를 위해서 1:1 역사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5. 소기도회
당시도 지금처럼 동역자 기도모임이 있어 '소기도회'로 이름하고 모든 것이 이 소기도회 중심으 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학생중심의 모임이었고 자율적인 역사였으며, 또 합심기도의 역 사였음을 말해줍니다. 매월 소회가 있었고 소회 때마다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이 모임에 절대성 을 가졌고, 이 모임을 통해서 리더 훈련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사관학교에서 장차 장교가 될 생도들도 '훈련을 상사에게 받는다' 하시면서 스스로 상사를 자처하시고 훈련을 시 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모임이 처음부터 리더 양성 역사요, 영적 사관학교였으며, 그에 합당한 훈련 이 살아있는 역사였음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나중에는 목자훈련이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계 속 되어 오고 있습니다.
6. 구제사업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기 위해 성탄 때마다 구제사업을 해 왔습니다. 처음엔 음식을 만들고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서 거지파티를 했습니다. 이것이 꾸준히 발전하여 매년 영적으로 불행한 자를 위한 선 교헌금과 육신적 재난을 당한 방글라데시, 에디오피아, 멕시코 등을 위해 모금역사를 이루기도 했습 니다.
7. 선교역사
모든 복음서의 결론 중 결론은 세계선교 명령인 것을 공부하고 Dr. Samuel Lee 목자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모임에 선교사명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당시 우리는 "동남아의 주초돌"이라는 제목으로 동남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1) 제주개척 (1964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1964년 봄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한 김한옥 선교사를 동남아의 첫 관문인 탐라국 제주도로 파송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이며,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광주의 목사님들과 선교사님을 초청하여 성대하게 파송예배를 보고 꽃다발을 증정했습니다. 우리는 김한옥 선교사를 비행기로 태워 보내고, 제주개척을 위한 선교헌금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해도 한국 교회가 미국 선교사들의 구호를 받으며 전적으로 의존하던 때요, 더구나 거지 근성이 뿌리 깊은 상 황에서 학생들에게 선교헌금을 시킨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결단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한번은 프린트를 하는데 배사라 선교사님은 학생들이 스스로 돈을 거두어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사무엘 선교사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날밤 사무엘 선교사님은 무등산에서 밤새도록 손이 다 부르트도록 풀뿌리를 잡고 기도하며 회개하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내려오셔서 학생들이 다 도망할 것을 각오하고 선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축복하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립정신과 희생정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또 성경공부할 때마 다 "문둥이처럼 오그라진 손을 펴서 주는 생활을 하자"고 선교 구호를 외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것 은 우리나라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을 의지하는 역사에서 자립역사, 아 낌없는 헌신역사, 주는 역사, 온 세계를 개척하는 역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정요셉 선교사님은 피 를 팔아서 선교헌금으로 내 놓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자립역사, 세계선교 역사의 기초가 되었습니 다.
(2) 대구, 전주, 대전 개척
대구개척은 1965년 1월에 정수일 목자님를 통해 개척을 했습니다. 1966년 1월 고이삭 목자님를 통해 개척역사를 시작했습니다. 1965년 11월 1일 Dr. Samuel Lee 선교사님은 배사라 선교사님을 대 전에 파송함으로써 충남대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서베드로 목자님이 주인으로 남아 그 역사를 섬기 게 되었습니다.
Ⅱ. 수도 서울 개척역사 (1966-1977)
1. 효제동 노랑집 2층
서울 개척은 재경 광주 유학생들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방학때 내려와 말씀공부 하게 되고 이 들을 돕기 위해 1965년 한해동안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매월 한번씩 심방하셨습니다. 그러다가 1966 년 봄학기 대전에 계시던 배사라 선교사님을 다시 서울로 파송하고, 곧이어 가을학기에 이사무엘 선 교사님을 파송하여 서울개척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그러니까 1961년 시작한 이래 6년 사이에 전 국을 재패한 것입니다. 처음 개척 역사를 시작한 곳은 효제동 95번지 노랑집 2층이었습니다. 이곳으로 광주를 비롯한 각 지방에서 얼마나 많은 편지가 오든지 주소를 '효제동 노랑집 2층'이라고만 써도 편지가 들어왔습니 다. 이때 고종호, 윤성수 등 깡패족속이 많았고, 동역자 모임을 한번씩 하면 유리창이 날라가곤 하였 습니다. 이런 속에서 이바울, 양마가, 주마리아, 안요셉, 김현배 등 주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잊을 수 없는 것은 파도같이 밀려오는 지방의 기도의 편지 지원이었습니다. 2. 효제동 37번지 이곳은 UBF 개척사상 잊을 수 없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일반 가옥을 사서 회관으로 개축한 것 으로서 지붕이 내려 앉을 것 같이 기둥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수세식이 아닌 화장실이 헐어서 들 어갈 때마다 곤욕을 치뤄야 했습니다. 남윤숙, 김세은 등 당시 우석의대의 말같은 여학생들이 드나드 는 것을 보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는지 모릅니다. 그곳의 인상은 꼭 아기 예 수님이 누이신 말구유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일용할양식이 집필되며, 성경선생들이 양성되고, 주마리아, 양마가, 이바울, 김다윗, 장베드로, 김제임스, 이아브라함 등 세계 적인 종들이 무수히 탄생되며, 서울의 모든 캠퍼스가 개척 되고 세계선교가 탄생된 역사적인 곳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과 선교비젼등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1) 일용할 양식 집필
성경읽기선교회가 가장 필요한 자립신앙과 말씀의 기초를 쌓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사무엘 선교사 님을 통하여 일용할양식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1968년 이래부터 본격적인 말씀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 요회역사의 시작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방향에 따라 서울은 지방과 달라 매일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하는 요회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일용할양식을 발표하고 요회 목자님들이 말씀을 전하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를통해 우리 모임이 더욱 말씀을 중심한 사귐이 되었고 목자양성에 큰 공헌을 했 습니다.
