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개척사(1969-1982)                                                                               By Sarah K.Lee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 1:4)

이 시간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초기 독일 개척사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일을 UBF 세계 선교의 첫 선교지로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 역사상 회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보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쓰셔서 독일에 평신도 선교사를 보내시고 캠퍼스 개척을 시작 하셨는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간 우리는 사무엘 선교사님의 불타는 목자의 심정과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Ⅰ. 독일, UBF 세게선교의 첫 선교지

이 사무엘 선교사님은 복음서를 공부하실 때마다 예수님의 세계선교 명령에 부딪히셨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학생들 심령가운데 세계선교 비전을 심으셨습니다. 주일예배가 끝날때마다 학생들은 손에 손을 잡고 외쳤습니다. “성서한국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혀라!” 이것은 UBF 모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UBF 형제자매들이 끊임없는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께서 해외에 나가실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1967년도 암스텔담에서 개최하는 IFES모임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 때 한 한국 간호원이 독일 에센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그를 방문하셔서 그와 함께 병원옥상에서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이 독일UBF역사의 기도의 첫 시앗이 되었습니다.

1969년 6월에 세 명의 간호원들이 UBF첫 평신도 선교사들로서 서독에 갔습니다. 그들은 서인경(메리 송), 이화자, 설동란이었습니다. 2차 대전후 서독은 전쟁의 폐허를 딧고 소위 “라인강의 기적” 이라고 하는 경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경제부흥과 함께 서독 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간호원들과 광부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많은 한국 간호원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서독에 갔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한국의 딸들이 꽃다운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강대국에 가야했던 것은 가슴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UBF 세계 선교의 문을 여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들은 선교사들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독일어를 할 줄 몰랐는데 심지어는 “Guten Morgen"또는 ”Ich liebe dich"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정규 선교사 훈련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그들을 독일 역사에 오병이어로 귀하게 보시고 이들을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또 이들에게 십일동안 성경과 독일어를 가르치신 후 손수 친필로 선교사 임명장을 쓰시고 UBF첫 선교사들로 파송하셨습니다. 그들이 독일에 도착해서 하는 것이라곤 하루 일과가 끝나면 기숙사에 모여서 성경을 읽고 일용할 양식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간호원들이 이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독일 역사에 산실이 되었습니다.

1972년 6월 여섯 명의 선교사들, 숙철김, 사라리, 문행박, 수산나 민, 안나 한 그리고 레베카 김이 독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들은 본국에서 마가복음, 창세기 말씀공부와 독일어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독일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성경공부하고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이들은 풀타임 간호원들로서 하루 일과가 끝나면 자기시간과 또 주말을 희생해서 양들을 심방하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이방땅에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는 우리 간호원들에게 이 성경공부는 마치 목마른 사슴에게 생명수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대일 역사를 크게 축복해 주셔서 흥황한 말씀역사를 이루셨고 그 결과 매 년마다 수양회 참가자가 급속도로 늘게 되었습니다.

Ⅱ. 두 역사적인 수양회

두 역사적인 수양회가 있었는데 하나는 1974년도 “스위스 제비스 수양회”였고 다른 하나는 1975년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수양회”였습니다.

