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이문화재단이사장수상작입니다 (임연식)

 이 상은 전세계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 전파에 공이 큰 분들의 수기를 공모하여 당첨된 작품입니다.


인생역전-초등교사에서 대학교수로

1. 한국에서 삶

 

나는 19501128일 전남 해남의 시골 마을에서 4남매 중 3대 독자로 태어났다. 1968년 해남읍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졸업 후 1년간 농사일을 하면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준비도 함께 한 결과 1969년 광주교육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19713월부터 20078월말까지 366개월 동안 해남, 화순, 나주, 고흥, 보성 등에서 초등교사로 일했다. 조상들이 물려준 논밭에서 농사일만 하며 평생 농부로 살아갔을 나에게 초등교사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나의 적성에도 맞는 초등교사직은 불타는 열정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교직생활동안 학생들을 체육대회, 학예발표회 등 각종대회에 참가시켜 상위 입상케 한 지도상을 30 여회 넘게 받았다. 가끔씩 일찍 승진한 동료들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이 초라하게 생각될 때도 있었지만, 교육자의 보람과 생명은 직접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60세가 될 때 까지는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이 후에 체력이 약해지면 승진하여 남은 교직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59세 되던 해 그동안 준비해 왔던 높은 점수에도 불구하고 농촌 초등학교 수가 급감하여 승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승진을 한다 해도 늦은 나이에 멀리 섬 학교에 발령이 나서 근무한다고 생각하니 승진이 안 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20071월 키르기즈스탄 오쉬라는 도시에서 일하고 있던 김부길이란 20년 후배가 와서 오쉬에는 한국에 일하러 가거나 공부하러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정년퇴직 후 오쉬에 와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때까지 외국에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승진이 안 되어 그랬는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과 두 아들의 결혼을 2-3년 내에 시키고 나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76월 무리하게 운동을 한 후 성대에 부종이 생겨서 3주간 병가를 얻어 치료를 받던 중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병이 들 수도 있고 또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성대의 병만 나으면 바로 명퇴를 하고 키르기즈에 가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 명예퇴직 신청을 하였고 마침내 20078월말 36년 반 동안의 초등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2. 오쉬기술대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

 

키르기즈스탄에서 살려면 언어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키르기즈어 문법책을 구하여 매일 5-6시간 이상씩 열심히 언어를 준비했다. 20082월에 후배로부터 키르기즈스탄 오쉬기술대에서 나를 한국어 교수로 초청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대학에서는 국제학부 학생들에게 부전공으로 중국어나 한국어를 선택해서 배우게 하려고 자격 있는 한국어 교수를 찾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 후배가 내가 오쉬에 올 것이라고 대학에 말하자, 대학에서 나를 한국어교수로 초청한 것이었다. 내가 외국대학의 교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08614일 키르기즈스탄 오쉬에 와서 한국어를 가르칠 교실을 보니 너무나 열악해서 도저히 공부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8월 한 달 동안 새로 책상과 걸상을 구입하고, 벽과 바닥도 깨끗하게 수리하고, 교실을 두 칸으로 만드는 등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바꾸었다. 두 교실로 만든 이유는 한 교실은 부전공 학생의 교실로 또 한 교실은 클럽활동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교실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동안 교직생활로 지쳤던 몸과 마음도 쉴 겸, 시간이 나면 못 다녀 본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좀 여유 있게 퇴직 후 삶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대학교수가 되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쉬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대신 교육에 대한 열정이 다시 일어났다. 매주 부전공으로 공부하는 2시간만 가지고서는 한국어를 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귀한 노년의 시간을 편하게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20092월부터 30여명의 학생 중에서 우수한 학생 7-8명을 뽑아 매일 1-2시간 이상씩 한국어 특별보충지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들에게 한국어 능력시험(TOPIK)에도 응시하고 한국정부초청장학생에도 도전하도록 꿈을 심어주었다.