(3) 성경선생 양성
방학 때마다 창세기, 로마서, 사무엘, 이사야 등 성경학교를 통해 평신도 성경선생을 양성하게 되었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선생 양성에 전념해 온 역사였습니다. 특히 일대일 말씀역사는 모든 것이 다 대중화 된 시대에 한사람을 인격적으로 섬기고 사랑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배우며 또 모두가 다 성경선생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4) 성북 장막 역사
서울 개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병이어의 하나가 성북도장 역사입니다. 이것은 열매맺은 형 제공동생활 역사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북동 산꼭대기에 방을 하나 얻어 이바울, 양마가, 장베드로 목자님들이 자취를 한 것입니다. 이들은 밥해 먹을 시간이 없어 빵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으 면서 심방을 다녔고, 끼니를 굶으면서 선교헌금을 감당했습니다. 대개 이바울 목자님이 방을 많이 어 질면 양마가 목자님은 이것을 치우는 동역을 하나님께서는 서울 개척의 오병이어로 받으셨습니다.
(5) 안마리아 목자님의 핍박
안마리아 목자님이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사랑하자 질투심이 많은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그는 몰래 부억에서 식모와 함께 밥을 먹어야 했고 어떤 때는 다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한 마리아 목자님의 믿음은 오늘날까지 이 역사를 축복하신 오병이어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세 계선교를 위해 젊은 두 부부가 수년간씩 떨어져서 종로학사회, 과테말라, 멕시코, 종로3부의 개척역 사를 이루는 오병이어를 드렸습니다.
(6) 의대생의 오병이어
가장 바쁜 것이 의대생입니다. 그러나 전요한 목자님, 시카고 정요셉 선교사님을 비롯해서 서울 의대에서 김제임스, 서제임스, 이병두, 손정문, 고바울 목자님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가장 많은 시간 과 물질과 진심을 바쳐 주님을 섬겨온 UBF의 오병이어들입니다.
3. 서울 지구 개척
이들의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1967년에는 고대 복음역사를 위해서 동대문을, 1968년에는 연대, 이 대 개척역사를 위해서 서대문을, 1969년에는 경희대, 외대를 위한 경희문을, 1971년에는 성대를 위해 서 명륜센타를, 1973년에는 동국대를 위해서 남산센타를, 1975년에는 건국대, 세종대를 위해서 성동 센타를, 이전한 서울대 관악 캠퍼스를 위해서 관악센타를 각각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이후 1976년 9월에는 안암센타, 1977년에는 성동센타, 연희센타, 1978년에는 한양센타, 1979년에는 중앙센타가 개 척되었습니다. 1980년에는 포항, 1982년에는 인천이 개척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순천, 한남이 개척되 었습니다. 91년 현재까지 전국에 70개 센타가 개척되어 있습니다.
Ⅲ. 세계 개척역사 (1969-1991)
1960년대는 본국 개척의 시기였고, 1970년대는 서울개척과 함께 세계 개척의 준비와 시작의 시 기였다면, 1980년대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두 조류가 합하여 새롭고 강하게 흐르는 본격적인 세 계개척의 시기입니다. 이 세계 개척역사를 1.서독편 2.미국편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1. 서독 개척 (1969. 7. 17)
서독 개척 역사는 4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서인경, 설동란, 이화자 선교사 파송 (1969. 7. 17)
1969년 3월 우리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한 선교사를 싱가폴에 파송을 하였습니다.그러나 그는 공부를 위해 사명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우리의 실망은 컸습니다. 9년동안 기도의 열매로 열리 는가 싶던 동남아 선교가 문이 막혀 모두가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 역사를 이끌고 나가 도리어 세계선교 개척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당시 한국 간호원들이 취업차 서독에 많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민족적 슬픔이었습니다. 한국의 딸들이 가장 꽃다운 나이에 돈 때문에 만리타국으로 팔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운명 속에서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세계선교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서인경, 설동란, 이화 자 자매님들이 대전 간호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서베드로 목자님은 이들을 선교사로 서독에 보내고자 하는 비젼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이 세 자매님을 일주일간 훈련 하여 세계선교 첫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69년 7월 17일입니다. 말씀훈련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서독에 가서 말씀역사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매일밤, 근무가 끝난 후 8시 30분에 모여 성경을 읽고 간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축소판 수양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임 으로 간호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이것이 서독 개척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2) 김숙철, 이기향, 박포항, 이월신, 김영서, 송희순 선교사 파송
1972년 7월 약 3년 후에 이 6명의 선교사를 서독에 파송했습니다. 이들은 마가복음, 창세기 등 말씀훈련과 독일어 공부를 어느정도 정규훈련을 받고 파송된 선교사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서독에 일대일 말씀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세계선교의 비젼이 우리 가운데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지구봉을 돌려가면서 "세계는 우리의 밥이다"는 구호를 외치며 입맛을 쩝쩝 다셨습니다. 공항을 거의 매주 다니며 공항예배를 보는 역사 가 시작되었습니다. 늘 사도행전 1:8절과 마태복음 28:17-20절등 세계선교 지상명령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선교 개척역사가 처음부터 시도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제 십여년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짧다면 짧은 기간에 하나님은 크신 일을 행하셨습니다.