1974년 6월에는 이사무엘 선교사님께서 Dr. Billy Graham이 주최하는 스위스 로잔의 ICWE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약 3천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했고 그 주제는 “Cross-cultural Evangelism"였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그것이 UBF 평신도 선교운동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하나님께서 UBF를 크게 축복해 주신 것과 또 귀하게 쓰시고 있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스위스와 독일에 있는 20개 UBF지부 즉, 베른, 주에리크, 포르자임, 솔링겐, 본, 받혼네프, 쾰른, 베르린,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노르덴함, 하메른, 비에레펠트, 립스타튿 등을 방문하셨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동역자들과 양떼들에게 고린도전서 15장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의 지엽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가르치시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처음부터 서독 선교사들에게 목자의 심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 한국에 있는 자기 막둥이 딸이 페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간호 선교사들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밤 눈물로 회개하시고 이들 선교사들을 자기 막둥이 딸처럼 사랑하기로 결단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꽃다운 나이에 가난한 가정을 돌보기 위해 이방 땅에서 고생하고 있는 우리 선교사들을 향한 불타는 목자의 심정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스위스 수양회 준비를 위해서 Wuppertal에서 선교 동역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41명의 자매동역자들 가운데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유일한 형제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으로 왔기 때문에 조금도 불편하시지 않았습니다. 수양회 주제는 “네 장막터를 넓히라”였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우리 간호 선교사들 가운데 비전을 심고자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목자님께서 쾰른 완구점 앞을 지나가다가 개 인형 한 마리가 하늘을 쳐다 보면서 웃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인형을 사셨는데 이름을 ‘환상’이라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형을 홍사라 선교사에게 선물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분이 환상을 가지고 간호학교에 들어가셔서 장차 독일 역사를 위해 열국의 어미가 되도록 소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서독에는 약 8천명의 한국 간호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근본 문제는 비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독일어를 공부하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기만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이들이 독일어를 정복하고 계약이 끝나기 전에 간호학교에 들어가서 장차 캐나다나 미국등 제3세계로 나가도록 권면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어, 독일어, 영어, 3개 국어를 마스터하면 장차 열국의 어미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스위스 수양회가 끝났을 때 170명 참석자들 중에 30명이 제 3세계로 나가고자 결단했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제 3세계로 나가기 전에 실제적으로 그들의 결혼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메리 송 선교사님은 피터 송 목자님과 결혼해서 뉴욕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수잔나 민 선교사님은 데이빗 민 목자님과 결혼해서 시카고를 거쳐 아이오와로 가서 교수목자 가정을 이뤘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이렇게 한국의 초고 대학 졸업생들을 세계선교에 바치셨습니다. 그 결과 한국 자매님들의 일부는 독일 선교사님들이 일등 신랑감들과 결혼하므로 독일 선교사님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마침내 스위스 수양회가 1974년도 9월 16일부터 22일가지 개최되었습니다. 수양회 참석자들이 매년 증가했습니다. 1972년에는 20명에서, 1973년도 41명으로, 1974년 스위스 수양회에는 17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1975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큰 수양회가 있었는데 40명 독일 양들을 포함해서 총 220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대는 미국 저니 팀으로 마더 배리, 닥터 제임스 김, 드보라 리, 그레이스 윤 선교사님들이 기도의 종으로 참석했습니다. 1975년도 배사라 선교사님이 쓰신 한국 “총회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습니다. “이 두 수양회는 UBF세계선교 역사상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한국사람에게만 성경을 가르쳤던 서독 선교사님들이 독일 현지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한국 형제 자매님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내셨는데 독일 선교사님들 가운데 일어난 큰 성령의 역사를 보고하셨습니다. 이 편지들은 한국 스텝과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로인해 이들은 세계선교를 위해서 더 열정적으로 기도했고 독일과 미국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4천통 이상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스위스와 프랑크푸르트 수양회에 일주일 동안 주옥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이 수양회는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천국잔치였습니다.

이 스위스 수양회의 하이라이트는 요한복음 1장 4절에 기초한 “사람들의 빛” 메시지였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이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많은 참석자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날 밤은 참석자 모두가 자기생애 최고의 “생명 심포지엄”을 서서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UBF인생소감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 전쟁중 공산군에 의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하루에 잃었습니다. 그래서 운명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서 생명력 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동역을 해서 전심으로 독일 역사를 섬겼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저는 그분을 따랐고, 목자님께서 성경공부를 잘 하실 수 있도록 영적인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독일 선교사들이 결혼하러 한국에 돌아 갔을때 저는 독일에 뼈를 묻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사무엘 선교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지성적이고 그 눈매가 이순신 장군처럼 생긴 아브라함 리 선교사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때, 독일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 양들은 가난한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운명적이었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이들에게 요한복음 8장 ‘진흙을 이겨 소경을 고친 예수님’을 메시지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진흙을 이김으로 즉, 자기들의 손에 있는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함으로써, 운명주의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들 중 사라홍, 그레이스 박, 데보라 유 선교사들은 간호학교에 들어가서 3년동안 공부하고 정식 간호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고 각 지구 지부장들의 사모님들이 되었습니다.

수양회가 끝날 즈음 모든 동역자들은 그룹을 나누어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중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러자 모두가 울었습니다. 수양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중 비행기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한 스튜어디스가 그에게 다가와서 ‘어디가 아프냐, 아스피린이 필요하냐’고 세 변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예수님의 은혜와 또 독일에 남겨둔 양떼들 때문에 울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신 후 목자님은 계속하여 기도와 편지로 독일에 있는 영적 딸들을 돌보셨습니다. 지금가지의 독일 역사를 생각할 때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목자의 심정과 아버지의 마음을 귀하게 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Ⅲ. 캠퍼스 개척과 제자 양성