이 학생들 중 굴잔이란 학생은 한국 유학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2011년 키르기즈스탄에서 단 한 명 뽑는 한국정부초청장학생에 뽑혀 5년간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20169월부터는 경희대학교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수한 재원들을 뽑아 집중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서 장차 이 나라의 인재들로 키워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해마다 신입생 중에서 국가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을 모집해 특별 그룹을 만들어 매일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또 장학금도 주었다. 마침내 2014즐드즈칸’(경희대 관광학과), 2015이브라김’ (서울대 건축공학과) 학생이 정부초청장학생이 되었다. 특히 2016년에는 타자굴’(이화여대에 환경공학과) ‘아이자르큰(전북대 건축공학과) ’부룰차‘( 전주대 전기전자학과) ’디나라‘ (구미대학 기업경영학과)등 무려 4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한국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호남대학교(2010),‘ 전주대학교(2011)’ ‘전북대학교(2012)’ ‘남서울대학교(2014)’ ‘ 한양대학교 (2016)’ 와 교류협력을 맺어 지금까지 호남대학교에 9, 전주대학교에 1, 전북대학교에 4, 남서울대학교에 2명 등 16명의 학생들이 1년 과정이나 6개월 과정으로 어학연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교류협력학교에서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면제해 준다 해도 어학연수를 가려면 최소 왕복 항공료와 생활비로 약 2000 ~ 3000 달러 정도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학생들도 있어 이들의 항공료와 생활비 일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이곳 학생들은 해마다 여름방학 3개월 동안 고향에 가서 농사일을 도와주다 9월초 개학 때에 맞춰 학교에 온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조금 공부했던 것들도 다 잊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0년 여름방학 때부터는 1개월씩 한국어 보충수업을 해 주었다. 특별히 금년 2016년 여름방학 때는 오쉬 시내에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2개월간 한국어 보충수업을 해주었다. 여름방학 기간이야 말로 교육의 황금시간이 아니던가... 왜냐하면 평상시 시간이 없어 충분히 가르쳐 주지 못했던 한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태권도, 부채춤, 한국음식 만들기 같은 한국문화도 가르쳐 줄 수 있고 한국에서 온 대학생 해외 봉사팀의 캠프에도 참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북대학교에서 2(2012, 2014). 한양대학교(2016)에서 1회씩 캠프를 해 주었다. 캠프에 참석한 학생들은 한국 대학생들과 친구가 되었고 지금도 한국 학생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나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여학생들에게 부채춤을 꼭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한복과 부채를 준비하고 가르쳐 줄 한국 분을 기다렸는데 다행히 2010년 한국인 치과병원에 1년간 치위생사로 봉사하러 온 김영희선생님이 부채춤을 가르쳐 주었다. 부채춤은 지난 6년 동안 학교의 여러 행사는 물론 오쉬 시의 노루즈 행사’ ‘시민의 날 행사’ ‘다민족의 날 행사’ ‘새해축하 행사등에 초청을 받아 공연하였고 오쉬의 텔레비전 방송에도 몇 차례 방영되었다.

키르기즈스탄의 한국어 열풍은 아주 뜨겁다. 15개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이나 부전공 등으로 가르치고 있고 학생수는 1000 명 가까이 된다.

매년 대학생들의 백일장대회, 말하기대회, 퀴즈대회가 있다. 나는 2013년 제 10 회 말하기 대회에 처음으로 학생 2명을 데리고 참가하였다. 처음 참가한 이 대회에서 우리 학생이 1등과 2등을 차지하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과 나는 비록 지방도시의 학생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수도권의 학생들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고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 후 매년 열리는 말하기대회, 백일장대회, 퀴즈대회 등에 참가시켰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상위 상을 차지했다. 특별히 20165월에 있었던 퀴즈대회에 참가한 우리대학 4명의 학생들이 1, 2, 3, 5등을 휩쓸었다. 대회에 참가하신 한국 대사님이 이 퀴즈대회에서 1등을 한 배그맛탈르학생을 201681-12일까지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청소년초청 연수프로그램에 보내주었다.

2014년부터 오쉬 기술대학교의 국제관계학부가 오쉬 국립대학교로 옮겨가게 된 이후로는 한국어가 교양과목으로 바뀌었고, 한국어를 선택한 학생들은 주 2시간의 수업을 받고 있다.

나는 오쉬 기술대학교의 총장님으로부터 개교 50주년(2014) 행사 때 그 동안의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을 인정받아 메달을 받는 등 지금까지 세 번의 상을 받았다.

 

3. 세종학당을 통한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

 

이곳 오쉬는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과 유학을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아주 많은 도시이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 위해 세종학당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비쉬켁 한국교육원의 정민규원장님의 적극적인 협조로 비쉬켁 한국교육원과 연계하여 세종학당을 신청한 결과, 20137월 세종학당 지정서를 받고 201398일부터 세종학당을 개원하게 되었다. 첫 해 120 여명의 수강생으로 시작하였는데, 2016년 현재 200 여명의 학생들이 초급반부터 고급반까지 11개 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또 특별반으로 토픽 I, II , 부채춤 반. 장구 반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세종 초1B, 세종 초2B, 고급반, 장구반 등 4 반을 가르치고 있다. 매년 2회씩 치러지는 한국어 능력시험에 70-80여 명씩 응시하고 있으며, 현재 3(7)4(6)에 합격한 학생들도 있다. 일정한 수준에 올라간 학생들에게 한국어 능력 급수에 따라 장학금을 주면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해 주고 있다. 매년 신규 세종학당 학생을 모집할 때마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지만 현재의 한정된 교사의 수와 시설로는 다 가르쳐 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다보니 대학생이 되어 한국어를 시작하는 것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20162월에 25여명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이들을 2개 반으로 나눠 한국어와 영어를 매주 4시간씩 가르치고 있다. 20169월에는 고등학교 9학년생들을 중심으로 또 다시 15여 명을 뽑아 1개 반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2명에게는 개인적으로 인건비를 지불하고 있다. 나는 이들이 장차 이 나라의 인재들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기쁨으로 이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