(3) 1974년 스위스 세계대회, 1975년 프랑크푸르트 수양회
이 두 모임은 서독 개척역사 초기의 절정기였습니다. 74년 스위스 수양회는 169명, 75년 프랑크 푸르트 수양회는 한국인 180명, 이방양 40명 합해서 22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강사로서 요한복음, 고린도 15장등 주옥같은 말씀을 전해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71년 8월 숭전대에서의 전국 수양회때,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81년에는 200명이 미국에서 모여 세계대회를 갖 자고 기도를 시작했으며, 1979년에 이미 이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4) Abraham Lee, Stephen Choi 선교사 파송
1971년 12월 31일 대전에서 스데반 최 선교사를 도르트문트로 파송하고, 곧이어 1978년 2월 28 일 서독 지부장인 Abraham K. Lee 선교사를 퀼른으로 파송하므로 서독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형제중심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3명의 간호원 선교사로 시작하여 이때까 지 8년간을 자매 선교사님들이 믿음의 중심을 지킬 뿐만아니라 많은 개척의 역사를 이루신 것은 기 적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선교 동역자들이 귀국하여 시집도 가고 미국으로 재파송 될 때 서독의 이기향 선교사는 "나는 죽어도 서독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습 니다. 하나님은 이 한 사람의 믿음을 받으시고 서독역사를 지키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기향 선교 사는 Abraham K. Lee 선교사님과 선교지부장 가정을 이루시게 되었습니다. Abraham K. Lee 선교 사님, Stephen Choi 선교사님에 이어서 지난 5년간 15명의 형제 선교사님들이 각 센타에서 파송되어 형제중심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1983년 여름수양회는 28명의 이방양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84년에는 이방양이 선교사의 수보다 많도록 기도하였습니다. 84년 수양회는 90명이 등록하고 36명이 참석하여 그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 니다. 85년 90명, 86년 여름수양회는 108명이 참석하였습니다. 1991년에는 16개국 대표 참석하여 371 명이 참석하는 유럽 국제수양회가 되었습니다. 2. 미국 개척 (1970-1991) 미국 개척은 서독보다 약 일년 반 가량 늦은 1970년 11월부터 시작되어 약 20년의 역사입니다. 1977년 6월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파송을 중심으로 그전의 6년 반의 역사,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파송 역사, 그후의 5년 반의 역사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1970 - 1977. 6
1970년 11월과 71년 3월 당시 N.M.C 간호원으로 있던 고주임, 허명순, 박정숙 선교사들을 뉴욕 으로 파송함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중 고주임 선교사는 오늘날 김바울 선교사님의 동역 자로 뉴욕 지부장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72년 3월 이다윗 선교사를 시카고에, 73년 정은혜, 윤복순, 서정순, 문희열, 장순희 등 십여명을, 74년 김세운, 김바울, 양정숙, 남사라 등 29명, 75년 조순화, 박 은혜, 이에스더, 박마르다, 장모세 등 19명 선교사님들을 계속 파송하였습니다. 이 6년 반 동안 얼마 나 많은 역사가 있었겠습니까마는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75년의 개척역사입니다. 이때 선교사님들은 대부분 뉴욕으로 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75년 에도 Washington, Pittsburg, Chicago, Toledo 등 많은 지구가 개척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에 뉴욕의 김바울 목자님을 사용하셨습니다. 뉴욕의 김바울 목자님은 머리가 굵고 공대 출신으로 노가 다 기질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소위 '개발질'로 목자님들을 패서 뉴욕 선교사님들을 겁나게 하 였습니다. 김바울 목자님의 '개발질'을 견디다 못한 선교사님들이 하는 수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김미숙 선교사님은 Washington으로, 정순헌 선교사님은 Pittsburg으로, 원복순 선교사님 은 Toledo로, 정은혜 선교사님은 Chicago로, 양정숙 선교사님은 Buffalo로 도망을 갔습니다. 어떻게 했건 Washington, Pittsburg, Toledo 등 많은 지구가 개척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방법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김바울 목자님의 개발질도 귀하게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훌륭한 점 뿐만 아니라 연약한 점까지도 전부 쓰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둘째, 1975년 8월 18일부터 22일에 있었던 나이아가라 수양회입니다. 우리 선교사와 한국 사람 160명, 이방양 21명이 참석했습니다. 이것은 NMC출신 세 자매 선교사를 파송한 후 4년 만의 역사입 니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1971년 수양회 때 10년후 1981년 각국에서 200명의 수양회를 하도록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75년 나이아가라 수양회에 181명, 프랑크푸르트 수양회 때 220명의 수양회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 기도를 신실하게 들으시는가, 그리고 세계선교를 얼마나 화끈 히 원하시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또한 목자 한 사람으로서, 연약한 자매 선교사들만을 통해 이런 역 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들의 이름없이 드린 충성과 헌신이 어떤 것이었는가 알 수 있습니다. 워싱톤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사랑의 역사, Toledo 원복순 선교사님의 매일 밤 새벽 1시까지의 합심 기도가 이 역사의 오병이어였습니다. 1976. 5.21일에 정요셉, 정에스더 선교사가 시카고에 파송되어 시카고 센타에서 체계적으로 역사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2) 이사무엘 선교사님 파송
77년 6월 13일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시카고에 파송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캠퍼스 개척 역사와 세계선교사상 가장 큰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광주에서 6년, 서울에서 10년, 도합 16년간 본국 개척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는 모든 특권과 안정된 생활을 다 버리고 50의 나이 에 다시 세계선교를 섬기기 위해 선교일선으로 떠났습니다. 또한 세계선교 방향을 굳게 하셨습니다.