1976년에 한국 시니어 목자들 가운데 사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독일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로인하여 많은 동역자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독일로 심방을 오셨습니다.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았기 때문에 기차역에서 German소세지를 드시면서 3개월동안 머무셨습니다. 한번은 말씀하시기를 ‘3개월 후에는 German소세지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모든 동역자들을 심방하시면서 각 사람을 말씀공부와 기도로 도우셨는데, 이것이 독일UBF에 견고한 기초를 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련의 때에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집중적인 일용할 양식으로 영적인 전투를 하셨습니다. 그당시 3개월동안 쓰신 일용할 양식은 참으로 감동력이 있는 영적보물과 같았습니다. 사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간호원 선교사들 가운데“거룩한 씨앗”들을 남기셨습니다. 후에 이들은 한국 목자들과 결혼을 하고 그 남편들이 독일에 옴으로 캠퍼스 역사가 구체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캠퍼스역사는 1978년도 아브라함 리 선교사님이 독일에 오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처음 독일에 왔을 때,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했기 때문에 꿀 벙어리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사무엘선교사님은 그가 Goethe학원에 들어가서 독일어를 공부하도록 격려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각기 다른 센터에서 오신 여러 종류의 선교사들을 품기에는 목자경륜이 짧았습니다. 사무엘 선교사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 리 선교사를 집중적으로 도우셨습니다. 어떤 해는 그를 일년에 내 번이나 시카고에 초청을 해서 말씀훈련, 목자훈련 그리고 어학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한 해는 성경 전권의 문단을 나누고, 그 문단을 암송하고 나중에는 테스트를 보아야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그는 말씀의 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홍갈렙선교사님은 1979년 2월에 쾰른으로 오셨습니다. 이분은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서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쾰른 대학병원에서는 몇 달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1980년에 사무엘 선교사님은 그를 방문하시고 복잡하고 추상적이 생각을 버리고 믿음을 배우도록 격려하셨습니다. 또한 성경 전권을 읽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가 성경 전권을 독파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건강을 기적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나중에 그는 1982년에 하이델베르그로 파송되었고, 열매 맺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리 선교사를 계승해서 독일과 유럽에 두 번째 지부장이 되었습니다.

피터장 선교사님은 성격이 예민하고 명예심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하고도 동역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그에게 큰 가능성을 보시고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는 나중에 아브라함 리 선교사님의 좋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본 역사의 기도의 어미요, 충성된 사라장 선교사님과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많은 어려움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모범적인 제자 양성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뿐만아니라 2세들의 음악교육도 성공적으로 이루었습니다.

볼케르켈러 목자는 스위스와 프랑크푸르트 수양회의 열매였습니다. 그가 UBF에 나왔을 때, 긴 머리를 하고 빨간 부츠를 신고 키타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독일 히피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교사님은 이 한 사람을 끝까지 도우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했을 때, 페트라 켈러 선교사님과 첫 이방 목자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네 자녀들을 허락해 주셨는데 이들은 독일 역사 가운데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발터넷 목자는 독일의 첫 인턴목자입니다. 그는 졸업할 때 쯤 늦게 피싱이 되어서 졸업 후 쾰른에 와서 훈련을 받고 인턴목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가지 위대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생각이 분명하고 한 번 확신을 하면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위대한 점을 쓰셔서 UBF가 이단으로 몰릴 때, UBF 모임을 보호한 믿음의 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결혼 문제로 투쟁할 때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워싱턴 UBF출신인 비넬레 깁손목자와 축복된 하나님가정을 이루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리 선교사님을 이어서 쾰른 역사에 책임목자가 될 것입니다.

현재 독일UBF는 리더쉽이 한국 선교사들로부터 현지목자들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쾰른에는 발터 넷과 에버하르트 그로스, 본에는 페터 슈바이쪄와 스테판 엘숄즈 그리고 하이델베르그에는 라이너 샤우비엔놀드목자가 주일예배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일 UBF역사 보고를 통해서 우리는 실로 예수님이 생명의 주인이요, 사람들의 빛이 되심을 배웠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독일 간호사 선교사님들은 운명적이고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에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영접했을 때, 그들의 운명이 하나님의 섭리로 바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생명을 예수님께 바쳤을때, 이들은 모두 20세기에 “사람들의 빛”이 되었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독일UBF역사를 돌이켜 볼때, 몇 사람의 간호 선교사들이 독일 역사를 바꾸리라고 누가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안드레의 오병이어를 귀하게 쓰신것처럼, 하나님은 이들을 귀하게 쓰셔서 많은 목자들을 세우시고 독일 역사를 바꾸셨습니다. 독일을 유럽의 모든 나라들 가운데 목자의 나라로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독일을 위한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이 시간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불타는 목자의 심정을 귀하게 쓰시고 또 배사라 선교사님, 전요한 박사님 그리고 그레이스 A 리 선교사님의 기도를 귀하게 쓰셔서 독일 263개 캠퍼스 개척과 유럽 33개국 개척에 기초를 쌓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독일을 축복하셔서 이 시대 유럽 모든 국가들의 목자의 나라로 쓰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