2015년에는 세종학당 시설개선사업을 통해 다용도 문화 체험실 1, 일반교실 3, 행정실 1실 등이 완전히 리모델링되어 한국의 교실 못지 않은 멋진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 오시는 외부손님들의 필수 답사코스가 되었고 오쉬 기술대학의 대표적 자랑거리가 되었다 . 다용도 문화 체험실에서는 영화상영, 태권도, 부채춤, 장구, 한국음식 체험은 물론 한국어 수업도 하는 등 아주 다양하게 활용되어 지고 있다.

20169월에는 네이버 문화재단 지원으로 각종 도서, 영화 CD, 한국노래 CD, 사물놀이 복, 붕어빵틀, 호두빵틀, 김밥말이 등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칠 수 있도록 많은 자료들을 보내주어서 다양한 한국문화를 가르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세종학당 문화교육 프로그램으로 매년 하고 있는 김밥, 비빔밥, 잡채, 불고기 등 한국음식 만들기 체험활동은 학생들에게 너무도 인기가 있다. 또 한복을 입고 사진 찍기를 할 때는 너무도 행복해 한다. 팽이치기, 굴렁쇠 굴리기, 제기차기, 줄넘기, 비석치기, 강강술래 등의 민속놀이와 한국 영화보기 활동도 매년 해 오고 있는 행사들이다. 이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한국문화를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K-POP 대회를 열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4년 전부터 사물놀이를 가르치기 위해 북 4, 장구 6, 꽹과리 2, 1개를 준비했는데 비쉬켁 고려인 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꿈의 학교정안드레교장선생님이 사물놀이 지도 선생님 두 분을 201682-12일까지 보내주어 9명의 학생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쳐주었다. 연습하는 동안 사물놀이 소리가 밖에서 들리지 않도록 문을 닫고 악기 표면에 은박지까지 씌워서 연습을 하였지만 시끄럽다고 항의를 하는 분들이 있어 꽤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다. 결국 해결책으로 다용도 문화체험실 안에 있는 작은 음식조리실로 쓰이는 공간에서 연습을 하도록 했다. 이중 문이 있어서 다행히 밖으로 큰 소리가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사물놀이 팀은 금년 105오쉬 시의 날행사에 초청을 받아 수천 명의 오쉬 시민들이 모인 주청사 광장에서 멋진 사물놀이를 보여줄 수 있어 얼마나 기쁘고 흐뭇했는지 모른다. 세종학당은 이렇듯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중심적 위치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4. 오쉬 한글학교를 통한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

 

오쉬에는 한인 가정이 13 가정 정도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아이들은 현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들에게 국어, 수학, 역사, 영어, 음악 등을 가르치기 위해 2013년부터 한글학교를 등록하여 7명의 교사가 15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8년 오쉬에 온 첫 해에 김부길후배의 집 마당의 빈터에 약 20평 정도의 건물을 지었다. 탁구도 치고 학생들도 가르칠 교실로 사용하려는 꿈이 있었는데 바로 이 건물이 오쉬 한글학교의 교실로 사용되고 있다. 초등교사의 경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인지 2013년부터 오쉬 한글학교가 시작될 때부터 한글학교 교장직을 맡아 학생들에게 리듬악기합주, 장구, 한국노래 등을 가르쳤고 현재는 하모니카를 가르치고 있다. 또 한국초등학교 4-6학년 과학책 중에서 꼭 필요한 단원의 주제를 골라 과학실험을 해주고 있다. 20169월부터는 매월 2회씩 현지인 선생님을 모셔와 이 나라의 전통악기인 코무즈를 가르쳐주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날에는 이곳 한인들이 함께 모여 합동 세배를 하고 학생들에게는 세뱃돈도 주고 있으며 추석명절 때는 고려인들과 한인들이 체육대회도 하고 야외로 나가 함께 점심을 먹고 게임도 하면서 화합의 장을 만들어 오고 있다.

인생후반의 나이에 교수가 되어 오쉬 기술대학교와 세종학당과 한글학교를 통해 지난 8년 동안 수 많은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쳐오면서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보람 있고 행복한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다. 또 이 나라의 인재들을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이 삶이야말로 내 인생의 역전이 아닌가.