(3) 1977년 6월 13일 이후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미국 파송으로 본격적으로 미국 캠퍼스 개척역사가 시작되었고, 만 14년동 안 2개 Chpater개척의 크신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561 Full Time 목자와 메리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미국을 새롭게 Bible Teacher를 양성하는 Missionary Sending Country로 변화되었습니다. 한편 시 카고를 비롯하여 51개국 지구에서 60년대 광주, 66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역사가 세계 개척 역사에 약 700명의 선교사들에 의해 활발히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난 MSU 여름수양회, International Conference는 31개국에서 이방양과 지부장을 합한 1,20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로인해 John Bird, Ron Ward, Mark V.C 등 Full Time 목자들이 자라나고 있고, 이외에도 각 지구에서 수 많은 Full Time 목자 또는 선교후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3. 공산권 종주국인 소련 개척 (1990.8.28 이후)
이사무엘 선교사님께서 1985년도에 공산권의 종주국인 소련 모스코바 개척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기도제목을 제시했습니다. 이 기도제목을 영접한 미국의 Jim Rabchuk, Brain Wilford, July Nugent 목자들이 단기 어학연수로 3개월간 Shorterm Missionary로 갔다 왔습니다. 1985년 한국 World Mission Report에서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소련 개척 기도제목을 영접한 James Hwang, Deborah Chung, Peter Kim, 팀장인 Augustine Song 선교사가 모스코바 선교사로 갔습니다. 지금 현재 모스 코바에 24명, 레닌그라드에 5명, 타시켄트에 2명, 키에프에 5명의 선교사님들이 그곳 대학을 개척하 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에는 158명 (소련학생 102명)이 참석하는 역사적인 수양회를 가졌습니 다.
결론적으로 30년전 광주에서 시작한 말구유 역사는 이제 세계 6대주에 51개국에 지부장을 세우고 제자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광주에서 시작한 이 말구유 역사는 개척 30년만에 공산국의 종주국의 수도인 모스코바까지 정복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가 부족하든 보통이든 잘났든 저희 를 제사장 나라로 쓰시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택하심과 부르심을 새롭게 영접 하고 제사장으로서 직분인 간절한 심정으로 세계 158개국 개척과 제자양성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 다. 둘째로, 우리가 처한 캠퍼스에서 1:1을 하여 제자양성을 하여 선교사를 많이 키워 세계역사를 섬 겨야겠습니다. 나 자신이 우리대학의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대제사장임을 깨닫고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광주에서 모스코바까지
말씀 /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UBF 30년사를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 저희를 택하사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나라로 쓰심을 확실 히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으로서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세계 187개국에 선 교사를 파송하여 제자양성하여서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역사의 흐름 을 바꾸어야겠습니다. 지난 30년전 광주에서 일어난 말구유 역사가 오늘날 80여개국을 개척과 천이백여명의 선교사파송역사를 이루시고 공산국의 종주국의 수도인 모스코바까지 개척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Ⅰ. 광주와 전국 개척역사 (1961-1966)
1. 이사무엘, 배사라 선교사님
UBF는 1961년 9월 1일 광주시 대인동 176-1번지에서 이사무엘, 배사라 선교사님 두 분의 합심기도를 통하여 전남대,조선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로써 광주는 1929년 광주학생의 기로, 이 나라 독립을 위해서,30년후인 1961년 세계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서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4.19혁명으로 대학생들은 민주복지 국가의 큰 희망을 갖고 있었으나 5.16 쿠테타로 인하여 심한 좌절과 절망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이들을 복음으 로 섬기고자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께서 "한국대학생성경연구회(UBF)"란 이름으로 학생 복음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라는 분명한 기도제목을 주시고 구체적으로 캠퍼스에서 Group Bible Study 와 1:1 역사를 통해서 이 역사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2. UBF의 특징과 성격
UBF의 선서를 살펴보면 이 모임의 특징과 성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군이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기독교 인생관을 확립한다. 2)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군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
이중 "하나님의 영광과 조국을 위해"는 나중에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위해"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처음부터 이 운동의 성격과 철학의 골격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한 사람의 주인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한 사람의 주인을 허락해 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전남 의대에서 전창선 형제와 조선대에서 김관옥 형 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당시 배사라 선교사님은 새벽 4시 30분에 Group English Bible Study 를 가르치고 5시 30분부터 7시까지 한국말 Group Bible Study를 가르쳤습니다. 전창선 형제는 이 모임 에 6년동안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공부한지 1년 후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 양들을 깨워서 5 명씩 참석을 시키어 양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서 리더의 핵심멤버가 성장해 갔습 니다.
4. Campus Group Bible Study
그당시에는 성경공부로써 1:1 보다는 Group Bible Study 를 하였습니다. 그때는 Campus Group Study가 100팀이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광주만 해도 캠퍼스 그룹공부가 100팀에 육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제자양성 역사를 위해서 1:1 역사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5. 소기도회
당시도 지금처럼 동역자 기도모임이 있어 '소기도회'로 이름하고 모든 것이 이 소기도회 중심으 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학생중심의 모임이었고 자율적인 역사였으며, 또 합심기도의 역 사였음을 말해줍니다. 매월 소회가 있었고 소회 때마다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이 모임에 절대성 을 가졌고, 이 모임을 통해서 리더 훈련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사관학교에서 장차 장교가 될 생도들도 '훈련을 상사에게 받는다' 하시면서 스스로 상사를 자처하시고 훈련을 시 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모임이 처음부터 리더 양성 역사요, 영적 사관학교였으며, 그에 합당한 훈련 이 살아있는 역사였음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나중에는 목자훈련이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계 속 되어 오고 있습니다.
6. 구제사업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기 위해 성탄 때마다 구제사업을 해 왔습니다. 처음엔 음식을 만들고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서 거지파티를 했습니다. 이것이 꾸준히 발전하여 매년 영적으로 불행한 자를 위한 선 교헌금과 육신적 재난을 당한 방글라데시, 에디오피아, 멕시코 등을 위해 모금역사를 이루기도 했습 니다.
7. 선교역사
모든 복음서의 결론 중 결론은 세계선교 명령인 것을 공부하고 Dr. Samuel Lee 목자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모임에 선교사명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당시 우리는 "동남아의 주초돌"이라는 제목으로 동남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1) 제주개척 (1964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1964년 봄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한 김한옥 선교사를 동남아의 첫 관문인 탐라국 제주도로 파송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이며,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광주의 목사님들과 선교사님을 초청하여 성대하게 파송예배를 보고 꽃다발을 증정했습니다. 우리는 김한옥 선교사를 비행기로 태워 보내고, 제주개척을 위한 선교헌금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해도 한국 교회가 미국 선교사들의 구호를 받으며 전적으로 의존하던 때요, 더구나 거지 근성이 뿌리 깊은 상 황에서 학생들에게 선교헌금을 시킨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결단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한번은 프린트를 하는데 배사라 선교사님은 학생들이 스스로 돈을 거두어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사무엘 선교사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날밤 사무엘 선교사님은 무등산에서 밤새도록 손이 다 부르트도록 풀뿌리를 잡고 기도하며 회개하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내려오셔서 학생들이 다 도망할 것을 각오하고 선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축복하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립정신과 희생정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또 성경공부할 때마 다 "문둥이처럼 오그라진 손을 펴서 주는 생활을 하자"고 선교 구호를 외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것 은 우리나라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을 의지하는 역사에서 자립역사, 아 낌없는 헌신역사, 주는 역사, 온 세계를 개척하는 역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정요셉 선교사님은 피 를 팔아서 선교헌금으로 내 놓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자립역사, 세계선교 역사의 기초가 되었습니 다.
(2) 대구, 전주, 대전 개척
대구개척은 1965년 1월에 정수일 목자님를 통해 개척을 했습니다. 1966년 1월 고이삭 목자님를 통해 개척역사를 시작했습니다. 1965년 11월 1일 Dr. Samuel Lee 선교사님은 배사라 선교사님을 대 전에 파송함으로써 충남대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서베드로 목자님이 주인으로 남아 그 역사를 섬기 게 되었습니다.
Ⅱ. 수도 서울 개척역사 (1966-1977)
1. 효제동 노랑집 2층
서울 개척은 재경 광주 유학생들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방학때 내려와 말씀공부 하게 되고 이 들을 돕기 위해 1965년 한해동안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매월 한번씩 심방하셨습니다. 그러다가 1966 년 봄학기 대전에 계시던 배사라 선교사님을 다시 서울로 파송하고, 곧이어 가을학기에 이사무엘 선 교사님을 파송하여 서울개척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그러니까 1961년 시작한 이래 6년 사이에 전 국을 재패한 것입니다. 처음 개척 역사를 시작한 곳은 효제동 95번지 노랑집 2층이었습니다. 이곳으로 광주를 비롯한 각 지방에서 얼마나 많은 편지가 오든지 주소를 '효제동 노랑집 2층'이라고만 써도 편지가 들어왔습니 다. 이때 고종호, 윤성수 등 깡패족속이 많았고, 동역자 모임을 한번씩 하면 유리창이 날라가곤 하였 습니다. 이런 속에서 이바울, 양마가, 주마리아, 안요셉, 김현배 등 주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잊을 수 없는 것은 파도같이 밀려오는 지방의 기도의 편지 지원이었습니다. 2. 효제동 37번지 이곳은 UBF 개척사상 잊을 수 없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일반 가옥을 사서 회관으로 개축한 것 으로서 지붕이 내려 앉을 것 같이 기둥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수세식이 아닌 화장실이 헐어서 들 어갈 때마다 곤욕을 치뤄야 했습니다. 남윤숙, 김세은 등 당시 우석의대의 말같은 여학생들이 드나드 는 것을 보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는지 모릅니다. 그곳의 인상은 꼭 아기 예 수님이 누이신 말구유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일용할양식이 집필되며, 성경선생들이 양성되고, 주마리아, 양마가, 이바울, 김다윗, 장베드로, 김제임스, 이아브라함 등 세계 적인 종들이 무수히 탄생되며, 서울의 모든 캠퍼스가 개척 되고 세계선교가 탄생된 역사적인 곳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과 선교비젼등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1) 일용할 양식 집필
성경읽기선교회가 가장 필요한 자립신앙과 말씀의 기초를 쌓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사무엘 선교사 님을 통하여 일용할양식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1968년 이래부터 본격적인 말씀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 요회역사의 시작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방향에 따라 서울은 지방과 달라 매일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하는 요회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일용할양식을 발표하고 요회 목자님들이 말씀을 전하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를통해 우리 모임이 더욱 말씀을 중심한 사귐이 되었고 목자양성에 큰 공헌을 했 습니다.
(3) 성경선생 양성
방학 때마다 창세기, 로마서, 사무엘, 이사야 등 성경학교를 통해 평신도 성경선생을 양성하게 되었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선생 양성에 전념해 온 역사였습니다. 특히 일대일 말씀역사는 모든 것이 다 대중화 된 시대에 한사람을 인격적으로 섬기고 사랑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배우며 또 모두가 다 성경선생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4) 성북 장막 역사
서울 개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병이어의 하나가 성북도장 역사입니다. 이것은 열매맺은 형 제공동생활 역사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북동 산꼭대기에 방을 하나 얻어 이바울, 양마가, 장베드로 목자님들이 자취를 한 것입니다. 이들은 밥해 먹을 시간이 없어 빵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으 면서 심방을 다녔고, 끼니를 굶으면서 선교헌금을 감당했습니다. 대개 이바울 목자님이 방을 많이 어 질면 양마가 목자님은 이것을 치우는 동역을 하나님께서는 서울 개척의 오병이어로 받으셨습니다.
(5) 안마리아 목자님의 핍박
안마리아 목자님이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사랑하자 질투심이 많은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그는 몰래 부억에서 식모와 함께 밥을 먹어야 했고 어떤 때는 다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한 마리아 목자님의 믿음은 오늘날까지 이 역사를 축복하신 오병이어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세 계선교를 위해 젊은 두 부부가 수년간씩 떨어져서 종로학사회, 과테말라, 멕시코, 종로3부의 개척역 사를 이루는 오병이어를 드렸습니다.
(6) 의대생의 오병이어
가장 바쁜 것이 의대생입니다. 그러나 전요한 목자님, 시카고 정요셉 선교사님을 비롯해서 서울 의대에서 김제임스, 서제임스, 이병두, 손정문, 고바울 목자님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가장 많은 시간 과 물질과 진심을 바쳐 주님을 섬겨온 UBF의 오병이어들입니다.
3. 서울 지구 개척
이들의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1967년에는 고대 복음역사를 위해서 동대문을, 1968년에는 연대, 이 대 개척역사를 위해서 서대문을, 1969년에는 경희대, 외대를 위한 경희문을, 1971년에는 성대를 위해 서 명륜센타를, 1973년에는 동국대를 위해서 남산센타를, 1975년에는 건국대, 세종대를 위해서 성동 센타를, 이전한 서울대 관악 캠퍼스를 위해서 관악센타를 각각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이후 1976년 9월에는 안암센타, 1977년에는 성동센타, 연희센타, 1978년에는 한양센타, 1979년에는 중앙센타가 개 척되었습니다. 1980년에는 포항, 1982년에는 인천이 개척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순천, 한남이 개척되 었습니다. 91년 현재까지 전국에 70개 센타가 개척되어 있습니다.
Ⅲ. 세계 개척역사 (1969-1991)
1960년대는 본국 개척의 시기였고, 1970년대는 서울개척과 함께 세계 개척의 준비와 시작의 시 기였다면, 1980년대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두 조류가 합하여 새롭고 강하게 흐르는 본격적인 세 계개척의 시기입니다. 이 세계 개척역사를 1.서독편 2.미국편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1. 서독 개척 (1969. 7. 17)
서독 개척 역사는 4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서인경, 설동란, 이화자 선교사 파송 (1969. 7. 17)
1969년 3월 우리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한 선교사를 싱가폴에 파송을 하였습니다.그러나 그는 공부를 위해 사명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우리의 실망은 컸습니다. 9년동안 기도의 열매로 열리 는가 싶던 동남아 선교가 문이 막혀 모두가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 역사를 이끌고 나가 도리어 세계선교 개척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당시 한국 간호원들이 취업차 서독에 많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민족적 슬픔이었습니다. 한국의 딸들이 가장 꽃다운 나이에 돈 때문에 만리타국으로 팔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운명 속에서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세계선교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서인경, 설동란, 이화 자 자매님들이 대전 간호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서베드로 목자님은 이들을 선교사로 서독에 보내고자 하는 비젼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이 세 자매님을 일주일간 훈련 하여 세계선교 첫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69년 7월 17일입니다. 말씀훈련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서독에 가서 말씀역사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매일밤, 근무가 끝난 후 8시 30분에 모여 성경을 읽고 간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축소판 수양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임 으로 간호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이것이 서독 개척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2) 김숙철, 이기향, 박포항, 이월신, 김영서, 송희순 선교사 파송
1972년 7월 약 3년 후에 이 6명의 선교사를 서독에 파송했습니다. 이들은 마가복음, 창세기 등 말씀훈련과 독일어 공부를 어느정도 정규훈련을 받고 파송된 선교사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서독에 일대일 말씀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세계선교의 비젼이 우리 가운데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지구봉을 돌려가면서 "세계는 우리의 밥이다"는 구호를 외치며 입맛을 쩝쩝 다셨습니다. 공항을 거의 매주 다니며 공항예배를 보는 역사 가 시작되었습니다. 늘 사도행전 1:8절과 마태복음 28:17-20절등 세계선교 지상명령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선교 개척역사가 처음부터 시도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제 십여년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짧다면 짧은 기간에 하나님은 크신 일을 행하셨습니다.
(3) 1974년 스위스 세계대회, 1975년 프랑크푸르트 수양회
이 두 모임은 서독 개척역사 초기의 절정기였습니다. 74년 스위스 수양회는 169명, 75년 프랑크 푸르트 수양회는 한국인 180명, 이방양 40명 합해서 22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강사로서 요한복음, 고린도 15장등 주옥같은 말씀을 전해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71년 8월 숭전대에서의 전국 수양회때,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81년에는 200명이 미국에서 모여 세계대회를 갖 자고 기도를 시작했으며, 1979년에 이미 이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4) Abraham Lee, Stephen Choi 선교사 파송
1971년 12월 31일 대전에서 스데반 최 선교사를 도르트문트로 파송하고, 곧이어 1978년 2월 28 일 서독 지부장인 Abraham K. Lee 선교사를 퀼른으로 파송하므로 서독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형제중심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3명의 간호원 선교사로 시작하여 이때까 지 8년간을 자매 선교사님들이 믿음의 중심을 지킬 뿐만아니라 많은 개척의 역사를 이루신 것은 기 적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선교 동역자들이 귀국하여 시집도 가고 미국으로 재파송 될 때 서독의 이기향 선교사는 "나는 죽어도 서독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습 니다. 하나님은 이 한 사람의 믿음을 받으시고 서독역사를 지키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기향 선교 사는 Abraham K. Lee 선교사님과 선교지부장 가정을 이루시게 되었습니다. Abraham K. Lee 선교 사님, Stephen Choi 선교사님에 이어서 지난 5년간 15명의 형제 선교사님들이 각 센타에서 파송되어 형제중심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1983년 여름수양회는 28명의 이방양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84년에는 이방양이 선교사의 수보다 많도록 기도하였습니다. 84년 수양회는 90명이 등록하고 36명이 참석하여 그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 니다. 85년 90명, 86년 여름수양회는 108명이 참석하였습니다. 1991년에는 16개국 대표 참석하여 371 명이 참석하는 유럽 국제수양회가 되었습니다. 2. 미국 개척 (1970-1991) 미국 개척은 서독보다 약 일년 반 가량 늦은 1970년 11월부터 시작되어 약 20년의 역사입니다. 1977년 6월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파송을 중심으로 그전의 6년 반의 역사,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파송 역사, 그후의 5년 반의 역사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1970 - 1977. 6
1970년 11월과 71년 3월 당시 N.M.C 간호원으로 있던 고주임, 허명순, 박정숙 선교사들을 뉴욕 으로 파송함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중 고주임 선교사는 오늘날 김바울 선교사님의 동역 자로 뉴욕 지부장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72년 3월 이다윗 선교사를 시카고에, 73년 정은혜, 윤복순, 서정순, 문희열, 장순희 등 십여명을, 74년 김세운, 김바울, 양정숙, 남사라 등 29명, 75년 조순화, 박 은혜, 이에스더, 박마르다, 장모세 등 19명 선교사님들을 계속 파송하였습니다. 이 6년 반 동안 얼마 나 많은 역사가 있었겠습니까마는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75년의 개척역사입니다. 이때 선교사님들은 대부분 뉴욕으로 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75년 에도 Washington, Pittsburg, Chicago, Toledo 등 많은 지구가 개척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에 뉴욕의 김바울 목자님을 사용하셨습니다. 뉴욕의 김바울 목자님은 머리가 굵고 공대 출신으로 노가 다 기질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소위 '개발질'로 목자님들을 패서 뉴욕 선교사님들을 겁나게 하 였습니다. 김바울 목자님의 '개발질'을 견디다 못한 선교사님들이 하는 수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김미숙 선교사님은 Washington으로, 정순헌 선교사님은 Pittsburg으로, 원복순 선교사님 은 Toledo로, 정은혜 선교사님은 Chicago로, 양정숙 선교사님은 Buffalo로 도망을 갔습니다. 어떻게 했건 Washington, Pittsburg, Toledo 등 많은 지구가 개척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방법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김바울 목자님의 개발질도 귀하게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훌륭한 점 뿐만 아니라 연약한 점까지도 전부 쓰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둘째, 1975년 8월 18일부터 22일에 있었던 나이아가라 수양회입니다. 우리 선교사와 한국 사람 160명, 이방양 21명이 참석했습니다. 이것은 NMC출신 세 자매 선교사를 파송한 후 4년 만의 역사입 니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1971년 수양회 때 10년후 1981년 각국에서 200명의 수양회를 하도록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75년 나이아가라 수양회에 181명, 프랑크푸르트 수양회 때 220명의 수양회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 기도를 신실하게 들으시는가, 그리고 세계선교를 얼마나 화끈 히 원하시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또한 목자 한 사람으로서, 연약한 자매 선교사들만을 통해 이런 역 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그들의 이름없이 드린 충성과 헌신이 어떤 것이었는가 알 수 있습니다. 워싱톤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사랑의 역사, Toledo 원복순 선교사님의 매일 밤 새벽 1시까지의 합심 기도가 이 역사의 오병이어였습니다. 1976. 5.21일에 정요셉, 정에스더 선교사가 시카고에 파송되어 시카고 센타에서 체계적으로 역사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2) 이사무엘 선교사님 파송
77년 6월 13일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시카고에 파송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캠퍼스 개척 역사와 세계선교사상 가장 큰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광주에서 6년, 서울에서 10년, 도합 16년간 본국 개척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는 모든 특권과 안정된 생활을 다 버리고 50의 나이 에 다시 세계선교를 섬기기 위해 선교일선으로 떠났습니다. 또한 세계선교 방향을 굳게 하셨습니다.
(3) 1977년 6월 13일 이후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미국 파송으로 본격적으로 미국 캠퍼스 개척역사가 시작되었고, 만 14년동 안 2개 Chpater개척의 크신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561 Full Time 목자와 메리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미국을 새롭게 Bible Teacher를 양성하는 Missionary Sending Country로 변화되었습니다. 한편 시 카고를 비롯하여 51개국 지구에서 60년대 광주, 66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역사가 세계 개척 역사에 약 700명의 선교사들에 의해 활발히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난 MSU 여름수양회, International Conference는 31개국에서 이방양과 지부장을 합한 1,20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로인해 John Bird, Ron Ward, Mark V.C 등 Full Time 목자들이 자라나고 있고, 이외에도 각 지구에서 수 많은 Full Time 목자 또는 선교후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3. 공산권 종주국인 소련 개척 (1990.8.28 이후)
이사무엘 선교사님께서 1985년도에 공산권의 종주국인 소련 모스코바 개척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기도제목을 제시했습니다. 이 기도제목을 영접한 미국의 Jim Rabchuk, Brain Wilford, July Nugent 목자들이 단기 어학연수로 3개월간 Shorterm Missionary로 갔다 왔습니다. 1985년 한국 World Mission Report에서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소련 개척 기도제목을 영접한 James Hwang, Deborah Chung, Peter Kim, 팀장인 Augustine Song 선교사가 모스코바 선교사로 갔습니다. 지금 현재 모스 코바에 24명, 레닌그라드에 5명, 타시켄트에 2명, 키에프에 5명의 선교사님들이 그곳 대학을 개척하 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에는 158명 (소련학생 102명)이 참석하는 역사적인 수양회를 가졌습니 다.
결론적으로 30년전 광주에서 시작한 말구유 역사는 이제 세계 6대주에 51개국에 지부장을 세우고 제자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광주에서 시작한 이 말구유 역사는 개척 30년만에 공산국의 종주국의 수도인 모스코바까지 정복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가 부족하든 보통이든 잘났든 저희 를 제사장 나라로 쓰시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택하심과 부르심을 새롭게 영접 하고 제사장으로서 직분인 간절한 심정으로 세계 158개국 개척과 제자양성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 다. 둘째로, 우리가 처한 캠퍼스에서 1:1을 하여 제자양성을 하여 선교사를 많이 키워 세계역사를 섬 겨야겠습니다. 나 자신이 우리대학의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대제사장임을 깨닫고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